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6화, 돌아온 내 세상. (35/70)



〈 35화 〉36화, 돌아온 내 세상.

넓은 동공 중앙에 푸르른 물결이 펼쳐진  시설물이 보인다.
이것은 도적단에 설치된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게이트다.
난 과거에 이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납치되었고 그때부터 여도적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드는 푸른 물결의 안으로 카밀라가 들어갔다.
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그 푸른 물결의 안으로 들어갔고 눈앞의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옥…. 내가 살던 세상에 있는 내 회사의 사옥이다.

“아…. 이 공기….”

사옥의 냄새가 풀씬 풍기는 공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발자국 앞으로 걷는 그때였다.

“이야! 이우신! 이우신이잖아!”

“속창?”

“아니! 그건 이명이라고! 난 놀티아야!!! 설마 벌써 잊어버린 거냐?”

전날 이곳에 잠시 돌아왔을  인사를 나누었던 속창의 놀티아란 유쾌한 남자가 날 맞이했다.
그 옆에는 도착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카밀라의 모습이 보인다.

“네 것도 내가 해놨으니 이제 돌아다녀도 괜찮아.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충분히 놀다가 여기서 보자.”

“놀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런가…. 아무튼,  일하러 간다. 좀 이따 보자.”

“그래.  이따 보자 카밀라.”

카밀라가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놀티아가 다가왔다.
그는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인지 나에게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졌다.

“어때? 도적단 상황은? 바뀐  없어?”

“뭐. 그저 그렇지…. 탈주자가 하나 있어서 한번 뒤집히긴 했어.”

“탈주자? 이야…. 누가 도적단을 탈주한 거야? 미친 건가? 누구야 그 머저리 같은 놈이”

“바논.”
내 대답을 듣자 놀티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창을 내려놓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씨발…. 그 녀석이냐…. 하….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역시 죽었겠지?”

“응…. 배신자는 모두 처형당하니까…. 넌 바논하고 친구였어?”

“바논 그 녀석이 좀 유쾌한 놈이라 자주 놀았지. 그런데 이것도 우연이긴 하네. 너도 바논하고 친했던 거냐?”

“그곳에서 유일하게  엉큼한 눈으로 안 보니까.”

“음…. 하긴…. 나도 널 보니까 불끈불끈 하긴 한다. 그 녀석은 뭐 돌부처인가?”

“넌그래도 솔직해서 좋네.”

“솔직한 게 내 장점이지.  놀티아가 솔직한 거 빼면  창밖에 남지 않는다 이거야.”

“하하….그렇구나.”

“아니…. 그 반응은 좀 상처가 되는데….후…. 옷이 바뀌었네? 벌써 단원 생활을 접은 거야”

“운이 좋아서 보조 간부가 되었어. 뭐…. 그래 봐야 단원이랑 거의 차이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이걸 줘야겠네.”

놀티아가 나에게 작은 브로치를 하나 내밀었다.

“뭐야 이건?”

“여기는 하도 남자들이 기가 세거든, 그러다 보니 하극상도 종종 일어나. 그런 하극상을 미리 방지하려고 이런 브로치를 제공하지. 간부는 모두 하늘색 브로치를 하고 있어. 넌 보조 간부지만, 엄연히 단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거니까 이거 꼭 차고 있어. 그럼 불필요한 시비 같은  잘  걸 거야.”

“이를테면 가슴을 만지거나 가랑이를 벌리라는 그런 개 같은 짓거리를 말하는 건가?”

“정확하네. 그걸 말하는 거야. 단원에겐 절대 줄 수 없는 거라서  어떻게 잘 보호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보조 간부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내  정도는 내가 보호할 수 있어.”

“그래 보이긴 하네…. 너 참 많이 변하긴 했다.”

“그렇게 많이 변했어?”

“복부만 봐도 알겠는데 뭐. 너 처음엔 여기에 살집 있었다고.”

“닥쳐.”

“큭큭큭…. 그래. 그럼 고향 구경 실컷 하고 돌아와. 혹시 모르는  없으면 가만히 서서 자리 지키는 놈들에게 물어봐 뭐 친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세상인데 내가 모르는 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있을걸? 네가 달라진 만큼 여기도 달라졌으니까. 아! 여기 잡혀있던 사람들은 지금 다 풀어준 상태야. 이 건물 바로 옆에 작은 건물에서 예전처럼 일하고 있던  같더라.”

