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2000년, 지구는 핵의 불길에 휩싸였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차라리 그랬으면 내 할일 하나 줄어들지도 모르는건데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핵의 불길 대신 다른 것에 의해 패망할 뻔 했다.
그것은 차원진에 의해 발생한 균열에서 넘어오는 타차원의 생명체. 적성종(敵星種)들이 나타나면서 이루어졌다.
적성종들은 인간들이 원수라도 되는것처럼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총기 및 화기로 대응에 나섰지만 적성종들이 가진 아핌 에너지를 통해 강한 물리내성을 부여받기 때문에 그 진전은 더뎠다.
단 한마리의 적성종을 잡기 위해서 사단 하나의 탄약을 모조리 소비해야 했을 정도로 극도의 물리 내성. 폭격이라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었지만 적성종들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을 노려 출현해서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적성종들의 천적이 나타났다.
지구의 에너지, 가이아 포스를 다루는 포스 유저들의 등장.
그들의 평범한 주먹 한방이 총 한번 쏘는것 보다 적성종에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아핌 에너지를 가이아 포스가 무효화시키고 포스 유저들을 강화하면서 그들과 싸울 수 있게 해주었다.
적성종들과 포스 유저들의 등장 이후로 20년.
인간은 적성종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멸망하지 않았다. 인간의 문명의 존속되어 오히려 가이아 포스와 적성종에 대한 연구로 인해 이능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존나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역시 저급한 레이드물같은 느낌이 난다. 설명도 좀 아재 느낌이 나고......"
그래봤자 나랑은 별 상관없으니 패스하자.
* * * *
나는 환생자다.
......아, 씨 이 레파토리도 여러번 써먹으니까 못해먹겠는데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가장 애용하는 문구다. 아무튼 다시 말하지만 나는 환생자다.
이래뵈도 환생도 수십번 넘게 해온 베테랑이라고. 경험치 무시하지 마라 짜샤.
올해 22살. 이번 생에는 별탈없이 지내려고 일부러 조용히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서 군대도 막 다녀오고 전역한 따끈따끈한 전역자 아저씨다.
남자는 군대 다녀오면 죄다 아저씨지. 슬픈 대한민국 남아의 숙명이다. 아재라도 거기는 매일 아침마다 잘 서지만. 아, 20대가 아침마다 서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아무튼 이제부터 뭘 할까 생각중이다. 일단 대학은 가야겠고. 취직도 해야하고.
인문계 나왔으니까 그냥 닥치고 치킨 트리 타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음, 요리라면 자신 있어서 맛있는 치킨 만드는 것도 자신 있는데. 원래 요리는 좋아했고 환생하면서 경험을 많이 쌓다 보니까 어지간한 요리사한테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를 먹일 수준은 되었다.
정말로 치킨집을 차릴까? 돈이야 뭐 몇년정도 상하차 하면 되는거고. 몸 쓰는건 자신 있다.
막 전역했으니 고등학교 동창놈들이나 불러다가 술이나 한잔 마실까 생각했던 찰나. 익숙한 은발의 여자아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런 만남같은 레파토리는 너무 전형적이지 않냐. 난데없는 외계인 히로인의 등장은 상당히 클리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 왕도가 아닙니까. 지금도 먹어주는 가장 빠른 루트입니다. 진히로인 등장이라는 겁니다"
"맞긴 한데 뜬금포 터지네. 기왕이면 나 군대 있을 때 와서 면회라도 와주면 안됐냐?"
"10살짜리 어린애가 면회 와주는데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여친이라고 대답할 자신 있으면 그러셔도 됩니다"
"생각해보니 엄청 다행이다. 부대 내에서 쓰레기 새끼라고 들을뻔 했네!!!"
로리콘이면 다행이고 페도새끼라고 들었으면 내 멘탈이 못버텼을거다. 사람들 시선이 무서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선후임, 동기들이 나를 쓰레기 보는 눈으로 보면 그건 좀 타격이 있을것 같다.
"아무튼 간만입니다. 전생 이후로 저는 대충 100년정도 지났습니다만. 그쪽은?"
"20년 정도. 아직 한창때지"
"이번 생의 이름은 뭡니까?"
"최악. 내 원래 이름이랑 같더라. 우연의 일치가 따로 없더라니까"
"도대체 그런 이름 지어주는 사람들의 생각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모님 욕하지 마라 짜샤! 그거 패드립이야!"
참고로 내 부모님은 20년전 적성종들의 등장 때 돌아가셨다. 나만 살아남아서 당시 운영된 시설에 맡겨져서 컸다.
여태까지 환생을 거듭하면서 내가 부모님이 있어본 경우가 드물다. 왜 자꾸 효도할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는가 모르겠다. 이건 좀 슬프군.
