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이티아 오픈 준비
나는 지금 내가 일하던 창관…그러니까 요정들의 밤 현관에 서 있었다.
우와 진짜 이런 이름이었구나.
항상 어둑어둑한 밤에만 와서 그런지 지금까지는 간판이 안 보였었다.
애초에 밤에만 다니는 곳인데 간판도 좀 삐까번쩍 한걸로 해놔야지.
내 신전에 간판에는 네온사인…은 없어도 어찌어찌 아티팩트를 통해 조금이라도 눈에 더욱 띄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 이티아, 왔어?”
문을 열자마자 비올라가 밝은 얼굴로 맞아 주었다.
“세상에…그게 다 짐이야?”
비올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들을 박스채 담아 옮기고 있었다.
“이중 절반은 소각할 거라 괜찮아.”
“어휴…내가 도와줄…게!”
딱 봐도 무거워 보이던 박스는 역시나 무거웠다.
딱 두 걸음 걷고 내동댕이치듯 박스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종이로만 꽉꽉 담았으니 무겁지. 그냥 냅둬 알렉산드리오를 부를거니까.”
알렉산…그러니까 소심이는 원래는 데려갈 생각이 없었으나, 비올라와 소꿈친구라는 점을 어필하며 가고싶다고 징징거리길래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그럼 진즉 말하지. 소심이는 어디 있어?”
한 것은 없지만 나름 힘좀 썼기에 손을 탈탈 털며 안쪽을 바라봤다.
내 창관으로 터를 옮기는 여자들이 짐을 싸느라 안쪽이 시끌벅적했다.
“아마 안에서 애들 짐 옮겨주고 있지 않을까?”
“그래? 알았엉~ 아! 마차는 불러 놨지?”
“어. 한 이십 분 후에 도착한데.”
“그래. 소심이도 부를게.”
창관 안쪽으로 들어가자 온갖 짐들을 짊어진 소심이가 보였다.
옷이 얼굴을 가려서 비틀비틀 걸어가길래 다가가 눈을 가리는 옷을 살짝 치우고 말했다.
“야, 소심이. 릴리는 어디있어?”
“누구…아! 이티아. 릴리는 저기 분장실에…”
“분장실? 알았어. 아! 입구쪽에서 비올라가 불러 빨리 가봐.”
내가 등을 탁탁 쳐주며 보내자 비틀거리며 입구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위태로운 모습에 잠깐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급한일이 있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분장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릴리를 포함한 창녀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준비는 다 했어?”
“응. 짐은 다 옮겨놨어.”
“좋아. 음…없는 사람은 없지?”
둘, 넷, 여섯, 여덟 아홉.
밖에 있는 비올라까지 해서 총 10명의 창녀가 새롭게 내 ‘이티아’의 직원이자 미와 색욕의 여신 이티아의 사제가 되었다.
“자. 이제부터 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줄게.”
나는 내가 여신임을 딱히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당장 이 아르고니아에 여신인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혹시 모를 일이다.
그리고 굳이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아니더라도 여신이라는 직함이 가지는 상징성은 어마어마했다.
아마 널리 퍼지면 정치적으로 이용될지도 모르지.
당장 공작만 해도 자신의 파벌 사람들만 내게 소개시켜주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어우 상상만 해도 귀찮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된다고 셍각하기에 내 정체는 오직 사제들에게만 알릴 생각이다.
내 정체를 들은 창녀들의 반응은 놀라거나 수긍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특히 릴리는 굉장히 침착해 보이는 것이 어렴풋이나마 내 정체를 눈치채고 있던 것 같았다.
“릴리는 알고 있었어?”
“대충은요. 하이엘프나 용족 같은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미모이니까요. 적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역시 수준급의 창녀다운 입놀립이다.
“릴리, 왜 또 말을 높여? 평소대로 해. 자, 어쨌든 너희들은 이제 내 사제가 되었어. 앞으로 섹스를 통해 신력을 얻을 수 있으며, 신력을 사용해서 매력을 증가시킬 수 있어.”
“그…매력을 증가시킨다는게 무슨 말이죠?”
“좋은 질문이야. 원래 이런건 직접 보여줘야 하지만 아쉽게도 내 매력은 최대치라서… 간단히 말하면 더 예뻐질 수 있는거야. 얼굴에 잡티가 사라진다던지, 주름이 없어진다던지 피부가 더욱 탱글탱글해진다던지 그리고 확인해봤는데 겨드랑이나 음부쪽 제모도 가능하더라.”
“그런게 진짜 되는 건가요?”
“이걸 보여줄 수도 없고…”
다들 눈을 초롱초롱으로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꼭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그렇게 알고있어. 아니면 오늘 적당히 남자 한명씩 물어서 신력을 모아보던지.”
내 설명이 조금 빈약했지만 어쩔 수 없다.
총 10명이나 되는 인원을 내 사제로 만드느라 신력이 뭉텅 빠져나갔기 때문에 나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다, 사제들의 신력소모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기에 섣불리 답해주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권능에 대해 알려줄게. 아마 대부분 너희도 사용할 수 있을거야.”
매료나 매혹, 청결과 같은 권능에 대해 설명해주다보니 어느새 밖에는 마차가 와서 소심이와 짐을 다 실어 놓았다.
