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남부도시 웰링턴 (31/85)



〈 31화 〉남부도시 웰링턴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웰링턴 소속 마법사 헨더슨이라고 합니다.”

“네에…용병인 이티아입니다...”

“이티아 씨 군요. 예쁜 이름인 것 같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아우! 어색해!

그도 그럴게 아까 이 아저씨한테 야한 장난을 쳐놔서 내 이미지가 어떨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도저히 살갑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내가 모든 질문에 단답식으로 답하고 노골적으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를 풍기자 헨더슨 아저씨도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분위기 어쩔…

그렇게 어색한 침묵을 지킨  나와 마법사 아저씨는 치안이 안 좋기로 소문난 골목들만 골라다니기 시작했다.

솔직히 찾는다곤 해도…비셴테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만날지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아서 전혀 모른다.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싶다~라고 생각했던 것을 급하게 실행에 옮기려다 보니 아무런 계획도 세워놓지 않았다.

너무 맨땅에 헤딩박기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나와 함께 쓸데없이 개고생하게 된 헨더슨 아저씨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같이 있는동안 최대한 잘 해주자.

“험험, 아가씨가 찾는 사람 이름이 뭐야?”

“비셴테요.”

“그렇구나.”

그러고 또 대화가 끊겼다.


아으악!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답이없네!

“저기요…헨더슨 아저씨? 한시간만 더 찾아보고 우리 밥먹으러 갈까요?”

“응? 그, 그럴까?”

역시 이 아저씨도 지금 분위기가 불편하긴 했나보다.

어색한 분위기가 약간 가셔서그런지 신나보인다.

우중충한 분위기보다야 살짝 떠들석한 분위기가 훨씬 좋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사람들 얼굴을 살피며 걸어다녔다.



***헨더슨
이티아라는 아가씨가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호위 겸 길잡이로 동행하게 된 헨더슨은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사람을 찾는다곤 하지만 실제로 뚜렷한 계획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웰링턴 영지의 가장 큰 도시 웰링턴은 영주가 직접 거하는 도시답게 치안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슬럼가를 제외하면.


아니 오히려 슬럼가에 불량배나 병자, 빈민을 몰아넣는 정책을 시행해서 슬럼가를 제외한 다른 구역들은 상당히 나쁘지 않은 치안을 자랑했다.


거기에 영주성의 마법사로 얼굴을 알린 헨더슨이 동행하니 이티아의 눈에 확 띄는 외모를 보고도 함부로 접근하는 놈팡이는 없었다.

“여어 헨더슨! 오랫만이네. 옆은 누구야? 여친?”

저런 것만 없으면 더 좋았을텐데.


“시끄럽다. 조.”

아무리 그녀와 자신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지만(헨더슨의 생각) 정식으로 교제를 한 사이도 아니기에 이런 과한 관심은 사절이다.

특히나 오면서 몇번 대화를 걸어봤으나 그녀는 수줍은 듯 짧은 단답으로만 대답했다.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인가 보네.’

첫만남때 자신에게 그런 아찔한 유혹을 해놓고 뒤늦게 내숭을 떨면…너무 좋지.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가  만남부터 팬티를 깐다? 말도 안된다.

애초에 마음이 있다고 해도 첫 만남에 팬티를 까면서 유혹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헨더슨은 그 정도 사리분별도 못할 정도로 깊게 빠져 있었다.


그 뒤로도 헨더슨은 묻고, 이티아는 단답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쯤 되니 아무리 사랑에 빠져있던 헨더슨이라도 살짝 의심이 되었다.


‘이 아가씨가 날 좋아하는 게 맞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얘가 나를 별로 맘에들지 않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지나치게 짧은 단답만 반복했지만 누군가에게 그 정도로 대차게 까여본 적이 없는 헨더슨은 알아차리는 게 보통 사람보다 훨씬 늦었다.


그러나-

“저기요…헨더슨 아저씨? 한시간만 더 찾아보고 우리 밥먹으러 갈까요?”

어색함을 깨고싶은데다 쓸데없는 개고생(본인은 오히려 데이트하는 것 같아 좋아함)을 시켜 미안함을 느낀 이티아가 그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 버렸고, 전보다  깊에 착각에 늪에 빠져버린 헨더슨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역시! 이 아가씨도 나한테 마음이 있었던거야!’

이티아는 어디까지나 미안한 마음에 밥이나 한 끼 사주겠다고  말이지만 헨더슨은 오늘 진도를 어디까지 뺄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차! 빨리 답을 줘야지.’

