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공작님...그건 서요?
아니나 다를까 퇴폐적인 여인…아니, 어쩌다보니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비올라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됐네. 오늘부터 일해줄 수 있어?”
“일단 어떤 일인지는 들어야 할 거 같은데?”
“어떤 일이냐면…하 귀찮다. 야 네가 데려가서 치장시키고 설명하고 보내. 난 점주님과 긴히 할말이 있으니까.”
비올라는 툭 내던지듯 말하고는 문 밖으로 휙 사라져버렸다.
“어…어? 어! 누, 누구…?”
그리고 이 웨이터 복장을 입은 청년은 이제서야 날 발견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그리고! 옷좀 입으세요! 아니다, 일단 후드만 입어요!”
눈을 질끈 감고는 양손으로 공손히 내 로브를 주워주었다.
그 쑥맥 같은 모습에 장난기가 돌았지만… 상황이 급하니 그건 잠시 뒤로 미뤄둘까?
로브만 몸에 살짝 걸치고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이름이…푸훗!
“…저기 왜 그러시죠?”
내가 끅끅대며 웃음을 참는걸 보고 웨이터…알렉산드리오는 미심쩍게 물어왔다.
알렉산드리오? 푸흡!
“아하하하! 이름이 알렉산드리오야? 아하하하하!”
성격과 이름이 이렇게 매치가 안되는 사람은 처음봐!
“아이 참…이럴 때가 아녜요. 일단 이쪽으로!”
내가 도저히 웃음을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알렉산드리오는 내 소매를 붙잡고 허둥지둥 달려나갔다.
팔목조차 못 잡는걸 보니 얘도 놀리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알렉산…아니, 소심이의 팔에 이끌려 치장을 하러 갔고, 나는 내 풀메이크업의 파괴력을 알고 있기에 진짜진짜 가벼운 치장만 했다.
그 모습에 소심이가 잠시 말을 잃었지만 어찌어찌 가면을 쓰고 마차를 타는 단계까지 왔다.
“알겠죠! 이티아 씨는 오늘 첫날이니까 그거 꼭 말하고요. 어차피 가만히 앉아있다가 올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자위도 하면 안되?”
“…”
“알았어. 알았어. 왜 그런 눈으로 봐?”
“제에발! 부탁드립니다! 하인델 가문은 무려 공작가라고요…”
공작이든 뭐든. 좆만 제대로 달려있음 된거지.
귀족들은 뭐, 섹스할때도 예법 따라서 하나?
소심이가 계속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고 강조하는게 의문이었지만 일단 첫 일이니 열심히 해 봐야지.
마침 우연히 귀족지구도 가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난 귀족가로 달려가는 화려한 마차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난 마차에서도 멀미를 했다.
“으웁…!”
“끌끌…거 젊은 아가씨가 너무 몸이 약하구먼.”
마부 아저씨. 그런 말 할 시간에 말이나 좀 살살 모시지 않을래요?
날 데리러 온 시종은 물론이고 마부까지도 내게 익숙하게 대하는 걸 보니 하인델 가문에서 창녀를 부른게 하루이틀이 아닌 모양이었다.
꼴렸으면 지들이 와야지 왜 사람을 이렇게 오라가라해?
공작가문쯤 되니 이렇게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건가?
마차를 타서 멀미가 나자 자연스레 내가 마차를 타게 만든 원흉에게 부정적인 첫인상이 생겼다.
확 그냥 다 벗겨져서 대머리나 되라!
나를 부른 원흉에게 신나게 저주를 퍼붓자 멀미가 좀 가시는 느낌이었다.
에휴…이게 뭐하는 짓이냐. 창밖에 귀족지구나 보자.
전체적인 귀족지구의 모습은 딱히 다른 지구와 다를게 없었다.
다른곳보다 더 저택이 크고 앞마당, 옆마당, 뒷마당에 각종 온실과 정원까지 있다는 점?
워낙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확실히 귀족 인구가 적다는게 체감이 됐다.
