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50화, 길들이다.
“헉, 헉, 헉!”
다음날도.
“하악, 커헉…. 헉!”
그다음 날도.
“흐아아아!!! 시바알!!!”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엘프 조지기는 계속되었다. 에레니스의 체력은 매일 같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에게 주어지는 강도는 조금씩 눈치채기 힘들게 높아질 뿐이다.
물론, 그녀를 길들이기위해서는 내가 그녀보다 더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나 다행히도 내 체력은 그녀를 훨씬 웃돌고 있다.
그리고 매일 훈련하는 그녀 옆에서 같이 같은 강도의, 아니 그보다 더 힘든 강도로 나 역시 훈련 중이기에 그녀에게 뒤처질 일은 없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꾹 참고 그녀 앞에서는 담담한 척을 하며 어찌 보면 나와 그녀의 기 싸움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넌 이런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난 해내니 내가 위다. 이런 것을 그녀에게 주입하는 일이다.
무식하고 또 요령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작정 밀어붙이는 식이지만, 때론 이런 것이 잘 먹히기도 하는 법이다.
특히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엘프에게는 다른 방법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풀썩!
“커헉…. 우웩!!! 웩!!! 욱!”
뒤처지던 에레니스가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아까 먹은 것은 이미 조금 전에 다 게워냈기 때문에 이젠 나오는 것도 없었다.
솔직한 감정으로 등이라도 두드려 주며 따듯한 말로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도 동하지만, 그건 저 에레니스의 독기가 다 빠져 나간 뒤에 해도 는지 않다.
찌릿!!!
아직도 저 눈에서는 그 오만한 독기가 덜 빠져나갔다. 마치 눈빛으로 쏘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이 표독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 눈빛을 받은 지크리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저…. 언니.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지….”
“가만히 있어. 지금 저 엘프 녀석의 기세를 죽여두지 않으면 우리다 피를 봐.”
“그건 그렇지만…. 보통 독한 년이 아닌데요.”
“끈질김은 나쁘지 않지. 그런데 그 끈질김이 아군에게 향하는 건 곤란해. 지금 뿌리를 뽑아두지 않으면 정말 위험할거야.”
“음... 하긴. 그 점에 있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가끔은 살살 풀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뜻이죠.”
“그건 네가 해야지.”
“예?!”
“내가 왜 널 같이 데리고 다니겠어. 하나는 나쁜 역할 그리고 남은 하나는 좋은 역할을 해줘야지. 뭐 잘하고 있긴 해. 내가 안 볼 때 물을 주거나 같이 대화를 나누고 둘이 사이좋아 보이던데?”
술만 마시면 군대 시절 이야기를 입에 달고 다니던 지창명 선배, 그때는 그의 이야기가 듣기 싫은 과거의 이야기였지만, 이러고 보니 또 달랐다.
몸소 현장에서 뛰면서 누군가를 조련한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창명 선배가 후임을 어떻게 갈구고 어떻게 조련했는데 들어둔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수가 없었다.
다만 대부분의 조련이 자신이 더 뛰어난 체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무식한 방법들뿐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더없이 딱 맞는 방법이라 다행이었다.
지크리스는 얼굴을 찌푸리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다.
“얼굴 보면 욕부터 지껄이는 엘프 년이 뭐 좋다고…. 음….나쁜 사이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 마음을 터놓고 친한 사이도 또 아닌데요. 차라리 지금부터는 언니도 좀 잘 대해 주면서 친해지는 건 어떠신가요?”
“그녀와 내가 친해질 필요는 없지, 다만내 말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어 둬야 해. 그래야 나중에 내 명령이라면 반드시 따르게 되어 큰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게 될 거야.”
“아…. 하긴…. 그런 관계도 나쁘진 않죠. 어차피 확실한 상하 관계를 뼛속에 박아 두면 알아서 기는 것이 아랫것들이니까요.”
과거의 생각이 나는지 그녀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비틀면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를 내었다.
“하아…. 하아…. 와…. 왔어…. 물 줘!”
“하 이 싸가지 진짜. 물 줘? 내가 네 친구야? 물 주세요.”
“이익….”
“물 주세요!!!”
“물…. 주세요….”
“지크리스 이 년 물 줘.”
“예, 예 언니.”
지크리스가 물을 내어주니 그녀는 허겁지겁 그 안에 든 물을 다 마셔 버린다.
