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중간에 들른 휴게소. 고속도로를 타본 경험은 학교에서 수학여행 갈때가 전부였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예전에 돌아가셔서 어디 여행가는 거라면 그게 전부였고 휴가 나올 때도 터미널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는 정말로 간만이다.
"원래 휴게소에서는 호두과자를 사먹는게 제일입니다"
"크, 갓선택 인정합니다"
솔직히 고속도로 휴게소 하면 생각나는거 꼽으라면 셋중 하나는 반드시 들어가는게 호두과자다. 나도 견과류는 좋아하기도 하고 갓 나온 따끈따끈한 과자도 좋아하기 때문에 더블 콤보로 좋아한다.
근데 호두 과자만 먹으니 입이 텁텁하고 목이 막힌다.
"음료수 사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돈은 있습니까?"
"너 내가 음료수 하나 살돈도 없는 거지로 보이냐. 요즘 군인 월급 잘나온다고"
"최저시급 정도 줍니까?"
"..........미안"
그렇게 물으니 할말이 없군.
나는 시온에게 대답할 말이 없어서 휴게소 안의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음료수 말고 다른것도 살까 했지만 기왕 휴게소에 온거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것 보다 다른걸 먹는게 낫다. 버터감자나 맥반석 오징어 같은거.
역시 휴게소라서 사람이 많으니 줄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구조가 입구랑 계산대 앞을 지나가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구조라서 그 앞에서 수명의 사람들이 가디리고 있었다.
한 5분쯤 지나서 내 차례가 되서 음료수 작은거 페트 두어개를 두고 계산을 하려고 했다.
"던힐, 하나! 빨리!"
"..........?!"
갑자기 계산대를 역주행해서 들어와 다짜고짜 직원한테 돈 내밀면서 담배달라고 하는 아저씨만 아니였다면 말이다.
뭐지 이 개념없는 새끼는.
지금 줄 서있는것도 안보이나.
"저기, 손님. 지금 다른 분들이 줄 서계시고 있는데........"
"그러니까 빨리 주면 되잖아! 담배 한갑 계산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 얼마나 걸리는 시간이 내 시간이니까 그렇지. 아저씨, 개념도 없어?"
나는 직원이랑 실랑이를 벌이려는 아저씨에게 한마디 했다.
"뭐 이 새끼야?"
"다른 사람들 다 줄 서고 있는거 안보여? 근데 혼자 역주행해서 쳐들어와서는 줄도 안서고 담배 달라고 지랄하는거 보면 개념 없는게 분명하지"
내가 따지자 그놈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언성을 높였다.
원래 이런 사람일 수록 언성을 높이는게 이기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환생하면서 워낙 인간군상들을 많이 봐서 그렇지 뭐.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질이야!"
"나보다 나이 많았어? 난 또 줄서는 방법도 몰라서 초딩인줄 알았지"
"이 새끼가!!"
놈이 내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근데 용케도 한다. 내 키가 180이 넘는 꽤나 장신인데 용기가 가상한건지 만용인건지 모르겠다.
"맞는말 했는데 멱살 잡아 올리는거 보면 당신 꼰대네. 새치기 한게 잘한거냐?"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해!"
"꼰대 특유의 명대사 나왔고요. 근데 누군지 알면 어쩔건데. 국회의원이라도 되세요? 원래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인데 댁은 반대네"
"이 자식 정말!"
한바탕 하려던걸 직원이 가까스로 달려들어 막았다. 잡힌 멱살을 놓이자 나는 주변에 소리쳤다.
"아이고! 새치기한 사람이 사람 패려고 그런다! 살려주세요!!"
내가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무슨 소란인가 싶어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몰리자 자기가 불리해 졌음을 깨달은 놈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재수 존나게 없네. 뭔 좆같은 새끼가 붙어가지고"
"뭐래, 서지도 않는 아재 새끼가"
"이 새끼가 진짜!!"
또 싸울뻔한거 사람들이 말려서 겨우 진정됬다. 별 더러운꼴을 다 보겠네.
음료수를 들고 가니 시온이 벌써 호두과자 한봉지를 끝장내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던겁니까?"
"뭐같은 꼰대한테 걸려서 똥 밟았어"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현명해지는 사람이 있지만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퇴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자존심만 높아서 자기가 항상 옳고 남이 잘못됬다고 생각하는 중년 남성이 많습니다"
"그래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거 아냐"
븅신 새끼들 아냐 그거.
한동안 나랑 시온은 휴게소 구석에 앉아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난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허나 상황이 갑자기 여의치 않아졌다.
"음?"
"아, 이런"
일반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아주 작은 기척. 하지만 그 기척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공간이 틀어져 보이는듯한 것이 허공에 나타나면서 일그러짐이 일어난다.
