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4화, 보조 간부.
벌떡!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가 일어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윽하게 꾸며진 방의 모습이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이 방 안의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은 내 뇌를 아찔하게 자극해 오고 있다.
“씨팔…. 내가 미쳤지. 미쳤어.”
어젯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인의 피부, 그리고 입술과 아름다운 교성, 울부짖는 두 암캐와 개 주인의 미소, 물론 그 개 주인이 바로 나였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두 암캐가 각각 개 오른쪽 팔, 그리고 왼쪽 팔에 달라붙어 곤히 자고 있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는 데도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고른 숨을 쉬며 잘만 잔다.
괜히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한쪽씩 볼을 잡아 늘이니 잠깐 몸을 뒤척이지만, 그대로 잠을 잔다.
“하아…. 이게무슨 꼴이람…. 여자들이랑 질펀하게 한판 하다니…. 내가 미쳤지 진짜.”
두 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기분이라도 전환할 겸 내부 정리를 하며 시간을 좀 보내니 두 사람이 늦은 아침에 부스스 일어났다.
“팔자 폈지? 아주. 기운 차렸으면 방 치우는 것 좀 도와줘.”
“후... 이제 그냥 말 놓기로 한거야?”
“어제 볼거 다 본 사이인데 뭐 어때? 왜? 언니 취급 필요해?”
“필요 없어. 쌍년 같으니. 다음엔 내가 널 깔아 뭉게고 말거야.”
“다음 같은 소리 하네. 일 없거든?! 다음 엔 둘이서 물고 뜯고 알아서 놀아.”
“후훗- 어제 보니까 잘만 즐기던데 뭐. 소질이 풍부하던데? 특히나 당당히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폼이 난 남자인줄 알고 뻑 갔지 뭐야.”
“나도... 진짜 이루스 넌 타고난 거 같아.”
“튜테까지 그러기야?! 내가 어제 암캐라고 불러서 억하심정 생겼어?!”
“하하하. 그럴 리가. 그보다 나도 이젠 그냥 막 부르는 구나.”
“왜? 언니는 그냥 언니가 좋아?”
“아니. 나도 그냥 편하게 불러줘. 레오나랑 나도 이런 사이가 된 뒤로 말을 놓았지. 네 말대로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끼리 뭔 언니 타령이야. 괜히 간지러워.”
“그래. 원한다면 그냥 이대로 갈게.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조는 해체하고 다른 조에 들어갈 거야? 아니면 지금부터 의기투합해서 다시 한번 해볼 거야.”
“음…. 레오나 네 생각은 어때?”
튜테의 물음에 레오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난 조를 해체하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
레오나는 헐벗은 몸을 가리지도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아 끌더니 튜테와 마주 잡게 했다.
“이루스를 보조 간부로 해. 그렇다면 이 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나도 동의할게”
“보조 간부라고?!”
“보조…. 간부…. 그런가. 그래. 이루스라면….”
내 무슨 모습이 그렇게 큰 믿음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이미 의기투합을 끝내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보조 간부란 도적단 내에 존재하는 등급에는 표기되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등급이다.
이러한 단계가 보조 간부, 그리고 부 두령과 특수한 상황에만 그 직책을 얻을 수 있는 총통이 있다.
이름과 같이 보조 간부는 간부의 바로 아래 등급이며 단원보다는 높은 직책이다.
간부의 수가 꽉 찬 상태인데 단원의 레벨이 높아지거나 실력이 출중하다면 임의로 줄 수 있는 등급으로, 따로 대 두령의 허가는 필요 없지만, 따로 혜택이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곧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 전까지 최대한 신입이 들어오길 바라야지. 나랑…. 튜테만으로는 솔직히 너무 불안하기도 하고. 거기에 네 그 매서운 주먹을 맞아봐서 아는데 너라면 믿고 보조 간부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윽…. 그 일은 미안하게 되었어. 나도 머리에 열이 올라서 그만….”
“딱히…. 배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 맞은 게 얼마 만인지 몰라서 조금 놀랐었지. 흐…. 그리고 제법 짜릿했고.”
‘씨발…. 진짜 미친년….’
S하고 M이 하나로 합쳐진 진성 변태가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얼마 전까진 싸가지는 없어도 정신은 멀쩡해 보였던 년이 말이다.
