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7/507)



〈 7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드디어 치킨집 [닭쳐줄까?]가 절찬리에 오픈했다. 막 오픈 행사라던가 그런건 하지 않았다. 마케팅보다는 맛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다.

다른 메뉴라면 손님 끌어모을겸 하려고 했겠지만 치킨이라는 메뉴는 특성상 자주 먹기에 한번 이 가게에 들어서면 단골로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손님이 없네요. 저기, 형. 따로 오픈 행사라던가 할 생각 없어요?"


"시간 지나면 차차 모이겠지. 느긋하게 하자고"

"형수님이 화 안내세요?"


"유유상종이란 말 알지?"

"언제 한번 형수님 얼굴도 한번 뵙고 싶네요"


백리는 손님 하나 없는 썰렁한 가게 안을 둘러보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꽤나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다. 덕분에 나도 일하지 않은 지금도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뭐, 신장 개업 기념으로 이벤트 하나 없는건 그러니까 치킨 1000원 할인 서비스 정도는 붙여둘까.

평일이지만 지금은 봄이다. 추운 겨울과 달리 날이 풀렸으니 주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시기다. 너무 먼 곳은 잘 모르겠지만 주로 일본이나 중국같은 곳에서.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1시네. 치킨 한마리 튀겨먹을래?"

"전 양념이요"

"짜식, 뭘 좀 아는구나"


나는 닭 한마리를 꺼내서 신속하게 튀김옷을 입히고 튀긴다. 뜨거운 기름에 닭이 들어가니 튀겨지는 소리가 올라왔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 덕분에 여태껏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우리 가게가 왕래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야, 우리 치킨 먹을래?"


"새로 개업한데 같은데 한번 먹어보자"

흐음, 진작에 이래볼껄.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장사하는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손님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판매하는 물건 자체에는 자신이 있지만 장사 자체는 해본적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나도 만능은 아니다. 전지한것도 아니며 전능한것도 아니다. 혼자서 기업을 만드니 사업을 일으키니 어쩌구 하는건 쥐약이다.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운영이야 해볼 수 있겠지만  이상은 무리다.

"점심은 나중에 먹어야겠다. 일단 손님부터 받자"

"네, 형"

백리는 불만스러운 기색 보다도 손님이 왔다는 사실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성이 좋은 애다. 알바 하나는  뽑았다니까.


남자 세명으로 이루어진 일행이 가게 안쪽의 테이블로 들어와 앉았다. 백리가 주문을 받고 나에게 알려준다.


"후라이드 한마리랑 양념 한마리. 그리고 맥주 500cc로 세잔이요"

"오케이"


나는 닭을 기름에 투하하고 바로 잔을 꺼내 맥주를 따랐다.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맥주가 흰 거품을 내면서 올라온다.


간단한 안주 삼아서 뻥튀기도 접시에 담아내서 내보낸다. 나중에  더 생각해볼건데. 뻥튀기보다 감자튀김이 낫지 않을까 싶다.

백리가 맥주를 내가고. 이윽고 얼마 지나서  튀겨진 치킨을 꺼내 기름을 털어낸다. 너무 많은 기름이 치킨에 묻어있으면 오히려 느끼한 법이다. 솔직히 기름 자체가 사람 몸에 좋은건 아니고. 되도록이면 많이 안먹는게 상책이다.


이윽고 마무리  치킨중 한마리를 가스레인지의 웍.......그러니까 중화 요리 할  쓰는  철냄비에 투척했다. 그리고 양념과 함께 빠르게 볶아 소스로 코팅한다. 양념 치킨은 그 양념 때문에 후라이드에 비해 바삭함이 적지만 빠르게 볶아낸다면 바삭한 식감이 어느정도 살아있으면서도 양념 치킨의 맛이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완성. 나는 후라이드와 양념, 두마리의 치킨을 각각의 접시에 담아 내보낸다. 백리는 그대로 받아서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네, 치킨 나왔습니다"

첫 손님이니까 맥주 한두잔은 서비스로 해줄까. 맛은 자신 있으니 남은건 반응이다. 백리에게도 먹여준 적 있지만 알바생이 먹은것과 손님이 먹은것의 차이는 있는 법이다.

와삭, 하고 후라이드 치킨의 닭다리를 한입 베어물며 그들이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우와, 치킨 쩌는데?"

"우리 동네 치킨집보다 확실히 맛있어"


"크으, 맥주 술술 넘어간다!"


사람은 세명인데 치킨은 2마리, 한사람에 한마리는 거뜬히 먹을 청년들이라 그런지 금방 치킨이 동난다.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다.

"여기 후라이드랑 양념 한마리씩 추가요! 맥주도 2잔 더!"


"네, 주문 받았습니다!"

