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37화, 작은 새장. (36/70)



〈 36화 〉37화, 작은 새장.

사장의 등장으로 작은 소동이 일어났지만, 도적단 단원이 상주함에 따라 그 소동도 싱겁게 끝이 났다.
설마하니 내가 도적단에서 간부에 오를 줄 몰랐는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놀라므로 가득했다.
다들…. 돌아온 날 환영해 주던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일변하다니….
이들이 도적단에게 얼마나 많은 폭거를 당해 왔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날 색안경 끼고 보진 말아줬으면 하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뭉클하다.
다만,  한 사람 만큼은 날 제대로 봐주고 있었다.
기우 선배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든 상관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여긴  그러니까. 비품실에 가서 이야기하자. 그동안의 일 궁금했지?”

“아. 네…. 그렇게 해요 선배.”

“하하…. 아직도 난 선배구나?”

“그야…. 몸은 저기에 있어도 전 이곳 사람이니 당연하죠.”

“그래…. 가자. 다들  있으면 점심시간이니까. 그때마저 이야기하고 지금은 하던 일에 집중해요.”

“기우씨는….”

“간부님 상대해 드리는 것도 일인데 사장이 뭐라 하겠어요?”

선배의 말을 들은 사원들의 눈이 사장을 향했고 사장은 그 눈빛들을 받고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 그렇게 해! 박 대리가 우신…. 아니  간부님 잘 좀 대접하라고.”

“사장님 말씀대로 하지요.”

사장의 허락도 들었겠다.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기우 선배가 움직였다.
그는 날 이끌어 비품실 안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공간에는 쉴 수 있는 의자와 커피 믹스 다발, 그리고 정수기 하나가 달랑 있었다.

“앉아. 사장 놈이  사람 이상 쉬는 꼴을 못 봐서 비품실에 휴식실을 같이 만들어 버렸어.  다시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제대로 된 직원휴게실을 만들어 준다는데 솔직히 별로 믿음이  가는 말이야.”

“휴식실이 있는 게 어딘가요. 전 솔직히 아직도 여러분이 잡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어요.”

“사장 말대로 에탄 두령이 우릴 풀어 줬어. 대신 회의실보다는 크지만,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 한곳을 막아두고 그곳에서 우릴 인질로 잡아두고 있지. 이른바 작은 새장이라고 부르는 도시 하나 크기의 인질 수용소야.”

“그 말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뜻인가요?”

“그래…. 처음엔 정부 측에서 크고 작은 인질구출 작전을 펼치긴 했는데 그게 뜻대로  되었나 봐. 사상자가 많아지자 회유책을 쓰기로  거지. 그걸 사장은 자기가 에탄 두령을 잘 구워삶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앞에 서면 그냥 쭈그려서 빌 뿐인 인간이 뭘 했다고 큰소리인지 후우….”

“에탄 두령 팀의 수가 많은 건 알고 있지만, 그 수로 도시 하나를 전부 관리하는 것은 힘들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예요.”

“이곳 사람들을 지원받아서 명예 단원으로 부려먹고 있거든, 거리나 각 건물을 감시하는 것은 도적단의 단원들이고 도시 외곽에 나가서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은 우리와 같은 한국인들이  명예 단원이 되어서 그들의 밑에 복종하여 일하고 있는 거야.”

“그럴 수가…. 설마 목숨의 위협을 받아 강제로 일하는 건가요?”

“아니 스스로 자원한 거야. 참고로…. 우리 사원 중에 창명이 형과 몇몇 사원들도 그곳에 자원했어.”

“창명 선배가요?!”

“그래…. 그래도 창명이 형은 자원하면서 자신과 몇몇 사원들이 그들의 허드렛일을 해줄 테니 여자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조건을 두고 일하는 중이야.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주는 은화의 가치가 제법 크다는 것을 알고 일하는 중이고. 거기서…. 은화나 금화를 사용한다지?”

“예. 기축 통화는 왕국, 또는 제국에서 발행하는 동전을 상용해요.”

“그래…. 뭐, 그래서 지금 우릴 이곳에 가두는 일을 하는 것은 모두 명예 단원들이야. 아마 거리를 조금만 걸어보면 바리케이드를 쳐두고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들이 보일 거야. 그들이 바로 내가 말한 사람들이야.”

“그럼 지금 이 도시 안에서만 생활하는 중인가요?”

