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하프엘프 조교기(2)
“이티아 님. 어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별일 없었는데, 왜?”
나는 지금 늦은 점심으로 메이가 손수 만들어준 팬케이크에 허브차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메이가 만들어준 팬케이크는 메이 특유의 조리법이 들어가서 그런지 폭신폭신하고 달콤한게 딱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이렇게 간단히 식사를 때울 때 자주 먹고는 했다.
허브차도 마찬가지로 메이가 이든의 저택에서 뜯어온 것으로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최고급 허브란걸 강조하며 매 끼니 우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도 귀한 차를 물 마시듯 꿀떡꿀떡 마시는데 이어지는 메이의 말에 그 귀한 차를 뿜었다.
“이티아 님께 청혼서가 왔어요. 발신인이…베헤 칼레온 이라네요.”
“푸흡! 무, 콜록! 콜록콜록!”
“이티아 님! 괜찮으세요?”
“콜록! 괜찮아…콜록! 아우 콜록! 하우 후우…아 진짜 죽을 뻔했네.”
어찌나 심하게 사레가 걸렸는지 눈시울이 촉촉했다.
“아니, 그보다 누구라고?”
“베헤 칼레온 제2 기사단장… 이라고 적혀있네요. 어제 오셨던 분 맞죠?”
“와 씨. 그 양반 진짜 했네?”
분명 단칼에 거절해서 말도 못 붙이게 못박아 뒀을 텐데 이런 식으로 청혼을 해 오다니 놀라웠다.
“어떻게 하실 거에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당연히 거절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거절하지? 그냥 무시하면 되나?”
“글쎄요…저도 귀족은 아니라서…”
그냥 무시하자니 뭔가 찜찜하고, 그렇다고 답신을 보내자니(물론 거절의 의미로) 그걸 빌미로 더 집적거릴까 귀찮았다.
“릴리는 알려나 모르겠네.”
“릴리 양도 청혼을 받아본 적은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릴리 정도면 예쁜데다 인기도 많으니 청혼까진 아니더라도 사귀는 사람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럴까요? 뭐, 나중에 물어보면 되죠.”
“그건 그래. 일단 당장 문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인데…”
생각지도 못한 숙제가 하나 떠맡겨 진 느낌이라 심기가 언짢았다.
어휴 그 놈은 왜 싫다는대도 이러는건지…
“그냥 대충 꽃 하나 붙여서 보낼까? 답장은 쓰지 말고.”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건 뭐야. 난 평민이라 귀족적인 예법은 하나도 모르는데 뭐.”
“이티아 님이 평민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티아 님의 말에는 동의해요. 굳이 귀족 예법에 얽메일 필요가 없으시니까요.”
“그래. 그러면 대충 정원에 꽃 아무거나 꺾어다 첨부해서 보내. 아니다, 그러면 승낙했다고 또 오해할 수도 있으니 큼지막하게 ‘거절’ 이라고도 쓰고.”
“네. 말씀대로 할게요.”
총총총 사라지는 메이에게 잠시 눈길을 준 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았으니 리비의 상태도 봐주러 가야 한다.
평소와 같은 얼굴에 평소와 같은 발걸음으로 지하실로 내려가니 역시나 쫄쫄 굶어서 잔뜩 핏발이 선 눈으로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세상에 그러면 안되지!”
벌써 자해를 할 정도로 무너진건가?
서둘러 리비에게 다가가서 다시 팔다리를 쇠고랑으로 속박했다.
어차피 자해를 한다고 해도 지하실에 깔린 마법의 영향으로 죽음에 이를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보기 안좋고 나중에 다른 질병이라도 걸릴 수 있으니 지금 미리 조치를 취해 놓았다.
물론 그래도 수갑으로 인해 팔목, 발목에 짓물린 상처가 남았지만…이건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이든이 오면 회복마법이라도 써달라고 해야지 뭐
“우리 리비 양 많이 배고픈가 보네. 그럴줄 알고 오늘은 팬케이크를 가져왔지~”
따끈따끈한 팬케익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맛있어 보이는 팬케익이다.