어차피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다. 아직 초반이었으면 중간에 퍼질 위험이 있어 물을 많이 줄 수 없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물을 다 먹은 그녀의 얼굴이 매우 상쾌해 보였다.
지크리스가 물병을 받아 들자 그녀는 다시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쯧쯧…. 좀 슬슬 저 자존심 좀 버렸으면 하는데 참나.’
엘프의 자존심이 이렇게 강할 줄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저 자존심이 언제가 되어야 좀 꺾일지 참…. 앞으로의 일도 험난하리라 생각된다.
훈련을 마친 후 몇 가지 보고 사항을 카밀라에게전달하고 방으로 되돌아오니 지크리스가 먼저 몸을 씻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고단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이제 우리에게 맞추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강도로 훈련을 하고 있다.
나로서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질려버릴 듯한 강인한 체력과 엄청난 훈련량이었다.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만약 에레니스와 지크리스 두 사람의 행동 양상이 바뀌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지 싫었다.
지크리스가 먼저 나에게 숙이고 들어와 주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 순간이다.
“지크리스,옆으로 좀 가 나도 누워야지.”
“어? 으응…. 아 언니…. 후암!!!”
“으구! 정신 좀 차리고 어서 옆으로 좀 가.”
“아…. 네에-”
잠결에 취한 그녀는 누가 때려도 모를 것 같았다.
해롱해롱하면서 옆으로 미적미적 움직인 그녀의 옆에 누워 이불 대신 감겨 오는 단단한 근육질 팔에 한숨을 쉰다.
‘이년은 다 좋은데 잠버릇이 정말….’
누구나 일장 일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후끈하고 또 온몸이 무슨 곰에게 조여지는 듯한 감각을 매일 밤 느끼는 것은 고역이 따로 없었다.
조금 시원섭섭하긴 해도 빨리 그녀가 자기 방을 받길 기원할 뿐이다.
*****
훙!!!
“뭐, 뭐야!!!”
“크윽!”
도대체 내 방에는 뭔 마가 끼어 있길래 밤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또 누군가 내 방문을 따고 들어온 모양인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실루엣이 보인다.
그러다가 한쪽이 주먹을 휘두른 다음 바로 땅에 쓰러지며 고통의 신음을 토했다.
풍채가 거대하고 근육이 있어 보이는 여성인 것을 보니 지크리스가 확실했다.
“동작 그만!당장 그만둬!”
불을 켜면서 누군지 모를 사람과 지크리스를 말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지크리스, 그리고 에레니스였다.
지크리스는 에레니스를 향해 위협을 하였기에 정령들의 공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었다.
다만 공격에 살심이 담기지 않았고 제압을 목적으로 하였는지 그리 큰 보복은 당하지 않은 듯 보였다.
지크리스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바로 에레니스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팔을 잡아 뒤로 꺾은 뒤 침대 위에 올려 강하게 눌렀다.
“아악! 그만! 아프다고!”
“너. 내방에 왜 온 거냐?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모, 몰라! 길을 잃었다고!”
“사실대로 불어! 내가 습격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이런 일에 좀 민감하거든? 시발 수틀리면 진짜 목을 꺾어 버릴 거니까 제대로 말해!!!”
“힉!”
목을 꺾어버린다는 말과 함께 실제로 그녀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꽉 쥐니 그녀는 순간 숨통이 막혔는지 깜짝 놀라서 몸을 벌벌 떨었다.
“마, 말할게! 말할 테니까 손에 힘 좀 풀어줘! 제발!”
등 뒤로 꺾어서 강하게 올린 손과 팔, 그리고 꽉 잡힌 목이 아픈지 그녀는 다급하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조금 말할 생각이 든 듯하여 지크리스에게는 문을 닫아 걸으라고 한뒤 그녀의 손을 밧줄로 묶은 뒤에 풀어 주었다.
딴생각을 하지못하도록 목에 단검을 겨누고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말해. 무슨 일로 이 야밤에 내 방에 온거지?”
“그…. 그러니까…. 힉! 말할게! 말한다니깐!!!”
검이 목에 더 가까이 겨누어지자 그제야 말을 시작하는 에레니스, 내 방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당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는 엘프를 공격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로 엘프가 공격해도 문제가 전혀 없는 인간이다.
