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5화, 휴식 날의 쇼핑.
강행군.
강행군에 또 강행군.
말로만 강행군, 강행군 노래를 부르지만, 정말 튜테팀에 온 뒤로는 수련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마수 사냥만 해도 몸에 살이 붙을 새도 없었으며 정말이지 온몸이 다 뻐근해진다.
주말에 나가야 했던 유흥 방의 일을 이번 주는 쉬어야 할 정도 몸이 다 고단했다.
우르자인은 튜테 팀의 활약을 잘 알고 있기에 흔쾌히 이번 주의 유흥 방의 일을 빼주었다.
“와…. 레벨 봐라. 엄청 올랐네.”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상태 화면을 확인해 보니 레벨이 많이 올라 있었다.
현재 내 레벨은 55에 달해 있었다.
간부인 카밀라도 놀지 않아 그녀의 레벨이 65였는데 그녀와 내 레벨 차이가 겨우 10이었다.
우르자인에게 양도받은 레벨, 그리고 바논의 레벨, 마수를 사냥하면서 얻은 경험치가 쌓여 올라간 레벨이 합쳐진 결과이다.
뭐…. 능력이 능력이라 마수 사냥으로 얻은 레벨은 정말 극악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대부분 레벨은 우르자인과 바논에게 받은 레벨이 주였다.
55레벨, 지금은 보조 간부가 되었지만, 단원이 가지기에는 확실히 엄청 높은 레벨이긴 했다.
대부분 간부가 레벨 50~80대이니 나 역시 간부에 준하는 레벨이 된 것이다.
이 세계는 레벨이 강함의 지표이다. 레벨이 높다고 나쁜 건 전혀 없다 이 말이다.
하지만 단기에 이렇게 높은 레벨을 가졌다는 것은 제이슨, 카밀라, 우르자인 같이 내 능력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을 제외한 다른 자들의 의심을 부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주변에서 알고 있는 내 레벨은 38이다.
일부러 정보를 숨기고 레벨을 거짓으로 알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괜한 사고에 휘말려 봤자. 좋을 게 없지.’
38레벨이면 미녜보다 5 높고 유나보다 3 높은 레벨이다. 즉 보조 간부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38레벨도 너무 빨리 올린 감이 있었지만…. 매일 내가 보이는 수련 중독자 같은 모습과 미친듯한 마수 사냥으로 인한 부산물이 산을 이루니 그다지 의심을 보이진 않았다.
똑똑똑
방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으니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루스. 있어?”
“카밀라네. 들어와.”
카밀라는 내 대답을 듣고 문을 연 뒤,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내가 누워 있는 침대를 바라 보다가 의자에 앉지 않고 내 옆에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내 복부에 머리를 턱 하니 올리며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 뒤에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 편안….”
내가 저쪽 세상에서 자주 하던 말투가 그녀에게 조금 옮은 모양이다.
“난 불편한데. 그보다 무슨 일러 온 거야?”
“너 내일 저쪽 세상으로 넘어갈 거라며?”
“어? 응 그럴 거야. 왜?”
“아니. 나도 같이 넘어가려고.”
“네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에탄이 이번에 보고를 빠뜨렸거든, 바빴던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썩을 두령 놈의 보고를 받아서 대 두령님께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거지.”
저쪽 세상에 남아서 소환되어 변이하는 마수를 사냥해 그 마석을 이쪽 세상에 전달하는 어찌 보면 전진기지의 사령관이 바로 에탄 두령이다.
변이한 마수의 능력은 변이하기 전 가지고 있던 레벨의 다섯 배라고 한다. 그런 마수들을 사냥하는 일은 위험하므로 도적단에서 가장 공격적인 에탄 팀이 맞는 것이라 한다.
에탄 팀은 처음부터 공격적인 능력이나 레벨이 높은 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탄의 레벨은 150이고 간부의 레벨은 모두 80대에서 100에 육박하며 일반 단원도 가장 낮은 레벨이 50대에 머물러 있을 정도다.
카밀라가 에탄이라면 치를 떨면서도 그들과 대놓고 싸우지 않는 것은 바로 레벨의 차이가 크고 여성 단원만 모인 우르자인 조는 절대적으로 그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거의 반쯤은 우르자인과 제이슨의 계약으로 제이슨의 비호를 받아서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이 도적단의 혈기가 넘쳐 흐르는 우악스러운 남정네들의 육변기로 전락했을 거라는 게 카밀라의 대답이었다.
“참 궁금했는데. 너 왜 그렇게 에탄을 싫어하는 거야?”
“넌 뭐 그 근육 덩어리가 좋냐?”
“아, 아니 좋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렇게까지 나쁜 감정은 없는데….”
