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남부도시 웰링턴 (29/85)



〈 29화 〉남부도시 웰링턴

우리는 상인둘과 용병이라는 꽤나 조촐한 조합으로 성문을 두들겼다.

쾅쾅쾅

“여보슈! 성문좀 열어보슈!”

나름 용병 컨셉에 맞춰 최대한 불량스러운 말투를 사용했다.

내가 쾅쾅 성문을 두들기며 껄렁한 말투로 말하자 성 위에서 위병 몇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통행증 있습니까?”

위병의 위치에선 내가 시야에 보이지 않기에, 이든이 대답했다.

“통행증은 없습니다.”

“뭐야? 그럼 시끄럽게 굴지 말고 꺼져!”

“영주님을 불러주십시오! 저는 상인인데 아주 귀한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푸하학! 야 들었냐? 영주님이래 크크킄”

“영주님이 뉘집 친구 이름인줄 아나벼 푸킄킄”

어? 이게 아닌데?

“이든? 이렇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게 맞아?”

“그, 글쎄…안 열어주려나?”

맞다, 이놈 유희 처음이지…유희가 처음이란  당연히 제국의 세세한 법이라든지 제국민의 생리도 잘 모른다는 뜻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

“제가 나서볼게요.”

우리가 얼타고 있는데 뜻밖에 구원자가 생겼다.

“메이?”

“드래곤 님. 혹시 돈이  있으신가요?”

“제국통화가…금화였나? 조금 있어.”

“제게 주세요. 음… 금화 10닢이면 될거 같아요.”

이든에게서 금화를 받아든 메이는 성벽 위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저희는 영주님이 특별히 관심있어하신 특산품을 가져왔는데요! 이게 금방 상하는 거라서 들여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믿겠으면 집사장을 불러도 좋아요.”

“그래? 흠…어떡하지?”

“진짠가? 일단 들여보내고 집사님 모셔오자.”

영주님은 위병들에게 너무 높은 위치라 저렇게 장난으로 치부할  있지만 영주의 곁에서 이것저것 관여하는 집사는 위병들에게 보다 직접적인 상급자라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거기다 메이의 조리있는 말솜씨가 더해지자 위병들은 성문을 열고 일행을 들여보내 주었다.

그렇게 성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번엔 위병소가 나왔다.

들어보니 집사님을 모셔올 때 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한대서 우리는 그냥 얌전히 기다렸다.

“오오 예쁜걸? 일단 이쪽으로 오라고. 혹시라도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 판타지 세계의 위병 하면 예쁜여자만 보면 똘똘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놈들로 이루어져 있는게 당연하지 음음.

비슷한 클리셰로는 얼굴만 보고 시비거는 모험가라든가, 상단의 마차를 습격한 뒤 능욕하려는 도적 등이 있지.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정도로 위병들의 음담패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내게 음충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위병들은 이든이 가볍게 쏘아보자 깨갱 하고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작은 헤프닝이 지나가고 영주의 집사가 직접 위병소로 찾아왔다.

“험험…주인님께서 관심있어하는 특산물이라 해서 왔습니다.”

꼬부랑 콧수염과 흰 백발이  있는 모습은 귀족가 집사의 교본과도 같았다.

조금 깡마른 모습이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 집사가 자기소개는 가볍게 건너뛰고 바로 용건을 말했다.

우리는 이든이 워낙 어리바리해서 메이가 대표로 말을 받았다.

“네. 황제 폐하도 생일상에서나 맛볼 수 있는 바다 물고기입니다.”

“바다 물고기? 흐음…제품을 확인해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음…이든…님?”

메이가 어색하게 부르자 이든은 아티팩트에서 꺼내는 척하며 아공간에서 살아있는 활어를 꺼냈다.

아까 언뜻 듣기로는 흑해 바다중 일부를 통째로 아공간에 넣어둬서 원할때마다 꺼내면 된다는데 나야 마법을 잘 모르니 그러려니 했다.

이든이 대단하단 것만 알면 됬지 뭐.

“호오…놀랍군요. 이렇게 살아있는 생선도 놀랍지만 확실히 제가 아는 민물고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죠. 다행히 영주님의 저택에서 일하시는 마법사가 생물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마법을 쓸 수 있으니 내일 그가 출근하면 확인해 보도록 하죠.  물고기는 그때까지 살려둘 수 있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음 혹시 그때까지 영주성에서 머무를 수 있을까요? 저희도 큰 거래를 생각하고 있는지라…안된다면 저희가 머무를 숙소라도  수 있을까요?”

잘한다! 메이!

“흐음…헉!”

집사는 메이, 이든을 살펴보고는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

내가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자 곧 시선을 떼긴 했지만.

“큼흠. 알겠습니다. 영주님의 성에 손님으로서 초대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아차, 그 전에 여기…”

집사가 일어날 때 메이가 이든에게 받아두었던 금화주머니를 내밀었다.