반응이 좋은것에 백리도 웃으면서 주문을 받았다. 나도 그 기운을 받아 닭을 더 꺼내 튀김옷을 입혔다. 첫 손님부터 반응 좋으니 나도 좋구만.

점차 많은 치킨을 튀기자  냄새가 꽤나 멀리까지 퍼진 모양이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すみません,席はありますか?(실례합니다, 자리 있나요?)"

"엑? 일본인?"

남녀 커플로 보이는 일본인이 가게로 들어섰다. 백리는 일본어를 모르는건지 그들의 말에 어쩔줄을 몰랐다.


명동은 관광객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그래서 꽤 많은 가게들은 일본어나 중국어같은 외국어도 좀 할줄 아는 경우가 있다.

"いらっしゃいませ! 奥に席があるから入って来てください.(어서오세요! 안에 자리가 있으니까 들어오세요)"


주방에 있지만 우리 가게는 오픈형에 작은 가게라 말을 못하는건 아니다. 나는 일본인 손님을 받아서 안쪽으로 들였다.


"엑? 형, 일본어도 할줄 알았어요?"


"그럭저럭"


환생을 몇번이나 했는데 할 줄 아는 언어가 한국어밖에 없진 않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것만 하더라도 일본어에 중국어 약간, 러시아어 약간, 그리고 영어랑 이탈리아어. 대충 이렇게 할줄 안다.

어, 나 은근히 외국어 능력자였네. 번역가로 장르 변경했어도 나쁘진 않았을것 같다. 그래도 치킨집을 후회하는건 아니다.


손님들이 점차 늘어가고 그중에서 중국어를 하는 손님도 있었으나 내가 대처했다. 어느새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차고 포장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생겨났다.

이게 그 개장 효과인가 뭔가인가. 원래 새 가게가 개장하면 호기심이던 뭐던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골로 만들어버리게 맛있게 만들면  뿐이다.


이곳에 오는 손님 모두를 단골로 만들 생각으로 만든다. 요리도 좋아하니까 나는 이 일이 마음에 든다.

이윽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서 아느새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남은 닭은 있었지만 솔직히 간당간당하던 시점이였다.


혹시 모르니까 내일은  준비해두자.

가게 일이 끝나고 나와 백리는 한숨 돌리면서 쉴 수 있었다. 오전에는 한가했지만 오후에는 빡세게 움직였다. 원래 치킨 한마리 뜯고 보잔걸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

남은 치킨을 두어마리 튀겨서 오늘 있던 성업을 자축했다. 수익도 이래저래 빼면 줄어들긴 하겠지만 임대료가 없으니 순수익은  것이다.


"남은거 싸갈래? 어차피 몇마리 남지 않아서 그냥 처리하려고 하는데. 숙성하는거라서 하루나 이틀정도 더 둬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재료 쓰는게 모토라서"


"아, 그래주시면 좋죠. 동생이 좋아하겠네요"


"동생이 치킨 좋아하나보네"


"사족을 못쓰죠"


"올해 고3이라고 했지? 수능 고생 좀 하겠다"

"뭐, 그 애 만큼은 좋은 대학 보내주고 싶어서요........."

집에서 교육을 잘 받은 듯한 아이인것 같다. 아니면 일찍 철이 든건지 자신보다 가족을 신경쓰고 있었다.

"치킨 튀기는 법 알려줄까? 솔직히 준비가 중요해서 반은 먹고 들어가지만 튀기는것만  하면  없어도 할 수 있을테니까"

"아니, 오늘 개업했거든요? 이 가게?!"

"세상 만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야. 근처에서 차원진 일어나서 개판  수 있는 법이고"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으으......."

"안좋은 추억 있나봐?"


조금 싫은듯한 기색이였지만 백리는 맥주에 조금 취했는지 조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동생이 포스 유저라고 했는데, 포스 유저는 대부분 계기가 있어야 각성을 한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거나, 아니면 외부의 자극이 더해진다거나. 백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자신의 동생이 각성할 때의 일이다.


"제가 9살 때인가. 동생은 5살 때였을 거예요. 놀이터에서 놀던 도중에 차원진이 일어나서......."


"그때 동생이 각성한거야?"

"네, 어려도 당찬 아이라서요. 제가 더 나이가 많았는데 오히려......."

"아니, 9살이나 5살이나 둘 다 어려. 누가 누굴 탓할 시기가 아니라고. 오히려 멀쩡하게 두 사람 다 살아 있는게  중요하지"

살아남는것을 누가 부정하랴. 삶에 대한 집착은 생물로서 당연한 본능이다. 죽으려고 한다면 도리어 그 의지를 초월한 각오가 있는 법이고.


