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45화, 첫 살인. (44/70)



〈 44화 〉45화, 첫 살인.

나와 같은 지구에서  것이라 추정되는 여성.
하지만 당장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보안을 위해 노예들의 목걸이에 걸린 마법 인장을 갱신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각 간부에게 인원을 나누어 배치한 뒤에 훈련을 시키게 된다고 한다.
물론, 지금 가장 수가 부족한 곳은 당연히 튜테의 팀이기에 중급  명은 모두 그곳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카밀라와 튜테를 동시에 부른 우르자인은 두 사람에게 오늘 사들인 노예들을 인계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대화를 나누긴 어려울 거야. 아마 제이슨이 저 이세계에서 온 여자를 손댈 테니까.”

“뭐야?!”

“그야…. 미모가 미모인지라. 어쩔 수가 없어. 네 경우는 하이드레인 능력 때문에 제이슨이 손댈 수 없었던 거지만, 너와 같이 예쁜 미모를 가진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거야.”

“윽….”

“한 번이야. 단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이번  번을 손대고 나면 그 후에는 내가 보호할 수 있어. 이번 한 번을 잘 버텨 주었으면 하는데….”

안타까운 사실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만약 이곳에서 나와 우르자인이 그녀를 사들이지 않았으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팔렸을 것이다.
그곳이 이곳보다 나을 수도 있고 더 나쁠 수도 있지만, 제이슨이 한 번 손대고  뒤에는 단원으로서 보호를 받을  있으니 대우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 불안에 떠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밖에  수 있는 일이 없는 내가 너무도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저 중의 한 명은, 너한테 맡길 거야.”

“뭐?”

“너 이제 보조 간부잖아 그럼 그에 합당한 일을 해줘야지. 카밀라가  훈련 시킨 일 기억 하지? 그걸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잘 듣게 하고 훈련을 시켜, 실전에서 어리바리하게 굴지 않도록 기를 잘 잡아 놔.”

“내, 내가 할 수 있을까?”

“충분히 할  있어. 한번 열심히 해봐.”

그렇게 새로운 임무가 생겨났다.
나에게 배속될 신입을 도적단원으로 키워내는 일이다.
누가 나에게 배속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중급에 속한 년들도 눈빛들이 꽤 강렬했다. 그중에 한 사람을 맡게 되더라도 꽤 고생할 것이리라.

“후…. 노예 상단…. 노예라…. 노예”

방에 도착해 밤이 될 때까지 조금 전 기억을 찬찬히 되짚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카밀라를 기다린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니 그곳에는 카밀라가 서서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카밀라의 등 뒤로는 깨끗하게 차려입은 누군가가 함께  있다.
아까 노예 경매에서 사들인 최상급 품질의 노예, 기사 출신의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다.

“기다렸지? 놈들 목숨 거두러 가기 전에 이 년 소개부터 할게. 오늘부터 네 밑으로 배속될 아이야. 이름은 지크리스야. 지크리스 인사해 앞으로 네가 모실 상관인 간부 이루스다.”

꾸벅.

말은 없었지만,  지크리스라 불린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의 여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해 왔다.

“무뚝뚝한 게  흠이긴 한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앞으로 대답은 고분고분 잘 하는 편이지만, 단답형이라 답답한 년이지. 기사 출신이라 기본 체력도 월등히 높고 전투 훈련도 잘 되어 있어. 네가 해줄 일은 이년 정신교육을 톡톡히 해서 우리 단원으로 만드는 일이야.”

“지금…. 나한테 기사 출신 노예를 도적단 단원으로 바꾸란 거야?”

“그래. 좀 고만고만한 애를 배치하려고 했는데…. 대두령이 이렇게 배치했어.”

“하…. 그 양반 진짜. 꼭  번씩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골탕을 먹인다니까?”

“어쩔래? 거부해도 상관은 없는데, 네가 반쪽짜리 간부직에서 빠르게 진정한 간부가 될 기회이기도 한데. 선택은 네가 해. 만약 싫다고 하면 이년은 내가 맡을 테니까.”

“그…. 경찰, 아니 나랑 같은 세상 출신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어?”

“오늘 밤 제이슨  두령의 방에 갈 거야.”

“역시 그렇게 되나….”

“이년이 내 밑에 있는 너에게 배속되면서 내 팀에 배속되는 인원은 끝이야, 그리고 너랑 같은 세상 출신 년은 미스텔 간부 밑으로 소속이 될 거고, 나머지 네 명의 인원이랑 엘프 년은  튜테 팀에 배치될 거야.”

