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55화, 간부 이루스다. (54/70)



〈 54화 〉55화, 간부 이루스다.

천막 안으로 들어오니 아까 저 멀리서 자신의 주인이 결정되기를 기다리던 자이언트 여성이 어느새 미스틸의 옆에 당도해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내가 이길 거라는 것을 전제로 노예 상인을 구워삶은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온  기척을 느꼈는지 노예들에게 시선이 가 있던 미스틸이 고개를 돌려 빙긋 웃었다.

“수고 많았어.”

“내가 지면 어쩌려고 그랬어?”

“손목 하나 잘리는 거지 뭐.”

“하…. 믿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 너무 앞서 나간 걸 꾸짖어야 하는지….”

“이럴 때는 믿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지.”

“넉살은….”

“이게 내 매력이거든-”

그녀의 넉살과 함께 다시 새로이 올라오는 여인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그녀와는 반대로 내 시선은 다른 노예들이 아닌 바로 옆에 서 있는 자이언트 여성에게 돌아가 있었지만.
풍기는 기세는 멀리서도 남달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거대해 보이고 대단한 느낌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그런 기세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한 웅장한 기운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운이 상대를 마냥 적대하는 그런 기운은 아니다. 엘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이종족과의 교류라  신기함인 배가 되었다.

“후욱….”

숨이 좀 거친 거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드문드문 보였다.
입에는 전날 내가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있던 재갈과 비슷한 것이 물려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 천박한 것이 아니라 긴 나무 막대와 같은 재갈이다.
손목과 발목에는 수갑, 그리고 족쇄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으며 족쇄의 끝에는 영화에서나  법한 거대한 철 구슬과 연결되어 있었다.
검고 거대한 것이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인다. 아무래도 위험한 종족으로 취급되어 이런 철저한 취급을 하는 모양이다.

“…….”

“…….”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적대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해 보이는 시선이었다.
나 역시 그녀가 어떤 자이언트 인지 살피기 위해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말. 알아들을 수 있어?”

끄덕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말은 잘 통하는 모양이다.
엘프야 과거에 인간들을 지배한 적이 있다고 하니 인간의 언어는 쉬울 테지만, 자이언트는 아무래도 인간과 함께 동맹하여 엘프를 몰아낸 것을 제외하면 그리  왕래가 없는 종족이다.
그러니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나와 함께 하게 될 거야. 조금 있다가 우리 정식으로 인사하자.”

끄덕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눈에서 적대감도 보이지 않고 기운은 웅장하지만 제법 예의도 있어 보인다.
 만난부터 도도하고 오만함을 풍기고 다니던 어떤 년과는 천지 차이의 반응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내가 굳이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굴 필요는 전혀 없다.
상황을 봐서 실력이 있다면 지크리스처럼 내 옆에 왼팔, 오른팔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자! 오늘도 이렇게 많은 노예를 팔고 돌아가는군요. 남은 노예들이 얼마 없고 왕국에서 요즘 관리가 매우 엄격하게 변하여 한동안은 찾아오지 못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특급 노예들을 마지막으로 경매를 마치도록 하지요. 자! 노예들이 나옵니다!”

경매도 이제 마지막에 닿아 있었다. 매우 화려하게 차려입은 미모의 여성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수는 다섯 명, 모두가 미모가 물이 오른 미녀들이다. 나올곳도 들어갈 곳도 확실히 들어간 말 그대로 특급의 여인들이다.

“이거 놔라!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놔라!!!”

마지막으로 거의질질 끌려 나오다시피 무대 위로 등장하는 한 여인, 고래고래 목소리가 살아있는 외침, 그리고 귀티가 잘잘 흐르는 듯한 웨이브가 진 금발 머리에 노예임에도 관리를 잘 받아서 피부에서 윤이 나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끌려 나오면서 자신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은 노예 상인에게 모욕을 주며 계속 소리를 질렀으나 노예 상인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도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자! 이 앙칼진 년이 보이십니까? 오늘의 하이라이트 상품입니다. 이 년은이번에 멸망한 레이지아 공국의 공국 영예입니다.  전 공국 영예라고 하는 편이 옳겠지요. 푸하하핫. 자자 이 년은 아직도 처녀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모가 물이 오른  성인이 된 몸입니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고 호가부터 경매를 시작하지요. 돈 많은 간부는 많이 참여를 부탁합니다.”

“아…. 나왔네. 능력도 없고 남은 것은 자기 성질밖에 없는 싸가지 밥 말아 먹은 골이 싹 비어버린 몰락 귀족 출신 년.”