"차원진이네"
"그 적성종이라는게 튀어나오는겁니까"
"나는 그쪽 부대가 아니라서 막상 튀어나오는건 본적 없거든. 가끔 스쳐 지나가던 적성종들도 본적은 있지만 딱히 관여한적은 없고"
키이이이잉!!!
이윽고 공간과 공간이 떨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원진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 그제서야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는건지 눈치챘다.
"도, 도망쳐! 차원진이야!"
"꺄아아아아악!!"
"으, 으아아! 밀지마!"
적성종들은 모 기사가 달리는 만화의 괴수처럼 인간을 죽이는것을 우선시한다. 주변의 다른 기물 파손보다도 인간이 보이면 죽이기 위해 달려갈 정도다. 그래서 인구밀집 지역에는 어디든 도착할 수 있도록 포스 유저들이 배치되어 있다.
최대 20분이 걸린다고 하긴 하는데. 길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대고 실제로 어지간한 도시쯤 되면 5분안에 도착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서울에서도, 강원도에서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는데 20분 꽉 채워서 걸릴지도 모른다.
"좋아, 방법은 하나군"
"그거 뭡니까?"
"빠르게 튀는거야!"
내가 알바냐.
눈앞에서 사람이 죽아나간다고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저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고 또 일부러 나도 평범하지 않다는걸 알릴 생각이 없다.
왜 힘을 숨김? 하면서 물으면 내가 한마디 해준다.
국가 소속이 되어 적성종 사살에 협조하지 않는 포스 유저는 세금이 부여된다.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겠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루라는 정책이다. 포스 유저들은 뭐 국민 아닌가.
나라 밑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세금을 더 낼 생각도 없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좀 늦었는지 수많은 차량들이 출구에 몰려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저 앞에서는 벌써 추돌 사고도 일어났다.
"어떻게 할까?"
"차를 버리고 튀는 방법도 있습니다"
"차 아깝잖아"
"보험 들어놨습니다"
"차안에 군복만 빼두자. 예비군 훈련때 필요해서"
느긋하게 걸어서 차안에 둔 군복이랑 기타 몇가지만 꺼내들고 나왔다. 딱 타이밍이 맞게도, 그 순간 쩌적, 하고 허공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이형의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엑!!!"
혐오스러울 정도로 튀어나온 근육질 몸과 함께 조류의 머리를 달아놓은것 같은 괴물이였다. 다른게 있다면 머리가 완전히 조류라기 보다는 부리와 같은 딱딱한 것으로 일체가 되어 있었다.
전신은 탁한 회색빛을 띄고 있으며 꿈틀거리는 근육이 절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떤거든 과하면 좋지 않듯이 근육도 적당히 있어야 좋은 법이다.
"보통 저렇게, 음.....뭐라고 해야하나"
"유기물이랑 무기물이 뒤섞인 생물이 있냐고 말하면 됩니다. 이래서 문과는 안된다는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물을 주로 규소 기반 생명체라고 합니다"
"넌 이과라서 참 좋겠다. 결국 둘 다 치킨집 트리인 것을!"
균열에서 튀어나온 적성종들이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장식이 아닌지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그대로 잡아당겨 사지를 찢어낸다.
사람의 몸뚱이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악력과 근력이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저 적성종은 그것조차 간단한 듯 가볍게 저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켁!"
죽이는 방법에는 규칙이 없었다. 내장을 꺼내고, 사지를 찢고, 머리를 터트리고. 어떤 방법이던 사람을 죽이는걸로 귀결된다.
이윽고 근처에 한놈이 나와 시온을 발견했다.
침을 뚝뚝 흘리면서 우리들을 향해 달려온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시온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걸 내가 대신 쳐내서 막는다.
내 앞의 적성종의 근력은 눈으로 보이는것 뿐만이 아니라 아핌 에너지로 강화되어 있어서 단신으로 건물을 부수는건 물론 두꺼운 철판도 우그러트려 공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근데 내 앞에선 얄짤없어.
"매너손 감사합니다"
"마누라 에스코트 하는건 남편의 덕목이지"
이 새끼가 지금 우리 시온 건드리려고 했냐.
적성종에 등장에도 별 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방금 그거 하나로 단숨에 열받았다.
"당신 지금 몸은 전생들과 달리 단련이 별로 안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능력까지 리셋되는건 아니지? 여차 하면 보정 써도 되고"
보통 귀환물이던 뭐던 주인공이 강하고 능력있는 녀석들을 보면 만능이여서 마법으로 뭘 다 해결하느니 마느니 그러는데.
나는 그딴거 없다.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용성은 상당히 넓지만 내가 진짜로 잘하는건 싸우는거고, 남을 치료한다거나 기억을 지운다거나 하는 일들은 못한다. 정보 조작도 못하지. 존나 무능함.
근데 싸우는건 엄청 잘해. 이골이 날 정도로.
"키엑?!"
