소설리스트

〈 1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13/507)



〈 1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한 중년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내던졌다.

"병신 새끼들.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죄송합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숙이며 면목이 없다는 듯 사과했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물이 담긴 유리잔을 그에게 내던졌다.

쨍강! 하고 유리잔은 남자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아 깨지기까지 했지만 남자에게는 상처 하나 없었다.


"백화점 하나 전소. 사상자 17명에 부상자 89명. 게다가 TV 생방송까지. 그나마 실험체가 알려진게 아니라서 다행이지 아니였다면 니들 다 모가지야"


끼익, 하고 중년 남자가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것은 일에서 짤린다는 모가지가 아니라 입막음을 위한 모가지를 말한다.


"실험체의 확보는 철저하게 했겠지?"

"네, 사망자의 시신들과 섞여서 후송되는걸 빼왔습니다. 실험체가 변질된 것을 보아 폭주하여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험체의 추정 무력은?"


"폭주 했을때 이성을 잃어서 복잡한 능력 사용은 못한다 하더라도 순수하게 위력만 보았을 때 익스퍼트 상위 정도로 추정됩니다"


"유저 수준이였던 녀석이 단숨에 익스퍼트 상위라. 폭주만 아니였더라도 쓸만해질텐데"

중년 남자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세상은 하고 싶은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역시 사망원인은 자기붕괴로 죽은거겠지?"

"네? 아, 아뇨.......실험체의 사망 원인은 두부의 타격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뭐? 뒤통수 맞고 뒈진거라고?"

실험체가 폭주하다 스스로 죽은 것과 누군가에게 타격을 입고 죽은 것은 차이가 크다. 전자는 걱정할게 없지만 후자는 누군가가 실험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물 파편에 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은?"

"실험체는 라프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적성종이 아니라도 물리내성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실험체를 건물 파편 따위로 죽이려면 톤 단위의 파편을 머리 위에서 떨어트려야 할겁니다"

"역시 그러면 포스 유저밖에 답이 없겠지?"

"네"

중년 남자와 직원 남성.  사람에게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느닺없이 나타난 괴인. 아니, 뉴스나 인터넷에서는 정체불명의 히어로라고 퍼트리고 있는 라쿤맨에게 의심이 간다.


"무력도 대충 추정이지만 마스터급이겠다. 이놈이 거의 확실하겠군"


"사건 현장에는  각성한 포스 유저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어서 기억하는건 없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중년 남자는 조금 생각을 하다 말했다.

"남은 실험체들은 몇이지? 탈출한 녀석들로"


"두 실험체는 확보했고 나머지 두 실험체들만 남았습니다. 단지 특성이 은밀 행동에 적합하거나 산속으로 도망가서 찾는데 어렵다 뿐이지 시간을 들이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새끼가 제일 문제였다는건가? 이 자식 때문에 연구소가 불바다만 되지 않았어도 실험체가 탈출할 기회는 없었을텐데"


죽어서 다행인건지, 아니면 실험체 하나를 잃어서 그 반대인건지. 자신도 모를 감정에 화를 내며 중년 남성이 이를 갈았다.


"니들은 이 너구린지 뭔지 하는 녀석부터 조사해봐. 마스터급으로 추정되는 포스 유저니까 주의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사람의 이야기는 끝났다.

* *  * *



백리와 진서애씨에 대한건  되었다. 우선 백리는 이제 우리 가게 정직원으로 채용 되었고 진서애씨도 정기적인 수입을 위해 마찬가지로 일하게 되었다.


집에 아이가 있지만 우리 가게는 비교적 일찍 끝나기 때문에 괜찮다. 정 그러면 내가 나와서 잠깐 일하면서 진서애씨는 먼저 보내도 된다.

"치킨집 정사원이라니, 뭔가 좀 어감이 기묘하네요"

"체인점으로 범위 넓히고 싶은 마음이 없는건 아닌데 그러면 할일이 많아지거든. 아무튼 넌 일로 와봐라. 노하우 전수 해줄테니까 바짝 배워. 이거 은근 힘들다?"


"군대에서 취사병도 해봤는데 못할게 뭐가 있겠어요?"

