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9/507)



〈 9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목을 이리저리 꺽으면서 몸을 푼다. 백리는  이곳에 최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그가 보여준 능력에 경악했다.


"형도 포스 유저였어요?"


"정확히 말하면 아니라고 해야지. 내가 쓰는건 다른거라서. 아,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일단 옛다. 이거나 받아라"

최악은 그렇게 말하면서 백리에게 뭔가를 던져준다. 지금 상황에 주는게 이상한 물건이다.


"기왕 쓸거 그게 낫겠더라고. 나중에 쓸테니까 잘 가지고 있어라"


"이거 영화 기념품 같은거 아니예요?!"


"영화관 쪽으로 오다가 하나 가져왔지. 아, 그거 3편 보려고 했는데 내일 마누라랑 같이 가야겠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예요?!"

백리가 소리쳤다. 눈앞에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폭발 테러범이 있다. 최악이 보여준 능력이 대단했지만 그렇게 느긋해야  상황은 아니였다.


"저놈은 어차피 곱게 잡아다가 끌고갈 방법은 없으니까. 여기서 죽여야겠다"

"네?"

이윽고 최악이 바닥을 차고 달려나가 가볍게 몸을 틀어 돌려차기를 날렸다. 별거 없는 단순한 공격이지만 발차기는 남자의 목덜미에 꽂히고 그의 몸을 저 옆의 건물 잔해 속에 처박았다.


콰아앙!

포스 유저인 것을 감안해도 건물 잔해가 박살나는 위력을 보아 최소한 즉사다. 단숨에 경추가 손상되어 천운이 따라줬어도 식물인간이  것이다.

"자, 끝"


"주, 죽였어요.......?"

"그럼? 이런 소란을 일으키고 몇명이나 죽었는지 모를 상황에 제정신도 아닌 미친놈을 곱게 잡아다가 끌고가면 어떨거 같냐? 정신 병원에 평생 수감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저런 미친놈을?"

최악의 말이 맞았다. 백리는 뭔가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다니.

"얼른 나가자. 여기서  무너지면  부수고 탈출해야 해. 아, 설 수는 있겠냐?"


"아, 네, 괜찮아요"


최악이 백리를 재촉했다. 화재도 점차 심해지고 빨리 탈출해야 한다.


우둑.

타들어가는 소리 속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혹은 뼈가 맞추어지는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새끼, 끈질기네"

최악이 남자의 몸뚱이를 처박은 건물 잔해속을 돌아보았다.


뼈가 우득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며, 부러져서 달랑거렸던 남자의 목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눈은 흰자위까지 탁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으며  영향은 머리카락에 까지 끼쳐 붉게 물들었다.


그의 손의 손가락이 갑작스럽게 한개가 더 늘어나 육손이 되었고 팔꿈치에는 위협스러운 뾰족한 돌기가 솟아났다. 다리는 마치 고양이과 동물처럼 앞으로 굽혀지는게 아닌, 뒤로 굽혀지는 역관절이 되었다.


어딜 보아도 그것은 인간의 모습은 아니였다. 그의 변화를 보며 백리도 중얼거렸다.


"저건 포스 유저가 아냐. 저건.........."

예전에 한번 보았던 적성종과 같았다.

뒷말을 삼키며 백리가 뒤로 물러났다.


"아,으아아으으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남자가, 아니 괴물이 덤벼들었다. 이제는 말을 할  있는 이성 자체를 잃었다.


그의 몸 주변에 포스가 응집된 덩어리들이 생겼다.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포스 덩어리는 그의 특성이 담겨서 폭발을 일으킨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뿐이라면 전부터 썼던 폭발과는 다를바가 없었다. 저것의 장점은 목표를 자동 추적한다는 점이다.


최악을 향해서 포스 덩어리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크기는 작지만 숫자는 다섯. 동시에 들이닥치는 공격은 피할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쩌라고?"


최악은 무심하게 날아오던 포스 덩어리들을 맨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폭발. 하지만 공간을 차단 해버린듯 그의 손에는 폭발 흔적은 커녕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남자는 그 모습에 연속해서 포스 덩어리들을 날렸다. 하나하나 위력은 크진 않지만 숫자가 무시할  없었다. 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도 열개가 넘는 포스 덩어리들이 최악을 덮쳤다.

그러나 최악은 그걸을 막지 않았다. 잡기도 귀찮다는 듯이 그냥 무심하게 남자에게 걸어갔다. 바로 코앞에서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몸이 작게 흔들리는 기색조차 없었다.


