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드레곤은 피하랬는데... (9/85)



〈 9화 〉드레곤은 피하랬는데...

눈을 떴다.

몸이 개운하고 가뿐하다.

마침 눈 앞에 보이는 풍경도 푸른 하늘과 초록초록한 숲이라서 더욱 운치 있다.

저기 지져귀며 날아가는 새들을 봐! 어머! 저기 귀여운 토끼와 다람쥐도 있네? 안녕??
저기저기, 연초록빛  사이 숨어있는 메뚜기도 귀여워! 까르르! 예쁜 나비구나? 저런 나는 꽃이 아닌걸?

“……”

그렇다.

난 지금 숲 한복판에 떨궈져있다.

그것도 알몸으로.

“이건 아니지…이건 아니야. 아무리 상도의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숲 한복판에! 알몸으로!”

황도라며? 대륙 중앙에 있는 거대한 제국, 그중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황도.

그 안에 알몸으로 있는 아름다운 미녀.

언밸런스다.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미친…이꼴로 어디를 어떻게 가…”

레피나 비셴테도 비슷한 꼴로 떨어졌을까? 친구들이 겪었을 곤란에 눈물이 나올려 한다.

그리고 내게 닥친 불행에 진짜 눈시울이 붉어진다.

“에효…진짜…근처 마을은 없나? 괜히 산적 같은 걸 만나면 안되는데…”

진짜 주변에 가릴 것이 하나도 없다.

나무가 많아 숨을 공간이 많은 것이 나름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어쩔 수 없지.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있는 것이 절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깊은 산이면 산짐승도 위험할 테고.

결국 한손으로는 가슴어림을, 다른 한 손으로는 하복부를 가리며 종종걸음으로 길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무슨 산책로처럼 길이 트여 있네?”

주변에 나무는 수두룩 뺵빽 하게 있으나 잔돌도 별로 없고 오히려 맨발임에도 푹신할 정도로 부드러운 흙과 풀들이 발목을 간질였다.

설마…어느 귀족의 뒷마당이라던지, 사냥터라든지 그런  아니겠지?

이런 내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취익! 암컷이다! 발가벗은 암컷!”

으아아 저게 뭐야!

분홍색 돼지 머리에  불거진 뱃살을 출렁이며 다가오는 짐승.

오크와 비슷하지만 어느정도 문명을 갖춘 오크와 달리 야생에서 살며 종족 취급도 못 받는 몬스터, 피그맨이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여기 황도 아니었어? 황제가 피그맨을 기른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모든게 오크보다 뒤떨어 지지만 딱 하나, 덩치만큼은 오크 에게 뒤지지 않는 돼지가 꿀꿀거리며 다가온다.


“킁킁,  예쁘다. 따라와라. 아프게 안 하겠다. 부히힉!”

젠장! 가릴 생각도  하는 성기가 불끈 솟아오른 것이 보인다.

매료당했구나!

매료는 말만 들었을 때는 별로 위험한 능력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위험한 능력이었다.

피그맨은 지능이 그리 높지 않은 종족이다.

당연히 상위는 커녕 중위 지성체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급 몬스터이니 만큼 강한 매료의 효과는 없다.

매혹의 권능은 쓰지도 않았는데  범할 생각 만땅이다.

유일하게 기댈  있는 희망이라면 공격불가 라는 점인데, 과연 저 놈이 내가 허락할 때까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있을지 모르겠다.

아티가 몬스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아니겠지?
어쩔 수 없다.

난 도망 칠 수도 없다.

진짜 시골 처녀만큼 나약한 몸은 체력도 바닥에 민첩성도 별로일 테니까 잠깐 걸었음에도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을 보면 진짜 운동과는 담 쌓은 몸인게 분명했다.

예상컨데 게임처럼 스텟이 있다면 모조리 매력이나 성행위에 몰빵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피그맨이 내쪽으로 슬금 슬금 다가온다.

어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무리 섹스를 좋아하고 자지에 미친 나지만…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래 큰맘 먹고! 아니, 신의 관대함을 발휘하여 한번쯤은…해줄 수 있다. 근데 과연  돼지가 날 한번만 범하고 곱게 갈길 가세요~ 하고 보내 줄까? 온갖 구멍이란 구멍은 다 따먹고 죽을 때까지 사육하겠지!

에x동인지처럼!

그렇게 다급해진 내가 한 행동은 후에 생각했을 때 최악의 행동이었다.

“매혹!”

신력이 1 소모되고, 피그맨의 몸이 더욱 붉어지기 시작한다.

이미 곧게 솟은 그의 물건은 흉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터질듯이 부풀어 있었고, 검붉은 흉물의 끝에선 쿠퍼액이 말 그대로 질질 새고 있었다.

으으윽…저건 아니야…암튼 아니야…

매혹이 걸린 것을 확신하고는 곧바로 뒤돌려 도망쳤다.

