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6화, 거리에서 만난 인연
“끄어으으으으!!!”
고환에서 손을 떼 주자 제 자리에서 점프하다가 바닥을 구르는가 하면 엄청난 격통이 몰아치는 모양인지 아주 발광을 떨고 있다.
뭐 하는 어중이떠중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강하게 잡은 거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아파할 정도라면 그 레벨이 대충 예상이 갈 정도다. 급소라 레벨과는 아무 상관이 없나?
아무튼, 놈과 똘마니들은 삼류 악당들의 주요 대사인, 두고 보자고 하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가게에서 쫓겨나가야 했다.
하긴…. 간부인 나에게 두고 보자니 그런 말을 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한바탕 난동이 있긴 했지만,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맛있는 음식도 대접을 받았고, 별로 알리기는 싫었지만, 결국에는 철판 아주머니에게 도적단 일원이 된 일도 실토를 해야만 했다.
걱정시키기 싫은 것은 서로 마찬가지이다. 아주머니 역시 내가 고생이 많았다면서 눈시울을 훔쳐 주셨다.
아저씨는 가다가 배고플 때 먹으라며 소 불고기 도시락을 챙겨 주신다.
정말이지 이곳에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을 꼽으라면 내 열 손안에 들어갈 분들이 아닐 수가 없다.
“맛있었지?”
“응 정말 대단한 가게네. 옆에서 누가 지랄을 해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어.”
“하여튼 말이야. 그놈들 우리 단원이라는 말이지? 이거 제대로 한 번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음…. 언니랑 잘 아는 가게니까 이제 건드리지 마라. 뭐 그 정도만 하면 원만하게 끝날거 같은데. 내가 적을 만들고 만들다가 한 단체에서 소외되고 파문당한 일이 아직도 좀 마음에 걸려서 일을 크게 만들자고는 못 하겠어.”
“그럴까? 하긴…. 똘마니들만 보낸 걸 봐서는 상대는 보조 간부나 간부급이라 예상되니까 서로 대화만 잘 통하면 원만히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지크리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가게를 나와 먹거리 골목을 나가는 길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정면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지크리스에서 걸어오는 대상으로 천천히 옮겼다.
얼굴에 나 지금 화가 나 있고 심술쟁이야! 라고 써 붙인 듯한 한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말을 걸었다.
“저 가게에서 나온 거야?!”
“그런데요?”
“저 집 맛도 없고 재료도 다 싸구려만 취급하는 곳이라고! 나중에 엄한 꼴 당할까 봐 미리 이야기해 주는 거야! 저런 가게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뭐라고요?”
“아무튼! 경고하는데 저 가게 다시는 가지 말라고! 흥!!!”
자기 할 말이 끝난 그녀는 그렇게 등을 돌려서 횅하니 골목 어귀로 사라져 버렸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있다가 나와 동시에 말문이 열린 지크리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미친년인가? 뭐하자는 거야?!”
“참아. 아무래도 저년이 그 닭갈비 집 주인인 모양이야. 아까 가게에서 도적단이 행패를 부렸는데도 식사를 한 손님이 나오니까 애간장이 다 타는 모양이네.”
“우리가 도적단 옷을 입고 있었어도 저 지랄을 했겠어? 도적단하고 손잡았다고 자기가 무슨 감투를 썼다 생각하는 전형적인 소인배네 저거….”
이를 강하게 갈아 끄드덕! 소리를 낸 지크리스는 쥐고 있던 주먹을 피며 열기를 가라 앉혔다.
만약 그녀를 말리지 않았으면 오늘이 바로 닭갈비 사장의 제삿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 된 격이지만, 이곳은 저쪽과 다르게 아직 법이 살아 있는 곳이다.
지크리스는 몰라도 이곳의 인적이 남아 있는 나로서는 큰 사고에 휘말렸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이곳 사람들에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날 봐서 참아. 넌 괜찮아도 언니는 이 나라에 내 모든 정보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어. 사고에 휘말리면 언니는 정말 곤란해져.”
“아…. 그럴 수도 있네. 후…. 알았어. 그래도 저년 저거 어떻게 손을 봐 둬야 나중에 뒤탈이 없지 않을까?”
“일단 네 말대로 이 일대를 관리하는 간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 간부가 누군 줄 알고?”
“너 오늘은 술 적당히…. 아니 마시지 마라?”