“음?”

이건 뭔가요? 라고 말하는 듯이 한쪽 눈썹이 올라간 집사에게 메이가 덧붙였다.

“저희가 늦은 시간에 집사님을 번거롭게 해 드렸으니 이정도 수고비는 드려야지요.”

메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집사도 기분이 나쁘지 않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금화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뒷돈을 당당하게 챙기는 걸 보니 이런식으로 자주 해먹었나 보네.

“아! 손님으로 대접하게 되니 제 소개를 드리지요. 전 웰링턴의 영주직을 맡고계신 한스 로버디아 님의 집사장 샘튼입니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날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지금까지 대화하던 메이가 먼저 인사를 받는게 예법에 맞다. 아니 예법을 떠나 그게 예의다.

“…이티아입니다. 떠돌이 용병이지요.”

무시할 수는 없어 인사를 받긴 했지만 메이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 느낌을 팍팍 주며 소개를 했다.

어차피 용병이니  껄렁해도 괜찮겠지?

“호오 용병이었군요. 자유 용병입니까? 계약 용병?”

어, 어? 그것까진 생각해놓지 않았는데…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나는 괜한 의심을 사기 싫어서 대충 둘러댔다.

“음...자유 용병입니다.”

“흐음…알겠습니다. 다른 분은요?”

“제 이름은 이든입니다. 스캡 상단의 주인이지요. 여기 이 친구는 메이라고 하는데 제 상단 직원입니다.”

“안녕하세요.”

메이가 꾸벅 인사하는걸 가벼운 눈짓으로 받는걸 보니 메이를 하대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보였다.

내 매니저(아직아님)가 무시받는 기분은 참 더러웠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럼 스캡 상단주께서 이티아 양과 계약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황도까지 상단을 호위해주기로 계약했죠.”

“그렇군요…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신원 보증이 되지 않는 사람은 영주성에 들어올  없습니다. 그래서 물어본 거지요.”

아아~ 참 그렇겠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괜히 시비를 틀 사람도 없었다.

메이와 난 괜히 시비붙기 싫다는 생각이었고 이든은 내가 거듭해서 주의를 줬기에 얌전히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영주가 머무르는 성에 도착했다.

성이라고 해 봐야 그냥 4층짜리 저택이었지만 이미 해가 진 저녁에 거의 모든 방에 불이 켜져있고 온갖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번쩍번쩍 빛나는  보니 과연 귀족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시지요. 이곳이 웰링턴의 영주 한스 로버디아님의 성입니다.”

“오오오~”

“와~”

“…”

이든은 설정에 맞게 다소 과장스럽게, 메이도 그에 호응하듯이, 그리고  그냥  감흥이 없었다.

내 집도 아니고 말이지.

다만 혹시나 영주가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영주는 방에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주인님께선 업무 시간이 끝나셔서 내일 오전에 일정을 잡아두겠습니다.”

집사장 샘튼은 그러더니 주변에 있던 하녀 한명을 불렀다.

“여기 이 하녀를 따라가면 묵으실 방이 나올 겁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나와 메이는 아직 여독이 가시지 않아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녀를 따라간 우리는 각자 다른 방을 받았다.

내 짐은 전부 메이에게 있었지만 뭐 어때.

내게 배정된 손님방에 들어가니 깔끔한 방과 침대, 책상과 소파에 화장실까지 딸려있었다.

오 이거 괜찮은데? 내가 황도에 창관을 열 때 이런 인테리어를 참고해도  것 같다.

문 잠금장치가 고장난게 조금 걸렸지만…뭐 어때.
삼일 내리 잤지만  졸린게 사람 몸이더라. 결국 샤워만 간단히 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셋 다 적당히 차려입고 응접실에서 영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심했지만 그렇다고 잡담을 나눌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냥 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했다.

간간히 하품이나 하면서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영주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옆에는 어제 봤던 집사장과 빼빼마른 아저씨  명이 같이 왔다.

중앙에 영주는…으와 왤캐 빛이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통 삐까번쩍한 황금빛으로 도배되어 멋있다는 느낌보단 과한 치장으로 생기는 불쾌감이 먼저였다.

세상에 치장으로 불쾌하게  수 있다니. 정말 무서운 능력이군.

영주의 어마무시한 능력에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침 이놈도 나를 보고있었는지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으엑! 그런 표정 짓지마! 입맛 다시지 마!

영주의 능력은 단순히 치장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끈적끈적한 눈길이 내 얼굴을 훑고 그대로 가슴, 배, 허벅지를 무참히 범하고 지나갔다.

어떻게 아냐고?

그야 저 눈길은 처음 보는게 아니니까.

피그맨과 똑같은 저 눈길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시선을 받고 내 아랫배가 큥큥 을린다는거…미친 진짜 서큐버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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