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황도에서 자리잡기
이곳 아르고니아의 창녀는 천대받는 직업이 아니다.
최초의 창녀가 여신이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위험도에 비해 얻는 보상이 크다는 것 때문이다.
아르고니아에선 남녀가 특별한 의식을 치루지 않으면 아이를 임신하지 않기 때문에 임신의 위험은 현저히 낮다.
성병?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 돈만 적당히 벌면 그런 병쯤은 쉽게 치유할 수 있다.
이렇게 낮은 리스크에 비해 리턴은 어떠한가?
하층민의 경우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금전적으로 꽤나 후한 금액을 얻을 수 있다.
중산층의 경우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귀족에게 잘 보여 애첩으로 들어가는 등 신분상승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 상위 신분인 귀족은?
물론 귀부인들은 창녀를 천박한 직업이라 손가락 질 하지만 그렇다고 귀족 중에서 창녀가 없는 건 아니다.
몰락한 귀족은 가세를 회복시키기 위해, 완전히 파산한 가문은 아내와 딸을 다른 귀족에게 접대해 근근히 먹고산다.
마지막으로 가문이 중죄를 지어 노예로서 팔려갈 때 여성은 주로 성노예, 남성은 전투노예로 군대에 끌려간다.
귀족의 경우 리턴이 거의 없어 보였으나 오히려 출신이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님은 줄을 선다. 그만큼 귀족이 창녀가 되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특이한 경우로 귀족 출신의 여성이 창관에 소속되지도 못하는 최하급 길거리 창부로서 이틀 벌어 하루를 겨우 먹고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레아는 그 아주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
“왜 이래요? 오늘은 더 이상 싫다니까요!”
“왜 빼고그래? 안 그래도 요즘 손님 없어서 쪼들리잖아?”
“그건…! 그 쪽이 신경쓸 문제가 아니에요. 빨리 돈이나 주세요.”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에 볼품없이 깡마른 여인 레아는 몰락한 귀족 여식이었다.
그의 가문은 무려 반역죄라는 어마어마한 중죄에 휘말려 가문 전체가 사형에 처해졌다.
간신히 그녀만 유모가 빼돌려 황도 외곽에 위치한 빈민가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때 레아의 나이는 고작 2살이었다.
다행히 맘씨 좋은 유모가 중산층 집안의 가정부 일을 하며 그녀를 먹여살렸으나 그녀가 12세 되는 해 마차에 부딪히는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빈민가에 사는 어린 소녀는 또다시 나락에 빠졌고 이후 그녀의 삶은 아등바등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루어졌다.
제국법 상 성인이 되지 못한 여인은 창녀는 커녕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뒷골목 무리에 들어갔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소매치기로, 성인이 된 후에는 곧바로 창녀로써 몸을 굴렸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처음을 산 귀족이 그녀의 정체를 유추한 것이다.
그녀의 타오르는 듯한 적발은 결코 탁한 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귀족적인 색채였고 무려 20년 전 일어난 사건을 알고있던 귀족은 그걸 빌미로 그녀를 옭아매려 했다.
그녀는 다행히 필사적으로 귀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이 사건은 그녀에게 귀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 창관에 소속되어도 귀족의 지명은 모두 무시하는 등 귀족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노여움을 산 레아를 받아주는 창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차라리 유모에게 청소나 요리 같은 일이라도 배웠으면 그것으로라도 먹고 살 텐데 유모는 그녀의 신분을 철들기 전부터 주입하듯 가르쳤고, 당연히 굳은 일은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청소는 못하는 여자, 책을 읽고 숫자를 계산할 줄 알지만 요리는 못하는 여자.
레아가 하층민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몸 파는 일이 전부였다.
그녀가 이런 더러운 빈민가에서 양아치들 상대를 하는 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년이! 오냐오냐 해 줬더니 주제를 모르고!”
짜악!
“꺄아악!”
-이런 빈민가에 사는 양아치들은 결코 질이 좋지 않았다.
“야, 이 개 같은 년아 돈 준다고. 내가 언제 떼먹는데? 응?”
짜악! 짜악! 짜악!
“거지같은년이 돈 준다면 고맙습니다 하면서 엉덩이를 내밀어야지 어디 존심을 부려?”
레아는 성장기에 잘 못 먹은 탓에 얼핏 보면 소녀라고 착각할 만큼 체구가 작았다.
그런 여린 몸에 가해지는 성인 남성의 폭력은 도저히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다.
“으흑! 이러지 마세요…! 꺄악! 도와주세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지르고 양아치가 잠시 움찔한 사이 곧바로 몸을 빼내 달렸다.
공포심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여기서 잡히면 결코 좋은 꼴은 못 보는걸 알고있는 레아는 골목에 다다라서도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엇?!”