하루에 수백명의 장병들의 식사를 세번이나 만드는게 취사병이다. 복날이면 작은 닭이라도 한마리씩 먹여주려고 더운날 푹푹 고아서 삼계탕 만드는게 일이고. 체력 문제라면 얘는 이제 포스 유저니 넘쳤으면 넘쳤지 부족하진 않다. 내가 백리를 괜히 주방 맡기려고 한게 아니다.


"힘 조절은 어때?"

"그럭저럭이요. 사용하는 법도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혼자서 냉장고 하나도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라고요"


"너도 꽤 재능은 있어. 특성만 개발하면 더 나아질껄? 그런쪽 강좌같은건 없어?"

"국가직이나 기업쪽으로 알아보면 있을법도 한데. 솔직히 돈들어서요"

"그래서 공짜 과외 선생님으로 부려드시겠다?"


"에이, 제가 더 포스 잘쓰면 장사도 잘해서 형도 좋잖아요?"


그러긴 하다. 쉬지 않고 하루에 세자리수의 치킨을 튀겨서 내는게 쉬울리 없다. 일반인은 솔직히 몇년정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 무리고 포스 유저 정도가 무난히 가능하다.

"최악씨, 이건 어디다 둘까요?"

"아, 그건 숙성 해두는거니까 냉동실에다 넣어놓으면 되는거예요. 이쪽이요"


노하우라고 해봐야 크게 세가진데, 하나는 밑간 해두고 잘 숙성된 닭과 튀김옷, 그리고 튀기는 법이다.

양념 소스는 배합만 맞으면 되니까 괜찮다. 여차하면 내가 만들어 두고 가면 되지 뭐.


"아침부터 고생이 많습니다"


"어?"

아직 열지 않은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다. 우리 가게 키는 내가 하나 가지고 있고 혹시 몰라서 하나 복사해서 시온에게 준게 있다. 어쩐일이래? 가게 연 이후로 온적 없던 사람이?

"뭐야, 연락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저도 건물 상태 보러 잠깐 나온겁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치킨 한마리 튀겨줄테니까. 후라이드 좋아했지?"


아침이지만 시온이 그런걸 가리는 편은 아니다. 모닝 치킨도 좋다고.

영업 시간 이전에 찾아온 손님에게 백리와 진서애씨가 시선을 준다.

"저기, 형. 누구세요?"

"내 마누라 겸 우리 가게 건물주"


".......진짜요?"


"내가 전에 말했지? 그냥 보면 무슨 초등학생인줄 알거라고"

백리가 나를 썩은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서로 사랑하겠다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안좋은걸까?

"최악씨, 설마 혹시 우리 성혜 한테도........"

"아뇨, 아뇨, 아니거든요? 전 어디까지나 마누라라서 좋아한거지 외견으로 사랑을 구분하진 않아요. 진짜 어린애한테 성욕 분출하는 쓰레기짓은 절대 안해요"


나는 여러가지로 오해 받기 쉽다. 험악한 눈매에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이는 시온까지. 같이 있으면 3번중에 한번은 경찰 아저씨가 잠깐 괜찮겠냐고 물어보더라.


"시온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바보같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진서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하백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께요, 형수님"

"참고로 백리야, 어려보여도 쟤가 나보다도 연상이야"


"진짜요?!"


"여기 민증 있습니다"

시온이 가방속에서 주민등록증(물론 죄다 조작된거지만)을 꺼냈다. 나이로는 아마 나보다 2살인가 3살인가 많을거다. 실제 살아온 세월로 따져도 그정도 연상이다. 단, 자릿수가 다르다.

"여기 혼인 증명서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어......?  그런걸 다 들고 다니세요?"

"같이 다니면 경찰이 종종 물어오곤 합니다. 그때 쓰려고 항상 들고 다닙니다"


"에이, 설마 그럴려고요"

"여태까지 4번 정도 써봤습니다"


"진짜요?!"


"진짜야, 진짜라서 슬플 지경이라고. 시바, 내가 사랑하겠다는데 왜!"


"사랑하는 대상이 문제가 아닐까요, 형........"


