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4화, 이세계 관광. (63/70)



〈 63화 〉64화, 이세계 관광.

욕이란 욕을 전부 본 하루가 지나 실로 오랜만에 고향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저번엔 아침 일찍 넘어와 하루가 가기 전에 돌아가야 해서 절대로 해볼 수 없었던 일.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새삼 낯설게 느껴질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점점 이곳이 아닌 저쪽에 속하게 되는 건은 아닌지 이제 불안감도 들 정도다.

“끄응! 그래서. 오늘을 뭐할 거야. 언니?”

능청스럽게 기지개를 켜며 방금 내가 준 벌을 별거 아니라는 듯 넘겨 버리는 지크리스.
힘들다. 힘들다 내숭을 떨더니 결국, 벌이 끝나니 시시덕거리며 답지 않게 귀여운 척을 한다.
아니 솔직히 저런 반전 매력이 있어서 귀여움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친한 사람들만 볼  있는 그녀의 한 부분일까?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았어.  두령의 지시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일 줄도 몰랐거든.”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고 지시 사항을 달성하면 바로 되돌아가면 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한국의 높으신 양반이 화요일에 방문한다는 것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니 지시 사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2일이라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본래 목적처럼 관광이나 할까? 시간이 남으면  세계를 소개해 주기로 했잖아.”

“관광 좋지. 나야 이곳을 잘 모르니까 언니 옆에 착 달라붙어 따라다닐게.”

“너 잘 기억해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존대해야 한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가 공사 구분은  확실하다니까.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언니.”

“부, 부탁은 무슨 부탁! 또 한 번 그러면 너 진짜 좆뺑이 시킨다고 내가 그랬지!”

“이크크! 알았다니까. 하하”

몸을   섞자마자 급격하게 가까워진 지크리스, 그녀가 과연 취한 척을 한 건지, 아니면 진짜 취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취해서 한 행동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바로 무릎부터 꿇고 빌고 또 비는 모습을 보이며 내가 크게 화를 내지 못하게 미리 차단해 버리는 눈치를 보면, 취한 척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일에 크게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번엔 넘어갔지만, 만약 또 같은 상황이 온다면 보지를 걷어 차버릴 것이다.
무릎으로 정 중앙을 강하게 차올리면 생각 이상으로 충격이 있다. 학창 시절 장난으로 당해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아무것도 아냐.  씻었으면 나와,  씻을 거야.”

“같이 할까?”

“씁!”

“아하핫!”

아무튼, 지크리스와 함께 모텔에서 체크 아웃을 한 뒤(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텔 직원을 한껏 노려봐 주었다.) 도심으로 나왔다.
아침, 일요일이라 출근길의 러시아워는 없지만, 다른 이유의 러시아워가 펼쳐지고 있다.
놀러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는다.
다들 안전불감증인 건 아닌지 의심이 되는 현상이다. 지금 이게 침략당한 세상의, 도시의 모습이란 말인가?
아마 북한과 남한도 이런 느낌이겠지? 처음에는 대차게 싸우고 휴전하고 그러다가 전쟁 중인 것을 잊어버리고 주변에서만 난리 치는 그런 상태.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상황이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이들이 침공하여 게이트를 열어 우리들의 지구로 들어왔지만, 도적단 초기 상황에서 강간이나 폭력 사태가 일어나긴 했어도 도적단 자체가 직접 죽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수 없지만, 죽은 사람들은 소환된 마수가 변이하는 과정에서, 또는 변이한 마수에게 사고로 사망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저쪽에서 마수를 조금씩 보내 변이 후 사냥하는 것이지만, 아마 이곳에는 그렇게 자세한 것까지 알리지 않았을 공산이 컸다.
열린 게이트로 마수가 넘어오니 자신들이 사냥해 주겠다. 뭐 이런 식으로 구슬리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그렇게 했으니 내 조국에서도 이들을 크게 적대하지 않고 살살 달래고  회유하려고 하는 것일 테지.
납치되어 저쪽으로 넘어간 나 같은 사람들을 구출한 생각 따위 높으신 분들의 머릿속에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이들의 앞에서 알랑방귀나 실컷 뀌고 떨어지는 떡고물로 배들을 채웠으리라.

“생각하면 할수록  받네.”

“어, 뭐라고 언니?”

“아무것도 아니야. 건너자. 초록 불일 때 건너는 거야. 자동차가 빨라서 잘못하면 위험하니까  지켜.”

“저…. 철 마차 말하는 거지? 엄청 빠르네.”