가볍게 놈의 손목을 잡고 비틀자 우득, 하면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 세계의 대표적인 이능인 가이아 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나는 전혀 다른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능력은 '간섭'. 오로지 내 스스로의 의지로 발현되며 나의 의지에 따라, 내 뜻에 따라 '간섭'한다는 범주에 들어간다면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한 능력이다.
가이아 포스같이 에너지 계통의 이능이라기 보다는 염동력같은 초능력이랑 비슷한 힘이라고 보면 된다.
그 덕분에 나는 맨몸으로는 힘이 부족해도 몸을 기반으로 능력을 사용해서 적성종의 손목을 부러트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내가 손목을 부러트린 적성종은 밀려오는 고통과 더불어서 분노를 나에게 토해냈다. 주먹을 휘둘러 나를 날려버리는 것에 잡은 손목 그대로 더 힘을주어 녀석을 들어올린다.
그대로 내던졌다. 저어기, 휴게소 바깥까지 튕겨나갈 정도로.
"서올까지 걸어가야 하나"
"산책도 나쁘진 않을거 아닙니까"
"목마 태워줄까?"
"그러면 바지 말고 치마 입고 올껄 그랬습니다"
"보통은 반대 아니냐. 그러면 허벅지 감촉이......."
슬쩍 아비규환이 된 휴게소를 빠져나가려던 찰나. 가까운 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적성종들이 난장판으로 만든 차량들 사이로 완전히 뒤집히고 찌그러져서 사람 하나 빠져나오기도 힘든 모습이였다. 신음소리는 그 안에서 들린것 같다.
"사, 살려, 줘......."
이미 유리는 부서졌지만 뒤집어진 충격 때문에 창틀이 머리조차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졌다.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고 덜덜 떨리는 손이 도움을 청하며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목소리와 창 안쪽으로 보이는 얼굴, 그리고 차를 보고 나는 이런 우연이 다 있는가. 아니면 성격이 그따구라서 운전도 성격처럼 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뒤집어진 차 안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꼰대 아저씨한테 말을 걸었다.
"나 기억하냐 너?"
"........?"
"한 30분전 일인데 기억 못하면 치매 의심해봐야겠지. 그치?"
"너.......?"
그는 그제서야 내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재수없던 사람이지만 나한테 있어서 그는 갑작스런 차선 변경으로 사고날뻔하게 한 사람인데다가 새치기까지 하는 개념없는 꼰대다.
"나 말이야, 포스 유저거든. 힘좀 쓰면 댁을 여기서 구해줄 수도 있는데"
"사, 살려줘! 제발!"
"근데 안구해쥼"
다른 사람들과의 경우가 다르다.
적성종들이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는 지금. 그 사람들이 죽는것은 그저 관심이 없기에 죽는것 자체를 방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꼰대 아저씨의 경우는 다른 이유로 방관하는거다.
죽는게 관심 없는게 아니라 죽는걸 바라니까 방관하는거다.
나는 씩 웃어주었다.
"댁같이 개념없는 꼰대는 차라리 죽는게 나중에 여러사람 덜 민폐 끼치고 좋을거야. 그치?"
"사, 살려줘! 뭐든지 할께! 돈도 얼마든지 줄테니까! 제발 살려줘!"
"싫어"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 있던 적성종들이 접근하는게 보인다.
점차 그의 차에서 멀어지자 그는 그 안에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른다.
"살려줘! 도와줘! 누가 도와줘! 씨발! 이 개새끼야! 도와달라고! 살려줘! 으아, 아아아악!"
적성종 한마리가 달려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들었다.
바깥으로 빠져나와있는 팔을 붙잡고 잡아당긴다.
"으, 으아아악! 아파, 아아아악! 끄아아아!!"
좁은 구멍으로 뭔가를 꺼내면 물건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건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다.
물론 적성종의 힘이 비해 사람의 내구도가 있으니 상상만큼의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꽤나 장기자랑틱한 모습인건 변하지 않는다.
어께죽지쯤 창문으로 짓이겨지다시피 끌려나오던 꼰대 아저씨는 이윽고 본인의 몸의 내구도가 버티지 못하고 팔이 먼저 뜯겨나갔다. 운이 좋지 않다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출혈이 크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숨은 아직 붙어있다는 점이다.
뭐, 쇼크 때문에 그것도 얼마 못가서 죽는다는게 운이 좋다면 좋다고 하겠지만.
"사람 죽는걸 보는건 액정 너머로 보는걸로 충분합니다. 현실에서는 보기 싫습니다"
"그러면 저놈들 쓸어버릴껄 그랬나"
"괜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하지 않습니까.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날 생각해서 일부러 말 안한거였냐.
나는 시온이 너무 기특해서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마누라 너무 귀여운거 아니냐?
낄낄 웃는 우리들에 비해 뒤에서는 비명과 고통이 난무했다. 상반된 모습이였지만 나는 무시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다치는 것도 아닌데 알게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