사회자의 말을 이어 미스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불쌍하지도 않다는 듯한 어조다.
그녀의 눈에는 혐오하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망한 공국의 몰락 귀족이 행패를 부리면 부릴수록 그러한 눈빛의 혐오는 강해지고 있다.

“저런 년들은 아무것도 없어, 정말이지 자기가 원래 귀족이었다는  말고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지. 그저 몰락 귀족이기 때문에, 몸에  귀티와  관리받은 몸뚱이 덕을 톡톡히 보는 전형적인  꾸며진 금화들이야. 비싸기만 더럽게 비싸지.”

“흠….”

“근데…. 저년 능력은 좀 탐나네.”

“무슨 능력이 있길래?”

“대규모 속박 계열의 능력이야. 꼴에 귀족 출신이라고 카리스마 넘치는 능력이 있네. 자신 주변의 적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자신의 레벨이 높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지지. 다만…. 저년 능력 따위 전혀 수련하지 않아서 완전히 초기 상태야. 레벨도 1이고, 저래서야 고블린 하나도 제대로 속박할  없을 테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달려 있군.”

미스틸의 말대로였다. 레벨 1에 몰락 귀족 출신의 상전이라니 도적을 만드는 것이 참으로 험난할 듯하다.

“살 거야?”

“분위기 봐서. 가격이 괜히 거품이 껴있어서  이상 만약 누군가랑 경쟁이 붙어 버리면 호가가 치솟을 거야. 아깝지만, 우리도 자금의 한계는 있다고.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리다가 벌레들이 꼬이지 않았다면 고려는 해볼게.”

“알았어.”

그렇게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몰락 귀족 출신의 여성 말고는 다들 고분고분하고 교육이 잘 되어 있기에 불티가 나게 호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괄괄하고 앙칼지게 굴었던 몰락 귀족은 초반에만 호응이 좋았지 금액의 상승은 전혀 없었다.
보는 즐거움은 최고지만, 저런 값비싼 애물단지를 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특급 중에서도 가격이 특히 높게 책정되어 있기에 두령급이 아니라면 손도 대기 힘들어 보인다.
두령의 전권을 위임받은 나와 미스틸이라면 모를까 일반 단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미스틸이 원하는 대로 빛 좋은 개살구였던 그녀가 마지막 미스틸의 호가 한 번으로 우리의 품에 들어왔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놔라!!!”

이곳에 끌려 오면서도 목이 쉬라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향해 진득하고 싸늘한 미소를 지은 미스틸이 다가갔다.

짝!

그리고 들려오는 가죽 때리는 소리, 미스틸의 손에 맞은 그녀의 얼굴이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그녀의 눈빛에 미스틸이 잔인한 어조로비아냥거렸다.

“귀하신 몸이 참 한심하게도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보라고. 이제 넌 그냥 도적단 노예일 뿐이야.”

“인정  한다! 우리 아버님이 날 버릴  없어! 당장 이걸 풀어! 날 놔줘! 그렇다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희를 용서해주마! 꺄아악!!!”

갈기갈기 찢어지는 그녀의 때가 드레스,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여 주었을 뿐이라 그녀의 아름다웠을 드레스는 넝마나 다름없어서 미스틸의 간단한 손길에도 죽죽 찢어졌다.
드레스의 안에 그녀의 중요 부위를 가려주던 속옷도 미스틸의 손길에는 어림없었다.
순식간에 나체가 되어버린 그녀는 수치심에 눈물을 조금 만들면서 손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리기에 급급했다.

“몰락한 귀족, 그것도 왕국도 아닌 공국의 영예가 다시 복권했다는 말은 과거사에 전혀 없다고, 무슨 말인 줄 알아? 너처럼 더러운 귀족들의 술책에 휘말린 여식들의 말로가  처참하다는 말이란다. 알아들었니? 고분고분 따르면 우리도 그에 응당 좋은 대우를 해줄 테니 적당히  처지를 이해하기 바라. 환영해. 넌 이제 우리 도적단의 말단 노예야.”

“시…. 싫어어어어어!!!”