"그때 저와 제 동생 말고 여러 애들이 죽고. 저희만 살았다는것 때문에 주변 이웃들 눈이 그래서.....한번 이사하고서야 조용해졌어요. 그래서 적성종들이나 차원진은 별로예요"


"좋은 추억이 없나 보구나. 내가 이야기 잘못 꺼냈다. 미안하다"

다른걸로 이야기 소재를 돌렸다. 남자들이 모이면 게임이나 축구, 야구, 아니면 야한거 이야기만 하는 법이다.


"내가 말이야, 이래보여도 집에 가면 마누라랑 열댓번씩 하고 그래"

"형, 구라는 작작 치세요. 어떻게 사람이 열댓번씩 해요? 한두번 하면 현자타임 빠지는게 남잔데"

"새끼, 니가  몰라서 그래. 나중에 우리 마누라 한테 물어봐라. 구란가 아닌가"


"나중에 진짜 물어볼거예요? 형수님이 등짝 후려쳐도 몰라요?"

한동안 낄낄거리면서 맥주 몇잔을 마시니 시간이 늦었다. 집에가서 공부하는 고3 동생한테 주라고 몇마리 챙겨주고 가게 문을 닫았다.


별날거 하나 없는 하루지만 이게 좋았다. 본직으로 일하는것도 아니고 취미로 치킨집이나 운영하면서 조용하게 사는거. 소란에 휘말릴 걱정 없으니 다행이다.

[이어서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오늘 낮 3시경 마포동 보성 아파트 인근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12명의 경상자와 폭음에 의해 혼란에 빠진 근접 도로를 경유중이던 차량 수대가 추돌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세상 참 흉흉하네. 가스 폭발이라니. 마치 전형적인 은폐 작업용 변명인걸"


"뭐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예요 형? 음모론?"


"저번에는  났었잖아. 그 왜 방화 사건"


"이번건 가스 폭발 사고 아니예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대충 내 감이 빗나갔으면 좋겠는데. 안좋고 싶어서 안좋을 수가 없는게 내 감이라서 말이야.

치킨을 우적이며 나는 적당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 *  *



치킨집 [닭쳐줄까?]는 시간이 지날수록 번창했다. 이제는 가게에서 먹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아니 오히려 후자쪽이 더 많았다.

한달이 지난 후 장부를 정리하며 매상을 확인해 보니 뺄거 다 뺀 이번달 순이익이 400만원이 조금 넘었다. 다른 치킨집과 거의 두배에 가까운 차이는 있지만 우리 가게는 임대료가 없으니 순이익이 높은건 당연한 일이다.

어느정도 시온한테서 빌린 자본금도 갚고. 내 용돈으로 조금 쓰고......이번달에 라노벨 신작이 뭐가 나왔더라.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형"


"그래, 너도 수고 많았어. 월급은 지금 바로 넣어줄께"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입금하려면 은행 가야 했는데 지금은 핸드폰으로 가능해지는 시대니 말이다. 수수료도 없더라. 은행 서비스 참 좋아.


어디가서 이런말 하면 아재 소리 들을것 같아서 함부로 말하진 못한다. 그 왜 요즘 다이얼 돌려서 쓰는 옛날 구식 전화 모르는 세대도 나온다더만.

"꾀 안부리고 열심히 해서 내가 좀 더 넣었어. 들어가서 아버님한테 고기나 사드려"

"감사합니다!"

통장으로 제대로 입금이 됬는지 백리가 은행에서 문자로 온 입급 메세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거 보니 나도 좋구만.


"오늘은 일찍 들어갈래? 정리야 내가 나중에 아침에 하면 되겠지"


"그래도 될까요?"


"월급날에 불금인데 그정도는 해야지"

우리 가게는 토요일은 쉰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어야지. 일요일에는 매출 많을테니까 빼고.


대강 마무리만 하고 끝내려던 찰나. 백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프로 치킨 도살자]라고 적힌거 보면 막내인듯 하다. 짜식, 동생이랑 사이 좋구만. 친형제......어? 친남매? 그러고 보니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 물어본적이 없네.


그게 궁금해서 슬쩍 핸드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동생인듯, 아직은 앳된 느낌이 있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빠, 일 끝났어?]

"응, 끝나고 가려는 길인데 왜? 갈때 메로나 사달라고?"


[그것도 있지만 지금 아빠하고 연락 돼?]


"아빠? 왜?"


[좀 불안해서 전화해 봤거든. 근데 안받더라. 오빠가 한번 가봐. 어차피 아빠 소방서랑 집 올때 길이랑 비슷하지?]


"출동하셨으면 안받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래. 좀 불안해서 그런데 가봐주면 안돼?]

