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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황도에서 자리잡기 (37/85)



〈 37화 〉황도에서 자리잡기

 후로도 두어번  깨어났으나 멀미를 워낙 심하게  탓에 곧바로 수면제를 먹고 쿨쿨 잠만 잤다.

마차 여행에 대한 낭만도 있었지만 어쩔  없지.

“여기가 황도구나…”

황도라고는 해도 웰링턴처럼 거대한 성벽에 감싸여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제국의 심장부인 황도가 공격받을 정도면 제국은 반쯤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나바 황성만 드높은 성벽에 감싸여 있고 도시는 그런 황성을 빙 둘러 수많은 저택과 건물들이 구역을 나누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황도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풍요로운 평야가 황금빛 작물들을 키워내고 있었고, 수도를 가로지르는 강물이 제국의 심장에 생명수를 공급해 주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도시의  반대편에는 유흥지만 모아놓은 구역,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기술직들이 모여있는 구역 조금 더 밖으로 나가면 빈민들이 모여사는 구역까지.

중앙에 우뚝 선 황성을 기준으로 신분과 서열에 따라 밖으로 밀려나는 형태는 제국이 철저한 신분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날아왔으면 금방이지만…이렇게 마차를 타고 오니 엄청나게 먼 거리였네.”

“나는 잠만 자서  모르겠다. 실감이 안나.”

“앞으론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일단 뭐부터 할까?”

“일단…노예각인부터 해야겠지? 그 다음엔…건물을 사러 가자.”

호고곡 시작하자마자 건물주라니!

“근데 돈은 충분 해?”

이든이 저번에 웰링턴 영주와 거래를 하며 돈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로 황도에 건물을 살  있을  걱정이 되었다.

“음…이티아 네가 모르는  있는데 너한테   아티팩트들은 나도 힘들여 구한거야.”

“이게? 얼만데?”

“네 귀에 걸려있는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귀족 저택 하나쯤은  수 있어”

이게?!

“그런데 이런 물건은 바로바로 못 팔잖아.”

“그래. 하지만 그런 아티팩트조차 우리 집에선 돌처럼 굴러다니지.  언제라도  평생 먹여살릴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돼”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는 이든이 새삼 달라 보였다.

이게 돈의 힘인가?

나는 지구에서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일보 직전이라 굉장히 들뜬 마음으로 노예 경매장에 갔다.

노예 경매장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픈되어 있었다.

노예시장이라는 거대한 간판이 입구에 붙어있고 그 뒤로 거대한 대로가 쭉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대로가엔 상가처럼 여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귀족들이 사는 지구와는 나름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중산층이 사는 지구와는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음에도 안이 다 내비치는 유리벽 속에 각양각색의 노예들이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알몸으로 전시되어 있고 노예들 바로 옆 푯말엔 특징과 가격표가 붙어 있어 결코 교육적으로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입구에서부터 통행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입장 자체에 제한은 없어보였다.

우리의 목적은 노예를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대로를 따라 앞으로 쭉 걸어갔다.

우리 모두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가면을 쓰고 있기에 딱히 시선이 끌리지는 않았다…면 좋았겠으나 사람을 어지간히 굴려  상인들의 나와 메이를 품평하는 듯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 몸을 머리부터  끝까지 점수를 매기며 품평당하는데…왜 난 이런 상황이 싫지가 않지?

메이는 살짝 움츠러든 게 보였으나 나는 오히려 나를 봐달라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휘유~ 용병 계집인거 같은데… 상태가 훌륭한걸?”

“흐음…몸매는 괜찮은데…가면을 쓴게 조금 아쉽군.”

“저게 어딜봐서 괜찮은 몸매냐? 저 정도면 경매장에 히든으로 나와도 괜찮을 정도라고!”

“그 옆에 계집도 젖가슴이 꽤 뛰어난걸? 큭큭큭”

상인들과 양아치들의 음담패설을 듣고 있으려니 괜히 꼴려버릴  같아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든. 빨리 가자.”

내가 조금 앞서가려는데 이든이 내 허리춤을 잡아 제 품으로 날 끌어당겼다.

“엇!?”

“…”

순식간에 이든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었지만 이든은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노려보며 날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나도 의도가 뻔히 보여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넓직한 어깨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 같이 든든해서 맘 편히 기대며 보폭을 맞추었다.

“에이, 이미 임자가 있었나?”

“옆에 놈은…쯧!”

이든은 그리 무섭게 생기진 않았으나 떡대가  있어서 괜한 시비에 걸릴 일도 없다.

주변 양아치들이  이든의 여자친구 내지는 연인으로 여기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이든의 입꼬리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그 후로도 내가 온갖 음담패설의 대상이 되고, 이든이 주변을 찌릿 노려보며 날 감싸고 하는 일이 래퍼토리처럼 반복되었다.

그래도 삼류 양아치들이 ‘헤이, 누님 멋진데? 시간 있으면 나랑 놀래?’같은 싸구려 대사를 치며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까비…

여차저차 해서 우리는 목적지인 노예 경매장에 도착했다.

대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쭉 걸어오면 길이 끝나는 곳에 커다란 경매장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제국의 모든 노예가 가장 먼저 거처가는 곳이자 제국 큰손들이 한 발씩 걸치고 있는 노다지였다.

일반 노예들은 등급을 매겨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특등급 노예들은 프리미엄을 붙여 귀족들에게 경매로 팔아 넘긴다. 그 외에도 주요 업무로는 노예인식표를 새기거나 새로 들어온 노예들을 교육하는  모든 노예사업의 시작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 일행은 당장 노예를 사러  것은 아니기에 곧바로 접수대로 가서 노예 등록을 했다.