“풀어 줬다고?!”

“그래. 너희 정부라는 대가리들이 사람들 풀어 달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니까 에탄 두령이 기분이 좋았던지.흔쾌히 다 풀어 줬어. 요즘 그쪽에서 파견 나온 뭐 높은 사람이랑 같이 좋은데 다니는지 얼굴에 아주 미소가 끊이지 않던데?”

“그, 그렇구나.”

무섭구나…. 한국…. 아무래도 정부에서는 에탄 두령을 접대로 구워삶아 놓은 모양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이들을  몰아내거나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려고 했을 터다.
그러나 이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마수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이들이 없으면 그것을 제거할 수단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겠지.
뭐 어디까지나 내가 예상하는 시나리오일 뿐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들어봐야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괜찮아?”

“어 그건 괜찮아. 마수가 나오는 곳은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으니 거리가 안전해. 다만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 단원들이 지키는 부분이 있거든? 그곳을 넘어서 밖으로 나가는  안 돼. 에탄 대장의 허락이 없으면 우리 도적단은 그곳을 나갈 수 없어.”

“알았어. 설명 고마워.”

“좀 이따가 보자고.”

“그래”

놀티아와 해어져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왠지…. 지금은현대 문물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내가 있던 곳의 상황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이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도적단을 제외한 사람의 모습이 말이다.

“아….”

건물 밖으로 나오니 확실히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공원이 조성되어 있던 곳에 처음 보는 격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놀티아가 말한 마수가 소환되는 곳이 바로 저곳인 모양이다.
건물들도 많이 파괴되어 있었으며 이따금 사람들이 모습을 보일 때면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입고 있는 이 도적단 색이 짙은 옷 때문인지 사람들은 나와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저기.”

“힉!!!”

“아. 뭔가 물어보려는 것….”

“모, 모릅니다! 살려주세요!!!”

이 사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물어보려는 것뿐이었는데 이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할 판이다.
다행인 점은 한국어로 적힌 작은 간판들을 읽을  있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한국인이었으니까….
조금 주변을 돌아다닌 난 어렵지 않게 한 작은 건물을 발견하였다.
내가 원래 일하던 회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작은 한국어 간판. 이곳이 확실했다.

“후….”

오랜만에 만날 생각을 하니 괜히 몸이 긴장되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생활을 하는 사원들이 모습이 보였다.
내부의 공간이 꽤 컸고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죽 앉아서 PC 화면을 보며 자기 일을 하고 있다.
2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들의 틈에 섞여 있었을 터였다.
누가 들어왔는지 뒤 돌아볼 법도 한데 그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일하는 기계가 이런 것일까?
나 역시 과거에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그때였다.

“저기…. 누구신가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고개를 조금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연이?”

“네? 저를 아세요?”

내 모습이 변해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도적단의 옷을 입고 있기에 조심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세연이 맞지?”

“저…. 저기 저희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페이머스 도적단 분인 거 같은데…. 여긴 무슨 일로….”

“우신아!!!!!!”

세연이가 말 알아보지 못한 것은 좀 충격이긴 했다. 두 달 밖에 안 되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너무 길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박혀 들어오는 목소리를 잊을  있을 리가 없었다.
기우 선배의 목소리였다.

“기우 선배….”

“우신이 맞지! 맞구나!!! 너구나!!!”

기우 선배가 날 알아보자 다른 회사원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점차 얼굴의 표정들이 변하더니 나에게 다가와 저마다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우신이? 진짜 우신이야!”

“엄청 변했네!!! 어머  복근 봐 얘 지금까지 뭘 한 거니!!!”

“언니! 정말 오랜만에요. 거기서 잘 지냈어요?”

“돌아온 거냐? 완전히 돌아온 거야?!”

질문에 하나, 하나 답을 해주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렇게 가지 환영을 받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저 멀리서 과장 놈도  소란스러운 상황을 보고 다가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허, 헉! 이, 이우신…. 저게 왜 여길….”

혼잣말로 조용히 하던지…. 다 들리게 말하면 무엇을 하는가.

“오랜만이네요. 과장님.  지내셨죠?”

