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60화, 저쪽으로
“너와 함께 할 한 사람을 대동할 수 있게 해주지. 그렇게 하면 의심을 좀 받을 수 있겠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네가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겠지. 아울러 놀티아와 접선을 해봐라, 내가 심어둔 사람 중에하나다.”
“놀티아요?”
“그래. 녀석과 면식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면식이야 있죠.”
뒷말을 흐렸지만, 제이슨의 다 알고 있다는 저 썩은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대로 저쪽에 제이슨의 눈과 귀가 제법 많던가, 아니면 그 놀티아가 입을 가볍게 놀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잘 되었군. 그에게 자세한 상황을 듣고 행동에 임하도록. 누가 뭐라고 해도 저쪽은 네가 살던 세상이다. 우리 중에 그곳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다. 이번 일 잘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에탄 녀석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도적단에 해가 될 만한 배신행위를 획책하는 중이라면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
“알았어요. 그 높은 양반과의 대화 내용만 알아 오면 되는 건가요?”
“그래. 다른 건 필요 없어. 그리고 혹시 내용을 듣기도 전에 들켰다면, 놈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봐라. 죽기 살기로 널 잡으려 하거나 죽여서 입을 막으려 한다면, 에탄 그놈이 뭔가 꾸미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될 테니 말이다.”
“알았어요. 그럼 지시할 내용은 그게 끝이죠?”
“그래 돌아가 봐도 좋아.”
“그럼.”
제이슨의 방을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의 한 곳을 차지한 거대한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칼파가 방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칼파”
“음?”
눈을 뜨고는 내 부름에 응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
“오셨군.”
“한동안은 이 좁은 곳에서 지내야 하지만, 이해 좀 해줘. 신입인 것을 떠나 자이언트의 방을 준비하는 것은 꽤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야.”
몸집이 워낙 거대한 그녀이기에 동굴 한쪽에 새로이 방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녀를 위해 문도크고 침대도 크고 방의 크기도 큰 그런 방으로.
다만, 당장에 나와 같은 방을 써야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기준으로 그리 큰 방도 아닌데 같이 지내는 사람도 있으니 답답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그런 일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노예 생활을 할 땐 몸이 겨우 들어가는 우리 속에서 갇혀 지냈는데 이정도야. 침대에 오르는 건 힘들어 보이니 바닥에서 자도 괜찮겠지요?”
“상관없어. 방 밖으로 나가는 행동만 자제해. 어떤 멍청한 년이 야밤에 돌아다니는 바람에 지금 여성들의 방이 모여 있는 이 구역의 야간 순찰이 강화되어 있으니까.”
“알았어요.”
대답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바닥에 앉아서 명상에 들어갔다.
자이언트는 매우 침착하고 또 냉정한 성격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하는 종족이라 한다.
속에서 끓어 넘치는 파괴적인 본성과 호승심을 잠재우기 위해 언제나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은 지금 그녀가 호승심을 느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길게 대답하는 경우야 적고 그나마 지금은 말이 좀 트였지만, 아직도 대화를 세 번 이상주고받기가 힘들다. 그러니 더욱 속내를 알 수가 없는 여성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기분 좋게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슬며시 눈을 뜨니 눈앞에는 익히 알고 있는 부드러운 미소의 남자가 서서히 얼굴을 내리고 있었다.
“놀티…. 으읍”
놀티아의 얼굴, 그가 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바닥에서 자고 있어야 할 칼파는 보이지 않았고 또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그의 얼굴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감미로운 키스,여성을 잘 다루는 그 다운 키스가 내 입 안을 마음껏 휘저어 간다.
가슴으로 올라온 손이 서서히 자극을 시작했고 자연스레 벌어지는 내 허벅지는 마치 내 통제를 벗어난 기분이었다.
키스하던 그의 입이 떨어졌다. 그가 내 귀에 뭐라 속삭이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윽고 그의 넘치는 활력이 느껴지는 것이 내 내부를 향해 들소와 같이 찔러 들어오려는 찰나였다.
“으학!!!”
깨어났다. 방금 본 모든 것은 다 꿈이었다.
“하?”
잠시 뭐가 뭔지 이해하지 못해서 몸이 굳어 있었는데 지금 내가 어떤 자세로 자고 있었는지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마치 내위에 올라온 남자를 안아서 받아들이는 듯한 자세였다. 허벅지를 추하게 벌리고 양 팔과 다리를 공중으로 향해서 누군가의 등을 꽉 잡은 듯한 그런 자세 말이다.
“미, 미친! 미친!!!”