“응? 그, 그럴까?”

최대한 멋있는 목소리로 수락하려고 했으나 굉장히 업된 기분에 말을 약간 더듬어 버렸다.


다행히 이티아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정확히는 관심 없었다.)

마음씨도 참한 아가씨라고 생각하며 더욱 이티아가 맘에 든 헨더슨은 헤실헤실 올라가는 제 입꼬리를 미쳐 발견하지 못했다.

***
그 뒤로 한 시간정도 슬럼가를  잡듯이 뒤졌지만 비셴테는커녕 비슷한 사람도 못봤다.

역시 너무 무계획했나? 생각해 보니 비셴테가 처음에 웰링턴 슬럼가로 간다고 했지 슬럼가에 평생 있겠다고 한 적도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 도 있고, 아니면 도시에 번듯한 집을 짓고 살고있을 수 도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찾죠.”

“그럴까?”

“네. 나머지는 내일 해요. 슬슬 해도 지니까.”

“그, 그럼  먹으러 갈까?”

“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죠. 전  모르니까 추천해 주세요.”

“맡겨둬! 내가 웰링턴에서만 5년 가까이 살았는데 근처 맛집은 다 꿰고 있거든?”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힘이 나나보다. 앞으로도 부려먹어야 할 테니 큰맘먹고 쏜다! 내가.

…너무 비싼데는 안돼는데…

나올 때 이든에게 금화 스무 닢을 받아두었다.

금화 20닢이면 한끼 정도는 너끈 하겠지?

헨더슨 아저씨는 꽤나 고급스런 식당에 나를 데려갔고, 나는 가격표를 걱정하면서도 맛있게 저녁을 먹어치웠다.


계산은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기어코 헨더슨 아저씨가 내 주었다.

장난쳐도 아무 말 안해, 뺑뺑이 치는것도 도와줘, 거기다 밥까지 사주다니…호ㄱ, 아니 착한 아조씨다.


그 뒤로 카페에 가서 음료는 내가 샀다.


밥도 얻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음료를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름 학식도 있고 능력도 있는 아저씨였다.

주로 자기의 과거사(마탑 이야기) 이야기를 했으나 판타지 세계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판타지 소설 이야기를 듣는  같아 재미있다.

“옹~ 그럼 5등급의 마법사는 웰링턴 영지에선 아저씨 하나 뿐이네요?”

“그렇지! 내가 이래뵈도 아직 창창해. 마탑의 늙은이들은 허구한 날 나보고 게으름뱅이라 욕하지만 사실 나만큼 하는 사람도 드물거든~”

“그래요?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마탑에도 가보고 싶네요.”

“내가 데려가줄게!”

“네~그럼 이제 슬슬 갈까요?”

“어, 어? 그래…”

내일도 열심히 돌아다니려면 오늘 일찍 자 둬야지.



저택에 돌아오니 방이 바뀌어 있었다.


어제 방도 상당히 괜찮았는데 오늘은 거의 이든의 방과 맞먹었다.


이런 방을 혼자 쓰라고?

세상에 침대도 데굴데굴 굴러도  정도로 넓어!

잠금장치가 부숴져 있는 게 옥의 티였다.

넓직한 침대에 단박에 뛰어들어 부드러움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똑똑똑 하고 노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티아 님! 저에요, 메이.”

“들어와도 돼! 문 열려 있어.”

“네. 이티아 님. 오늘은 목욕 시중을…으음. 이티아 님? 씻지도 않고 그렇게 침대에 누우시면 침대보가 더러워져요.”

“알았어, 알았어~ 메이는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다 이티아  건강을 생각해서라구요. 자! 오늘 입을  가져왔으니 어서 욕탕으로 들어가요.”

“흐하으~졸린데…그냥 세수만 하고 자면 안돼?”

내가 자그맣게 투정을 부리자 메이의 눈초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아, 알겠어 씻을게. 그렇게 보지 마.”

“이티아 님. 오늘 어디 다녀오셨죠?”

“슬럼가…”

“그래요. 위생부터 치안까지 뭐 하나 좋을 거 없는 곳에 다녀와서 씻지 않겠다는 건 병에 걸려도 좋다는 뜻인가요?”

나는 그런거 걸려도 신체복구가 있으니 괜찮지만…그렇게 말하면 더 혼나겠지?

“알겠어, 알겠다구. 앞으로 매일매일 씻겠습니다아~”

“좋아요. 그럼 빨리 씻죠. 물 받아 놓을 테니  벗고 계세요.”