벌써 대략적인 배분이 끝난 뒤였다. 아쉽게도 그녀는 당장은 나와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제이슨이 충분히 맛을 본 뒤에는 간부 미스텔의 휘하에 들어가 훈련을 받을 테니 그동안도 얼굴을 보긴 힘들 것이다.
일단은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게 구해 내었다는 것에 만족하라고 하며 눈앞의 여 기사에게 시야를 집중했다.
강직해 보이는 전형적인 늠름한 얼굴이다. 그리고 확실히 몸도 좋아 보였다. 지금은 어디 가서 꿀리는 몸매가 아닌데 그런 나와 비교를 해 보아도 그녀의 몸이 훨씬 크고 단단해 보인다.
그나마 그녀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하면 가슴의 크기일까? 이걸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크리스라고 했나?”

“네.”

“본명이지?”

“예, 원래는 성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다는 말이네?”

“가문에서 파문당하며 호적에 파였으니 이젠 과거의 성을 사용할 수 없죠.”

“안타까운 일이네.”

“외람된 말이지만, 동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지금 받고 있을 뿐입니다.”

“뭐야? 이년 아까부터 묵묵하게  한마디 안 하더니 왜 이루스 앞에서는 이렇게 싹싹하냐?”

“제 직속 상관이지 않습니까. 제가 완벽하게 도적단이 될 때까지는 이분과 함께 방을 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협조를 해야죠.”

“아휴…. 이년은 뇌가 근육인가 보네. 잘됐다. 덩치도 비슷한 것들끼리 한번 잘 놀아봐. 언제 이렇게 컸지? 이젠 간부자리도 위협하게 됐네?”

“아직 멀었어.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 카밀라.”

“얼씨구…. 그런다고 내가 뭐 떡이라도 줄줄 알아? 흥…. 따라오기나 해.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네. 간부, 그리고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지크리스입니다. 이루스님.”

“이루스면 되. 님은 빼고 불러. 제대로  인사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하자.”

“예. 그럼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의자에 앉으며 완전히 멈춘  숨만 쉬기 시작하는 지크리스를 뒤로 하며 방을 빠져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밀라의 뒤를 따랐다.
과거 바논이 잡혀 있던 배신자를 가둬두는 창고, 입구를 지키는 단원에게 인사한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네 명의 남자가 포박되어 있었다.
모죠, 그리고 방에서 기절했던 두 사람,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다.
 남자가 바로  방 입구에서 이들과 함께하며 망을 보던 공범의 남자이리라.
그들의 뒤에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자마칸 두령의 모습이 보였다.

“왔나….”

시선은 그대로 하며 창고에 들어온 우리에게 말을 거는 자마칸, 그에 카밀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역시 자마칸 두령이야. 공과 사는 철저하게 지켜주는군.”

“당연하다.  안건은 배신 행위와도 직결된다. 감히 같은 가족을 범하고 살인멸구하려고 한 죄는 절대 용서 할 수 없지.”

휘릭!

촥!!!

“끄으으!!!”

자마칸이 손을 현란하게 휘두르자, 그 손에 쥐어진 작은 단검이 호를 그리며 검광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모죠의 억눌린 비명과 함께 그의 오른쪽 귓불이 날아갔다.
빠르게 휘둘러 정확하게 귓불만 도려내 버린 날카로운 단검술이었다.
옆에서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는 다른 남자들의 귓불도 하나하나 저며 자른 자마칸이 단검에 묻은 더러운 피를 털어냈다.

“내 응징은 끝났다. 부디 이후로는 고통 없이 끝을 내다오.”

“알았어.”

그래도 자기 아래에 있던 남자들이라 이건지 복수를 위해 고문을 가해 필요 이상의고통을 주지 말라고 부탁해 온다.
아마 자마칸이 한 응징은 내가 마음에서 조금이나마 응어리를 풀게 하려는 행동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자마칸의 손에서 카밀라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 전해지는 단검, 예리하게 벼려져서 예기가 전해지는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처형을 위해 준비한 단검이다. 목 정도는 깔끔하게 꿰뚫어버릴 수 있지. 성이 차지 않는다면 네 검으로 해도 좋아.”

“아니. 이걸로 하지. 내 단검에 이놈들 피 묻히기 싫어.”

“좋을 대로 해.”