“자 그럼 또 한번 물어볼게. 이름은…”
“리비! 리비에요! 그러니 제발!”
어머나 깜짝이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비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아휴 귀청 떨어지겠네. 그래그래 우리 리비 양. 그러면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할게. 알았지?”
리비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팬케이크에서 눈을 떼지를 못하고 있었지만 어찌저찌 내 말을 듣긴 했는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음…근데 뭘 물어보지?
분명 예전에 질문거리를 다 생각해 놨는데 막상 하려니 까먹었다.
“미안 할 질문을 까먹었어. 다음에 생각나면 다시 올게.”
“어, 어?”
그대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제 루크가 올 시간이네 서둘러야겠다.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지나오는 사이 뒤쪽에서 ‘팬케이크는 주고가!’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다.
“아하하 미안 미안 아까전엔 급한 일도 있어서 깜빡하고 그냥 가버렸지 뭐야.”
“…지금이라도 줘.”
“말이 좀 짧은데?”
“지금이라도 주세요…”
“그럴 순 없지. 메이가 만든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한 팬케이크를 오래 놔둔다는 건 메이에게 실례야.”
“그, 그럼…뭐라도…”
“안 그래도 적당한걸 가져왔지. 짜잔~”
쟁반에 곱게 담아온 것은 정말정말 구하기 힘든 식재료였다.
…안 좋은 쪽의 의미로다가.
쟁반에 스테이크 커버를 치우자 꾸리꾸리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심지어 외관도 썩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으윽…그건 뭐야…요?”
리비도 음식을 보자마자 침샘이 말라버렸는지 인상을 팍 쓰고 노려봤다.
이게 뭐냐고?
지구에서 간식거리로도, 식사 대용으로도 사랑받는 마성의 그 음식!
“바로바로~오! 곱창!”
빠람!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면서 접시를 리비의 얼굴 근처로 들이밀자 리비는 미간의 골을 더욱 좁히며 뒤로 몸을 쭉 빼며 도리질쳤다.
“윽! 저리 치워! 이게 뭐야?”
이래봬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아르고니아에도 돼지는 있지만 대부분 살코기 위주로만 먹으니 이런 창자 같은 부분은 애초에 판매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나 완전히 해체된 육류만 파는 황도의 정육점에서 돼지 창자를 찾는건 실로 어려운 일 이었다.
결국 수소문 끝에 어찌어찌 구하긴 했으나 상태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실제로도 처리가 미흡했던 탓인지 지금도 이렇게 꾸리꾸리한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뭐, 내가 먹을 건 아니니까.
“돼지 창자야.”
“창…자?”
“창자 몰라? 배속에 있는거. 내장. 똥 지나다니는 길.”
“욱! 그, 그걸 왜?”
“왜긴 왜야? 이게 네 저녁이야. 맛있게 먹어.”
적당히 세척하고 대충 찜기에 쪄 만든 곱창은 차마 입을 대기가 힘들 정도의 악취를 풍긴데다, 생김새 역시 그로테스크했다.
차마 메이에게 조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좀 그래서 내가 대충 만든거라 그 완성도 역시 처참했다.
당연히 나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따라서 맛은 예상할 수도 없다.
“혹시 알아? 엄청 맛있을지.”
“으으…전혀 맛있을 것 같은 냄새가 아닌데…”
“네가 아직 덜 굶었구나?”
내가 접시를 뒤로 빼는 시늉을 하자 리비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옆으로 팩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긍지가 있지. 그건 못 먹어. 나보고 돼지 똥이나 먹으라는 거야?”
“아니, 맛있을 수도 있다니까?”
잠깐만 왜 내가 얘한테 먹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거지?
“싫으면 말아라. 진짜 안 먹을 거지?”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역겨운 걸 입에 댈리가 없잖아.”
고약한 냄새가 정신을 차리게끔 도와준 건지 리비는 다시 건방진 말투로 내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까부네? 나랑 친구먹자 하겠어 아주?
그리고 나는 이틀 후 미쳐버린 리비를 볼 수 있었다.
“허굽, 으적,으적, 으적 우물으물 음 하웁!”
