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남부도시 웰링턴
야심한 새벽.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만 들리는 이티아의 방문이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고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새까만 어둠이 가득한 방 안에선 달빛만이 간신히 커튼사이로 들어왔으나 눈이 어둠에 적응되기 전까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인영이 있었다.
‘후욱! 후욱! 여기가 맞겠지?’
은밀한 행동에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뱃살을 가진 중년의 사내, 한스 로버디아는 나름 밤 손님처럼 꾸민답시고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색 쫄쫄이 옷을 입고 이티아의 방 안에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이티아를 노예로 삼으려 결정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웠던 영주, 한스는 야밤을 틈타 장난질을 칠 계획을 가졌다.
그렇다. 계획이었다.
일부러 이티아에게 문의 잠금장치가 고장난 방을 주었고 욕실에 비치된 향유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식물의 추출액이 함유되어, 이 방에서 씻은 사람은 여지없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격한 정사를 치룰 정도는 안 되었기에 말 그대로 장난질 정도만 가능했지만 그렇기에 맘에 드는 여성에게 이 방을 내어주고 장난질을 해도 지금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흐흐흐…그것도 며칠뿐이지. 매일매일 천천히 미약으로 길들여주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티아가 자고있는 침대로 다가간 한스는 무방비한 이티아의 모습에 숨을 삼켰다.
“허업!”
제가 낸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렸으나 눈은 이티아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여, 여신이다! 여신님이야!’
달빛을 받아 요요하게 빛나는 이티아의 얼굴은 과장이 아니라 정말 여신님 같았다.
진짜 여신님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한 채 한스는 이런 여신님을 자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아랫도리가 아플 정도로 빳빳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야 만다.’
바로 하루 전까지 노예로 둘까 첩으로 둘까 고민하던 자신의 눈이 단추만도 못했다고 생각한 한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냈다.
“우응…”
갑자기 느껴진 한기에 이티아가 살짝 찡그렸지만 이 정도로는 깨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한스는 대담하게 검정색 실크 잠옷을 살짝 들춰냈다.
‘바지인가? 좀 아쉽군.’
상의를 들어올려 배꼽까지 노출시킨 한스는 한 손으로는 이티아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비어있는 손으로 용두질을 시작했다.
“훅! 훅! 후욱!”
원래라면 여기저기 더 만져대며 뜸을 들였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용두질을 시작한 한스는 이내 강렬한 사정감을 느끼고 미리 준비해 온 휴지에 잔뜩 사정했다.
‘제기랄. 도저히 식지가 않는데…’
돈 많은 귀족답게 정력에 좋다는 건 모조리 처먹은 한스는 왕성한 성욕을 자랑했다.
하지만 정액이 잔뜩 묻은 양 손은 이미 비린내가 진동을 했기에 더 이상의 장난질은 포기했다.
‘쯧!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아차차 그래도 이건 해야지.’
한스는 아쉽다는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미리 준비해 온 시약을 이티아의 입에 또륵 흘려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진득하게 이티아의 전신을 훑어보곤 이내 방문을 나섰다.
자신이 자는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이티아는 쿨쿨쿨 잘만 잤다.
***
하늘은 쾌청, 날씨는 적당히 선선한 날씨. 습도도 적당함.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인데 막상 밖에 나와있는 나는 저기압이었다.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온 몸에 찝찝함이 가시질 않고 있는데다 몸은 또 왜 발정이 난 건지 옷깃만 스쳐도 기분나쁜 쾌감이 올라왔다.
기분나쁜 쾌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이상 제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자극을 받으면 오소소 소름이 돋는데 기분이 좋다니. 이게 뭐야?
평소와는 명백히 다른 제 몸은 확실히 이상했다.
“이티아, 어디 아파?”
그리고 그건 저만 느낀게 아니었나 보다.
“아녜요. 밤에 잘 때 이불을 안 덮고 자서 그런지 몸 상태가 조금 안좋네요.”
“그래? 이티아는 여자 아이니까 몸 관리를 잘 해야지. 그나저나 몸이 안 좋으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쉴래?”
“음…그럴까요?”