“아…. 또 거기에?”
“그래. 놈은 그래 보여도 정보통이고 소식도 많이 접하는 놈이니까. 아니면 그놈 의동생에게 물어봐도 되지 뭐.”
“에이 기분 잡쳤네. 맛있게 밥 먹고 이게 뭐람.”
“후후후. 저런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살기 좋은 곳이야.”
“뭐…. 평화로운 곳이란 것은 인정이야. 그래도 그렇지 저건 좀….”
“맞아 심하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다스리기보다는 자신이 못난 것이 남의 탓이라는 삐뚤어진 생각하는 지크리스의 말마따나 전형적인 소인배다.
아니 어찌 생각하면 소인배보다 더 못난 초 소인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 한국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다. 이곳에서는 저런 년도 인권이 있고 그 개인적인 취향, 인격을 존중해 줘야 했다.
더럽게 짜증 난다 할지라도 나 역시 그러한 인권이 있고 인격을 존중받으니 쉽사리 바꿀 수 있는 체제는 아니었다.
‘내가 저 곳이 더 편하고 머리가 덜 아프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줄이야.’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힘이 모든 것을 정하는 권리와 약자는 당하고 강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단점 등등이 있으니 어디가 더 좋다고 따지는 것은 지금으로선 어불성설이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우리 뭐하지?”
“여기서 뭐 더 즐길 게 남아 있어? 밤 될 때까지 시간 죽이다가 놀티아랑 합류하는 게 가장 좋아 보이는걸?”
“얘가? 너 한국을 너무 무시하는구나.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즐길 거리는 넘쳐 나는 곳이 또 이곳이란다. 언니만 믿고 따라와.”
“어? 어어! 어디 가는 거야! 언니!”
그렇게 지크리스를 이끌고 백화점이 있던 상가를 지나서 유흥단지와 조금 맞물려 있는 청년들이 즐기는 거리에 들어섰다.
휴대전화 판매장과 더불어 각종 액세서리, 그리고 게임 플렛폼을 팔고 있는 가게 등등 여기에 헤어숍과 네일아트를 해주는 가게 등등 폭이 넓은 가게가 만연한 젊음이 넘치는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 이, 이건 또 무슨…. 허…. 뭐가 이렇게 사람이 많담?”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열기에 지크리스는 당황한 눈치였다.
일요일 점심이 지난 시간이면 이러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일상이나 마찬가지지만 지크리스가 보기에는 정말 색다른 광경일 것이다.
“왕도랑 비교하면 어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왕도에 이런 거대한 건물들이 즐비한 건물의 숲이 있을 리가 없잖아. 햐! 정말 눈이 돌아가 버릴 거 같네. 어딜 봐도 사람들이 즐비하고 어딜 봐도 신기한 것투성이잖아? 언니 말 듣고 여기 따라오기 정말 잘 한 거 같아. 고마워 언니!”
“고맙기는. 자 돌아다녀 볼까? 구경은 공짜라고.”
“그 말 마음에 들어!”
그녀도 슬슬 아이쇼핑이라는 것에 맛을 들리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버릇돼서 계속 같이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면 어쩌나 미리 걱정도 들지만, 뭐 어쩌랴 제이슨의 허락만 있으면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텐데 말이다.
좌앙!!! 좌아아앙!!!
일렉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양이다.
소리에 이끌린 지크리스는 바로 그곳으로 가자 했고 처음 들어 보는 일렉기타 소리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사람들 틈에서 지지 않고 크게 노래하는 한 여성 보컬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크리스 역시 흥이 나는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와후!!!”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이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버스킹 일원들이 선사하는 노래에 흠뻑 빠져 들었다.
“우신이?!”
“어라?”
지크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 역시 신나는 것을 자제하며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휴일에 애인과 함께 나온 듯한 잘 차려입은 남녀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불연 듯 머릿속에 강렬하게 떠올랐다.
“기우 선배…. 그리고….”
“우신아! 언제 온 거야? 왔으면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세연아.”
기우 선배와 세연이, 이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쉬는 날 데이트를 위해 나온 모양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건지. 지금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좀 껄끄러워서 일부러 피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 말이다.
“아. 미안해. 이번에 넘어온 건 일이 있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괜히 시간 내기 힘들 수도 있어서 일부러 연락하지 않은 거야.”
