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70화 부족한 것은?
지크리스와 이루스, 두 사람의 상황을 짧게 표현하자면, 이미지를 180도 바꿔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여관을 나서는 두 사람, 선두에 선 이루스는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남성미가 풍기도록 정리하고 남성향의 디자인 정장을 여성이 입을 수 있도록 개조한 옷을 입고 보이쉬한 매력을 한층 살려 쉽지 않은 여자란 느낌으로 꾸몄다.
화장도 좀 스모키한 느낌으로 하여 전체적으로 강렬한 이미지가 더욱 살아나 있다.
그에 반하여 지크리스는 원피스와 가터벨트 스타킹, 그리고 밝은 톤의 화장과 머리를 길게 이어 붙여 그녀의 숨겨진 여성적 매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근육까지 숨길 수는 없기에 옷 사이로 복근이 튀어나와 보이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은 건강미가 더해지는 느낌이라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린 두 사람이 여관을 나서자 그 앞에서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갈프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허….”
그런 뒤 지크리스와 이루스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인줄 알았을 정도로 두 사람의 변장은 완벽했다.
“왜? 뭐 이상해?”
“그럴 리가요. 두 분 다 정말 섹시합니다.”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면 안 돼냐?”
“아니…. 어울리는 말이 그거 박에 생각이….”
“됐다. 어쨌든 칭찬은 칭찬이니까. 포주 물색은 어떻게 되었어?”
“오늘 그쪽에 여자들을 제공하기로 한 포주를 잡아서 구워삶아 두었습니다. 지금부터 놀티아 형님과 합류해서 그쪽으로 향할 겁니다.”
“알았어. 이동하자.”
“저. 누님.”
“응?”
쭈뼛쭈뼛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갈프를 보고 이루스가 의아해하고 있으니 그는 마음을 다 잡은 듯 그녀를 향해 말했다.
“다, 다음에 오시면 저랑 데이트좀 해주십시오!”
“뭐?”
갈프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두 사람, 이루스는 이루스 대로 갈프가 이런 말을 해 올 줄 몰랐기에 놀랐고 지크리스는 이 개자식이 누굴 넘봐? 하는 느낌으로 놀라고 있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말을 하는 바람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남자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는 미안했는지 지크리스가 반발하기 전에 잠시 그녀를 억누르며 대답해 주었다.
“봐서. 기대는 하지 말고.”
“예! 예. 그….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만약 데이트를 해주신다면 지금 이 모습으로 해주셔도 되죠?”
“이 모습? 아하…. 너 이런 보이쉬한 여자가 취향이니?”
“그…. 아하하…. 그것도 그렇지만, 끌리는 느낌이란 거 있달까. 누님이 보이쉬한 모습을 하니까 완전 취향이지 뭐예요. 이 갈프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 테니 다음에 꼭 시간 좀 내주십시오.”
“후후후. 알았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볼게. 다음 내가 언제 여길 올지 모르지만, 그때 안까먹고 또 신청하면 시간이 괜찮을 때 해주지 뭐.”
“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가시죠 놀티아 형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갈프의 데이트 신청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 이루스는 씩씩거리는 지크리스를 잘 달래서 대동하여 놀티아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였다.
“왔군.”
그는 6인승의 SUV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면허는 없지만, 어둠의 루트를 통하여 차를 구매한 뒤 이곳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여 운전을 익혔다.
어차피 도적단 일원들은 거의 법의 감시망을 벗어난 이들이기에 불법이고 뭐고 통하지 않았고 이 일대를 벗어나지 않으니 내부 사고 말고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운전에 서툰 사람들은 알아서 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도적단이 내부에서 잘 제약하고 있기에 차 사고는 거의 없었다.
이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곳에 와서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규합하여 이곳 생활에 좋은 밑거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동차에 들어간 휘발유가 가연성이고 그것이 잘못 폭발을 일으키면 큰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도 이미 안 뒤였다.
그렇기에 에탄 조에는 차량을 공격하는 것은 조심하라는 지령이 내려와 있다. 잘못해서 큰 사고로 번지면 도적단 인원의 피해도 피해지만, 잘못하면 여론이 악화할 공산이 컸다.