리비는 팔다리가 묶여 있기에 접시에 놓인 돼지창자찜을 먹으려면 엎드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개처럼 입으로 먹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수치심 따위는 아랑곳 하지도 않은 채 게걸스럽게 질긴 고기를 씹었다.
만들고 며칠이 지난 곱창은 차갑고, 딱딱했으며 냄새나고 또 질겼지만 리비는 그것조차 맛있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개처럼 식사를 하는 하프엘프라니 꽤나 신선한 조합이었다.
그런데 엘프가 육식을 하던가?
보통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엘프는 지독한 채식주의자로서 자연을 사랑하는 그런 종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 리비가 보이는 모습은 그런 엘프들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져 보였다.
“리비 엘프도 고기를 먹어?”
“네! 엘프도 자주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긴 합니다!”
대답을 똑바로 안하면 내가 이 돼지창자를 빼앗아가기라도 할까봐 입에 있던 것 마저 뱉어내고 똑부러지게 대답을 하였다.
음음 좋아좋아 만족스러워.
조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조교하다 보면 착한 리비가 되겠지?
“그럼 난 갈게. 그거 아껴먹어 앞으로는 이틀 뒤에 올 테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빡시게 갈 예정이었다.
한번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면 더욱 쉽게 무너지겠지.
이런식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마음을 꺾어놓고, 노예각인만 바꾼 뒤 제대로 조교해서 써먹을 생각이다.
***
끼익-쾅!
녹이 슨 철문이 닫히고 다시 어두컴컴한 암흑이 찾아왔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등불은 주기적으로 빛을 바꿔 정신적인 피로를 축적시켰고, 최근엔 뜸하지만 이전에 음부에 막대기가 꽂혀 있을 적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성적 쾌감이 끊이질 않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전신에 원인모를 고양감이 감돌고, 당장이라도 남성을 탐하고픈 욕구가 들어 아랫배가 씰룩거렸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굉장히 버티기 힘든데, 최근에는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먹을 것을 가지고 능욕을 당하게 되어 정말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아…시발…시발, 시발 시발시발시발시발!”
리비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부림을 칠 때마다 적막한 감옥 안에서 철컹철컹 소란이 일었지만 아무도 찾아올 이는 없었다.
“시발…좆 같은 년 이 쇠사슬만 풀수 있으면 당장 목을 분질러 버려도 시원찮을 년!”
리비는 언젠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지만 상황은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꼬르르륵!
잠깐의 몸부림 만으로도 순식간에 체력이 다해 헉헉대는 제 꼴을 보자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차갑게 식은 접시 위로 시선을 돌린 리비는 목구멍 위로 치밀어 올라오는 토악질을 삼키느라 안감힘을 써야 했다.
‘내가…저 역겨운 걸 입에 넣다니…’
지금도 역겨운 오물 냄새를 풍기는 돼지의 내장쪼가리를 노려보던 리비는 이내 자신의 입가에서 침이 흐르는 것을 깨닫고 혐오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발…시발! 이런 좆 같은 년! 이 와중에도 배가 쳐 고프냐!’
제 자신의 추태를 역겹게 생각한 리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도리질 쳤다.
암살자로서 쌓아온 명성과 엘프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욕구를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그것들이 밥을 먹여주진 않았다.
특히나 방금 전에도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원수의 앞에서 아양을 떨며 이 오물덩어리를 맛있다는 듯 먹어삼키지 않았던가.
한계에 몰린지 오래인 몸은 슬슬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어찌되었든 영양을 보충할 방법을 찾긴 해야했다.
‘먹…을까?’
꼴깍
당장 눈앞에 있는 이 고깃덩이는 어찌저찌 참고 먹으면 먹을 순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시발 미친년! 저걸 또다시 입에 넣겠다고?’
‘그래도…어떻게든 살려면…’
꼴깍 꼴깍
입가에 고인 침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긴 시간동안 이성과 본능의 싸움 끝에 승리한 것은 본능이었다.
으적 으적으적
‘그래 난 진게 아냐. 포기한게 아냐. 어떻게든 살아남아서...그 년을 죽여버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