“자 그럼 이제 가자.”
마차를 먼저 출발시키고 우리는 다 함께 걸어서 가기로 했다.
“꺄아악!”
그때 현관 쪽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우리는 서둘러 현관쪽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박살이 난 마차와 피투성이가 된 채 비올라의 무릎에 안겨 기절한 소심이가 보였다.
“비올라, 무슨 일이야!”
“저, 저…”
비올라의 손끝을 따라가니 웬 빡빡머리 덩치가 보였다.
덩치가 들고있는 쇠공에 살짝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소심이는 저것에 얻어맞은 듯 보였다.
“…뭐지? 황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런 폭력사건을 일으켜도 괜찮은건가?”
“그럴 리가…아마 경비대에게 돈을 잔뜩 쥐어준 모양이겠지.”
내 의문에 답해준 릴리가 내 옆에 섰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경비대가 출동할거야. 아무리 돈을 쥐어줬다고 한들 이렇게 이목이 많은곳에서 들어갈 신고를 무시하진 못할 테니까.”
릴리의 확답에 나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정 안되면 아티팩트라도 사용해야 했기에 주머니 속 아티팩트를 꼬옥 쥐고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짓이지?”
“오히려 우리쪽에서 묻고싶군. 그쪽, 비올라라고 했나?”
대머리 폭력배는 앞으로 나온 내쪽이 아닌 비올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내쫓겼다고 한들 이것은 도를 넘었다. 창관의 재산을 멋대로 빼돌리려고 하다니.”
“재산이라니!”
비올라가 악에 받쳐 소리치자 대머리는 우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는 년들 전부가 창관의 재산이지. 넌 그 재산을 빼돌리려 한 범죄자고 말이다.”
사람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 취급하는 대머리의 언행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 창관에서 일하던 직원일 뿐이야. 전속계약을 맺지 않은 직원들은 언제라도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거 몰라?”
침착하게 비올라 앞으로 나가 대머리를 마주했다.
내 조리있는 설명은 귓등으로도 안 들은 듯 대머리는 엉뚱한 소리나 지껄였다.
“넌 또 뭐야? 저기서 일하는 창녀냐? 얼굴은 또 왜 가리고 있어!”
내 후드를 낚아채려는 손을 황급히 몸을 빼서 피했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대머리의 손에 후드 끝이 살짝 걸려서 맨 얼굴이 드러나버렸다.
“꺅! 이티아 님!”
다행히 얼굴에 상처는 없었지만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이, 이 미친놈이 지금 주먹을 휘두른거야?
내 인내심도 이젠 한계였다. 주머니에 있는 아티팩트를 꺼낼 각을 보고 있었다.
“오? 뭐야 존나 예쁜년이잖아?”
대머리는 당연히 내가 쫄았다고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내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방금 이름이 뭐…”
안 그래도 화가 나있던지라 더는 참지 않았다.
주머니 속의 아티팩트를 단숨에 꺼내들고 시동을 걸었다.
“에잇!”
푸화아악!
마음 같아서는 저 역겨운 상판에 그대로 불길을 뿜어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살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위협으로 만족했다.
대머리의 발 바로 앞쪽에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니 끔찍한 열기를 가진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대머리 폭력배는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지만 열기는 피하지 못했는지, 신발이 타는 냄새가 났다.
“으아악! 뭐, 뭐야?!”
나도 놀랐다.
이렇게 출력이 센줄 몰랐지!
짧은 시간동안만 기동시켰음에도, 땅바닥을 향하고 사용했음에도 불길은 하늘로 치솟아 붉은 기둥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불벼락이 떨어지자 근처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 이년…!”
대머리는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하지만 대머리가 내게 뭔가 해코지를 하지는 못했다.
슬슬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대머리는 물러날 때라는 것을 알았는지 천천히 골목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네년…! 언젠가 반드시 내 아래 깔려서 울부짖게 만들어주마!”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위협이었으나 나는 눈하나 깜작 안했다.
“하~나도 안 무섭다 메롱.”
제깟 놈이 해봐야 뭘 하겠냐 싶었다.
지금이야 이든이 없어 이런일이 생겼지만, 아마 이든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놈의 머리통을 부숴 놓았을 것이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대머리를 무시하고 나는 비올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올라 괜찮…”
“이, 이티아…어떡해?”
울먹이는 비올라의 품속엔 소심이가 창백한 얼굴로 피를 철철 흘려대고 있었다.
이런…급한 환자가 먼저인데…
“이, 일단 치료…아니, 지혈부터!”
머리쪽에 난 상처라서 당장 처치하기도 힘들었다.
비올라는 소매를 부욱 찢고선 소심이의 머리를 감쌌다.
“어, 어떡해…피가 멈추지 않아…”
“릴리, 내가 전에 위치 알려줬지? 우리 집 말이야.”
“네…아니, 응.”
“다른 애들 데리고 먼저 가있어. 짐도 다른 마차를 빌리고. 나는 비올라와 병원에 먼저 들렸다 갈게.”
이런곳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내 저택에 가면 이든이라고 상인이 있을거거든? 이리로 보내. 정말정말 급하다고 하고.”
여차하면 이든의 마법으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릴리에게 말했다.
그때, 머리 위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필요 없어. 이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