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그런가보지
내 갑작스런 부탁을 받은 루크는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알겠다고 답해 주었다.
“정말? 그럼 이거 해줄 수 있어?”
마법의 종류 책을 대충 몇장 넘긴 뒤 아무 마법이나 가져다 보여주었다.
“이거? 이건 생활마법 이잖아. 아쉽게도 난 이쪽 분야는 아니라서 못해.”
“이거 못해?”
내가 보여준 마법은 얼룩을 지우는 간단한 세탁마법인데 루크는 슥 훑어보더니 못한다고 손사래 쳤다.
“그럼 무슨 마법을 쓸 수 있어?”
“호크아이나 매핑 같은 마법을 쓸 수 있지.”
“호크아이? 그건 뭐하는 마법이야?”
“굉장히 멀리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이지.”
“그럼 매핑은?”
“매핑은 주변 지리를 파악하는 마법이지. 그리고 길을 찾는데도 유용한 마법이야.”
“너 혹시 용병이야?”
하나같이 직접적인 공격성은 없지만 뭔가 레인저 같은 부류가 쓸법한 마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 네 직업은 뭐야? 평민이라기엔 꽤나 유복한 것 같고… 진짜 용병이야?”
아까 전에도 점심시간대에 내가 있던 도서관에 온 걸로 보아 고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겪어본 루크는 절대로 남 밑에서 얌전히 일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하하…용병은 무슨. 난 출판사에서 일해”
“출판사?”
“응. 출판사에서 책들 홍보문구를 작성하는 일을 하지.”
생각보다 정상적인 직업을 가져서 좀 놀랐다.
“근데 마법은 왜 배웠어?”
“왜 배우긴 그냥 가르쳐 준다니까 배웠지.”
“그럼 마법은 아직도 써먹어?”
“아니, 이 마법들을 어따가 써먹어? 나도 차라리 생활마법을 배웠으면 생활마법사로 돈좀 만졌을 텐데 아쉽지. 지금은 쓰는 방법도 거의 까먹었어.”
“뭐야, 그럼 사실상 못 쓰는거나 마찬가지잖아?”
괜히 기대했네. 마법을 쓸 수 있다면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마법 하면 드래곤이고, 그 드래곤인 이든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지만, 애초에 드래곤이 쓰는 마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판타지 세계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멀리서 그래픽 화면을 본 것처럼 실감도 안 났다.
아티팩트는 뭔가 내가 마법을 쓰는 느낌이 안 나고…
“에휴…나도 마법 써보고 싶다아…”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푸념하자 루크가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까?”
“네가? 너 마법 못 쓴다며. 그런데 무슨 수로?”
“마법은 못 써도 마력회로를 돌리는 법은 알지. 물론 나도 전문적인 마법사는 아니니 딱 그 정도밖에 못 도와줄 테 지만…네가 재능이 있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걸?”
루크의 솔깃한 제안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 가르쳐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그런에 어떻게 가르쳐주게?”
“음…앞으로 오후에 만날까? 만나서 알려주는 편이 좋잖아.”
“그래! 그러자. 앞으로 오후에 어디서 만날까? 그냥 여기서 만날까?”
이 카페라면 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고, 둘이서 조용히 대화를 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 했는데 이상하게 루크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음…우리 그냥 네 집이나 그런데서 만나는 게 어때? 여기서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여기? 여기가 뭐 어때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우리쪽에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고 주변이 시끄러워서 우리의 대화가 다른사람 귀에 들어갈 일도 없었다.
우리가 할 것이 그리 비밀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벌려지는 것도 별로 좋지 않을 수 있기에 여기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렀다는 것이고, 루크는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야. 안돼. 마법회로를 알려준다고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이야. 이렇게 오픈되어있는 곳에서 그런 중요한 작업을 한다고? 스승님께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
“그럼 어떡해? 그렇게 조용한 공간은 찾기 힘든걸?”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 집으로 갈래?”
“그건 싫어. 처음 보는 사람 집까지 간다고? 말도 안 되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같이 카페에서 대화도 하고 팬케이크도 먹고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경계심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 네 집은 어때?”
“우리 집?”
“응. 네 집이면 괜찮지?”
우리집이라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었다.
“음…역시 안될 것 같아.”
“왜?”
“우리 집에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살거든 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떡해.”
“에이 그 정도야…사람이 얼마나 있는데?”
“음…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일단 최소 5명? 많을 땐 10명도 훨씬 넘어.”