“아. 시끄럽고. 방 치우는 거나 도와줘. 너희가 싸지른 저 얼룩 다 지우기 전까지는 여기 못 나갈 줄 알아.”
“여기 네 지분도 있거든?”
“입 닥쳐.”
“하핫.”
그 후 두 사람의 강력한 추천과 미녜, 유나의 긍정까지 더해져 난 매끄럽게 이 튜테조의 보조 간부로 임명되었다.
*****
제이슨 도적단에도 각 간부가 이끄는 조별로 한 달에 쌓아야 하는 공적치의 할당량이 존재한다.
개인이 쌓은 것 외에도 조가 함께 임무에 나서서 조당 공적을 따로 쌓아야 한다.
이는 단원들이 개을러지는 것을 막고 간부가 얼마나 그 조를 잘 이끄는지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일정한 할당만 채우면 한 달 동안은 그 조가 뭘 하든지 크게 상관치 않으며 개인행동, 그리고 자기 계발 등등 여러 활동을 해도 신경 쓰지 않는 주의다.
그러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주점이나 유흥방 금지부터 간부의 강등, 단원들의 재산 일정량을 벌금으로 몰수 등등의 징계 조치가 뒤따른다.
튜테의 조는 이 할당량을 재우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고 이따금 턱을 걸치는 정도로 할당량을 채우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생긴 두 사람의 부고는 상황을 너무도 어렵게만 했다.
강행군하자니 팀원들의 피로도가 누적되어 사기가 떨어질 것이 자명한바, 하는 수 없이 쉬는 날을 잡고 임무에 임해야 했다.
촤악!!!
하늘로 솟아오르는 도마뱀과 인간이 조금 섞인 모습을 하는 마수의 얼굴.
리저드맨이라 불리는 마수의 잘린 목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그대로 땅에 툭 떨어졌다.
“포위!”
“오른쪽 OK!”
“왼쪽도 OK입니다.”
리저드맨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날려버린 이루스가 지시를 하니 미녜와 유나가 나무 뒤에서나타나 리저드맨 세 마리를 포위했다.
그리고는 미녜가 멀리서 단검을 던지고 유나가 접근을 하여 리저드맨의 신경을 이리저리 흔들어 두었다.
그 틈을 타 두 사람에게 신경을 빼앗겨 버린 리저드맨의 후방을 이루스가 공격하니 세 마리의 리저드맨이 그 자리에서 지리멸렬해버린다.
“손톱 갈무리하고 바로 다음 지역으로 가자.”
“알았어!”
“알았어요.”
이루스가 보조 간부가 되면서 나이가 같았던 미녜는 그대로 편하게 말을 했는데. 오히려 나이가 많은 유나가 이루스에게 존대를 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유나는 철저하게 상명하복에 잘 따르는 여성이라, 이루스가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 해도 높은 자리에 있으니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었다.
미녜의 경우는 아직 얼떨떨한 감도 있고 얼마 전에 같이 잘 지내자고 친근하게 굴었는데 갑자기 존대를 해버리면 이루스가 난감해할 거 같아서 아직은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현재 튜테의 팀은 하루에 더 많은 양의 공헌도를 쌓기 위해서 팀을 둘로 나누었다.
보조 간부인 이루스가 나머지 단원 둘을 이끌고 조금 위험성이 적은 리저드맨 부산물 납품 임무를 받았고 간부 튜테와 단원 레오나가 한 팀이 되어 조금 위험하지만, 보상이 큰 임무로 이동했다.
리저드맨의 서식지를 이 잡듯이 뒤지며 최대한 많은 부산물을 챙긴 세 사람은 온몸이 리저드맨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렇다 할 원거리 공격수가 없는 상황이라 모두가 근접해서 싸워야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단검을 던질 수 있는 미녜가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보조 공격이라 큰 피해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여 미노타우로스의 발정기도 곧 끝나갈 무렵이라 안전하게 리저드맨 사냥을 하긴 했지만, 그리 효율이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리저드맨의 손톱 중에 가장 수요가 많고 비싼 엄지손톱이 스무 갠가. 나머지 손톱은 아무리 많아도 그리 돈도 안 돼서 참 아쉽다니까.”