“꺄악!”
코너를 도느라 미쳐 두 남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대로면 몸을 부딪히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고 곧 찾아올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이상하게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
“엇?!”
“꺄악!”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알몸의 소녀는 우리를 발견하는게 늦었는지 곧 닥쳐올 충격을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조금 놀랐지만 내 옆엔 이든이 있으니 괜히 몸을 피하거나 하진 않았다.
“으화 깜짝 놀랐네.”
“이티아. 괜찮아?”
이든은 알몸인 소녀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챘다.
“나야 멀쩡하지. 근데…일단 옷좀 줘봐. 대충 걸칠 것 만이라도.”
이든에게 로브를 받아서 알몸인 소녀에게 둘러 주었다.
그나저나 왜 알몸으로 이렇게…아!
그녀의 뺨은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입가에선 한 줄기 선혈이 주륵 흐르고 있었다.
“왜…”
왜 그래요? 라는 말은 그녀를 뒤따라 뒷골목에서 따라나온 한 양아치에 의해 묻혔다.
“이 시발년이! 어디…엇!”
나는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든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양아치도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이 우리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누…누구?”
“우리? 지나가던 사람.”
“혹, 혹시 귀족 나리…이십니까?”
이 말은 내가 아니라 이든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아직 가면을 쓰고 있었고 이든은 상인답게 귀티나는 옷을, 나는 용병처럼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그냥 상인인데.”
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어떻게 고압적으로 나가야 알아서 쫄지 고민하는데 이든이 선수를 쳐 버렸다.
“뭐야? 그럼 꺼져! 난 이년한테 볼 일이 있으니까.”
“이봐. 말 조심하지그래? 이분이 상인이시긴 하지만 너 따위가 그런 말을 해도 좋을 분은 아니시다.”
내가 황급히 지원사격을 하자 역시나 이 양아치는 알아서 쫄았다.
“뭣…!”
“이봐, 고용주 님. 귀족 나리와의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걸? 후딱 가지 않으면 형님께 혼 날 거라고.”
“그게 무…아아! 그렇군. 서두르도록 하지.”
이 눈치없는 이든이 또 훼방을 놓으려 하자 황급히 옆구리를 꼬집었다.
다행히 지 설정은 잘 알고 있구만.
우리가 귀족, 형님 시간없음 이란 키워드를 말하자 양아치의 머리속에서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 된 모양이었다.
“큭! 그 계집만 넘겨주면 그냥 가겠습니다!”
“무슨 헛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우리 고용주께서 분명히 ‘꺼지라’ 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물론 그런 적 없지만…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
“제길! 어째 재수가 없더라니…퉤!”
결국 양아치는 포기하고 뒤돌아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아오! 이 화상아! 왤캐 눈치가 없냐?!!”
아까부터 계속 눈치없이 훼방놓은 이든을 응징해 주었다.
어느정도 응징이 끝난 후 나는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놀랐죠? 왜 그런 꼴로 있었는진 모르겠지만…일어설 수 있어요?”
내가 다가가 손을 내밀자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가렸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귀하신 분들 같은데…”
소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웅크렸다.
우리가 귀족인 줄 알고있나?
“너무 그렇게 겁먹지 말아요. 우린 귀족 아니니까.”
“네, 네?”
내 연기가 잘 먹힌 모양이라 뿌듯하군.
“알다시피 그 양아치가 뭔 짓 한거같길래 일단 쫓아냈어요. 보아하니 좀 다친 것 같기도 하고…혹시 괜한 오지랖이었나요?”
“아, 아뇨! 그렇지 않아요! 감사합니다…그…저…”
“전 이티아 라고 해요. 여기 이쪽은 이든.”
“아…전…레아라고 합니다…”
“좋아요. 레아 혹시 돈 있어요? 보니까 치료가 필요할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뭘. 일단 우리 집으로 갈까요? 걱정 마요. 아까처럼 힘으로 데려가진 않을 테니.”
똥 밟은 그녀가 안타까워서 좀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는 굉장히 죄송스러워 하면서도 거절하진 않았다.
우리는 다친 사람도 있어 서둘러 새로 산 저택으로 돌아갔다.
가면서도 레아라는 소녀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며 걸었다.
특히나 귀족 지구와 가까워 질수록 더욱 경계가 심해진 듯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실례될 것 같아 참았다.
“꺄앗! 이게 내 집이야? 진짜로?”
“이티아 님! 오셨어요?”
““오셨슴까!””
저택 안에는 이미 메이 일행이 도착해 있었다.
보아하니 이미 메이가 청소를 얼추 해 놓은듯 보였다.
“와…집 진짜 좋다. 이게 평균적인 귀족 저택보다 조금 작다고?”