"아무튼 평소처럼 그것을 하겠습니다"
"그거? 아, 그거"
내가 이 녀석을 만날 때마다 하던 패턴이 있다. 너무 정형화되서 이제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내 이름은 시온 하논! 하논 종족의 외계인이자 초신성 폭발을 사용하는자!!"
"아니 그거 아니였잖아?!"
"농담입니다. 취미로 덕질을 하고 있는 외계인입니다"
"뭐냐 그 적당한 설정은!!!"
2020년이 됬지만 지금 시간대로는 아직 그 만화는 연재중이기도 하고 나름 아는 사람은 알법한 드립이였다.
역시 나랑 이 녀석, 시온은 이렇게 죽이 척척 잘맞는게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다.
"그래도 저 역시 준비를 안한건 아닙니다. 당신이 군대에 있던 2년간 여러가지 좀 했습니다"
"뭘 했는데?"
"일단 당신, 차 있습니까?"
"없지"
"집은 있습니까?"
".....없지"
"모아둔 돈은 있습니까?"
"...........없지"
야, 남자 자존심 건들지 마라. 지금부터 벌면 된다고.
"걱정마십시오, 제가 다 있습니다. 원래 그 나이 때는 없는게 당연한겁니다"
"그 드립 하나를 치기 위해서 2년동안 돈벌어둔거냐!!!"
"물론입니다!"
당당하게 이야기 하지 마라!!
대충 나와 시온의 관계는 이렇다.
서로 농담을 건내면서 친구같아 보이면서도........그 안은 더 가깝다. 그녀도, 나도 환생자. 예전부터 이어져 온 부부 관계다.
나는 수없이 환생을 반복하고. 그녀는 단 한번 환생을 했지만 장수하는 종족이기에 서로 세월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오랜시간 알콩달콩 지내면서 부부로 지내왔다. 천생연분이라고. 진히로인임.
"우선 밥부터 먹고 이야기 합시다. 이 주변에 먹을 곳 있습니까?"
"사창리 주변은 창렬해서 안된다? 원래 군부대 주변이 바가지가 심한건 매한가지라서 딴데가서 먹자"
"뭐 먹고 싶으십니까? 돈은 많으니 돈걱정은 마시고 고르십시오"
"근데 너, 뭘로 돈 벌었냐? 2년가지고 돈 불리려면 사업하는것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주갤러가 유일하게 못하는걸로 벌었습니다"
"과연, 앉아서 한탕 해먹는데 그것만한것도 없지. 그 한탕이 말아먹는 한탕인지 벌어들이는 한탕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기부터 먹으러 가자, 고기. 전역하고 나니까 가장먼저 불판에 구워먹는 고기부터 먹고 싶어진다.
참고로 내가 있는 곳은 사창리. 정확한 지명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훈련 빡세다고 소문난 27사단이 있다는 곳이다. 그중에서 나는 사단 직할인 공병대대에 들어갔는데.......아, 전역했으니 군대 이야기는 끄자. 여러 의미로 더러운꼴 많이 봤다.
"이번 생에는 군대도 온전히 다녀왔습니까?"
"응, 어차피 좆같은건 많이 격었으니 더 좆같을 일은 없겠다 싶어서 시험삼아"
"소감은?"
"좆같은 일 아래에 더 좆같은 일도 있더라"
행보관 개새끼.
"군인의 주적은 북괴가 아니라 간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나면 난 탈영해서 중사급 이상부터 총으로 구멍 뚫어주고 다닐건데"
농담 아냐. 그딴놈들 쏴재껴도 이상하지 않다.
관심병사 한명이 '김중사님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말해봐요'하면서 총구 겨눠도 이상할게 없는게 전쟁중이다.
뭐, 지금 한국은 물론 세계도 실시간으로 전쟁중이니까.
근데 내가 알바냐.
괴수, 흔히 적성종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나타나고 대응책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잊을만 하면 사람들이 죽는 소식이 들려오는 이 세계에서는 영웅이 필요하다. 적성종들을 물리치고 그 근원도 쓰러트려줄 영웅이.
근데 난 아님.
아무튼 아님. 누가 나보고 해달라고 하면 장르 잘못 찾아왔으니 나가달라고 할거다.
-세계가 멸망하니까 구해주세요!
-ㅎㅎ, 조까. 우리 애들만 안죽으면 세상 망하던 알게 뭐람.
대충 이런 마인드다.
"운전면허는 있으십니까?"
"휴가 나왔을 때 후딱 따버렸지. 내가 운전면허를 몇번을 땄는데"
"다행입니다. 혹시나 싶어서 차도 사왔는데 운전면허가 있다니"
"넌 그거 어떻게 끌고왔어? 그 체구로 운전해왔냐?"
