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이것도 인연이죠 (73/85)



〈 73화 〉이것도 인연이죠

갑자기 책을 빼아긴 난 친한 듯 말을 걸어오는 모습에 당황했다.

“누구야? 나 아니?”

“아니. 오늘 처음봐.”

“근데 남의 책은 왜 가져가? 이리 내놔.”

앉은 상태에서 팔을 쭉 뻗었지만 이놈이 몸을 뒤로 빼는 바람에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뭐하자는 거지?

쉬이 돌려줄 생각이 없어보여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빼앗아 간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밤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은 꽤나 잘생긴 편이었고, 나이대도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옷은 고급스러운 천을 사용하진 않았어도,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귀족은 아니지만 나름 잘 사는 집 자제로 보였다.

그런 놈이 대체 왜 여기서 나한테 지랄인지 모르겠네.

아무튼 기묘한 침묵과 함께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데, 책을 슥 훑어본 밤색청년은 ‘이게 뭐야?’하며 책을  소리나게 덮었다.

“뒤지게 재미없네. 이딴걸 왜봐?”

“남이사 보든말든. 다 봤으면 내놔.”

어서 달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책을 건네주는  하면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러지 말고. 이왕 만난 거 통성명이나 할까? 난 루크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미친 놈 인가?

스스로 가슴에 손까지 얹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루크를 보며 혀를 쯧쯧 내둘렀다.

내가 걸려도 제대로 걸렸구만.

옛말에 미친놈은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나는 곧장 들고있던 책 두 권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어? 어디가?”

자신을 루크라고 소개한 미친놈은 내가 앞서나가자마자 내 손목을 잡아채고 나가는 것을 막았다.

“왜이래? 당장 놔.”

“아니, 너무 쌀쌀맞은 거 아냐? 책도 돌려줬잖아.”

하, 시발 진짜 뭐하는 새끼지?

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지성인이니 저급한 욕설 말고 조금 더 고급스럽게 까 줘야지.

“저기 루크라는 친구야? 네 첫인상이 길거리에 떨어지는 비둘기  보다도 더 역겨웠거든? 그러니  손 놓아줄래?”

사실 아까부터 손목에 힘을 주고있긴 한데  정도로는 남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걸 잘 알고있길래 정중히(?) 부탁했다.

“내, 내 첫인상이 왜?”

그걸 말이라고 하니…

솔직히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봐도 그냥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이런 짜증나는 화법을 쓰고 있다는  보일 정도였으니.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다시한번 팔에 힘을 주어 손목을 빼려고 했으나 역시나 힘이 모자랐다.

에이 씨, 힘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악력이 장난 아니네.

어쩔 수 없지.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 밖에.

공공장소에서 하기는 좀 부담스럽지만 그런거 일일이 신경쓰다간 이대로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일 것 같아서 바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을 가다듬었다.

“후읍! 꺄…헙!”

“어이코! 도서관은 정숙이야 아가씨.”

목청껏 비명을 지르려던  계획은 루크의 손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미안해 아가씨.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그냥 말좀 붙여보려고 귀찮게 군 거야. 사과할게.”

다행히 내가 다분히 짜증이 났다는  인지했는지 루크는 바로 내게 사과했다.

그러며 손을 놓고 책을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과의 의미로 내가 맛있는 케이크라도 살게 어때?”

“어디서 개수작…아니, 아니다. 가자 그래.”

분명히 너가 산다고 했다?

이렇식으로 헌팅을 당한것도 나름 신선하긴 해서 그냥 따라가길 마음먹었다.

점심이 부실하기도 했고, 스트레스 받은 걸 먹을것으로 풀자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 먹을거 사주겠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된다지만 뭐 어때. 내가 7살배기 애들도 아닌데.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린  근처 거리로 나왔다.

“사준다고 했으니 내가 고른다?”

“그래. 너무 비싼데는 가지 말고.”

이제  점심을 지난 시간대라 대부분의 디저트 전문점들은 사람들로 붐볐다.

“휘유~ 사람 많네”

“뭐 걷다보면 있겠지.”

“내가 팬케이크 잘하는 곳 아는데 그쪽으로 갈래?”

“뭐래니 네가 어디로 갈 줄 알고? 싫어.”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그러니 너도 같이 가는거 아냐?”

“혹시 모르지. 널 오늘 처음봤으니 네가 나쁜 짓 하려는 맘으로 온 것일수도 있고.”

솔직히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경계하긴 했지만 워낙 첫인상이 별로라서 죄책감도 별로 안 들었다.

내 싸늘한 반응을 느낀 루크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아가씨는 이름이 뭐야? 그러고 보니 아직 소개도 제대로 못 들었네.”

“이티아.”

“이티아? 이름 예쁘다. 평민이야?”

“응. 귀족 아니야.”

“그래? 난 옷차림이 그래서 귀족인 줄 알았는데.”

“귀족이었다면 내가 그런 도서관에 혼자 있지 않았겠지.”