오전부터 골목이라는 골목은 다 돌아다니고 있으나 역시 비셴테는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몸도 안 좋은데 성과도 없으니 헨더슨 아저씨의 말이 참 반가웠다.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찾으면 되지. 그럼 돌아갈까?”
“네에 오늘은 빨리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그대로 영주성으로 갔고 나는 이 요상한 느낌을 어떻게든 떨쳐보려고 메이를 불러 질펀하게 만져졌으나 그래도 내 몸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
똑똑똑-
“네에~ 누구세요?”
메이와 섹스하고 난 뒤 지금은 침대에 앉아서 이든이 보던 책을 뺏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무료함을 달래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집사장 샘튼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흠흠. 이티아 양 영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영주님께서요? 왜죠?”
“저야 잘 모르지요. 영주님의 집무실로 가시면 됩니다.”
그 징그러운 양반이 왜?
솔직히 가기 싫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손님의 입장이기 때문에 주인을 무시할 수는 없어 알았다고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모시지요.”
후우…별 일 아니었음 좋겠는데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여자의 감이라는 건가?
그렇게 영주의 집무실로 찾아간 나는 단박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윽! 정액 냄새!
집무실에서 뭔 짓을 한거야?
비릿한 밤꽃 냄새가 집무실 곳곳에 배여있었다.
적어도 하루이틀 해댄 건 아니겠지.
“영주님. 데려왔습니다.”
“잘했다 샘튼. 그녀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가 보도록.”
영주가 집사장을 보내고 난 후 집무실에는 나와 영주만 남았다.
“으흠,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소파에 앉게나.”
영주가 권하니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소파에 엉덩이를 살짝만 붙이고 않았다.
“큼큼. 사람 찾는 건 잘 되가는가?”
“영주님께서 도와주신 덕에 조금 진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 잘 됬군. 그보다 말이야 내가 한가지 제안할 것이 있어 불렀다네.”
“네?”
“이티아 양은 캡스 상단주와 무슨 관계지?”
잉? 이놈이 그건 왜 물어?
“어…용병과 고용인 관계입니다.”
“그렇지. 듣기로 황도까지 가겠다고?”
“네.”
“흠…황도에 무슨 일로 가는거지?”
뭔데, 나 취조하냐?
“그냥 황도에 정착하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건 왜…”
내가 대충 말을 지어내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괜히 헛기침하며 덧붙였다.
“크흠! 아닐세. 이래뵈도 나름 귀족 아니겠는가? 황도에 간다고 하니 궁금해서 물어본 걸세.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 혹시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나?”
“예?”
“듣자하니 상단에 자유용병으로 계약을 했다지? 내가 그 위약금을 물어주지. 추가로 계약금을 더 얹어주겠네. 내 밑에서 일하게.”
그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도저히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대화도 아니지, 그냥 혼잣말을 줄창 늘어놓는데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추가로! 영지 내에 집도 주마. 어떤가?”
“아,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제가 뭘 하는데요?”
“으음? 그 용병이니…전속계약을 맺으면 되지.”
“전속계약을 맺으면 뭘 하는데요?”
“그때그때 다르지만 주로 내가 주는 임무를 수행하지.”
“그럼 제게 무슨 임무를 주실 건데요?”
“응?”
영주의 표정이 슬슬 굳어갔다.
이쯤이면 눈치 챘겠지. 내가 그의 제안을 받을 생각이 없다는 걸.
“…그리 어려운 임무는 아닐걸세. 우리쪽 상단을 호위하는 임무도 괜찮고 또…”
그럼에도 끈질기게 어필을 하는 걸 보니 그냥 내가 끊어야 겠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뭐?! 왜지? 원한다면 그 상인놈이 제시한 금액의 세 배를 주겠네!”
“그러셔도 제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뭣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러면 영주직을 제게 주세요. 라고 하면 괘씸죄로 잡혀가겠지?
“저는 의리를 저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큭! 네가 감히 로버디아 백작가 가주의 명령을 거절한다는 것이냐!”
“네.”
“크으윽!”
영주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괜히 더 있어봐야 미운털만 박히지. 나는 황급히 영주방을 벗어나 이든의 방으로 향했다.