투명한 장막이 그의 전신을 덮고 있는 듯한 모습이였다. 절대로 부술 수 없는 아주 튼튼한 장막이.


이윽고 남자에게 가까워진 최악이 그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아이언크로, 그대로 땅에 내려 찍었다.


쿵!

"이 새끼가 어디서 우리 집 알바 못쓰게 만드려고"


쿵쿵쿵!!

"오늘 월급 줬거든? 알바가 일을 하면 단기 알바도 아닌데 몇달은 일해야지, 겨우 한달도 되서 다른 알바 찾게 만드려고 그러냐?"


쿵쿵쿵쿵쿵!!!


"근데  대가리 존나 단단하네!"


쿠우우웅!!!


바닥이 부셔져서 아랫층이 보일 정도로 처박았다. 그런데도 남자는 비교적 멀쩡했다. 무식하게 튼튼한 몸이다.

"끄으아아아!!!"


남자의 손이 뻗어졌다. 그 손에서 응집된 포스는 전에 썼던것 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게 바로 최악의 눈앞에서, 제로 거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동네 슈퍼맨이여"

최악은 응집된 포스 덩어리 때로 주먹을 쥐었다. 이윽고 폭발이 일어난다.


조용히, 아무런 충격 없이.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더라. 븅신"


최악은 그  폭발을 그저 주먹을 쥐는것 만으로 막아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능력을 사용한 것이였지만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광경이였다.

"그럼 잘가라"

그의 주먹이 이제는 남자의 안면에 꽂힌다.


쿠직! 하고 머리통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  *  *  *

자신이 손도 못썼던 상대를 농락하다시피 쓰러트린 최악을 보며 백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형, 엄청  포스 유저네요"


"포스 유저는 아닌데. 뭐,  비슷하니까 대충 그런걸로 치자"

"그런데 왜 치킨집 하세요? 형이라면 국가 소속되도 돈 많이 받을텐데"

"마누라랑 알콩달콩 잘 살려고. 솔직히 너무 답 없었으면 그쪽으로 나가려고도 했는데 마누라가 돈이 빵빵하고 세금도 내기 싫어서 그냥 포스 유저 등록도 안하고 치킨집이나 하는거야.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더라"


"타, 탈세......."


"이거  사람한테는 비밀이다? 어디 가서 말하면 너 알바 짜른다. 시급 좋지. 환경 좋지, 사장 좋지. 이런 알바 자리 하기 싫으면 말해"

"방금 뭐라고 했었어요, 형?"


백리가 자본주의에 굴복했다. 자본주의의 돼지 같으니라고!

"아무튼 빨리 탈출하자. 아까 폭발들 때문에 건물이 슬슬 한계야. 들어왔던 입구 쪽은 진작에 무너져서 나갈 수 없으니 다이하드라도 찍어봐야지"

최악은 백리에게서 아까 만났을 때 주었던 물건을 다시 받았다. 여기서 나갈 때 써야 하는 물건이다.


"너나 아이나, 네 아버지나 빨리 치료 받아야 하잖아. 그런데 신상 털리기는 싫단 말이야. 포스 유저라고 알려져서 국가 소속 되거나 세금 더 내기도 싫고. 시벌, 미국으로 이민가고 싶은데 인터넷이 느려"


"근데 왜 하필 이거예요?"


"딴것도 있었는데 이게 더 좋겠더라고"


최악이 가져온 것은 옆의 영화관 동에서 가져온 가면이였다.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에 맞춰서 영화관 한켠에 기념품이나 관련 물품들을 팔고 있는 곳에 있던 물건 중에 얼굴을 가릴만한 것을 가져왔다.


"마블 영화 좋아하세요?"

"나도 좋아하고 우리 마누라도 좋아해"


최악이 다친 백리 대신에 그를 등에 업고 하정욱과 여자아이를 각각 한명씩 옆구리에 끼듯이 들었다. 사람 세명의 무게였지만 최악에게는 부담은 커녕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마침 탈출하려던 찰나.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의 신음성. 최악은 인상을 찌푸리며 끈질긴 목숨에 짜증을 표했다.

"뭐냐, 프리더처럼 삼단 변신이라도 하려고?"

머리가 반쯤 짓뭉게져서 사망이 확정된 모습이였다. 재생력이 뛰어나도 육체에만 의존하는 이상 뇌를 망가트리면 끝이다. 뇌에 저장된 기억들이 전부 날아가 버리니까.

"성, 혜, 야"


남자는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반쯤 뭉게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은걸로 보였다. 아니면 마지막 회광반조라도 되는걸까.