"외견만 이럴 뿐이지 나이로는 문제 없습니다. 엄연한 성인이고 그럴만한 자본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일뿐 결혼 생활은 행복합니다"

"올해 결혼한 신혼이라서 말이지"


결혼을 해본 진서애씨가 웃으면서 솔직하게 축하해 주었다.


"저도 신혼 때 생각이 나네요.......두분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못간 신혼 여행이나 한번 가려고 하니까 그때는 가게 잘 부탁드릴께요"

가게 때문에, 그리고 시온의 외견 때문에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신혼 여행이라면 늦게나마 갈 수 있다.

어디로 갈지 지금 생각중이긴 하지만 어지간하면 해외로 나가볼 생각이다.

가까운 일본도 나쁘진 않고.......방사능? 나야 방사능  먹는다고 죽진 않고 시온에게 방사능은 오히려 독이 아니라 영양분이다. 항성에서 뿜어지는 에너지를 밥으로 삼는 애들한테 방사능은 의미가 없다.


아,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일본이 나을 수도 있겠네.


"자, 막 튀긴 후라이드 치킨"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막 튀긴걸 내가자 시온이 나오기 무섭게 닭다리 하나를 우물거리며 먹었다. 야, 야, 그거 뜨거울텐데.......체하겠다. 콜라나 하나 따주자.

"나 말고 마누라 닮은 딸자식 낳아야 할텐데 말이야"


"임신도 힘들지 않습니까?"

사실 둘 다 알고 있다. 자식을 가지고 싶으면 어떻게든 된다는거. 시온이 외계인이라 번식 방법이 좀 다르다 뿐이지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아직은  더 여유를 가지고 싶을 뿐이다. 신혼 생활도 즐겨보고 싶고 무엇보다 본업에 안정되기 전에는 자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이런 치킨집 같은 취미로 일하는거 말고.  본업은 따로 있다. 뭔지는 비밀.

다만 그리 좋은 소리 듣는 일은 아니다. 여러 사람에게 원망 듣기 좋은 일이다.


가게 열기 전에 잠깐 치킨 먹는 시온이랑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빨리 흘렀다. 그녀도 치킨 한마리를 금새 해치워서 만족한듯 손을 닦았다.


"오늘도 평소대로 들어오는겁니까?"


"조금 빨리 갈지도 몰라. 백리 녀석이 알바생일 때는 그냥 보냈는데 정직원이니까 마무리까지 부려먹어야지. 그러면 좀 일찍 갈지도 모르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녁은 평소대로 준비해두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변에는 백리나 진서애씨 밖에 없고 둘 다 아는 사람이다. 슬쩍 고개를 숙여서 시온이랑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붸에에, 신혼이라 깨가 쏟아지네요"

"너도 결혼하면 그럴껄? 나랑 우리 마누라는 천년이 지나도 신혼일거야"

"시간이 지나서 갱년기에 들어서면 부부 사이가.........주로 남자의 자존심적 의미로요"

"매일 몇번씩 할 정도로 열성적이니 그럴 걱정 없습니다"

".............."


백리 녀석이 내가 하는 횟수 보다는 나랑 시온이 한다는 것 자체에 경멸의 감정을 담아 한발 물러서서 노려 보았다. 진서애씨도 같은 시선이다.

"쟤 성인이라고!"


"아빠한테 전화 해야......아, 아빠는 소방관이였지"


"경찰에 신고할 기세네!"

"형, 페도필리아는 범죄예요"

"죽는다 진짜"


내가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올리자 백리가 항복했다. 포스 유저만 볼 수 있게 포스를 담아서 보인거라 설득력이 높았을 것이다.

짜식, 어디서 까불어.



* *  * *


오늘 하루도 마무리를 했다. 치킨은 완판, 오히려 손님이 더 많아서 곤란할 지경이였다. 이러다가 어디 통이 큰 치킨처럼 하루에 얼마 한정해서 팔아야 할 지경이다.