“그래. 어차피 모든 것은  에탄 두령이 통제하고 있거든, 이 도시에 있는 모텔을 우리 회사원들이 숙소로 사용 중이야. 상황이 상황이라 모텔 주인도 가격을 조금 싸게 책정해 주고 있어서 월세 35로 생활 중이지. 그 외 음식점부터 각종 마트도 제대로 운영 중이야. 이곳에서 사람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짐을 옮겨주는 택배차와 탑차는 들어올 수 있거든, 물론 검문이 매우 엄격해서 그런 차에 타고 탈출하려다가 발각되는 사람도 많았지.”

“그래서 회사도 이렇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거로군요.”

“아. 우리 회사가 다시 이렇게 운영된  최근이야. 얼마 전까지는 다들 잡혀 있다가 이번에 정부랑 이야기가 잘 돼서 풀려난 거니까. 그들의 무력이 너무 강해서 건들기는 힘든 모양이야.”

“아마…. 탱크를 몰고 와도 힘들 거예요. 일반 단원들이야 상대할 수 있다손 쳐도 두령인 에탄은 절대 불가능할 거예요.”

“그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 뭔갈 알고 있는 모양이네?”

“음…. 믿을지 모르겠는데. 이곳 도적단 사람들은 레벨이 있어요.”

“레벨? 온라인 게임에 그 레벨 말하는 거야?”

“네. 레벨이 강함의 척도라는 건 뭐…. 기우 선배가 더 잘 알고 있겠네요.”

선배는 모바일로 즐기는 게임이 있다. 그곳에서도 레벨이라는 개념이 있을 테니 내가 처음 이해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쪽 세계는…. 레벨이 있다는  이해 했어.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일반 단원들의 레벨은 50이 넘어요. 에탄 조는 공격성이 강한 도적단의 마수 사냥 부대라 기본적으로 레벨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간부들의 레벨은 80에서 100 사이…. 에탄의 레벨은 150이 넘는다고 하네요. 레벨 50만 되어도 총알이 통하지 않는데. 레벨 100, 150이라면 얼마나 강할지 예상이 되나요?”

“그…. 흠…. 엄청나군.”

“그래도 다행이네요. 장부가 잘 처리해줘서. 이렇게라도 원래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까요. 곧 인질 상태도 풀려나는  아닌지 싶네요.”

“아니…. 저들이 이곳에 있는 한 우리가 인질에서 풀려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이상한 모습을 보여도 바로 원래대로 원상 복귀될 수도 있어. 창명 선배가 요즘 들어 단원들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대.”

“무슨 말이에요?”

“에탄 두령이야 정부가 알아서 그를 잘 대접하고 있지만, 단원들이나 간부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중이거든,  좀이 쑤시다 이거지. 열심히 마수를 사냥하는데 즐길 거리가 없다 이거야…….”

“아….”

도적단에 있을 때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풀  있는 스트레스 해소 구역이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그런 곳이 마땅치 않았다.
유흥업소가 몇  있긴 하지만, 대부분 노 터치, 즉 유사성행위, 성행위를 절대 금하고 술만 따라주고 대화를 나누는 곳이 전부였다.
도시를 나가 좀 더 번화한 곳이나 어두운 곳으로 들어서면 퇴폐업소가 몇 있긴 하겠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볼 정도로 이들이 한가하지도 않다.
마수는 매일 등장하고 그것을 사냥해야 할 테니 말이다.

“어쨌든 상황이 그렇다 보니까. 몇몇 단원들과 간부가 남자들의 성욕을  여자들을  만들 생각인 거 같아서 다들 긴장하고 있는 상태야. 창명 선배가 친해진 단원들을 술로  다독이고 있긴 한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어 보여.”

하긴…. 술은 그들이 가져온 것으로도 충분히 마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세상 술이 어디 술인가? 밍밍하기만 하고 제일 싸구려 흑맥주보다 맛이 없는 소주를 누가 마시겠는가….
이미 저쪽 세상의 술로 단련된 우리 단원들이 그런 술을 마신다고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나 역시 소주를 다시 마시라고 한다면? 맛없다고 거부할지도모르는데 말이다.

“에탄 두령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틀리겠지만…. 간부들이 지속해서 아우성친다면 그도 마음을 바꿔먹을지 몰라.”

“후…. 죄송해요. 선배. 지금 내가 도와줄 수가 없어서.”

“에이…. 아니야. 그래도 너 열심히 했나 보다. 그곳에서 무사히 간부 직위도 달고 말이야.”

“아직 보조 간부에요. 간부 바로 아래죠. 브로치는 보조 간부용이 따로 없어서 받은 거고요.”