“집인데? 다 가족이야?”
“그러…지?”
가족은 가족이지. 어쩌면 피보다 진한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하기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방에서만 하면 괜찮지 않아? 그리 오픈되어 있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뭐. 알겠어. 우리집에서 하는 걸로 하자.”
5층에 있는 내 방에서 하면 되겠지?
그리고 그 동안에는 5층에 올라오지 말라고 하면 될 것이다.
“아참! 그거 하는데 얼마정도 걸려?”
“회로를 전수해주는데?”
“응. 너무 오래 걸리면 곤란해. 나도 일이 있어서.”
“글쎄…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데…대략 잡아서 두 시간 정도?”
두시간? 그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럼 오늘 바로 할 거야?”
“아니, 오늘은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대신 내일 바로 하자.”
“그래. 그럼 오늘은 우리 집까지만 같이 가자.”
“네 집? 왜?”
“왜긴 우리 집을 알아야 내일 찾아올 거 아냐?”
“아아! 맞다 참. 그렇지.”
루크의 반응은 뭔가 이상했지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했다.
“다 먹었으니 이만 일어나자. 여기요! 계산할게요!”
“네에~!”
가격표를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리 비싸지 않앗다.
아니, 아직 물가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졌다.
“…”
내 옆에서 가격표를 확인한 루크는 헛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지? 금화 25개면 그리 비싸지 않은 거 아냐?
항상 이든이라는 든든한 물주가 옆에 있었고, 그가 없을 때에도 공작이나 기사단장 등 굵직한 권력자들 곁에서 돈에 쪼들리지 않고 지내왔던 내게 금화 25개는 그리 무섭지 않은 가격이었다.
만약 지구에 물가로 환산한다면 간식거리에 25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루크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지 모르겠지만…아쉽게도 지금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습…! 금화 25개면 거의 내 한달 식비인데...”
거 참! 그렇게 손을 덜덜 떨어서야 되겠어? 마음 불편하게 시리.
루크의 안쓰러운 모습을 실컷 구경한 후 그냥 내가 대금을 치루고 나왔다.
“정말 괜찮아?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어차피 넌 입도 안 댔잖아.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건데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그렇…지.”
“자! 그럼 이제 우리집으로 가자 여기서 별로 안 멀어.”
내게 감동한 모양인지 오도카니 서 있는 루크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조용한 것이 신경쓰였지만 깊게 생각할 새도 없이 도착했다.
“자 다왔어. 길은 외울 수 있지? 매핑인가? 하는 마법 있다며”
“어어. 다 기억하지. 그럼 내일 보자!”
분명 첫 만남인데도 넉살좋고 붙임성이 뛰어나서 금새 친해진 것 같았다.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았음에도 다음을 기약하며 해어질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리 나쁜 놈은 아닌가 보지.
루크가 뛰어간 방향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루크가 사라진 쪽에서 세찬 바람이 시트러스 향을 가지고 불어왔다.
이거 어디서 맡아봤던 향인데…?
가만히 서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제국에서 유행하는 향인가 보지.”
도저히 생각해 봐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뭐가요?”
“아! 메이 집에 있었구나?”
“네. 저녁에 먹을 식당 예약도 해 놓았어요.”
“비싼데 골랐지? 아니다, 레아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어.”
“비싼데 골랐어요!”
“정말 비싼데 맞아?”
“그럼요! 근데 왜 그렇게 비싼 음식점만 고집하는 거예요? 싸도 맛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비싼 음식점은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와 품위가 있잖아. 그걸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그런거지.”
“음…그래도 드래곤 님의 저택보다 더 분위기 있는 곳을 찾긴 어려울 것 같지만요. 아무튼! 이번엔 정말로 비싼 식당을 찾아놨으니 딴말하지 마세요. 정말정말 비싸서 저택 기둥 뿌리를 하나 뽑아야 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 뭣하면 이든이 준 보석으로 대체하면 돼.”
이든이 떠나면서 내게 준 아공간 주머니 안에는 이든이 모아놓은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있었다.
나야 보석 같은 것을 모으는 취미가 없으니 그냥 예쁜 돌덩이일 뿐 이지만 사람들은 또 이런 것에 환장하니까.
어쨌든 저녁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에 곧바로 지하실로 향했다.
아침에 보고 또 보는 것이지만 원래 조교를 할 때는 자주 찾아가 자극을 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