“뭐…. 에탄 두령이 여기 오자마자 경찰차 하날 작살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는 걸 봐서는 정면으로 부딪쳐도 차가  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우리야 안 다쳐도 차 안의 사람은 다치잖아. 도적단이 침공한 입장이니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는 게 좋아. 내가 이런 걸 또 챙겨야 한다는 게 좀 슬프긴 하네.”

“아아…. 그렇지. 이해했어.”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하고 충돌할 수도 있으니 이쪽으로 건너야 해.”

“엉.”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건널목을 건너는 지크리스의 신문물에 취한 듯한 초롱초롱한 눈이 참 인상적이다.
번화가에 들어서니 그녀의 눈빛이 더욱 빛이 났다.
남녀가 짝을 이루거나 남남남, 또는 여여여, 등등의 삼삼오오의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풍경,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을 보는 것이  또한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 그러니까 여기가 왕도 같은 곳이지?”

“응? 아니 왕도라면 수도라는 거잖아. 여긴 수도권이긴 한데 좀 구석진 곳에 있는  도시쯤으로 보면 될 거야.”

“미친…. 왕국의 거대한 건물들도 이렇게 거대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런데 도시라고? 언니가 사는 세계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거야.”

“마법과도 같은 과학의 산물이니까.”

“과…. 학?”

“그런 게 있어. 나도 과학 쪽은 문외한(門外漢)이라 설명하기 힘들어.”

“쩝….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건물, 그리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인데 어떻게 그리 맥없이 침공을 당한 거지?”

“이 세상은…. 적어도 이곳 한국은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거든, 그리고 모든 나라가 서로 병력으로 하는 전쟁을 안 한 지도 오래되었어. 우리 도적단이 레벨의 힘, 그리고 수련으로 성장한 육체의 힘으로싸웠다면 이곳은 발달한 과학과 비상한 작전의 머리로 싸우는 곳이거든.”

“음…. 언니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가정해 보자면, 입으로 구워삶을 수 있으니 우선은 주먹으로 해결하기보단 대화를 청했다?”

“그거야. 내 생각하고 정확히 일치해. 덕분에 납치당한 나 같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나가리 신세가 되었지만.”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왕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야. 기사단은 절대 소, 약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도 말이지. 씁쓸하기만 해.”

“….”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우리가 향한 곳은 나름 괜찮은 크기의 백화점이다.
도적단 아지트가 있는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번화가에 자리 잡은 백화점으로 이 일대에 딱 하나 있는 곳이다.
잡화, 귀금속과 고급 의류들도 즐비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의 저렴한 옷 역시 다 취급하는 곳으로 사내 동료들과 함께 자주 놀러 다니던 곳이다.
뭐…. 그래 봐야 박봉으로 비싼 제품들은 아이쇼핑만 실컷 하고 기껏 사는 것은 저렴한 곳에서 비싼 것과 비슷하게 나온 디자인의 옷들뿐이었지만….
괜히 생각하고 나니까 슬퍼진다.
지크리스는 이곳 역시 신기하게 두리번거렸다. 물론 신기하다고 두리번거렸을 뿐이지 그리 크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여자들 옷이랑 귀금속을 하는 상점인가? 이렇게 거대한 건물에 상점이 다닥다닥 들어와 있다니. 신선한 모습이야.”

“백화점이라는 곳이야. 네 말대로 여러 상가가 들어와서 자릿세를 내고 장사를 하지. 그리고  건물은 그런 상가에 확실한 손님들을 마련해 주는 상생 관계를 이루는 거지.”

“호오! 정말 흥미롭네. 상단들이 와서 구경하면 다들 자지러지겠어.”

“넘어올 수 있다면 말이지만…. 이미 왕국에서도 직접 손을 쓸 정도니 아마 어딘가 하나 정도는 넘어오지 않았을까?”

“그러려나?”

“일단. 우리 옷부터 사자.”

“옷을? 아니 왜? 굳이 그럴 필요성이 어디 있….”

“활동적인 옷으로 갈아입으면 더 관광하는 맛이 난다니까? 언니 말 믿지?”

“아니…. 믿지. 믿긴 믿는데….”

썩 유쾌해 보이는 모습이 아닌  보니, 지크리스는 이런 쪽으로 문외한인 듯하다.
하긴…. 여성이라는 성을 거의 반쯤 버리고 기사단에 입단한 이후부터는 몸을 꾸미는 것을 반쯤 포기했을 테니…. 어련할 것이다.
어쨌든, 지크리스는 마지못해 하는 표정으로 내 손에 이끌려 적당한 상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갈아입히기 인형 신세, 그녀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고소할 수가 없다.