“그 개자식 이야기는 하지도 마. 생각만 해도 그 좆 같은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강간?”
“입 안 닥쳐?!”
“미안….”
정곡이었나 보다. 그녀의 흉흉한 눈길이 내 폐부를 깊숙하게 찔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카밀라도 태어날 때부터 도적단은 아니었을 터.
에탄은 공격적인 팀을 이끌고 있으며 두령이 되기 전에도 성격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내가 당할 뻔했던, 에탄의 마수에 당했으리라 조심히 추측해 본다.
“확실히 그 욕망에 찬 추잡스러운 얼굴은 참기 힘들었어. 개자식 같으니.”
생각하고 나니 괜히 열이 받는다. 그때 카밀라가 일찍 도착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그 녀석의 것을 받을 뻔하였으니 말이다.
뭐…. 따지고 보면 늑대(에탄)를 피했는데 그 앞에 집채만 한 대호(제이슨)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도움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 그만하자. 욕해봐야 기분만 잡치지. 아무튼, 내일 아침에 갈 테니까 먼저 가지 말고 나랑 같이 가. 아! 너 보조 간부 되었지?”
“응. 그런데?”
“뭐가 그런데야. 보조 간부가 되었으면 품위가 좀 살게 차려입으라고. 일반 단원 복장을 언제까지 입고 있을 거야? 슬슬 다른 복장 입으라고.”
“아…. 다른 옷 입어도 되는 거야?”
“마수의 부산물을 환전하는 곳에 상단이 들어오잖아. 그때 전투에 적합한 옷들은 우리 도적단의 색으로 물들여서 환전소 옆의 무기점에서 같이 판매하고 있으니까 가서 확인해 봐. 괜찮은 물건이 좀 있을 수도 있어.”
확실히 카밀라 역시 첫 만남에서만 단원들이 입던 옷을 입었지, 그 후에는 복장이 자주 달라졌다.
원래 카미라의 조는 우르자인이 간부와 두령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카밀라의 레벨이 높아 지면서 그녀가 간부를 달게 되어 독립하게 된 유형이라 한다.
간부를 단 시기는 내가 도적단에 들어오기 약 두 달 전이라 한다.
“뭐…. 가끔은 일반 단원들 옷을 이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활동성은 좋아도 솔직히 단원이랑 똑같이 보이면 지휘체계에 영향도 준다고. 그러니까 가끔 입을 옷이 없을 때 입는 건 뭐라 안 하지만 직위에 맡게 옷을 입어. 아. 머플러는 고정이니까 절대 풀지 말고, 머플러는 두령만 풀 수 있어. 그리고 바지형 옷은 간부부터니까 그것도 알아 둬.”
“잠깐만…. 그럼 베로니는 뭐야?”
베로니는 머플러도 풀었고 치마도 입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그녀는 일반 단원일 텐데….
“그년은 특수한 경우야. 머플러는 목이 하도 두꺼워서 빡빡해 보이고 치마는 그년 맞는 게 없어. 그 바지도 겨우 장만한 거야.”
“아….”
확실히 베로니는 키도 훤칠하게 크고 온몸이 근육질인 특이한 여성이었다.
뭘 어떻게 관리하는지 참 궁금할 정도로 그녀의 온몸은 다 무기로 보일 지경이다.
옷이 맞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특이 사례였다.
“쉬는 날인데 방에만 있으면 뭐해. 가자. 보조 간부가 되었는데 내가 가만있을 수 없지. 이 간부님이 후배에게 선물을 좀 줘야겠어.”
“어차피 한시적인데 굳이 뭘 사…. 다시 돌아가면….”
“돌아와도 넌 보조 간부야.”
“어…. 뭐라고?”
“이미 튜테랑 이야기 끝냈어. 돌아오면 넌 계속 내 조에서도 보조 간부야.”
“우린 보조 간부가 필요 없잖아? 간부가 힘들 정도로 신경 쓸 곳이 많거나. 사람이 많아서 관리가 안 될 때나 필요한 거 아니었어?”
“그리고 간부의 독자적 판단으로 보조 간부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자유롭게 새워줄 수 있지. 그러니까 열심히 배우고 돌아와. 돌아오면 보조 간부는 네 차지니까.”
“허 참…. 누가 보면 내가 네 뒷배로 올라간 줄 알겠다.”
“그럼 어때? 뒷배도 다 힘인데. 그리고 우리 팀원 중에 너 보조 간부로 올라간다고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 이런 단기간에 레벨을 30까지 올린 경우는 드물다고. 물론 모두를 속이는 수치지만….”
“음…. 사실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
“그렇지…. 아무튼 가자.”