"그렇게 발버둥 쳐도,  죽어"


남자의 몸은 붕괴 되어가기 시작했다. 한때의 강한 힘은 반동을 불러 일으킨다. 급격한 육체 변화도, 강한 포스 능력도 전부 독이 되어 남자의 몸을 죽음으로 달려가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남자도 눈물을 흘렸다.


"우리 성혜......흐윽, 성혜야. 여보......"

"남길 말이라도 있어?"


최악이 물었다.


그가 남자에게 주는 마지막 배려였다.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에서 괴물로, 그리고 다시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 된 인간에게 묻는 말이다.

"우리.......가족.......현대 아파트 102동, 703호......약속, 소풍......."

"그래, 대충 알았어"


죽은 자의 유언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전해주는것도, 이루어주는 것도.


최악이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내버려 두는것으로도 남자는 죽을테니까.


가늘게 이어지는 숨 속에서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난.......살아.....있어"


누구에게 말하는지는 몰랐지만, 가족은 아니였다. 무엇을 보고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나는.....살아 있.....어"

이윽고 이어지던 숨이 끊겨 사라졌다.

조용히, 최악은 남자의 끝을 마주했다.

*  * * *



쿠르릉!!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진동이 땅을 울리며 그 여파는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물론 인근 지하도에 있던 시민들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화재에 이어서 붕괴 사고. 테러인지 아니면 사고인지 아직 자세히 밝혀진 것은 없었으나 백화점 붕괴 사고는 한국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겪은 적이 있었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대다수의 젊은 층은 함성을, 일부 중,장년층은 탄식을 내뱉는다. 시간에 따른 세대 차이다.

"지금 막 화재 현장이 붕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에는 아직 소방관 한명과 무작정 돌입한 포스 유저 한명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며 어린아이 한명도 구출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MBS 방송사의 신출내기 기자 진서희는 현장 리포터로서 열중하고 있었다. 다른 현장의 취재를 나가기 위해 이동하려던 차에 우연히 지나가다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방송사의 본사와 화재 현장이 가까워서 생긴 우연이다. 사안이 큰 특종이기에 신출내기 리포터라도 소식이 들어가자 생방송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아직 사건의 원인이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화재의 발생 원인이 사고인지, 아니면 테러인지 확실치 않은 지금........."


콰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진서희 리포터를 촬영하던 카메라가 그녀가 아니라 무너지는 현장을 향했다.

"........어?"

"뭐 떨어지는거 아냐?"

무너지는 백화점 건물들을 박살내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십수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그것은 멀쩡했다.


한손에는 소방관을, 다른 한손에는 여자아이를, 그리고 등에는 젊은 청년을 등에 업고 구출해온 듯이 보이는 남자는.........

"지금 막 화재 현장에서 탈출한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뛰쳐나와 탈출한 것을 보면 포스 유저로 추정됩니다만. 얼굴이, 그게 그러니까........"

진서희 리포터는 뭐라고 말문이 막혔다. 저것을 뭐라고 해야 하더라?


"너구리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라쿤이야 멍청아!"

자신을 향해 저격해오는듯 쏘아오는 말에 그녀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 방송 사고라면 방송 사고다.


그는 구출한 세 사람을 내려놓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백리는 최악을 보았다. 그가 쓰고 있는 것은 라쿤 가면이다. 마블 히어로 영화 중에서 스페이스 오페라틱한 시리즈의 캐릭터중 말하는 라쿤을 따온 가면이였다. 올해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영화관 한쪽에서는 기념품과 캐릭터 상품을 팔고 있었는데 최악이 가져온건 그중에서 라쿤 가면이였다.


최악은 엄지손가락을 지켜올리면서 말했다.

"소방관이랑 여자아이는 이 라쿤맨이 구했으니까 걱정 말라구!"


인터넷 짤방으로 쓸법한 드립을 치며 최악이 소리쳤다. 한순간 정적이 흐르다 웃음 소리와 박수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어찌되었건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사람을 구한건 맞는 일이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을  그는 마치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슈퍼 히어로 같은 모습에 열광했다.


현실에도 포스 유저들은 슈퍼 히어로와 같은 힘을 발휘하지만 그들은 적성종을 상대하기 위해서지 재난 속에서 사람들을 구출하진 않는다. 각광받긴 하지만 적성종을 상대하는  만으로도 포스 유저의 수가 부족하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정체불명의 포스 유저가 나타났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보다 우스꽝스런 라쿤 가면을 쓴 것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세 사람을 달려온 소방관들에게 인도했다. 다행히도  사람 다 목숨에 지장이 있을만한 부상은 없었다. 하정욱 팀장에게 약간의 뇌진탕 증세, 백리에게 화상 정도만 큰 부상이라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윽고 라쿤맨, 최악이 걸음을 옮겼다. 경찰들도 한발 늦게 달려왔지만 그가 움직이는게 더 빨랐다.