그러면서 참 무섭다고 생각한 겐 이든의 신분만 밝히고 브래드와 피트가 산적이라고만 말햇을 뿐인데 그 이상의 정보는 요구하지도 않고 곧바로 노예등록과 각인을 새겨주었다.

만약 반대로 내가 붙잡혔으면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노예가 됐을 거 아냐… 새삼 스스로의 신변을 보호할 대책이 필요함을 느꼈다.

브래드와 피트는 이미 세뇌당한 상태라 따로 교육이 필요하진 않았다.

다만 각인을 새기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동안 우리는 경매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노예는 성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성노예, 전투기술을 익힌 전투노예, 그 외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특이한 자원을 만들어 내는 특이노예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성노예는 보통 아름다울수록 등급이 높아지며 조교를 통해 성감을 극대화시키고 귀족들이나 창관에 판다.

전투노예는 능력이 뛰어나고 강할수록 등급이 높아지고 성노예와는 반대로 오직 명령에만 복종토록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투기장이나 귀족의 사병, 혹은 전쟁터로 팔려간다.

마지막으로 특이 노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희귀한 능력을 가질수록 더 큰 값어치를 가지며 가장 가격의 편차가 크다. 대부분 마탑에 연구용으로 납품되며  노예들에 비해 가장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창관 주인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특이노예는  필요가 없고, 성노예나 전투노예가 필요할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성노예를 조교시키는 구획에 갔다.

“생각보다 엘프가 많네?”

노예들 중 성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노예는 딱히 성별을 가리는  아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외모이니만큼 눈에 띄는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엘프는 대부분 성노예로 부리기 때문에 교육이 한창인 엘프들은 사지가 구속되어 있긴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폭력의 흔적은 없었다.

“전쟁중이니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름답기로 유명한 엘프들은 원래는 제국과 동맹 관계였으나 지금은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전쟁중이고 지금 잡혀있는 엘프들은 아마 전쟁포로로 보였다.

딱히 동정이 간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엘프노예를 사들였을 때 얻는 이점을 머리속으로 계산해보고 있었다.

“너무 메이저 하긴 해.”

엘프…어느 떡타지 소설을 봐도 열에 아홉은 나오는 종족.

아름다움을 무기로 하며 엄청난 프라이드를 자랑하지만 솔직히 그리 끌리진 않았다.

이 정도로 엘프 노예가 쏟아져 나오면 웬만한 귀족들은  엘프노예 한둘씩은 가지고 있을 거 아니야.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 봤는데 다들 그리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성노예는 포기하고 다음 전투노예 구획으로 향했다.

“전투 노예는 왜?”

“아무리 창관이라곤 해도 난동부리는 진상들이 좀 있을거 아냐.  약해서 그런놈들 제압 못하니 떡대 아저씨들이라도 있어야지.”

창녀들의 인식이 그리 나쁘지 않은 세계지만 그렇다고 진상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이런 부분이 내겐 큰 고민거리였다.

“그럼 브래드와 피트를  창관 가드로 써. 어차피 나한테 짐꾼은 필요 없으니까.”

“정말? 그래도 돼?”

“어차피 네가 살린 놈들인데 뭐.”

“고마워! 역시 넌 내 키다리 아저씨야!”

“키다…뭐?”

“고맙다는 말이지~ 이리와 뽀뽀!”

남들 시선따윈 아랑곳 않고 이든에게 볼뽀뽀를 해 주었다.

물론 우리 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냥 시늉일 뿐이었지만 이든은 좋다고 히히덕 거렸다.

진짜 엄청 큰 강아지 같다니까.

 뒤로는 그냥 멍하니 건물구경만 하다 피트와 브래드가 각인을 받고 나오자 그대로 황성으로 향했다.

토지거래 및 건물 건축은 황실에서 직접 관리를 한다고 해서 나는 그냥 이든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럼 여기에 이름을 기입해 주시면 됩니다.”

“네 이름을 써 이티아”

“내 이름?”

“네 명의니까.”

“떙큐! 그럼… 이제 된 건가요?”

“네. 저택 리모델링은 황실에 신고하면 도와드릴 겁니다.”

드디어…드디어! 내집! 내 건물!

“빨리, 빨리 가자! 창관 등록도 다 해놨으니 오픈일까지 기다릴동안 리모델링도 하고, 일할 창녀도 구해야지!”

“하하…진정해.”

“이렇게 기쁜  나 혼자 좋을 순 없지. 메이는? 어디갔어?”

“그 셋은 먼저 밥 먹으라고 보냈어. 집 위치도 알려줬으니 알아서 올거야.”

“좋아좋아좋아! 그럼 빨리 가보자. 오 층 집이랬지?”

“지방에 사는 귀족이 황도에 올라올 때만 살던 집이라는데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입구에 내 레어랑 연결되는 포탈을 열어두면 안돼?”

“말이 돼는 소릴 해야지. 아~ 빨리 보고싶다.”

이든이 산 집은 귀족들이 사는 지구와 중산층, 상인들이 사는 지구의 경계부근에 있으며 지금 우리가 있는 노예 시장에서는 빈민가를 가로질러 가야 했기에 약간 어두컴컴한 골목길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으흑! 이러지 마세요…! 꺄악! 도와주세요!”

근처 골목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앞으로 몸집이 작은 알몸의 여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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