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69화, 사전 준비
간밤에 일어난 일은 속이 시원하다 못해 솔직히 오랜만에 몸도 풀고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기리란 것은 생각지 못하였다.
기플과 그 일당들이 쓸데없이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고 또 어찌 보면 어제의 시비와 공격 역시 그들이 먼저 시작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만 벌어지지는 않는 법이고 난 지금 지크리스와 함께 놀티아를 따라 기플 녀석들을 이끄는 간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야기가 잘 안 됐나 봐?”
“응? 아아…. 안됐다고 해야 하나 잘 됐다고 해야 하나….”
“무슨 대답이 그래 잘 됐으면 잘 된 거고 안 됐으면 안된 거지.”
“음….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이게 뭐랄까…. 그 기플쪽 간부가 생각보다 좀 이상한 분이라서 말이지.”
“이상한 사람?”
“아…. 설명하기 힘든 분이야. 가서 직접 대면해 봐. 이번 일로 그 사람이 화가 난 건 아닌데. 기플 이 그냥 어중이떠중이도 아닌데 그 박살이 났으니 녀석을 그렇게 만든 년 얼굴을 좀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 뭐 별일 없을 거 같네.”
“너도 가끔 보면 참 속이 편하다니까?”
“나도 일단 간부거든? 그리고 오늘은 제대로 도적단 복장도 하였으니 꿀릴 게 전혀 없다 이거야.”
“알았다. 알았어. 다 왔다. 이곳이야. 저 문으로 들어가서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기다리고 계실 거다.”
“넌 안가?”
“솔직히 그분 만나는 거 좀 꺼려지거든, 내가 속창이라는 이명이 있다면 그분은 신창이라는 이명이 있어. 창을 아주 귀신같이 쓰는 분이야. 성격 말고 실력은 내 본보기기도 하지.”
“창 실력이 대단한가 봐?”
“그럼. 날아가는 파리 날개도 도려내는 분이야.”
“음….”
대단하긴 한데. 왜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지모르겠다.
어쨌든, 놀티아의 안내를 받아 건물의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우릴 쳐다보는 건달과 같은 눈빚을 한 도적들을 지나 2층으로 향했고 그곳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방에 노크했다.
똑똑
그러자 방 안에서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가벼운 듯하면서도 뭔가 기운이 서려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들어와 열려 있어.”
끼익
문으 열고 들어가니 도적단원들의 소굴이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게 꽃이 있고 잘 꾸며져서 깨끗하고 청결한 고위급 인사의 집무실과 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자리에앉아 있는 남성은 노란 두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다른 도적단과는 확연히 다른 자신만의 색감을 가진 갈색과 노란색이 적절히 조화된 색다른 모습의 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보면 다른 도적단원이 이곳에 침투해 있다고 오해를 할 판이었다.
“당신이. 기플 녀석들 간부야?”
“뭐 그렇지. 그러는 넌 기플 녀석을 박살 낸 장본인이고?”
“그래. 우르자인 조 소속 간부 이루스야. 이곳에는 휴가차 온 거고.”
“어휴. 진짜 간부를 건드렸네? 멍청한 새끼가 따로 없다니까. 아! 그래그래. 이건 빼박 내 쪽에서 잘못한 거네. 시벌…. 내가 정중히 사과하지. 그리고 직접 책임지고 기플이랑 아랫것들 단속하고 조져둘 테니. 이 정도로 정리하는 게 어때?”
“지금…. 불러놓고 한다는 말이 그거야?”
간부가 부른 상황이었다. 이것은 반쯤 싸움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여기서 그렇게 하지. 라도 대답하면 끝이었을 텐데 내 뇌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 건지 황당함을 느끼며 저리 질문하니 그 남자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아니.뭐 그럼 내가 싸우자고 부른 줄 알아? 잘잘못을 한 번 따져 보고 그 안에 문제가 있으면 조율을 해보자고 부른 거뿐이라고. 아이고 내가 좀 이렇게 생기긴 했지만, 계산은 아주 철저하단 말이지. 사람이 말이야 싸울 생각만 하면 쓰나? 말로 해결이 가능한 건 말로 해결을 해야지. 문명사회 사람이 야만인처럼 그게 뭐야?”