한 여성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눈 뜨고 바라보기 힘들었다.
적어도 나와 그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살아오던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

잠시 시간이 지나고 몸을  씻은 다섯 명의 인원이 각각 내 방에 도착했다. 내일부터 이들을 훈련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다 아파져 온다.
원래는 여섯이 와야 했지만,  명은 지금 제이슨 대 두령의 방에 들어가 있다. 오늘 처녀를 버리게 인물, 바로 전 레이지아 공국 영예다.
사라엘 레이지아, 지금은 레이지아라는 성을 부르지 않고 그저 이름인 사라엘만 부르는 여자다.
온몸에서 광채가 나는 듯한 윤기 그리고 웨이브 진 찰랑거리는 금발, 조금 살집이 있어서 보기 좋게 튀어나온 육감적 몸매와 오밀조밀한 얼굴의 귀여움까지 소유한 이른바 베이글녀 제이슨이 눈이 돌아갈 만도 했다.
하여 모인 인원은 다섯이지만, 사라엘까지 더해 여섯이 신생 이루스 팀, 즉 내 팀에 배속될 새로운 인원들이다.
이미 훈련이 끝난 지크리스와 쥬린, 에레네스와 내가 앞으로 조련을 해야 할 새로운 인원들이 바로  년들이다.
앞에서부터 칼파, 미리아, 라자, 마리즈, 리진 새로운 얼굴들이 즐비하지만, 그중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장 앞에  칼파다.
능력을 보고 미스틸이  골라준 인원들이긴 하지만, 역시나 자이언트의 위용에는 인간인 이상 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들 잘 부탁한다. 내가 너희를 이끌 간부 이루스다.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으나 치욕을 당하고 죽는 그것보다는 이 길이 너희에겐 힘들지만, 목숨을 살리는 길이지. 일개 도적단에 소속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살아남아야지. 앞으로  말만  듣는다면 훈련을 심하게 시키긴 해도  외에 너희를 터치하지 않겠어. 그러니 고분고분 따라주길 바란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내 부관인 지크리스야. 지크리스 너도 인사하렴.”

“네.”

지크리스의 소개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내 시선이 향한 곳은  한 사람, 바로 어두커니 서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칼파였다.
머리를 정리하고 깔끔하게 묶어 올리니 제법 미모가 괜찮은 여인의 얼굴을  자이언트로 탈바꿈한 그녀, 물론 몸집이 커서 얼굴이 괜찮아도 웅장함이 어마어마하다.
지금 나도 지구의 여성 기준으로 꽤 큰 편에 속하는데 그녀는 종족의 이점 덕분인지 정말 거대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는 더 위에 있으니 말  한 셈이다.
지크리스의 소개가 끝나고 전달할 말을 전달한 뒤에 그녀들을 자기 방으로 돌려보냈다.
 방이 너무 작아 신입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기에 그녀들의 방은 바로 내 옆으로 잡아 주었다.
두 명씩 한방에 그리고 자이언트인 칼파가 혼자 한 방을 사용하고 내일부터는 지크리스가 자신만의 방이 지정되어  방에서 빠져가게 된다.  옆자리에 사라엘이 들어온다.
또 한 쥬린과 에레니스가 나와 가까운 곳에 방이 배정되니 이렇게  팀 인원들이 함께 지내는 형식의 공간이 생겨났다.

“아 잠깐만.”

“…….”

“칼파, 넌 남아. 아직 할 말이 좀 남았어.”

“원하신다면….”

지크리스의 인도를 받아 모두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방에는 나와 칼파만 남게 되었다.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막상 불러 세운 건 좋았는데 하려던 말이 잠시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 웅장한 기운에 조금 눌렸기때문이리라.

“아……. 그래. 내 팀에는 엘프도 있어. 처음에는 엄청 괄괄한 년이었지만, 지금은 순종적이지. 그러니 과거의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년과 척을 지지 않았으면 해.”

인간, 그리고 자이언트는 엘프에게 특히나 혹독하게 차별받아온 존재들이다.
인간은 특유의 뭉치는 습성과 엘프보다 뛰어난 번식력이 문제였고 자이언트는 육체의 강함,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엘프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잡혀 온 노예 인간들이야 그저 그런 아이들이니 엘프와 척을 질 시간보다 힘든 몸을 쉬고 쳐 자는 것 말고는 생각이 안들 테지만, 워낙 몸이 강한 자이언트는 딴생각을 충분히 할만했다.
지금 미리 이야기를 나눠 놓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니 미리 인지시켜두어야 했다.
무슨 고양이 합사를 시키는 것만큼이나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직 자이언트와 엘프는 이를 가는 숙적과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간부가 되자마자 골칫거리를  개나 껴않게되다니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자이언트 여성인 칼파가 말이  통한다는 점이었다.

“상관없습니다…. 하실 말씀은 끝인가요?”

“그, 그래. 그게 끝이야.”

“실례하죠. 앞으로 간부님이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물론 대화는  통하지만, 무뚝뚝하기 그지없어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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