“그래도 단원보다는 높다는 거 아니야. 이제 그곳에 간지 얼마다 되었다고 고속 승진을 하고 말이야. 내가 눈여겨본 보람이 있었어.”

“그러는 선배도 대리가 되었으면서 뭘 그래요?”

“아…. 그래 대리…. 이거 뭐 그냥 명예직이지. 창명이 자리를 꿰찬 거뿐이니까.”

“아….”

창명 선배가 회사에서 나가는 것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기우 선배가 올라간 모양이다.
기우 선배 예전 일로 역시 사장에게 밉보였을 텐데 그런 기우 선배를 기용하다니, 일단 사장 역시 기우 선배의 실력은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일만 엄청 시키고 부려먹는 것도  배가 되어서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말이야.”

“하하…. 짠돌이 사장이 어디 가겠어요. 말 좀 해줄까요?”

“에이…. 그러지 마. 나 자존심 높은  알지?”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피….”

“이러고 보니까 우리 우신이 예전 그대로구나. 겉모습만 바뀌었지.”

“그, 그렇죠.”

‘아니에요. 기우선배. 선배가 알고 있는 예전의 내 모습을 연기하는 중이에요.’

기우 선배 앞에서 이른바 내숭을 떨고 있다.  털털해진 도적단의 이루스 성격 그대로 기우 선배를 대하면 무슨 표정을 할지 심히 두려울 지경이다.
그때였다. 시간이 꾀지나 점심 시간이 되었는디 비품실의 문이 열렸다.

“우신아!”

“우신씨. 너무 오랜만에 본다!”

“아…. 우신아 정말 잘 왔어!”

여사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비품실로 들어왔다. 남 사원들하고는 기우 선배와 창명 선배 말고는 거의 얼굴만 데면데면한 사이라 방금 인사로 대부분 인사치레는 끝난 거다.
기우 선배가 살짝 자리를 비켜주자 그곳을 차지하는 여사원들, 그녀들은 조잘조잘 떠들며 나와 지금까지의 일들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다들 밝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같아 다행이었다.
입구에서 날 알아보지 못했던 세연이 역시 지금은 완전히 경계를 풀고  옆에서 신기한 듯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우신아. 몸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왜? 너무 흉한가?”

“아, 아니 엄청 멋있어. 진짜 단단하다. 거기 가면 다 너처럼 변하는 거야?”

“아니….  3주일 동안 먹은   쏟아낼 정도로 힘들게 훈련받았어.  90도 정도 되는 거칠고 높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반복했지…. 아마…. 생각만 해도 토할  같아….”

“헉…. 그, 그랬구나. 말투도 엄청 거칠어졌네.”

“다른 도적단 여자들이나 언니들도 이런 느낌이라 물들었나 봐. 그래도 나 아직 담배는 안 펴. 그것까지 피면 진짜 갈 데까지 갈  같아서….”

“잘했네. 응…. 담배는 나쁘지. 몸에도 안 좋고. 그럼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야?”

“아쉽지만 않아야…. 오늘 돌아가 봐야 해. 쉬는 날에만 이곳에 돌아올  있도록 허가를 받았거든.”

“그렇구나…. 아쉬워라.”

“응?”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그런데 내 시선에 처음 보는 물건이 그녀의 목에 매달려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못 보던 초크였다. 하트 문양이 귀엽게 달린 초크, 그것이 그녀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저기. 세연아. 이거 산 거야?”

“응? 아…. 아니…. 선물 받은 거야. 이뻐?”

“응. 예쁘네. 누가 해준 거야? 우리 사원 중에 있어?”

“어…. 응…. 그….”

“아이참 왜 그래. 우리끼린데  좀 해봐. 누구야? 응? 궁금하다 야.”

“아…. 이거 말이지…. 이거….”

그녀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선물해줬기에 저러는 건지 계속 궁금하기만 했다.

“우신아.”

내가 계속 그녀를 추궁하고 있자. 밖에 나가 있던 기우 선배가 다시 비품실로 들어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세연이가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대답을, 그가 대신해 주었다.

“그거…. 내가 선물했어. 세연이한테.”

“에?”

뜻밖의 말에 난 얼어 붙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선물했다고?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머리는 분명 그 말을 제대로 들었고 이해는 했다. 그러나  가슴이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해…. 나랑…. 세연이 사귀고 있어.”

“진짜?”

“응…. 미안해. 우신아…. 이렇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워…. 그리고…. 연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아…….”

난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머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에서는 일단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추, 축하해. 두 사람 다….”

그렇게 난 과거의 인연 하나가 무참하게 짓이겨지는 현실로 돌아왔다.
처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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