".........알았어. 자나가다 한번 봐 볼께. 그런데 출동 했으면 소방서에는 없을텐데"


슬쩍, 이럴 때 어쩐지 뉴스를 틀어보라고 하는 직감에 나는 리모콘을 들어 가게의 TV를 켰다.

24시간 뉴스 프로그램에서 속보인건지 생방송으로 리포터가 현장에 나가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배경은 예전에 영등포 타임 스퀘어에 가느라 알고 있는 장소였다.

[........네, 저는 지금 영등포역에 위치한 롯데 백화점 앞에 나와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원인 불명의 폭발 사고로 화재와 붕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다행히도 인근에 영등포 소방서가 위치하고 있어 빠른 대처가 가능했지만 불길과 폭음은 아직도 그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백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영등포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었지. 그리고 사건 장소도 하필이면 거기서 엄청 가까운 백화점이다.


"얼른 가봐라"

".......네"

소방관이 매번 위험한 일을 격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번처럼 큰 화재 사고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닐거다. 걱정되겠지. 나는 얼른 백리를 보내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 따라가볼까.

어쩐지 내 감이 따라가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트러블의 예감이 많이 들지만 좋은 알바생이 없어지는것 보단 나을테니까 말이다.

내 귀찮음 < 좋은 알바생(백리).


 * * *

남자의 눈은 마치 불처럼 붉은 색이였지만 오물이 낀듯이 탁했다. 제정신이 아닌듯 무언가를 쫒아가고 있었다.

"성혜야......."

비척거리는 걸음. 인파 사이에 휘말려서 이리저리 끌려 돌아다녔지만 천천히, 조금씩 어느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따라가며 감시하는 인원이 있었다.


"타겟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지금 포획 작전을 실행하면 사상자가 발생할 염려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잡아! 젠장.......지금 그놈이 제일 말썽이야! 그리고 성과도 가장 뛰어나다고! 고작 한달만에 발화 계통이 폭발 계통이 되다니, 정신은 온전하지 않지만 실험이 효과가 있는 케이스야. 어떻게 해서든 포획해서 데려와야 해]


"저번처럼 인적 드문 골목으로 유도 할까요?"

[할  있으면 그렇게 해봐. 하지만 명심해. 이번에 놓치면 안돼. 언론에 무마하는데도 한계가 있어]


통신 너머의 남자는 경고를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미행을 하던 남자는 붉은 눈의 남자의 뒷모습을 쫒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리 저리 방황한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은 있지만 이성과는 달리 점차 탁해지는 본능은 그를 다른 곳으로 유도한다. 이곳이 아닌. 좀 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아, 아냐......가야........"


조금은 비척이는 걸음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에 뭔가 눈에 띄었다. 별로 특이한 것은 아니였다. 길을 걸으면 지나가다 몇번은  흔한 초등학생 여자아이.


"성, 혜야........"

본능과 이성이 뒤섞여 남자는 그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모녀가 같이 쇼핑하러 온듯 여성의 손을 잡고 인근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미행을 하던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타겟이 이동한다. 함부로 자극하지 마라. 사망자가 발생하면 골치아파지니까"

미행을 하던 인원들은 몇명만 남고 거리를 두었다. 다수의 남자가 쇼핑하는것도 아니고 수상쩍은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선이 끌린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쇼핑이 목적이 아닌 이성과 본능이 시키는대로 움직였을 뿐인 남자가 백화점에서 이리저리 방황하자 백화점 직원의 시선이 쏠렸다.

"손님? 무슨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


"손님?"


직원의 물음에 남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없었다. 뒤로 몇발 물러날 뿐이였다.


어색한 걸음 걸이. 쇼핑하러 온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옷도 상당히 해져 있었다. 일행이 있어 보이는것도 아니고 혼자.


"손님? 실례지만 잠시 따라와 주실수 있을까요?"


어딜 봐도 수상쩍다. 그에 직원은 일단 이야기를 듣거나 혹여 곤란한 상황이라면 경찰을 부를 생각을 하며 남자에게 다가가 어께 위에 손을 올렸다.


"오, 오지마!!!"

남자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큰 목소리에 주변에서 시선이 쏠리고 다른 직원들도 모여든다.


"무슨 일이야?"


"아니, 이 손님이 좀 이상하신것 같아서......"

흐려지는 이성 속에서 남자는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다.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자들. 간신히 되찾아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다시 잡아가려는 자들을.

이미 그에게 백화점 직원이 그들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할 이성은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 되어 본능이 그를 지배한다.


"젠장! 안돼!!!"

"오지마아아아아아아!!!!"

정적이 이는 듯한 한순간의 강렬한 빛과 함께 폭음이 울려퍼졌다.

콰아앙!!!

화마가 매섭게 일어나며 사방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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