자는 도중이라면 아무리 괄괄한 년이라도 힘이 빠져 있을 테니 조용히 접근해서 나에게 챰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챰 마법이란, 매혹 마법, 측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듣거나 완전히 빠져 조종할 수 있게 되는 마법이라고 한다.
하나 정령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챰 마법의 효능이 자신이 하는 말을 대상에게 강하게 주입 시키는 것 정도밖에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마법을 통해 나에게 주입 시키려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라면 그리 위험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후, 훈련을 좀 살살 시키라고 하려 했어…. 너무 힘들단 말이야!”
“…….”
“흠흠…….”
지크리스가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짓 하려고 밤에 침투했어? 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그녀는표정이 풍부해서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가 있었다.
아무튼, 그녀가 하려 했던 일은 초반에는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카밀라가 잠든 사이에 정령의 힘을 빌려 조용히 문을 빠져나온 뒤 내 방에 도달, 다시금 정령의 힘을 빌려 방문을 따고 들어와서 내 앞까지 당도한 것이다.
내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지크리스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하였겠지만…. 그녀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하,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흥…. 이제 됐어! 처벌을 하던 네 마음대로 해! 나도 자존심이 있다고! 걸린 이상 더는 변명하지 않겠어!!!”
“큰소리치긴…. 좋아 그렇게 말하니. 나도 시원하게 벌 한 번 주고 오늘 일은 끝내도록 하지 지크리스 여기 와서 이년 꽉 잡아.”
“네? 괜찮은 건가요? 정령들이 공격하는 게….”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몸만 붙잡고 있어. 도망치지 못하게.”
“아, 알았어요. 그 정도야….”
지크리스는 그대로 침대에 올라와 에레니스의 몸을 단단히 잡았다. 물론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만 잡았지 그녀를 누르듯이 강하게 잡은 것은 아니었다.
“뭐, 뭐 하려는 거야! 버, 벌은 아침에 받아도 되잖아!”
“아침까지 갈 필요도 없어. 여기서 그냥 끝내자. 태형 20대만 맞자.”
“태, 태형이 뭐야? 뭐냐고! 어, 엉덩이는 왜 까는 거야? 어? 어?! 흐이이이익!!!”
촤악!!!
사실, 태형이라는 것은 죄인을 형틀에 묶고 작은 형장으로 볼기를 치는 가장 낮은 형태의 형벌이다.
지금은 형장 같은 방망이가 없어 손으로 치고 있으니 굳이 태형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말 안 듣는 딸년 엉덩이를 두들긴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내가 레벨이 레벨이다 보니 손으로 한번 엉덩이를 두들길때마다 채찍소리가 나는게 좀 흠이긴 했다.
촤악!!!
“흐기이이이잇!!!”
엘프의 희고 고운 엉덩이에 두 개의 손바닥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 본인이 만들어낸 아주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다.
피부가 어찌나 흰지 붉게 달아오른 모양이 아지 선명하게 생겨나 있는 것이 괜스레 때리면서도 마음이 좀 아파진다.
쫘악!!!
“히아아아앙!!!”
그래도 벌은 벌이다. 앞으로 열일곱 대 남았다. 이걸 다 때리고 나면 오늘 있었던 습격은 다 잊어줄 생각이 이다. 쿨하게 말이다.
그로부터 약 다섯 번의 엉덩이 두들기기가 지속하였고 그때마다 에레니스의 입에서 격한 고통 어린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막 여덟 번째 벌이 이어지려는 그 순간, 귀를 의심하고 싶어질 정도로 구슬픈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으허어엉! 그만 해요. 잘못했어여! 잘못했다고요! 그만 때려어어! 으허어어엉!!!”
“저기…. 언니…. 얘 울어요. 엄청….”
실제로 그녀는 대성통곡을 하며 굵은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지크리스가 그녀를 놓아주니 붉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친다.
처량하게 침대 한구석에 앉아서 그렇게 한동안 울던 그녀는 쭈뼛거리면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야.”
“힉!!!”
“나와. 이제 잘 거야.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 그만할 테니까.”
“으흑…. 흑…. 알았어요…. 진짜 안 때린 거죠?”
“그래. 안 때려.”
“가. 가서 잘게요….”
옷을 올려입은 그녀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방을 나섰다. 그런 그녀의 뒤를 보면서 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진작 엉덩이를 때려버릴걸.”
“헐….”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년은 또 왜 제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은 건지….
어쨌든 이날 이후로 에레니스는 내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