"수고하셨어요"

"서애씨는 먼저 들어가세요. 성혜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일찍 들어가는게 낫죠"


"아뇨, 그래도 끝까지 일은 해야죠"

"남자가 두명이나 있는데 금방 끝나요. 먼저 들어가세요"


"네, 아주머니. 딸도 있으시다면서요? 일찍 들어가세요. 애가 기다리고 있겠다"

"아.......두분 다 고마워요. 그러면 먼저 들어가볼께요"

가게 마무리를 하기 위해 나와 백리 두사람만 남았다. 사실 이야기 할것도 있어서다.


"자, 이제 두명만 남았으니까 비밀친구스러운 이야기를 해보자고"

"형? 설마 취향 이상한건 아니죠?"

"미안하지만 남자 취향은 없단다. 아.........여자같은 남자라면 조금 혹할지도"

"여성 호르몬같은거 맞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런 남자가 나와요?"

"세상은 네 생각보다 판타지야. 포스 유저도 있는데 설마 없겠냐?"


백리는 묘하게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너한테 포스 다루는  조금 가르쳐 주려고. 일할 때 쓰면 좋아"

"아, 개인 과외 불법인데"


"불법이고 합법이고 이전에 할거면 돈 내놓을래?"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죠"


"양잿물 만드는 가성 소다는 약국 가면 3000원에 판다. 그거 사와서 물에다 타주랴?"

"어이구, 제가 죄송합니다 형님"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느낌이다. 그냥 장난치는 수준이라서 서로 받아쳐주는 느낌이지만.

"그러고 보니 형의 포스 특성은 뭐예요?"

"난 단 두가지 밖에 없어. 그걸 이리저리 응용해서 쓰니까 여러 능력으로 보이는것 뿐이지 사실  두개야. 그나마 하나는 눈에 띄는게 아니라서 하나로 먹고 사는거지"

"무슨 특성인데요?"


"'간섭'"


내가 옛날부터 엄청 애용하던 힘이다. 단, 내 능력은 포스 특성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힘이다. 무슨 차이냐 하면 포스 특성은 가이아 포스가 없다면 사용할  없지만 이 능력은 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쓸  있다.


그리고 능력과 포스의 더 큰 차이점은 포스는 자질에 따르긴 하지만 능력은 일단 누구나 각성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무나 쓰진 못한다.


"간섭이라고 하면, 주로 염동이나 그쪽 계통의 특성이라고 들었는데요? 일단 그 특성으로 시작하고 다른 특성으로 분화한다고 들었어요"

"어느정도 조사는  모양이네?"


"네, 여차하면 그쪽으로 나갈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나랑 백리랑 쓰는 힘의 종류가 다르지만 배워서 나쁠건 없다. 특히나 내 능력인 '간섭'은 범용성이 높아서 이런저런 곳에 쓰기 편하다.


"내 특성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 같다고 생각해"

"애덤 스미스?"

"미국 경제가 나와서 어쩌게. 아무튼 보이지 않는 손을 이리저리 다루는거지. 그러면 일단 염동 계통은 가볍게 완성이야"

백리가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몸에서 가이아 포스가 새하얗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고 같은 포스 유저거나 이능력을 볼  있는 영안을 깨우친 사람만 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후자쪽에 가깝다. 포스 쓰는것 보다 그냥 가지고 있는걸 쓰는편이  나으니까.

백리가 집중하자 손에 포스가 깃들었다. 그리고 쭈욱 늘어나 흰색의 손이 돋아난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걸로 테이블 위에 있는 컵을 집으려고 했지만 잡자 마자 바로 쨍강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거 월급에서 깐다"

"형?!"


"힘 조절을 해야지. 포스는 네 영혼에서 나오는 의지의 힘이야. 네 의지만큼의 힘을 낼 수 있지.  손이라도 철근 하나 구부리는건 간단할껄? 그냥 신체 강화된  손이라고 생각해. 조금 다루기 힘든 손으로"

"그치만 이상한 느낌이라서 다루기 힘들어요"

"그냥  손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 네 손이랑 같은 감각으로 만들어 봐. 네 손가락을 하나 접으면 포스의 손도 접히는 걸로"

다른것과 같은건  그대로의 차이가 있다. 내 조언대로 백리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자 연장된 포스의 손이 백리의 손의 움직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깨진 유리잔의 파편을 엄지와 검지만 사용해 살짝 들어 올렸다.


"아, 되네요!"