“은니!(언니) 즈금!(지금) 무흐는!(뭐하는) 그으!(거야)”

결국, 이를 악물기까지 간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장난을 그만둔  그녀에게 사주려 한 옷을 건네주었다.
원판이 워낙 좋은 지크리스이기에 흰색의 민소매와 청바지로도 충분했다.
우정 커플이란 검은색 단어가 적힌 흰색 민소매, 그리고 체인이  달린 청바지로 마무리는 하니 조금 펑키한 느낌이 드는 친한 친구 같은  여자가 거울에 보였다.

“오…. 생각보다 편하네?”

“그렇지. 뭐 그냥저냥 입기 좋은 옷으로 골라온 거니까. 도적단 복장도 나쁘진 않은데, 밖의 사람들 봐봐. 다들개성적으로 입었긴 해도, 도적단 옷은 압도적으로 개성적이잖아. 사람들 시선이 모이는 게 좀 신경이 쓰여서 살 수가 있어야지.”

“음…. 확실히 시선이 좀 모이는 경향이 있긴 했지. 알았어. 언니 말대로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은 이 옷으로 생활하지 뭐.”

“비슷한 거로 3개 더 샀어. 남은 날짜 동안 갈아입으면서 저쪽에 가서도 쉬는 날에는 입고 생활하자.”

“그래도 될까?”

“간부 명령인데 누가 뭐래?”

“두령이 뭐라 할 수도 있지.”

“우르자인은 나한테 빚진거 많아. 그러니 괜찮을 거야.”

“대 두령은?”

“음….”

그렇네. 지크리스의 말대로 두령을 넘어도 대 두령이라는 산이 하나 더 버티고 있었다.
확실히  두령이 복장을 걸고넘어지면 좀 난감하긴 하다.

“그럼 제이슨  두령한테 내가 먼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이 옷으로 생활하는 거로?”

“좋아. 그거라면 문제없지.”

협의가 완료되고 원래 입었던 옷은 일단 작은 쇼핑백에 담아서 손에 들고 이동하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대로 어딘가에 잠적하고 이 옷은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긴 하지만…. 아직 반 인질 상태로 남은 회사 사람들이 문제라 몸을 함부로  수가 없다.
그나마 과거의 유산을 몸에 걸치니 이제야 위화감이 사라지며 내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 점차 가슴속 깊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음은 뭐할까?”

“밥 먹어야지.”

“이 세계의 식당….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 술은 괜찮았어. 정말 맛있더라.”

“점심나절부터 술은 자제하자?”

“아니 마신다는 뜻이 아니잖아. 언니야!”

“후후후”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를 지르는 지크리스를 외면하며 식당들이 몰려 있는먹자골목으로 향했다.
이곳은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거나 회식을 할때마다 자주 드나들던 가게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 뜻은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먹자골목 입장부터 그런 분과 맞닥뜨렸다.

“어머! 우신아!!!”

“철판 아줌마! 오랜만에요 잘 지내셨죠?”

철판  불고기 가게의 아주머니다. 가격이 싸고 1인분, 혼밥도 가능한 가게라 자주 애용했다.
친구가 없어서 애용한 것이 아니라 가끔은 혼자 밥을 먹고 싶은 날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애용한 것이다.
그래서 가게 주인아주머니와는 나름 단골이라는 느낌이 있어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가게도 골목 입구에 바로 있어서 회사와의 거리까지 가까우니 참으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던 가게였다.

“어이구! 걱정했다. 요즘 통 안 보여서 말이야. 그 뭐냐…. 괴물들? 괴수들? 그것들이 우리 우신이 잡아먹은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 하하…. 괜찮아요. 몸 건강히 잘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별고 없었죠?”

사실 아주머니 말대로 한 번 잡아 먹혔다가 구출 당한 몸이긴 하다.
말해서 좋을 건 없으니 조용히 숨기기로 했다.

“나야 뭐, 괴수들 나타났을 때는 잠시 장사 접고 있었지. 그런데 그 뭐야…. 페뭐 도적단? 그쪽이 우릴 보호해 준다고 하길래. 괴수들이 나와도 마음 놓고 다시 장사하는 중이야. 어머? 이쪽은  친구?”

“아 네. 지크리스라고 해요. 지크리스. 언니 아는 아주머니야. 인사 드려.”

“안녕하십니까. 지크리스라고 합니다. 언니 친한 동생입니다. 편히 대해 주십시오.”

“어? 어…. 그, 그래. 참 다, 다부진 동생이네 오호호호호”

지크리스의 다부진 인사에 아주머니는 잠시 당황했지만, 바로 태세를 바꾸어 웃는 얼굴을 하였다.
그러며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가게로 이끌었다. 아직은 한산한 가게에 자리를 하나 잡아준 아주머니는 식당의 요리사인 남편분에게 달려가 귀에 속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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