“흠…. 흠…. 잘, 지내고 있었지…. 아니 있었죠. 여긴 무슨 일입니까?”

반말하다가 갑자기 말이 존대로 바뀌는 과장, 아…. 내가 도적단 옷을 입고 있어서 저러는 건가?

“편하게 하시죠. 괜히 존대하셔도 불편하기만 하네요.”

“그, 그렇게 하지….”

“이봐! 뭐 하고 있어!!! 다들 일 안  거야? 돈 벌기 싫….”

과장 다음에는사장인가? 역시 벗겨지고 불룩 나온 배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다. 머리가 좀 더 벗겨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대충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점차 확신에  얼굴이 되어간다.
그는 천천히 이곳으로 다가오면 사원들을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이게 누군가! 이우신! 우리 사원 이우신이 돌아왔군.”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바쁜 모양이네요?”

“하하하 우리 회사가 원래 그랬지  그래? 지금은 사옥을 빼앗겨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대부분 일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지. 내가 그래서 예전에 말했잖아. 결국,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완전히 옛날이 아니죠.”

기우선배가 그의 말을 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직도 사장과 다투고 있던지 그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죠. 이 건물도 어디까지나 저 도적들이 강제로 준 것이고 저희는 어디까지나 아직 인질들입니다. 저들이 주는 음식, 그리고 잠자리에서 잠자고 이 아주 작은 거리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된 인질이요.”

“흥! 그래도 예전에 그 회의실에 감금되어 있던 그것보다는 훨씬 나아! 내가 에탄 두령을 구워삶아서 이렇게라도 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직도 벌거벗은 가축 취급당하고 있을 거야. 똑똑히들 들어. 아직 나와 두령의 친분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빨리 자리에 앉아서 일들이나 해!!!”

아무래도…. 예전 알력 다툼의 승리자는 사장이었던 모양이다.
에탄 두령을 구워삶았다고 두루뭉술 설명하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한 것인지 까진  모르겠다.
사원들이 마지못해 자리로 돌아가자. 사장은날 바라보며 진득하게 웃었다.

“자네. 완전히 돌아온 건가? 그럼 일자리가 좀 필요하겠지? 어때 다시 입사하고 일이나 하는 게. 그거 몸도 좋아졌겠다. 남자들이랑 같이 힘쓰는 일 좀 해주면 좋겠는데.”

더는 말도 섞기 싫어지는 남자다.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그러면서 어떻게 에탄을 구워삶았는지도 참 의문이다.
오랜만에 사람이 살아서 이렇게 돌아왔는데 한다는 말이 고작 저건가? 참 대단한 양반이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나?”

“헉!!!”

그때였다.  누군가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간편한 차림의 추리링 그런데 머리 위의 스타일이 참 자유분방한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우리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응? 뭐야. 우리 단원인가? 어 간부님이네. 간부님이 여기까진 무슨 일인가요?”

그런데 말이 좀 이상하다. 그는  바라보며 간부라 칭했다. 그러고 보니 놀티아가 준 브로치가 내 가슴에 달려 있었다.
이 남자는 완전히 현실에 녹아든 페이머스 도적단의 일원인 듯했다.

“가, 간부라니 그, 그게 무, 무슨 소립니까?”

“이거 안 보여? 여기 브로치. 이 하늘색 브로치는 간부님이 차는 거라고. 아휴 실수했네. 간부님이 오셨는데 내가 나와보지도 않았다니. 내가 시발 우리 도적단 인원 오면 나 깨우라고 했냐  했냐? 이 대머리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장은 그 자리에 완전히 엎어져서 남자를 향해 절을 하였다.
꼴을보아하니 기우 선배가 한 말이 아예 거짓은 아닌 듯하다. 아직 이곳은 도적단의 감시 눈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간부님은 여기 무슨 일입니까?”

“내가 원래 여기 사람이었어. 잠깐 예전 동료들하고 인사나 하려고 온 거야.”

“아?  사람인가? 아 사람이구나. 워! 벌써 간부가 되셨어요? 이거 참 대단하신 분이었네. 뭐 편하게 구경하세요. 간부님이 돌아다니는 건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요.  일어나.  이리 와서 내 어깨나 주물러.”

“네. 네! 알겠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참….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단 한 순간에 이렇게 상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역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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