“그렇지. 그리고 아마 벌써  손목이 날라갔을걸? 감히 귀족의 몸에 손댄 죄로”

“신랄하네. 내가 귀족이 아닌걸 다행으로 생각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가씨. 어서 앞장서시지요.”

그 뒤로도 잠시동안 영양가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주로 루크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귀찮은데 그냥  떄려치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던 찰나 꽤나 많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저기로 가자. 저기가 괜찮아 보이네.”

 손끝을 따라 카페를 발견한 루크의 얼굴이 삭 굳어갔지만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져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기 이티아? 여기 귀족들이나 다니는 곳인데…”

“어머, 자신만만하게 사준다고  때는 언제고? 자신 없어?”

내 도발에 자존심이 자극당했는지 루크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뒤로 따라 들어왔다.

역시나 카페 내부는 굉장히 화려했고, 또 고급스러웠다.

카페 안쪽에는 귀족들 혹은 꽤나  사는 집안 자제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풍스런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 괜찮다. 분위기 있네.”

“지갑은 썩 괜찮을 것 같지 않은데…모쪼록 마음  드시지요”

루크의 어설픈 귀족 행세가 마치 어릿광대의 재롱을 보는  같았다.

“그만 하고 앉아. 뭐 먹을까? 음~.”

탁상 위에 놓인 메뉴판에서 적당히 아무거나 막 시켰다.

간단하게  두개 정도만 주문할  알았던 루크는 주문하는 개수가 다섯 개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얼굴이 새하얘졌다.

“마지막으로 꿀을 넣은 레모네이드까지. 이 정도면 되겠지?”

“너…이거 다 먹을  있어?”

“아마도? 이래뵈도 내가 좀 세.”

가뜩이나 요즘 단게 끌렸는데 이참에 당 보충이나 해야겠다 싶어 조금 많이 시키긴 했다.

“아, 특별히  것도 시켰으니까 맛있게 먹어.”

“예에에…참 가아암사합니다.”

처음 봤을 떄 보다  초췌해진 얼굴을 보니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정 부담된다고 하면 그냥 내가 내지 뭐.

그 뒤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침묵이 이어져 그냥 책이라도 보기로 했다.

아까 보다 말던 마법의 역사 책을 펼쳐서 보고 있는데,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던 루크가 몸을 앞으로  빼면서 내가 보고있는 책을 같이 보았다.

“이게 재밋어?”

“응”

“취향 참 독특하네. 마법사가 꿈이야?”

“아니. 그냥 취미로 읽는거야 난 마법 써본적 없어.”

“진짜? 제국 아카데미는 안 나왔어?”

제국 아카데미? 그런것도 있어?

“그런데서 마법도 배워?”

“특기생들은 배우지. 굳이 특기생이 아니라고 해도 마법에 대한 개념 정도는 배우고.”

루크의 말이 흥미로워서 책을 덮고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럼 그 아카데미는 귀족들만 갈 수 있는거야?”

“귀족들은 오히려 그런곳에 잘 안 가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냥 평민들이야.”

“그래? 그럼 너도 거기 아카데미를 나왔어?”

“나? 나야 뭐…다니긴 했는데 그리 열심히 다니진 않았어. 그런데 넌 어디서 왔길래 아카데미도 몰라?”

“난 황도에 온지 얼마 안 됐어. 지금까진 음…제국 남부에 있다가 얼마전에 올라왔지.“

“그래? 혹시 귀족의 방계야?”

“아니. 그냥 완전히 평민이야. 상인인 친척이 있어서 황도로 올라왔고.”

“그래? 그럼  친척은 지금…”

루크의 말은 종업원이 음식을 내어와서 잠시 끊겼다.

“응? 뭐라고?”

“아니. 별거 아냐.”

디져트는 생각보다  푸짐했고, 먹음직스러웠다.

천천히 하나씩 음미하는데, 루크가 그냥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는 게 보였다.

“넌 왜  먹어?”

“나? 나는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단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구나?

지구에  적에는 나도 단 음식을  안 먹었던 것 같은데 여기 아르고니아에선 대부분의 음식이 싱거웠던지라 술술 잘 들어갔다.

먹으면서 우리는 대화를 조금 더 이었다.

“그럼 너도 아카데미를 나왔으니 마법 쓸 줄 알아?”

“나는 예전에 전문적인 스승에게 배워서 조금은 쓸 줄 알지.”

루크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스승? 진짜 마법사인 스승한테 배웠다고?”

“그냥 어쩌다가 우연히 배운거야. 그리고 실력도 잘 안 늘어서 금새 포기했지만.”

“그래도 마법을 쓸 줄 아는게 어디야? 혹시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아까전에 마법의 종류 책에서 봤듯이 마법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았다.

아니, 효율이고 자시고 간에 애초에 스승이 없으면 배우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나도 마법을 쓰고는 싶은데 마땅한 스승이 되어  사람이 없어서 당분간은 그냥 지식을 쌓기 위해서만 공부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을 만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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