으으…진짜 피곤한데…나는 후딱 옷을 벗어던졌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지만 그래도 귀족가인데 설마 노크도 없이 들어오겠어?

벌컥!

“이티아! 있…”

있었다!

“야이…뭐야? 안나가?  보고있어?”

“에이 볼거 못볼거   사이에.”

이든은 당당하게 들어오더니 자연스레 날 껴안았다.


“얼씨구. 자연스럽다? 내가 니거냐?”

“킁흥, 이티아 냄새 너무 좋아.”

“저리 가 도마뱀아. 하여간 변태 같아가지고. 메이도 있거든?”

“알아.”

“뭐?”

“안다고. 네가 메이랑 어떤 관계인지.”

“!!!”

나는 놀라서 눈을 휘동그래 떳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이든이 웃었다.

“하하 이티아 그 표정도 귀여워. 놀란 토끼같아.”

나는 내 모습을 즐기는 이든을 구박하지 못했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모를 리가. 드래곤은 감각이 예민하거든”

그러면서 제 코를 손으로 톡톡 치는게 진작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뭐야. 그럼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단 거잖아? 근데 왜 이제야 말해?”

내가 놀란 것은 불륜을 들킨  같은 당황이 아니라 왜 지금 이런 상황에 말을 꺼냈나 하는 것이었다.

메이가 욕실에서 물을 받고 있을 때, 내가 속옷 차림으로 탈의하고 있을 때 들어와선 갑자기 나와 메이의 관계를 언급한다.

“…솔직히 터놓고 말해. 너랑 메이랑 무슨  했어?”

“눈치가 빠르네 이티아. 맞아 네가 없을 때 메이와 합의를 봤지.”

“합의? 아니 그보다 메이는 널 어려워 하는 걸 알고는 있냐?”

이든을 드래곤 님, 드래곤 님 이라며 깍듯하게 대하는 메이를 데리고 정당한 협의가 이뤄졌을 리 없지.

“나도 그걸 감안해서 최대한 양보했어.”

“뭘 어떻게 했는 지 들어나 보자.”

“우리가 관계를 안한지 벌써 5일이나 된 거 알아?”

“오는동안 자고 있었으니 어쩔  없잖아.”

“그걸 제하고라도 어제도 할 수 있었는데 나와 메이 둘다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네게 찾아가지 못했지.”

“그래서  순서를 정한거야?”

“순서…라기보단 서로에게 터치하지 않기로 했어. 황도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항상 네 의견을 존중할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네게 유혹만 하고 네 허락이 없으면 절대로 네게 먼저 손대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날 유혹하고, 나는 그때그때 내가 꼴리는 애랑 섹스하면 된다는 거지? 선택받지 못한 애는 그것에 수긍하고?”

“…맞아. 그렇게 말하니 굉장히 외설스럽네.”

“애초에 나랑 섹스하려고 그런 협의를 한 주제에 뭐. 암튼 알았어. 그럼 오늘부터 고르면 되나?”

“응. 이티아 맘이야. 나야 당연히 날 골라주면 좋겠지만…”

이든이 나에게 포옹을 하려는 듯 양팔벌려 다가왔지만 나는 화려한 무빙을 선보이며 탈출했다.

“아니, 근데 메이가 나 목욕시중 들어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유혹이야?”

“…내가 해줘도 돼?”

“될 것 같아? 일단 씻고나서 생각해볼게. 네 방 가있어.”

계속 앵겨붙는 이든을 억지로 돌려보내고 욕실로 들어갔다.

“…오셧어요?”

들어가니 메이는 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넌  왜그러니?

“저…제가 씻겨드리는 데는 진짜 아무런! 사심도 없어요…”

“알아. 내가 부탁하기도 했고. 그런걸로 안절부절 하지마. 난 신경 안쓰니까. 그보다 빨리 씻겨 줘야지?”

“네!”

둘이 날짜를 정해서 나를 물건처럼 돌려쓰겠다고 했으면 좀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선택하는 입장이니 괜찮았다.

“그래도 당사자가 없는데서 그런 말이 오고가는건 조금 불쾌해.”

흠칫!

“죄, 죄송해요…”

“알면 됐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누구와도 안 할거야.”

“네…”

오늘은 좀 지치기도 했고 말이지.

아니 웰링턴에 머무는 동안은 체력소모를 피하는  좋을 것 같다.

목욕도 끝나고 옷만 실크제 잠옷으로 갈아입은  그대로 잠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수마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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