확실히 귀족이 사람이 적긴 하구나. 그리고 날 초대한 하인델 가문은 귀족중에서도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공작가이다.
귀족에 대한 악명은 신계에도 퍼질 정도라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워낙 권위의식이 강한 놈들이라 대뜸 무례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나?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 어느정도 무례한 행동은 넘어가자고 다짐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이 핑핑 도는 느낌이라 그냥 눈을 꾹 감고 잠을 청했다.
도착하면 알아서 깨워주겠지 싶어서 좀 자둘 생각이었는데,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췄다.
“다 왔습니다~ 어서 모시고 들어가라.”
뭐야, 벌써 다 왔어?
나 아직 피곤해! 라는 기색을 팍팍 풍겼지만 시종은 아랑곳 않고 내 팔뚝을 살포시 잡고 날 이끌었다.
소심이처럼 여자를 다뤄본 적이 없는 손길이라기보단 마치 귀부인을 모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저택으로 들어간 뒤 내 몸은 시녀들에게 맡겨졌다.
이미 충분한 치장을 해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하려는데, 시녀들은 날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더니…
온갖 간식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
뭐죠? 이거 먹고 살찌운 다음 잡아먹으려는건가?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달큰한 냄새와 식욕을 일으키는 모양새가 너무나 음탕했다.
농익은 여인의 엉덩이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듯이 출렁거리는 푸딩과, 시럽을 잔뜩 머금고 주륵주륵 흘리는 팬케이크, 바삭바삭한 과자 위에 자리잡은 새하얀 아이스크림까지.
순식간에 눈이 휘동그래져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이거 먹어도 되는거야?
내가 그런 의문을 담아 시녀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저기! 전 뭘 하면 되죠?”
압도적인 다과의 위용 앞에 난 자연스레 소시민 모드가 발동되었다.
시녀들중 가장 뒤에 있는 시녀가 살짝 돌아보더니 자신들이 나가고 로브를 벗으라고 일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아니, 그게 끝이야? 이거 먹어도 되는거냐고!
내 고요한 외침은 굳게 닫힌 방문을 넘어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시녀의 말대로 로브를 벗었다.
로브 안쪽에는 검은색 불투명한 캐미솔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안쪽에 속옷을 하나도 입지 않아서 캐미솔 안쪽이 살짝살짝 비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캐미솔이 좀 짧은 편이라 윗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엉덩이부근도 채 다 가리지 못했다.
앞에서 보자면 음부부터 유두까지만 간신히 가릴 정도라 굉장히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아찔한 차림에서 오는 불안감도 꼴림 포인트란 말이지.
아마 눈앞에서 날 유혹하는 디저트가 아니라면 자연스레 손이 하복부쪽으로 향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디저트에 손을 대었다.
먼저 팬 케이크부터!
포크와 나이프도 미리 준비되어 있는 걸 보니 그냥 먹으라고 준 거 맞겠지?
한입에 먹을 크기로 자른 뒤 시럽을 잔뜩 묻혀서 입안에 넣었다.
케이크의 폭신폭신함과 시럽의 찐덕하면서도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맛에 푹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여기 귀족은 좋은 귀족이구나!
팬 케이크를 딱 한입 먹었을 뿐인데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싹 사라졌다.
동시에 한가지 의문도 같이 들었다.
소심이도 나보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대체 내 상대는 누구야?
대체 내 상대가 누구기에 이렇게 해주는가 싶었다.
설마 공작가가 돈이 썩어난다고 창녀복지를 도와주는 건 아닐테고…
일단 주니까 먹긴 했는데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거 막 안에 약같은게 들어있는 거 아니야?
어쩐지 너무 맛있다 했어!
“나…난 안속아! 지금도 지켜보고 있지? 이거 안에 막 약들어있고 그런거지?”
일부러 불안감을 떨치려 소리를 내 봤는데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고요한 분위기에 괜히 쪽팔려서 얼굴을 붉히며 와구와구 먹어댔다.