“취익, 부힉, 암컷 이리와라!”

당연히 도망칠 생각은 아니다.

발기한 생태에서 달리기가 힘든다는 것은 알지만 기본적인 스펙 차이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내가 노리는 것은 한방! 나는 눈 앞에 짱돌을 발견하곤 엎어지듯이 넘어졌다.

“부히힉! 도망은 끝났나? 이제 내가 기분 좋게 해주마 취힉!”

 손으로 돌을 잡고 피그맨이 보이지 않게 몸 뒤쪽으로 슬쩍 숨겼다.

피그맨은 나에게 정신이 팔린 채 한 손으로는 흉물을 잡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부힉! 예쁘다! 못생긴 인간종인데도 동족보다 더 예쁘다!”

지금!

나를 범하기 위해 허리를 굽힌 피그맨의 무방비해 보이는 관자놀이를 들고 있던 짱돌로 찍었다.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첫째는 내 몸이 연약한 처녀의 몸이라는 것과

“부힉?”

피그맨은 적어도 내가 생각한 만큼 유리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퍽!
“부힉?!

손끝에 육질이 짓뭉개지는 끔찍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관자놀이에 찍힌 돌에는 얼룩처럼 붉은 피가 묻어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약간 찢어진 듯 보이던 관자놀이는 벌써 치유되는 중이었다.

내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한 피그맨의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해졌고 내 가슴을 범하려 활짝 펴지던 손은 힘줄이 도드라진게 보일 정도로 꽉 쥐어졌다.

“인간…감히 날 공격했다!”

“아…아아…”

무섭다.

그제서야 난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실제 폭력이 닥치면 아무것도 할  없는 무력한 몸뚱아리.

잠깐의 판단 미스로 지금 나는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피그맨의 두꺼운 주먹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죽인다! 죽이고 범할 거다!”

매료는 어느 새 풀려버렸다.

애초에 그리 강하게 걸린 것도 아닌데다 내 공격으로 각성한 피그맨의 눈에는 살기가 어렸다.

“컥!”

피그맨은  목줄기를 세차게 잡았다.

숨통이 조여오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끔찍한 폭력의 시간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과 원망이 뇌리를 지배했고, 눈물이 나왔다.

조금 지린 것 같기도 하다.

그때였다.

쐐애액-!

퍼걱!

공기를 찢을듯한 파공음과 피륙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액체가 내 얼굴을 덮쳤다.

비릿했다.

눈을 감아도 대충 알  있다.

무언가 피그맨에게 쏘아졌고, 피그맨의 머리는 그걸 맞고 터졌다.

눈을 뜨기가 무서웠다.

눈 앞에 펼쳐질 참상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피그맨의 머리를 터트린 존재가 날 구원해 줄 구원자일지, 아니면 더 잔인하게 나를 괴롭힐 악마일지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가 무서워 일부러 눈을 꼭 감고 숨소리를 죽였다.

탁!

무언가  앞에 떨어져 내렸다.

시야가 차단되고 후각이 피비린내로 마비된 만큼 청각이 극도로 민감해졌다.

먼 거리를 도약해 왔거나, 아니면 날아서 내 앞에 착지한 것 같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얼굴에 닿았고 어루만졌다.

움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더더욱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얼굴의 묻은 피그맨의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예술품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레피를 떠오르게 했다.

아직까지 내게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을 보면 몬스터는 아닌 것 같아 슬며시 눈을 떴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뜨자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으 안보여…누구지?

대충 보인 형체는 인간 같았다.

아니야. 단언하지 말자. 이곳은 인간형 몬스터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희망을 버릴 순 없다.

그의 행동으로 적이 아님을 판단한 나는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흐릿한 윤곽에 색채가 더해지고 질감이 입혀진다.

그리고 내 눈은 마침내 온전히 구원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타오르는 불과 같이 붉은색, 주황색이 고루 섞인 적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 보이는 붉은색의 각질 덮인 날개.

그것 만으로도 대충 정체가 짐작이 갔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해를 담은 듯 주홍빛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었다.

너…드래곤이구나…

용족 혹은 드래곤이라 부르는 이 도마뱀은 여느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다 비슷하다.

미친듯이 강하다는 것과 고도의 지성을 두루 갖춘 최 상위 포식자란 것.

피그맨을 피하려다 드래곤을 만나고 말았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더욱 절망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어 지금 상황이 꽤나 기꺼웠다.

 눈앞에  포식자가 정열적인 눈으로 헛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집 가다가 반짝거리는 걸 봐서 왔는데 예쁜 보석이 있었군.”

구웨에에엑!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던 체력이 드래곤의 정신계 공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난 혼절했다.

부디 이번엔 매료가  걸렸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아티가 드래곤은 피하라고 했는지 이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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