"대리 불렀습니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대리?"
"따따따블에 팁까지 챙겨주니 확실하게 운전해 줬습니다. 돈지랄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겁니다"
"님 갑질 자제요"
검은색의 승용차. 나야 남자지만 차에는 그리 관심 없고 안전하게 굴러가기만 하면 되서 자세한 차종은 모르지만 차 앞부분의 특유의 문양으로 어느 회사인지 알 수 있었다.
벤츠 만드는 그 회사네.
"중고차도 아니고 새걸로 뽑아왔냐"
"기왕 타는거 새거가 좋지 않습니까. 돈은 많으니 앞으로 저랑 같이 대놓고 갑질을 하면 됩니다"
"개념있게 살자. 민폐 끼치지 말고. 어차피 본업쪽으로 여기선 할일도 아직 없어보이고"
환생자지만 그래도 난 직업은 있다. 평소에는 할일이 없어서 놀곤 하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할때는 하는 직업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두고 일단 서울이나 올라가자. 고기를 먹어도 군부대 옆에서 먹는것 보다 사회에서 먹는게 제일이다.
"이 세계에는 포스 유저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안할겁니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해서 뭐하게? 그거 3D 업종이야. 더럽고 힘들고 어렵고, 게다가 소방관마냥 대우도 뭐같이 하는데 해봤자 이득도 없어"
일단 개개인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원래는 좀 위험한거니 대부분의 포스 유저들의 국가 기관인 한국 적성종 대책 연합, KFU 소속이 되어서 움직인다.
외국은 다르긴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은 제 2의 군대나 다름없다. 허허, 방금 전역했는데 또 군대 들어가라고? 지랄시나이데.
돈은 어느정도 준다고 하지만 목숨값에 비하면 적다. 업무 환경이 좋은것도 아니라서 나랏놈들이 또 예산 빼돌리고 개같이 굴린다고 확신이 들고 있을 지경이다.
정책도 좆같아. 포스 유저인 사람이 적성종 잡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세금을 더 내야한단다. 포스 유저든 뭐든 똑같은 국민일텐데 할 수 있는 일을 안하는 대가라나 어쩌라나.
적성종들은 물리내성 있어서 총이 안통하지만 포스 유저들은 대다수가 통하기 때문에 군대로 통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처사다. 갑옷을 뚫는 창이 있다고 해서 그 창으로 총알도 막을 수 있는건 아닐테니까.
물론 존나 쌔서 창으로 총알도 튕겨내면 또 모를까.
"그쪽 이야긴 그만 하자. 어차피 별 상관 없는 일이고. 운전중에는 운전만 집중하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프레리독식 인사도 안해주는겁니까"
"그런거 운전하는 중에 말하지 말라고!"
적어도 집이나 모텔에서 하자고. 할거 다 하는 사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게 있는 법이다. 나는 도덕은 신경 안쓰지만 다른 사람한테 민폐 안끼치게 하는 것 정도는 지킨다.
운전하면서 한눈팔다 사람 다치면 어쩔거야.
"춘천 고속도로 타고 얼른 서울로 올라가자. 고기 먹고 싶다 고기"
"고기 먹고 스테미너를 보충한 다음에는.......흠, 흠"
"대낮부터 하려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저도 욕구불만입니다"
어우야, 나도 자기 위로도 잘 못하는 군인이라서 한참 쌓였는데.
오늘 시온이나 나나 둘중 하나는 죽겠군. 뿅가죽겠지.
"어 시벌?!?!"
순간 운전 도중에 옆 차선에서 깜빡이도 안키고 차선 변경한 차 한대가 내 앞으로 들이닥쳐왔다. 아니, 고양이 땅콩만도 못한 새끼가.
그리고 그대로 또 다시 옆차선, 한번에 두 차선을 쑥 옆으로 지나갔다. 운전 참 좆같이 하는데.
내가 반응을 빨리 해서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사고 하나 났을거다. 저새끼는 목숨이 두개신가. 나도 목숨은 하난데.
"보복 운전은 안됩니다"
"..........알아"
한바탕 난리 칠까 하다가 그만 뒀다. 오늘은 시온이랑 만난 날이기도 하고 기분 좋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당장에 저자식 차 문짝 떼고 끄집어 낸 다음에 던져버리고 차는 두동강 내서 박살을 내버렸을거다.
성격 많이 죽었군.
세상에는 이기주의자가 많지만, 그중에서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기주의자다. 관심은 없으나 관심이 없는만큼 타인도 나한테 관심없게 조용히.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주의다.
나랑은 반대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인간들이 짜증난다.
저 차주처럼 막되먹은 새끼는 두번다시 안만나겠지.
...........라고,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