“음…. 어…. 그…. 그래”
분명 저 남자가 야만의 세계에서 왔고 내가 이 문명사회의 인간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정체성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저 남자의 화술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래 그쪽도 소개했으니 이쪽도 소개해야지.”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이런 그러면 쓰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예의 밥 말아 처먹은 새끼라고. 그런고로, 잘 부탁한다. 에탄 조 소속 간부 신창 스파르탄 카이저다.”
“이름이….”
“뭐? 왜? 뭐!”
“아니…. 멋지다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이름이 또 기깔나지.”
“어음…. 그러니까. 어…. 잘 부탁한다. 신창 스파르탄 카이저.”
“아니, 아니 신창 스파르탄은 이명이야. 카이저가 이름이라고.”
“그래….”
뭐가 이름이어도 낮이 뜨거워지는 이름이라 부르는 사람도 민망할 지경이다.
“이명 참 멋있네.”
‘미친?!’
옆에서 들려오는 지크리스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싸늘하게 식은 눈을 하고 있으니 지크리스는 그 표정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는지 질문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겁니까?”
“네 취향 좆나 이상하다잖아.”
내 생각을 정확히 읽어낸 듯한 카이저의 말이 흘러나왔다.
속으로 정말 저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뜨끔해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짜입니까?!”
“아, 아니라고! 그럴 리가 있니…. 넌 왜 이상한 소리를 해서 지랄이야!!!”
“어허? 이상한 소리라니. 내가 독심술 레벨 MAX 찍은 몸이야. 어디서 거짓부렁을 늘어놓는 거야? 지금은 또 이 병신은 뭐 하는 놈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네?내가 병신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해두지.”
더 대화를 나누었다가는 뇌가 이상해 질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질러 대화를 끊어 버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시끄러워! 아무튼, 볼일은 이걸로 끝난 거지?”
“오냐. 끝났다. 그래도 애들 폭주 막아준 건 고맙다. 조만간 내가 술 한 번 사지.”
“필요 없으니까. 난 이제 갈게. 알았어?”
“오! 알았어, 알았어. 츤데레처럼 굴겠다. 이거지? 야. 이걸 어떻게 해야 술을 멕이지?”
“간다!!!”
지크리스를 이끌고 그의 방문을 부서지라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붉어진 내 옆으로 다가오는 놀티아, 그가 입을 열고 다 안다는 듯이 지껄였다.
“말했지? 이상한 분이라고.”
“너도 닥쳐.”
“그래….”
그와 대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온몸이 다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꼈다.
지크리스는 뭐가 유쾌한 건지 입을 꿈틀거리며 웃음을 참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얄미운 그년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강하게 찔러준 뒤 고통에 윽!소리를 내는 그녀는 두고 먼저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 언니 장난, 장난이야 장난!”
“이봐 이루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줄 말이 남았어.”
“후…. 뭔데.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이면 여기서 하고.”
“아니. 중요한 거야. 일이야기라고.”
그 말은 제이슨이 지시한 일, 즉 에탄 두령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뜻이었다.
간부 카이저와의 대화로 끓어 오른 혈압을 진정시키며 놀티아를 따라 이동한 곳은 조용한 카페였다.
놀티아와 카페, 별로 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쳐부수듯 그는 능숙하게 들어가 점원과 수다를 떨더니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여기 앉아. 조용하고 대화하기 딱 좋은 곳이지.”
“음…. 저랑은 별로 안 맞는 곳인 듯합니다.”
“일단…. 오래 있진 않을 테니까 자리에 앉자.”
“네.”
그렇게 주문한 커피를 점원이 가져다주자 놀티아는 설탕 한 숟가락도 넣지 않은 그 검디검은 커피를 조금 들이켜며 부드럽게 표정을 풀었다.
“음 좋아. 아주 좋아. 아무것도 안 넣은 블랙. 이거야말로 커피지.”
“이곳 사람 다 되었군.”
“뭐. 이래저래 물들어 가는 중이지. 특히나 카이저 간부가 아주 여기에 완전히 물들었잖아.”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느낀 점은 전혀 저쪽 세상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지구에 물들었다는 기분이었다.
“잡담은 되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참 그렇지. 에탄 두령이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지 알아 냈어.”
“말해봐.”