준비를 끝낸 뒤 마음을 다잡고 날카로운 단검과 함께 이들의 앞에 섰다.
그러자 귓불이 날아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모죠가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사, 살려줘…. 네가 용서해 주면 우리  수 있다고.”

“내, 용서 여부는 상관없어.  두령이 너희를 죽이라 명했으니  그에 따를 뿐이야.”

“너, 너는 사람 죽인  없지?! 그거 엄청 기분 더럽다고, 우리 같은 것들 죽여봐야 아무것도 도움 되지 않을 거라고.”

“그건 내가 정해, 너 따위가 정할 일은 아니지, 눈 감는  좋을걸? 이 단검이 네놈 목을 뚫는 장면을 보기 싫다면 말이야.”

“그, 그만둬! 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우리 그냥…. 물만 좀 빼고!”

“그 말을 내가 믿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일이 끝나면 입을 막겠다고 한  너희들이었는데?”

“겁박한 거야!!! 널 겁줘서 우리에 대한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입 다물어, 그만 끝내자. 잘 가라 모죠.”

“그만둬! 그만두라고!!! 살려줘! 제발 살….”

푸욱!!!

“컥…. 그륵…. 끄윽!”

츄왓!

마음을 다잡은 뒤 검을 찔러 넣었다. 피거품을 물기 시작하면서 눈이 뒤집히는 모죠의 얼굴을 본 뒤 단검을 비틀어 그의 목 왼쪽으로 베어 단검을 빼냈다.

풀썩!

힘을 잃은 그의 몸이 땅에 허물어졌고 분수와 같은 피가 솟구친 뒤에 점차 잦아 들었다.
피가 튀었다. 비린내가 심하고 끈적한 감각이 몸 이곳저곳에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손에 떨림도 없고 마음도 평안했다.
첫 살인의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위화감이 없었다.
어느새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일까?

“히, 히익!!!”

푹!!!

“커흑!!!”

옆으로 이동하며 한 명씩, 확실하게 목을 꿰뚫어 단번에 저승으로 보내 주었다.
세 번째 남자를 넘어 마지막에 도달한 네 번째 남자, 그는 어찌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지, 동공까지 떨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나, 난, 망을  죄밖에 없다고. 합류한 시기도 얼마  돼! 지금까지 모든 사건은 저   소행이라고.”

“선택을  건 너야. 그리고 이건  선택에 따른 후폭풍이고. 받아들여.”

“제, 제발!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다고!!! 시발 개 같은 년아! 시발, 시발! 시발!!!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는 거냐! 강간 좀 당했다고 뭘 그리 대수라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가랑이 벌렸다고 이 지랄을 떨 거면 그냥 보지 따위 꿰매 버리고 살란 말이다!”

푸욱!

“케엑!”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고 가야지.  가라. 이름 모를 새끼야.”

마지막 남자의 숨이 끊어지면서 날 강간하고 비밀을 알게 된 것들이 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모두의 목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날 억누르기 시작하는 묘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인제 와서 이런 감정이 느껴질 것은  뭐란 말인가, 차라리 처음처럼 아예 느끼지 못했다면  좋을까.

“하….”

죄책감은 그리 오래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어서 빨리 몸에 묻은 피를 씻어 버리고 침대에 몸을 눕히고 싶은 기분뿐이었다.
요즘 들어 계속 이런다.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게 내 방에 도착해 있는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
첫 살인의 충격은 살인을 마음먹은 그 순간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고 난 이후에 아주 천천히  정신을 후벼 파고 있다.

[‘살려줘!!!’]
[‘주, 죽기 싫어!’]
[‘아, 아아아아!!!’]
[‘시발 개 같은 년아! 시발, 시발! 시발!!!’]

죽인 자들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고 떠나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살인의 충격이구나.

“으윽!”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느낌에 어지러워 그대로 몸이 휘청하고 흔들렸다.
마땅히 잡을 곳도 없어서 그대로 바닥을 향해 쓰러지려는 그때, 누군가 내 몸을 잡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지크리스?”

“예 접니다. 명령대로 여기서 대기중이었습니다.”

“하…. 미안하다. 욕실로 좀 데려가 줄래?”

“예. 이루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내 몸을 번쩍 안아 들어 양팔로 등과 다리를 받쳐준다. 마치 공주님을 안아  기사 같다.
왠지 모를 포근함에 정신이 아뜩해진다. 그대로 욕실에 도달하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루스! 이루스!!! 정신 차리십시오! 이루스!!!”

“….”

“이….”

지크리스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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