"흐음, 자질이 있다고는 생각 했는데 생각보다 뛰어나네. 아마 너도 그쪽 타입이려나........."

"그쪽이요?"


"별건 아냐. 아무튼 그게 되면  더 완숙해 질 때까지 연습해. 연장이 아니라 따로 손 하나를 만드는것도 말이지"

나는 포스를 사용해서 뿜어내어 허공에 흰색의 손을 만들어냈다. 백리처럼 손에서 연장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손만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십개가.


"익숙해지면 이런 것도 가능해"


나는 포스의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물건 정리, 바닥 청소까지. 전부 다 동시에 한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은 초월자들에게는 간단하다. 애초에 의지를 쓰는 애들에게 염동력 따위는 간단하니까. 이런 복합적인 활동도 어린애 장난 수준에 속한다.


"우와, 쩐다......!"

"손을 연장해서 하는게 익숙해지면 그 다음은 여러개를 해봐. 그리고 그 다음은 연장이 아닌 손을 따로 만들어서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 다음은 그걸 또 여러개로. 알았지?"

"네, 연습 해볼께요"


"너무 하진 말아라? 딸도 많이 치면 뼈가 삭듯이 그것도 많이 하면 정신력이 고갈돼. 피곤할테니까 적당히 했다 싶으면 잠이나 자"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알아서 할게요, 형"

가게 정리는 내가 했으니 가도 된다. 백리는 좋은거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퇴근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집으로 퇴근. 도착하니 시온이 저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 왔어. 아, 냄새 보니까 된장찌개야?"

"소고기 넣고 끓여서 맛있을겁니다. 이번에 정육점에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썼습니다"

"맛있겠구만. 저녁 안먹었으면 같이 먹자"


시온이랑 같이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는 귀찮으니까 가게에서와 같이 능력으로 처리하고 TV앞에 앉았다.


시온은 그런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작은 몸이 그대로 들어와서 뭔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만족감도.

"역시 제 특등석입니다"

"나도 이거 좋아해. 아, 영화라도 볼래? 생각해보니 저번에 나온 마블 영화 못봤잖아"


"그래서 이미 구매 해뒀습니다. 물론 보진 않았습니다"

요즘 시대 참 좋아졌다. 옛날에는 영화 보려면 영화관 가야 했는데 지금은 TV에서도 영화를 구매해서 볼 수 있다. 시대 참 많이 바뀌어서 적응하는게 어렵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팝콘 튀겨놓겠습니다"

"난, 카라멜"


"그럼 반반으로 합시다"

시온도 마찬가지로 염동력으로 동네 슈퍼에서 파는 인스턴트 팝콘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톡! 톡! 하고 팝콘 튀기는 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기 시작했다.

시온이 팝콘을 맡았으니 나는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냈다.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얼음을 넣고 콜라를 부어서 두잔을 가져왔다. 물론 능력으로.


이윽고 영화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화관 가서 보는것도 좋은데. 생각해보면 가게 괜히 차린것 같기도 해"

"그래도 좋은 사람이 운영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백리나 서애씨나  다 좋은 사람이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믿고 맡길만한 그런 사람들. 요즘 보기 드문 착한 사람들이다.

콜라와 팝콘을 마시면서 시온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크으, 역시 마블이야, 히어로 영화 하난 잘 만든다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우주에서 노는 애들보단 스파이디가 더 좋지만.

어느새 시온은 영화에 빠져 있었다. 팝콘도  먹은 뒤라서 슬쩍 내 팝콘으로 바꿔 주었다. 사실 난 영화 볼 때 팝콘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콜라를 마시지.


두시간 가량이 지나자 영화가 끝났다. 쿠키 영상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스파이디 나올 때와는 달리 블루 스컬이 인내심 어쩌고 하는 것은 없었다. 그때 내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이였는데.......잊지 않겠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지? 나도 좋았어"

"우주선 디자인이 조금 구식이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야, 진짜 우주 돌아다니는 외계인이 우주선 디자인 운운하면 뭐가 어떻게 하라고?"

"다음번에는 주주 권한으로 우주선 디자인을 수정해버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고 했었는데 너 설마.......


에이, 거짓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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