“이든! 나 큰일난 것 같아!”
“이티아? 무슨 일이야?”
“너 여기 더 남아서 할 일 있어?”
“아! 안 그래도 거래는 완료해서 내일부터는 널 도와줄 수 있게됬어.”
“잘됬네. 내가 영주의 요청을 거절했거든? 그래서 왠지 뒷맛이 찝찝해. 오늘 밤 출발하자.”
“친구 찾는거는?”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그런데 이렇게 황급히 나갈 필요가 있어?”
“영주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어. 이번에도 대놓고 내거해라 하는데 여차하면 힘을 쓸 것 같았어.”
이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위험하네.
영지 내에서 영주는 왕이었다.
그리고 나는 왕의 명령을 씹은 겁 없는 용병이었고.
“…이든. 혹시 내가 위험해지면 구해줄 수 있어?”
여차하면 매료를 써서 몸이라도 구할 생각이었지만 그런 상황이 안 오길 바래야지.
“원래 유희 중에는 본체로 돌아가지 않아. 물론 지금 설정으로도 충분히 강하지만 만일을 대비한 수단은 필요하지.”
“그럼?”
“걱정 마 이티아. 난 유희가 처음이라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지 배우지 못했거든.”
그 말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고마워. 안전해지면 찐하게 키스 해줄게.”
“그거 영광이군요 여신님.”
정말이지 아르고니아에 떨어졌을 때 이든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보다 더 좋지는 않았겠지.
이든이라는 히든카드를 얻고 안심한 나는 곧바로 메이를 불러 작전을 구상했다.
“세상에! 어쩐지 볼 때마다 개기름이 잔뜩 껴서 이티아 님을 흘겨보는게 맘에 안 들긴 했어요!”
도중에 메이가 어찌나 대차게 영주를 까 대는지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럼 오늘밤 몰래 빠져나가자. 짐은 이든의 아공간에 미리 다 넣어두고 몸만 가는거야. 도시를 벗어나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어.”
“괜찮을까요…”
“이든이 마법을 써서 안전하게 탈출할 거야 혹시 모르니까 체력을 보충해놔. 그럼 좀 이따가 보자!”
나도 걱정이 안 되는건 아니지만 우리에겐 히든카드가 있으니까…메이도 그리 크게 걱정하진 않는 듯 보였다.
후우…안 그래도 몸 상태가 메롱한데 이런 일까지…되는 게 없네.
***
“제기랄, 그 개 같은 년이!”
영주 한스는 이티아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곧바로 헨더슨과 샘튼을 불렀다.
“원래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맘이 바뀌었다. 일단 오늘 밤 그년을 바로 잡아다 지하실에 가두고 다른 상인 년놈은 내쫓아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알겠…습니다.”
‘제길! 큰일났다! 이티아가 위험해!’
헨더슨은 이 계획을 듣고 어떻게든 이티아를 구해주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건 그렇고 용병조합에 조회는 해 봤느냐? 그 년이 혹시 숨겨둔 무기라도 있으면 안돼!”
용병조합에 등록된 용병은 무장 수준이나 실력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기에 혹시라도 이티아가 고등급 용병일 가능성을 생각해 그런 명령을 내려두었다.
“아직 도착하진 않았습니다. 아마 내일 중으로 올 것 같은데…”
“쯧!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내일까지 기다리도록 한다.“
‘좋았어! 그렇다면 오늘 밤 어떻게 해서든 이티아를 탈출시켜야 겠다!’
”만일 그년이 고등급 용병일 수도 있으니 기사들도 대기시켜 놓고…헨더슨?”
이티아를 구해야겠단 생각에 헨더슨은 영주의 부름에 반응이 늦어버렸다.
“이보게 헨더슨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거지?”
“예? 아, 아닙니다.”
“그래? 음…헨더슨 자네는 외부 경비를 맡아주게. 혹시 그 년놈들이 야반도주할 수도 있으니까.”
헨더슨은 황급히 영주의 부름에 답했지만 이미 영주는 헨더슨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제길! 이티아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하지만 한스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헨더슨은 꼼짝없이 영주성 외곽으로 야간경비를 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