공포로 빠르게 점거하여 사람들의 반발을 힘으로 찍어 누른 뒤 그 뒤엔 조금씩 풀어 주면서 여론을 장악하여 이들의 도움도 끌어내는 방법, 다른 건 몰라도 에탄이 잘 하는 침략법이다.
여하튼, 놀티아가 운전을 한다는 것을 보고 조금 불안한 표정을 하며 몸을 뒤로 빼는 이루스.
이곳에 와서 놀티아를 보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데 운전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라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탄다는 것이 너무도 불안한 듯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운전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지만, 그녀는 면허가 있지만, 아직 장롱면허라 운전은 불안한 상태다. 갈프는 면허조차 없고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고 지크리스야 말할 것도 없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저…. 미안한데 우리 걸어서 가면 안 될까?”
“응? 안돼 시간이 좀 부족하다고. 거리가 꽤 멀어서 걸어갔다간 시간이 지체될 거야. 거기 가서 포주한테 배워야 할 것도 있고 어디까지나 높으신 분들 상대하는 고급 여성을 연기해야 해서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의심들을 할거야.”
“아, 아니 그래도...”
“어서 타.”
“언니 뭐해요? 타지 않고.”
“나, 난 죽기 싫다고!!!”
이루스의 외침은 허무하게 공중으로 떠올라 메아리도 남지리 못 한 체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놀티아의 운전은 수준급이라, 안전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차도를 달려 어딘가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이루스는 좌불안석으로 차 문 위쪽에 달린 손잡이를 달라 붙어 있듯이 꽉 잡고는 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제, 제발 속도좀.”
“아니 60으로 달리고 있다고.”
“40으로 달려! 제발!!!”
“하…. 알았다 알았어.”
다른 두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루스의 모습에 조금 서운한 감정일 내비치는 놀티아였지만, 그녀는 이곳의 사람이다. 그래서 차량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서운함을 다스렸다.
그렇게 차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직 밝은 나절인데도 어두운 기운이 풍겨오는 문이 다 닫혀 있는 작은 골목이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지 분명 상가의 중앙인 거 같긴 한데 다들 문을 닫고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검은 천막을 두르거나 셔터를 내려 두는 등 밝은데도 어두운 느낌이 강한 곳이다.
놀티아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갈프와 이루스, 그리고 지크리스 역시 그를 따라 골목의 안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던 놀티아가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다른 건물보다 어두운 느낌은 덜하지만, 어차피 도긴개긴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지 이곳도 어두운 것은 다름이 없었다.
“들어가지. 아, 무례하지는 않을 거야. 교육은 확실히 해 두었으니까.”
“누가 교육을 받으러 온건지.”
“하하하. 가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꽤 깔끔한 사무실의 모습이 보였고 그 안에는 근육과 살로 몸을 무장한 한 남자가 앉아서 사무실 입구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놀티아가 그 남자를 사정없이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내가 그 귀여운 눈깔을 그따위로 뜨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놀티아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 오셨습니까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인 줄 모르고 감히….”
“됐다. 아 판정이 어디 있냐?”
“잠깐 통화하신다고 가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금방 오겠군. 설마 약속을 깨고 이상한 곳에 간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좀 곤란한데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감히 놀티아 형님과 약속을 했는데요.”
“후후후 그건 봐야 알지. 너 할 거 없으면 가서 커피나 타와라.”
“옙!!!”
근육이 아깝다는 말을 지금 해야 할 거 같았다.
몸으로 보면 놀티아가 저 근육 덩어리보다 더 왜소하고 약해 보이니 말이다.
뭐…. 어차피 레벨이 없는 일반인이 아무리 근육을 불리고 싸움 실력을 올려도 잠시 버틸 수 있다뿐이니 한번 호되게 당한 다음 공포가 자리 잡아 저런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근육덩어리 똘마니가 타온 커피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거 사장님 말 진짜 많으시네. 저번에 우리 애 약 먹여서 반병신 만들어 놓더니 애를 더 달라고요? 일 없으니까 다른 가게 알아보쇼. 뭐요? 아 시발! 그건 사장님 사정이지! 그러니까 누가 마약으로 애를 병신 만들래? 그러니까 다른 가게도 사장님 블랙리스트로 만들지. 긴말 필요 없고 우리고 앞으로는 당신 안 받을 테니 그리 아시고 전화 끊습니다. 아 끊는다고!!!”]
쾅
전화를 끊은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거칠게 들어왔다.