“이곳 가까운 그곳에 있는 고급 한식점이야. 돈 많고 높은 분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더군, 그곳에서 대통령 보좌관을 만난다고 해.”
“대통령 보좌관 한석수….”
“아는 사람이야?”
“이름만 알아. 어쩌다 뉴스에서 언급되는 걸 대략 기억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군.”
설마하니 높으신 분이 대통령 보좌관일 줄 몰랐는데, 여기서 참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대통령 보좌관 한석수, 이름과 지금 그의 나이가30대 후반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 미지의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대통령의 이름은 알아도 대통령 보좌관의 이름까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지 않은가.
나 역시 뉴스를 통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인물이었다.
내가 과거 이 지구의 한국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아쉽군. 뭔가 아는 것이 있다면, 차라리 그쪽을 공략해 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건만.”
“강한 에탄 두령보다는 약한 대통령 보좌관을 노린다. 현명한 판단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약한 만큼 보좌관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보호받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계획은 그대로 진행하는 건가? 그 수미한정식당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되고 특별한 회원이 아니면 출입조차 힘든 곳이야. 일하는 사람들 역시 철저하게 관리를 받는 곳이라 전혀 빈틈이 안 보이는 곳이었어.”
“녹음기를 설치하는 것은 물 건너갔네. 어때? 여자는 부를 거 같아?”
“다행히도 여자를 부른다고는 해. 인근 주점이랑 빠를 다니면서 알아본 결과, 물 좋은 20대의 여성, 터치 가능 뭐, 뭐 그런 조건으로 이미 사람들이 여자들을 물색하는 중이라 쉽게 알 수 있었어.”
“그럼 방법은 그거 하나뿐이네. 그들이 부르는 여자를 중간에 빼돌리고 우리가 그 여자로 침입해 들어가는 방법 말이야.”
“확실히. 그 방법 말고는 이제 다른 방법이 없긴 하네. 그럼 어떻게? 지금부터 움직일까?”
“그래. 움직이자. 이 일대에 여자들 관리하는 포주들 싹 다 털어.”
“넌 뭐 하려고 나한테 시켜?”
“변신하러 가야지. 나랑 얘랑.”
고개를 팩 돌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는 지크리스, 마치 나까지 가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그런 그녀의 이마를 살며시 매만져 주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싸늘하게 속삭여 줬다.
“왜? 의리 없이 나 혼자 보내게?”
“아…. 하하…. 그, 그런 건 아니고요.”
“가자. 일단 잘 하는 헤어숍부터 들려서 머리부터 붙이고 이것저것 다 꾸며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해야지.”
“사, 살려줘. 언니!!!”
난 그녀의 외침을 무시하며 완강히 버티는 그녀의 팔을 잡아끌고는 카페를 나와 헤어숍으로 직행했다.
몸이 근질거리는지 헤어숍에서 계속 움찔움찔하는 지크리스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기도 하다.
그렇게 나와 지크리스는 머리를 길게 이어 붙여서 긴길고 아름다운 웨이브 진 금발 머리를 가진 여인으로 탈바꿈하였다.
내 경우는 원래 머리가 길어서 따로 붙일 필요는 없고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도록 관리를 받아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다음은 피부 미용을 위해 각종 마사지와 여러 가지 아로마 테라피 등등 아주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온몸에 호강이란 호강은 다 시킨 후 여관에 돌아왔다.
“으어어어...”
침대 위에 대자로 뻣은 지크리스, 아니 지크리스였던 여자. 청조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보이는 여성으로 탈바꿈한 그녀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젠장할….”
“그런 얼굴로 그런 말 하지 마라. 안 어울린다.”
“언니도 그런 얼굴로 쌍욕 하면서 뭘 그래.”
“난 뭐 빻았는데 어때.”
“얼씨구? 어디 빻은 년들 다 죽었어?”
“후후후 이젠 내 말 다 이해하고 너도 많이 물들었네.”
“언니랑 같은 방 쓴지가 언젠데 이젠 대부분 다 알아들어.”
그렇게 작전 개시 하루 전날의 밤이 되어 나와 지크리스는 전의를 불태우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에탄 두령과 대통령 보좌관이 어떤 내용을 주고받는지 확실히 알아내야 했으니 오늘은 일찍 잠을 자야 했다.
최고의 몸 상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