혼자 하는 상황극은 생각보다 자괴감이 드는구나.
냠냠 간식을 얼추 다 먹어치우고 남은 쿠키를 깨작이고 있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흐긱!”
노크도 없이 확 열린 방문에 깜짝 놀라서 혀를 씹을 뻔했다.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 사람은 시녀언니도, 시종도 아닌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아저씨였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인델 가문의 총집사장 루베르입니다. 아가씨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어…이티아입니다.”
“예. 그렇다면 이티아 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뇨. 첫날이라 잘 몰라요.”
“그렇군요. 이티아 양께선 오늘 주인님의 침소에 들어가실 겁니다. 주인님께선 이티아 양을 보시고 맘에 들어하지 않으신다면 다시 내보내실 겁니다. 그러면 그대로 귀가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보수는 챙겨드릴테니까요.”
“맘에 들어하면요?”
“…그렇다면 일을 하면 되는것이죠. 일단 갑시다.”
집사도 분명 내 얼굴을 봤는데, 날 거부할 것이라 생각하는 게 의문이었다.
공작이 발기부전이라도 있는걸까? 나는 몸 전체를 가리는 두툼한 숄을 걸치고 공작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안에서 공작의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콜록! 콜록! 크흠…”
“인사하십시오 하인델 가문의 가주이신 브리오 하인델 각하이십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티아 입니다…그런데 실례가 안된다면 혹시 연세가…”
내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하인델 가문의 가주이자 제국의 공작이신 내 고용주는 하얗게 샌 백발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할아버지였으니까.
할배, 거긴 서요? 아니, 그 전에 침대에서 일어날 순 있어요?
노인공경이라곤 1도 없는 고얀 생각을 머리속으로만 했다.
근데 진짜 이건 좀 그렇지 않아?
나는 집사장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물었다.
“저기…제가 뭘 하면 되죠? 그냥 혼자 자위라도 하면 되나요?”
“공작님께선 따로 지병이 있으시진 않습니다. 연로하셔서 그…성생활이 불가능 하시죠. 그래서 일단 공작님이 마음에 들게만 해 주신다면 저희는 어떤 보상이라도 해 드리겠습니다.”
진짜 혼자 자위라도 해야 하는거야?
“그럼 저는 이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침대 옆의 줄을 당겨주시길.”
집사장은 그렇게 휙 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살짝 어벙벙한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었다.
“쿨럭! 쿨럭! 콜록!”
공작님은 힘없이 잔기침만 하고 있었기에 일단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저기…괜찮으세요?”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자 공작은 눈동자만 휘릭 굴려서 날 쳐다보았다.
공작은 날 발견하곤 눈이 살짝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어…안녕하세요. 제가 뭘 해야할지…”
“콜록…아름답구먼…꼭 아내의 젊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공작님은 침대에 누워 힘없는 목소리로 예전을 추억하시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말동무만 해 드리면 되는건가?
“옷을 벗게나. 벗은 몸이라도 한번 보고 싶군.”
역시 그런건 아니겠지.
차라리 발정난 아저씨가 더 좋겠다.
공작님은 힘도 없어보이는데, 또 성욕은 아직 있으신지 옷을 벗고, 춤을 추게 하는 등 이런저런 행위를 시켰다.
“…미안하네. 내가 보다시피 나이가 있어 영 구실을 못하는구먼…너무 고통스러워…”
내가 이것저것 춤도추고 노래도 했지만 공작은 영 소식이 없었다. 공작은 스스로가 처량했는지 울음기를 머금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젊을 적 너무 일에 치여살았던게 후회되는구먼…다른 귀족들은 머리가 빠질 지언정 아랫도리는 멀쩡한데 왜 나만…신도 무심하시지…”
“얼마 전엔 귀족 아가씨까지 아내로 맞았는데 그래도 안되더군…그 아이에겐 참 미안해.”
그 후로도 한참동안 자신의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을 열거하는 공작이 너무 측은해보여서 살짝 도와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