“에이 씨…. 헉!”
들어오자마자 쌍욕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그는 손님용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는 놀티아와 시선을 마주했고 그 즉시 폴더 인사를 하며 그에게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놀티아 형님! 많이 기다리신 겁니까?!”
“됐다. 방금 왔으니까. 많이 바쁜가 보지?”
“아이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진상 손님 하나 엮여서 말입니다.”
“그 마약인지 뭔지 먹고 게거품 물던 그년 부른 놈이냐? 그래 그 년은 어떠냐? 우리가 준 해독 포션이 좀 잘 듣디?”
“왼걸요. 반병신이 다 되어 가다가 그거 한 병 마시고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지금은 체력회복을 위해 입원해 있고요.”
“괜찮다니 다행이군, 앞으로 내가 관리하는 한 그렇게 인생 망쳐버리는 년 나오게 하면 너도 인생 망치는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싸구려 회복, 해독 포션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구해다 줄 테니까 애들 잘 먹이고 잘 치료해줘. 아 싸구려라고 오해는 하지 마라. 그냥 맛이 개 같이 없는 거뿐이지 성능은 확실하고 부작용도 없으니까 애들한테 잘 설명해. 혹시 싸구려라고 다른 이상 생길까 봐 거부하면 큰일 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방법이 있으면 애들 몸 좀 혹사 안 하고 돈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 바닥에서 저보다 더 애들 관리 잘해주는 포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그 말 내가 이 일대 뒤집어엎으면서 몇 번 들었을까?”
“주제넘었습니다….”
그렇게 그 남자의 소개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김판정입니다. 자여 인력 사무소의 소장입니다.”
“자여?”
“여자를 거꾸로 뒤집은 거뿐입니다. 제가 좀 무식해 놔서.”
“용케 그러고도 사업해 먹고 사네.”
“인력 사무소로 등록해 놨고 실질적으로 인력(여성)들을 고용주(남성)들에게 소개해 주는 인력 소개 사무소니까요.”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루스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김판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미 한정식당에 우리 두 사람이 불려가는 것 까지는 알겠어. 그런데 무슨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야?”
“어…. 그러니까.”
“누님!”
김판정이 이루스를 향해 무슨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으니 갈프가 그에게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 예 누님. 그러니까 지금 두 분, 누님이 꾸미고 오신 건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한 분은 자신에게 없는 남성적인 면모, 즉 보이쉬를 첨가해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했고 한 분은 강인함에 숨겨져 있던 여성적인 매력을 듬뿍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 분 다 표정하고 풍기는 기운이 좀….”
“쉽게 말해.”
“솔직히 놀티아 형님이 여자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두 분 모두 기운들이 너무 강해서 안꼴려요!”
“…….”
“…….”
지크리스와 이루스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거 화를 내야 하는 건가 하고 고민을 하고 있으니 김판정 다급한 말이 계속 들려왔다.
“아이고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 기준으로 말하는 겁니다. 여기 계시는 갈프 형님이나 놀티아 형님은 다른 세계에서 오신 거잖아요. 그러니 기운이 좀 강해도 두 분을 보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전 그냥 겁만 난다고요. 안 서요. 안 서!”
“아….”
“음….”
김판정의 말을 듣고 보니…. 이래서는 들어가자마자 아니 입구에서 바로 돌려보내질 판이었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김판정, 더 정확히는 이곳의 남자를 통하여 자신들이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대략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그 지랄을 하고 다녔는데도 남자들이 안 꼬이더라.”
지크리스와 관광을 하면서 제법 꾸미고 다녔는데도 그 흔한 헌팅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의식 과잉이 아니라 지크리스의 미모도 이곳 기준으로는 대단했고 이루스도 자기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꽤 미모가 물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남자가 꼬인 것인 도적단 단원들이 철판 불고깃집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추근거린 일이 전부였다.
“그 뭐냐…. 기운을 좀 어떻게 하시고, 미소, 미소 좀 지어 보세요. 지금 옷만 잘 입었지 두 분 다 전투하러 나가는 장군처럼 근엄하게 앉아 있다고요.”
이루스도, 그리고 지크리스도 최악의 관문 앞에 다다랐다.
자신 안에 남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여성성을 지금 뿌리 끝까지 전부 들쳐서 내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