하긴, 쉬는 날이라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건 지금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카밀라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서서 아지트의 길을 따라 환전소에 도착했다.
쉬는 날이라 그런지 환전소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카밀라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어 뚫고는 환전소 옆 무기점에 들어갔다.
몸이 작으니 그런가…. 난 아직도 사람들 틈에 쌓여서 전진을 못 하는 중이다.
사람들 틈에서 사소한 접촉이 이어지는 가운데 뭔가가 내 가슴을 꽉 움켜 잡았다.
말캉!
명백한 고의였다. 대놓고 가슴을 조물거리고 있는 손을 따라 도착한 내 시선에 보이는 남자
난 그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쥐고 그대로 찔러 넣었다.
“이 씹새끼야!!!”
퍽!
“으아아아아!!!”
쿠당탕탕
“내…. 내 이빨!”
한방에 나가떨어진 남자는 그대로 이빨을 떨어트리며 환전소를 대굴대굴 굴렀고 난 그 소란을 틈타 어렵지 않게 무기 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기 점에 들어가자 카밀라가 나에게 다가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다.
“뭐 한 거야? 큰 소리였는데?”
“치한 퇴치.”
“뭐?”
잠시 후 밖에서 뭔가 웅성웅성하더니 누군가 남자를 들쳐 없고는 요란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내 가슴을 만진 치한 놈의 동료겠거니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빨 몇 개 나갔으니 밥 먹을 때 고생 좀 할 거야.”
“잘했어. 그런 놈은 때려야 정신을 차려.”
“도적단에 저런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도적단이니까 그렇지. 우리가 정해둔 법을 제외하면 모든 법을 무시하는 후안무치들이야. 아…. 이래 봐야 우리가 우리 욕하는 거잖아.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옷이나 고르자.”
카밀라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도적단에 속해 있는데 그 속한 도적단을 욕한다면 누워서 침 뱉는 격이었다.
밖의 소란에서 신경을 꺼버린 뒤에 그녀의 뒤를 따라 무기가 진열된 곳을 지나 각종 옷이 진열된 곳으로 이동했다.
“카밀라네? 오늘은 동료랑 같이 온 건가?”
“그래 지미. 인사해. 내 밑에 있는 이루스야.”
“오호. 이 여자가 이루스라고? 요즘 환전소에서 이름이 자자한 냉혹한 마수 살인마가 바로 이 여자였군.”
“냉혹한 뭐 어쩌고 저 쨌다고?”
언제 나에게 그따위 이명이 붙은 건지…. 이건 뭐 자고 일어나자마자 뺨을 맞은 기분이다.
그래…. 환전소에 마수 부산물을 많이 가져가긴 했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람한테 그런 부끄러운 이명을 붙이다니 제정신인가 싶다.
“우리 냉혹한 마수 살인마 이루스가 손님이라니 상품의 가격을 좀 저렴하게 해줘야 겠군. 덕분에 마수 부산물이 많아서 우리도 질 좋은 상품을 많이 들여다 두었거든. 상단에서 아주 입이 귀에 걸렸을 지경이었고 우리도 입이 귀에 걸렸지.”
“아. 그러셔? 그럼 한 90% 깎아 줄 거야?”
“이봐…. 카밀라…. 그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지 않아?”
“네가 한 말이잖아?”
“얼마나 깎아준다고는 말 안 했어. 그건 내 마음이라고. 음….”
지미라 불리는 남자의 눈이 날 향했다. 그리고는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살펴본다.
그러던 남자의 눈이 내 얼굴에 닿았고 그의 입이 벌어지며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소리를 하였다.
“몸을 좀 써 주신다면 무료로도 줄 수는 있지.”
“지미!”
이름 부른 거 아니다. 평범한 한국식 욕이다. 물론 이곳에 있는 모두는 알아듣지 못할….
자길 부른 줄 알고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지미, 그리고 내가 화가 많이 났다고 생각한 카밀라가 날 말린다.
“야, 야 저거 농담이니까 너무 그렇게 반응하지 마.”
“농담을 참 좆같이 하잖아. 씨발놈이.”
“아. 나도 아는데. 저 새끼가 원래 저런 성격이야.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너 씨발 앞으로 내 앞에서는 말조심해라?”
“아…. 미안. 미안. 화아…. 성격 참 화끈하네. 내 말실수 인정하고 오늘은 반값에 줄게 알았지? 화 풀라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카밀라가 이끄는 대로 옷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르게 동료들과 같이 백화점 쇼핑을 하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그럴까? 고향으로의 귀환이 가까워지니 저번의 목욕 때도 그렇고계속해서 강렬하게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갈증들을 채워 줄 수 있으리라.
내가 곧 그곳으로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