“그러고 보니 확실히 사람 살기엔 좀 작긴 하네.”
어디가? 여기가?
“이만하면 사돈에 팔촌 친척까지 다 불러살아도 되겠구만 무슨~”
“그런데 여기를 창관으로 개조할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좁은건 맞지.”
“그런가? 근데 일단은 나만 손님을 받을 계획이라…1층만 일단 개조하고 그 위쪽은 생활공간으로 쓰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네가 정착할 때 까지는 나도 도와줄게.”
“응. 항상 고마워 이든. 일단 오늘은 편히 쉬자!”
황도에 온지 하루도 안 지났기에 아직 여독도 안 풀렸을 테니 다들 휴식이 필요할 테다.
그렇게 각자 1층에 아무 방이나 배정해 준 다음 자유롭게 쉬게 해 주었다.
이제 홀 안에는 나와 이든, 그리고 레아라는 소녀만이 남아 있었다.
“일단…상처부터 치료하죠. 이든 도와줘.”
어디까지나 선의로 도움을 베푸는 거긴 하지만 묘하게 레아라는 소녀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든이 마법으로 치료를 해 주는 동안 나는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니?”
“아…저 22살…입니다.”
억!
“생각보다 동안이네…”
“뼈밖에 안 남아서 더 어려보이는 거지.”
“그런가? 혹시 집이 어디야? 험한 꼴 당할 뻔 한 것 같던데 데려다 줄까?”
“아…저는…괜찮습니다. 길거리 창녀라 가끔 있는 일이에요.”
덤덤한 그녀의 말에 내가 놀랐다.
“창녀라고?! 아…맞다 성인이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맞는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
“뒷골목에서는…흔한 일이에요.”
레아의 담담한 목소리 속에선 그 어떤 과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딱히 인정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불행을 겪는다는 것에 연민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내가 한가지 제안 할 게 있는데. 들어볼래?”
“제…안이요?”
“나는 여기를 창관으로 개조할 예정이거든 너만 괜찮다면 여기서 일하지 않을래?”
이 넓은 공간을 창관으로 개조할 건데 여기를 나 혼자 쓸수는 없다.
창녀들이 더 있어야 창관 느낌이 나지. 지금은 그냥 거대한 오피스텔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힘겹게 생활하는 레아를 우리 창관 소속의 창녀로 들이면 나는 일할 사람이 늘어서 좋고, 레아는 숙식을 해결하며 동시에 일할 수 있어서 좋은 누이좋고 매부좋은 제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음…”
레아도 내 제안을 깊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일단 오늘은 방에서 쉬어. 1층에 아무 방이나 들어가면 돼. 좀 더 고민해보고 말해줘.”
“네…감사 합니다…
레아는 그 말을 듣고 비틀비틀 근처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살짝 멍해 보였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잘해줘? 혹시 네게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려고?”
“무슨 나쁜 짓을 해. 난 오늘 황도에 처음 왔는데. 그리고 저택이라곤 해도 돈 될만한 것도 없고. 그냥 직원 한명 들인거지 뭐.”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어. 아니 이미 휘말린 거 같은데?”
“뭐?”
“저 여자 귀족이야.”
“귀족이라고? 근데 왜 길거리 창녀를 해?”
“특별한 이유가 있나보지. 쨋든 몸 속에 흐르는 피는 확실한 귀족의 것이야. 그리고 아까 양아치도 뒤따라 왔는지 집 근처에서 기웃거리네.”
“어휴…오자마자 참 골치아픈 일이 생겨버렸네.”
“여기 저택이 나름 귀족가와 인접해서 대놓고 난동을 부리진 못할거야. 그래도 경비 같은건 필요하겠네.”
“그 부분은 생각해 둔 게 있어. 아니, 말 나온김에 지금 하자.”
“뭘?”
으문을 보이는 이든에게 씨익 웃어주며 나는 권능을 사용했다.
“성역화”
[성역화를 시도하셨습니다. 영역을 정해 주십시오]
성역화를 사용하자 머리속으로 띠링 하고 알림음이 들렸다.
오~ 이렇게 되는 건가?
시야가 3인칭 뷰로 변해서 저택 전체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머리속으로 저택 전체를 신전으로 삼겠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알림음이 들렸다.
[저택 전체를 선택하셨습니다. 분석 중…]
[분석 완료. 총 소모 신력은 50000 입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시바… 뭐? 신력 5만?
아니 이든과 섹스해도 겨우 500 들어오는데?
물론 이든과 어마어마하게 해대서 못 낼건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지출이 컸다.
으으…그렇다고 물릴 수도 없고.
나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슈오오!
내 몸에서 신력이 쭉 빠져나가며 저택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엄청난 탈력감을 느끼며 나는 까무룩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