도대체가, 뭔 놈의 꿈을 이따위로 꾼단 말인가. 그리고 또 하필이면 그 대상은 왜 또 놀티아 일까?
그 정도로 그와의 불장난이 내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걸까? 그리고 내 몸이 적잖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일까?
‘하…. 하긴…. 요즘 내가 혼자 자위할 시간도 없이 바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왜 이런 꿈을….’
불이 다 켜져 있고 바닥에서 자던 칼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간 모양이다.
그녀가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뭐라 생각을 할지 참 부끄러운 감정이 온몸 온도를 뜨겁게 올리기 시작했다.
“후우….”
똑똑!
“흐악!”
[“어?! 언니! 왜 그래요. 뭐 문제 생겼어요?!”]
노크 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자 밖에서 지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너무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랐을 뿐인데…. 하긴 그녀가 생각하기엔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 느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줘!”
[“아, 알겠습니다.”]
팬티를 적시고 유두가 발딱 서 있는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씻으며 머릿속의 혼란을 잠재운 뒤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방을 빠르게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그녀를 맞이했다.
“하…. 후….”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물어보지 마.”
“네? 아…. 네.”
“아무튼, 출발하자. 자세한 내용은 그쪽에 가서 놀티아랑 접선한 다음 알려 줄게.”
“예. 가시죠. 정말 기대되네요. 저쪽의 세상은 어떨지.”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기대되는데요.”
지크리스의 큰 기대와 함께 나와 그녀는 게이트를 넘어 반대편 세상에 도착했다.
이젠 내 고향 세상인 이곳이 오히려 낯설어질 지경이다.
나와 지크리스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 처음 보는 단원들이 서서 게이트의 앞을 엄중하게 경비하는 중이었다.
“음? 간부시군요. 무슨 일로 방문하신 겁니까?”
옷의 차림세가 다른 단원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을 보고 내가 간부라는 것을 바로 알아본 한 대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기적인 고향 방문이야. 알고 있을 텐데? 이루스라고 이곳 출신의 도적단 단원이다.”
“아! 알고 있습니다. 가끔 허락도 받지 않았는데 게이트를 넘어와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는 단원들이 속출하고 있어서 이렇게 게이트 앞을 보호하는 중입니다. 여기에 방문 이유를 좀 적어 주시고 여기 있는 브로치를 받아 주시지요. 옆에 계시는 분은?”
“내 보조 간부지. 이번에 보조로 동행시켰어.”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있는 이 브로치를 받아 주십시오. 제이슨 대 두령님의 지시로 이젠 간부와 보조 간부의 브로치 색을 따로 적용했습니다. 파란색이 보조 간부이며 붉은색이 간부입니다. 그리고 검은색은 두령을 나타냅니다.”
“대 두령님은?”
“그분에게 브로치를 채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얼굴도 알고 그분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목 날아갈 일입니다.”
“하긴….”
뜻밖의 우문현답에 할 말이 없어져 그의 말대로 종이에 방문 이유를 적은 다음 브로치를 나누어 받았다.
지크리스가 브로치를 채우는 동안 게이트 입구를 지키는 단원에게 놀티아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다.
“놀티아 말입니까? 그는 지금 13번 구역…. 아니지. 유흥 주류 구역에서 쉬는 중입니다. 오늘 휴식하는 날이거든요.”
“아 그랬지. 녀석도 주말에는 쉰다고 했었는데 깜박했네.”
“무기는 이곳에 두고 가주시겠습니까? 거리에서 무기를 들고 활보가 가능한 사람은 에탄 두령님과 변이 마수를 사냥하는 사냥조와 치안 유지를 위한 경비대뿐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에탄 두령의 지시이니 따라 주십시오.”
“내가 구태여 여기까지 돌아와서 시민을 학살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두령님의 말이라니 듣긴 하겠지만, 그럼 우리 안전은 어떻게 보장받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근래 훈련을 잘 받은 경비대가 빠짐없이 거리를 순찰 중이고 혹 그런데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이쪽으로 돌아오십시오.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믿도록 하지. 지크리스 무기 여기에 두고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좀 무거우니까 잘 좀 받아 줘요.”
“어이쿠!”
무게가 얼마 안 나가는 내 쌍 단검과는 다르게 지크리스의 무기는 양손으로 사용해야 하는 거대한 대검이다. 당연히 받아 드는 단원이 인상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후우... 이런 무거운걸 한 손으로 다루다니…. 역시 보조 간부란 건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하며 전진기지를 빠져나가 대로변으로 들어섰다.
빠앙!!!
“어?!”