나중에 다시 만나더라도 지금 감사 인사는 하고 싶었기에 백리는 도망치려는 최악에게 소리쳤다.

"고마워요, 라쿤맨!"

슬쩍, 그가 등을 돌려 백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 모습은 생방송으로 카메라에 찍혀 전국에 방송되고 있었다.

이윽고 마치 허공에 발판이라도 있는것 처럼 라쿤맨이 허공을 딛고 점프 했다. 단순히  높이나 거리만으로도 건물 하나는 뛰어 넘을 수 있을법한 수준이였다.


포스 유저의 등급은 최상위에 위치한 마스터, 그리고 상위의 엑스퍼트, 초심자인 비기너, 기초밖에 하지 못하는 워커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포스량에 따라 수준의 차이가 존재한다.

눈앞에서 라쿤맨이 보여준 모습은 비기너나 워커가   있을법한 수준이 아니였다. 최소한 엑스퍼트 중에서도 가장 위에 속한 자가   있을법한.......그게 전부가 아니라면 마스터급일 가능성도 있었다.

현재 한국에 단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마스터급의 포스 유저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히어로.

"아싸! 땡 잡았다!"


특종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진서희 리포터가 주먹을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참고로,  모습도 전국에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   * *  *

한번에 수십미터를 뛰어다니는 바보같은 기동력을 가진 라쿤맨, 최악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따라잡고 싶거든 일단 헬기부터 띄운 다음에 말해볼법한 일이였다.


한적한 골목에서 라쿤 가면을 벗고 대충 찢어서 근처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최악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아싸! 땡 잡았다!]

"저 리포터 이제 개드립으로 뜨겠네"


최악은 버스에 설치된 TV로 방송되는 진서희 리포터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 차는 이제 제겁니다'나 '11미터 모형탑 훈련'같이 인터넷에서 한때 인기를 얻은 기자들처럼 저런 식으로 뜨게 될 것이다.


아마 짤을 만들어서 쓸지도 모른다.


"그건  상관할 바 아니겠지"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 가게도 쉬는 날이다. 라쿤맨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활동했지만 사실 즉석해서 생각한거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활동할 생각은 없다. 잠깐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것이다.

최악은 영웅이 아니다. 그 반대편에  있다면 모를까.

사실 그가 나선 이유도 반은 백리같은 좋은 알바생을 잃을 수는 없어서 그랬다.

"나왔어"

"라쿤맨!"

"아니, 너는 침팬빌런!"

끼리끼리 논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온 최악에게 시온은 원숭이 가면을 쓰고 맞이해 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겁니까. 분수에 안맞게 영웅 놀음이라도 하겠다는겁니까?"

"아니, 어쩌다 보니 정체를 숨기려고 하다가 그렇게 됐어. 그 반대면 몰라도 영웅은 아니지"

"생각해보면 안티 히어로나 다크 히어로쯤은  수 있을겁니다"


"그건 싫어. 간지는 나지만 취향이 아냐"

"아무튼 이러느니 차라리 얼굴 다 까발리고 활약했던 편이 낫지 않습니까. 이상한 영웅 놀음도 안하고 그냥 세금만 더 내면 될텐데"

"세금 더 내기 싫거든? 염병할 나라에 애국하는건 군대 2년 다녀온걸로 충분해. 시벌, 내가 군대에서 조뺑이 친것만 돈으로 쳐도 가게는 못내도 노점상 하나는 냈겠다"

최악이 정체를 숨겼던 이유는 단순하다.


국가 소속으로 잃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세금을 더 내기도 싫다. 그러니 차라리 정체불명의 포스 유저로 활약하는편이  나은 것이다.

게다가 돈만 있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한국이다. 선진국 반열에 들지, 치안 좋지, 인터넷 좋지.

다 좋지만 총격전이 간간히 일어나는 미국이나 방사능 넘치는 일본, 독재의 나라 중국 같은 것에 비교하면 그나마 무난하다.

"아무튼 혹시 모르니 따로 준비는 해두겠습니다"

"뭔 준비?"


"기왕 이렇게 된거 아이언 라쿤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자고 한 일을 죽자고 키우지 마라?!"

적어도 지금 당장 최악에게는 다시 라쿤맨으로 활약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럴 상황이 일어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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