“그래도…. 넘어왔으면 좀 알려주지 그랬어. 얼굴이라도 한번 보면 괜찮잖아.”
“미안해 세연아 내가 생각이 좀 짧았다.”
“으응- 아니야. 이렇게 얼굴 봤잖아. 그런데 버스킹 음악 듣고 있는 거야?”
“응. 점심을 먹고 잠시 시간이 좀 남았거든.”
“아…. 그렇구나.”
좡!!!
마지막인듯한 느낌의 일렉기타 소리가 들려오고 노래가 끊어졌다.
버스킹 구성원들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정리가 시작되었고 다음 공연 장소로 가야 하는지 서둘러 장비를 챙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 끝났구나. 구경 끝난 거 같은…. 이분들은 또 누군가요?”
“아. 지크리스는처음이지? 인사해. 언니가 이곳에서 사무직 회사에 다닐 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야. 이쪽은 나보다 위 기수 선배였던 박기우 오빠랑 이쪽은 내 동시였던 유세연이야. 오빠. 세연아 이쪽은 내 부하인 지크리스라고 해요.”
처음 만난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은 좀 낯설다. 그래도 만났는데 아무사이도 아니라며 매몰차게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대충 양측을 소개했다.
머뭇거리면서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하기야 내가 어디 속해 있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 있는 지크리스 역시 어렵지 않게 도적단원이라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두 사람이 머뭇거리고 있자 지크리스가 먼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손을 내밀어 한 명씩 악수를 한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평소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발휘해 주었다.
“지크리스입니다. 여기 있는 이루스 언니 부하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루스. 아... 그렇지... 우신이는 이제 이루스지.”
“편한 대로 불러도 좋아요.”
“아니지…. 이곳에 돌아오기 전에는 혼란스러운 부분을 남기면 안 되지. 앞으로는 이루스라고 부를게. 우신아.”
“나 역시…. 우신이라고 못 부르는 것이 좀 마음 아프지만, 돌아올 때까진 어쩔 수 없지.”
“두 사람 다 편한 대로 해도 좋아. 내가 그 정도로 헷갈릴 년도 아닌데 뭐.”
“알았다. 그리고 지크리스씨 내가 우신이, 아니지 이루스의 친한 오빠와 같은 선배 박기우입니다. 앞으로 이루스를 잘 부탁해요.”
“전 이루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세연이예요. 앞으로 이루스를 잘 부탁드려요.”
“아이, 참 제가 신세를 지고 있는 것요. 그래도 앞으로 언니를 제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걱정들 하지 마세요.”
“….”
솔직히 두 사람을 보는 것이 껄끄러웠다.
내가 저쪽에 잡혀가서 그 고생을 할 때 두 사람은 눈이 맞아버렸으니 말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내나 무슨 기분이 들지 몰라 한 편으로는 공포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만나고 또 대화를 나누니 두 사람과 만난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지크리스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대화는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이젠 두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도록 내가 속으로 빌어줄 수 있을거 같았다.
과거의 인연이 이젠 내 손을 떠났지만, 두 사람과 나누었던 쌍방의 작은 사회적 우정은 아직 남아 있다.
이것이 깨지지 않고 유지 되었다. 내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잃기 전에 남아 있는 것이라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럼 우린 가볼게. 일 보고 시간 남으면 꼭 연락해줘.”
“그래. 휴대전화 번호 아직 그대로지?”
“ 응 너 때문에 절대 안 바꿀 거라고. 꼭 해야 한다? 오늘 밤에도!”
“아휴 알았다. 알았어. 누가 보면 내가 네 애인인 줄 알겠다?”
“빌려줄까? 오늘 하루는 대여 가능한데.”
“오빠!!! 그게 무슨 뜻이야!!!”
“아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두 사람이 너무 친하길래 내가 셈이 나잖아.”
“나 참…. 오빠 넉살은 여전하네. 그럼 세연아 우리도 갈게. 꼭 연락할게.”
“응! 밤에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꼭!”
“그래.”
그렇게 두 사람과 헤어져 다시 젊음이 숨쉬는 거리에 몸을 묻었다.
아까보다 더욱 홀가분해진 좋은 표정으로 말이다.
옆에서 지크리스가 팔짱을 껴왔다. 왠지 여자끼리지만 나쁘지 않은 것은 이 젊음의 분위기 덕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