순간 대로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서 발을 뒤로 빼며 물러나니 내 앞을 자동차가 쌩 하고 달려 지나갔다.
분명…. 저번에 왔을 때는 대로변에 자동차라고는 단 한 대도 없었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이 닫혀서 횅한 모습을 보이던 가게들과 완전히 비어버린 도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적단원과 길을 걸었고 어떤 인물들은 한국인인데도 도적단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거리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엄청난 활기가 가득했다.
“차가 다니네?”
“저, 저게 뭡니까? 말없이 달리는 마차입니까?!”
“아…. 뭐 비슷한 거야. 저번에 왔을 때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이람….”
일단 이곳의 정보통인 놀티아와 만나 봐야 할 거 같았다. 그에게서 뭔가 정보를 들을 수 있으리라.
사람들의 틈을 뚫고 이동한 유흥, 주점이 만연한 지역, 정확히는 13구역이라고 한다.
저번에 놀티아와 함께 갔던 가게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역시나 그가 앉아서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저번에 놀티아와 친한 동생 사이라고 했던 갈프였다.
“여! 이루스! 온다는 말은 들었다. 이리로 오라고.”
“넉살 좋은 놈 같으니.”
“누굽니까?”
“속창의 놀티아. 아, 앞에 앉아 있는 놈은 묵직한 한 방의 갈프”
“혹시 미친놈들입니까?”
“아니야 착한 애들이야. 좀…. 이명 같은 거에 죽고 사는 성격인 것 같더라.”
“그게…. 미친 겁니다. 이명이 뭐 밥 먹여 준답니까?”
“풉…. 하긴 그 반응도 이해는 가. 그래도 함부로 행동하진 마. 제이슨 대 두령하고 연결된 정보통인 거 같으니까.”
“뭐…. 알겠습니다. 근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끈적합니까? 온몸에 음기가 달라붙는 기분이라 괜히 젖꼭지가 설 거 같은데요?”
“말을 해도 꼭….”
“왜요? 이거 말고 더 적절한 표현이 없는데요. 여자가 흥분하면 젖꼭지도 설 수 있는 거고요.”
“하…. 털털한 건 좋은데 유두라든지…. 다른 단어도 있잖아.”
“에이. 전 젖꼭지란 단어가 더 좋아요. 귀엽잖아요.”
“미친….”
잡담을 나누다가는 내 정신이 이상해질 거 같아서 일단 그녀와 함께 놀티아와 갈프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갈프의 옆에 지크리스가 놀티아의 옆에는 내가 앉았다.
갈프는 옆자리에 앉는 지크리스를 보고 좀 주눅이 든 표정을 지었고 지크리스는 그런 갈프를 보다가 그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자식- 누나가 좀 무서우냐?”
“아, 아니…. 그게….”
“뭘 그렇게 얼어 있어. 귀엽게 구네. 술 한 잔 줘봐.”
“네, 넵!!!”
서열상 보조 간부라 그녀가 저리 굴어도 전혀 문제는 안 되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졸아서 술을 따라주는 갈프도 참 뭐라 해야 할지. 이명이 안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생긴 것과 다르게 그녀 말마따나 귀엽다고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
“그동안 여기 안 오고 뭐 했어? 나 혼자 적적했잖아.”
“이거 보면 몰라? 간부 돼서 엄청 바빴어.”
“어?! 그새 간부라고. 이야…. 이거 대단한데? 뭐 난 아직도 단원 꼴 못 벗어나고 있지만….”
“하…. 너 지금 여기 잠입해 있는 거라며, 그럼 원래는 너도 제이슨 대 두령의 직속 부하나 뭐 그런 거 아냐? 그렇다면 레벨이 상단이 높다는 뜻일 테고. 간부고 단원이 고가 뭐가 중요해?”
“음…. 정곡을 찔렸군. 다만 그 이야기는 조용히 하자고. 갈프 녀석도 나랑 같은 임무가 있긴 하지만, 놈은 그렇게 정확한 내용까지는 모르거든.”
“아. 그런가. 그런데….”
“음…. 그렇네.”
나와 놀티아의 의미심장하게 주고 받아진 대화,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바라본 곳에는 단단한 지크리스의 팔뚝에 안겨서 행복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주고 있는 갈프의 모습이 보였다.
“못들은 더 같군. 갈프 저 녀석 저런 여자가 취향인가? 동생인데도 내가 모르는 게 많군”
“안 들리는 건 아니고?”
“그러게.”
그보다 지크리스 저년…. 내가 술 마시자고 할때마다 자주 빼더니 오늘은 뭔 바람이 분 걸까?
분위기에 취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