“가공하기에는 거대한 엄지손톱이 가장 좋아서 그런 거지. 남은 것들은 자투리 신세라 어쩔 수가 없어.”
“꼬리는? 주점에서 가끔 이걸 구워서 주던데 이건 안 팔리는 거야?”
“식용이 가능한 마수의 고기는 금방 상해버려서 판매는 할 수 없어, 잡으면 그 즉시. 또는 잠깐 보관을 하더라도 그날 바로 먹어야 해. 주점에서 나오는 꼬리 고기는 당일 잡힌 것들로 요리하는 거야.”
“그렇구나….”
모르던 내용을 배워 머릿속에 저장해 나가는 이루스였다.
그렇게 사냥은 소소하게 끝이 나고 모두 아지트로 귀환했다.
“이루스, 같이 씻을래?”
“응? 갑자기?”
“아니…. 이제 우리도 친해진 거 같은데 목욕 정도는 괜찮잖아.”
미녜가 얼굴을 붉히면서 더러워진 몸을 같이 씻자고 이루스에게 제안해 왔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유나 역시 이에 동참했다.
“저도…. 앞으로 얼마나 같이할진 모르지만, 동료끼리 우애를 다지는 것은 목욕이 가장 좋아요.”
“그, 그런 거야?”
“특히나 우리 튜테 조는 한 달에 한 번 꼭 다 같이 목욕을 하곤 했다고. 응…. 그랬었지.”
“아….”
튜테와 레오나의 다툼으로 인해 지금 미녜가 하는 말은 꽤나 과거의 일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모두 살아 있던 그 시절, 화기애애했던 레오나 조의 과거…. 그때의 일이다.
분위기가 점점 낮아지는 기운을 느낀 이루스는 미녜와 유나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윽!”
“앗!”
“가자. 씻으러.”
“그, 그래!”
“잘 부탁해요.”
그렇게 이루스는 하는 수 없이. 미녜와 유나의 뒤를 따라 여성들이 애용하는 공동 욕실에 들어섰다.
다른 조는 아직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은 건지 욕실은 세 사람이 전부였다.
더러운 피를 물로 씻어낸 세 사람은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편안하게 기대었다.
“응, 후….”
“아…. 앗….”
“응…. 좋아….”
저마다 입에서는 달콤한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딱히 그런 분위기도 아니건만 자동 반사는 무서운법이다.
뜨거운 물에서 시원하게 몸을 지진다. 이루스가 과거를 회상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여성 전용 찜질방에서 몸을 시원하게 풀고 동료들과 함께 잠들었다가 다음날 회사에 바로 출근하던 그때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찰박.
그때의 살집이 있어서 나름대로 베이글 소리 자주 듣던 몸에는 군살이 사라지고 전투로 단련돼 근육이 자리 잡았다.
어쩐지 속옷이 조금 헐렁한 것이 가슴 크기는 변하지 않았는데 등과 옆구리 살이 빠지면서 속옷이 잘 안 맞게 되었다.
거기에 회사 내부에서 앉아 있는 생활을 청산하고 활발하게 돌아다니니 축 처져서 뚱해 보이던 엉덩이도 라인이 날렵하고 위로 솟은 보기 좋은 형태가 되어 있었다.
피부도 완전히 타서 이젠 이것이 그녀의 원래 피부색이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과거 그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얼굴이 전부였지만, 그 얼굴 역시 눈에는 힘이 강하게 들어가 있으며 미소가 사라진 상태였다.
광대가 조금 보일 정도로 볼살 역시 빠져서 인산이 매우 강해졌다.
과연 이 모습을 과거의 회사 동료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참 궁금하기도 하고 어색할 것 같기도 했다.
쉬는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녀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런 생각뿐이었다.
‘이번…. 돌아오는 휴식 날에는…. 잠시 갔다 오자.’
어색할지라도, 또 그들이 자신을 몰라볼지라도. 그녀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다.
한시적인 귀환이지만, 제이슨과 확실한 거래를 하였으니꺼릴 것은 없었다.
그곳에 아예 눌러앉는 것만 아니라면 휴식날에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는 그의 허락.
근 2달 만의 귀환이다. 오랜만에 동료 사원들도, 그리고 기우 선배의 얼굴도…. 다시 보고 싶었다.
‘내가 너무 더러워졌다는 게 좀 흠이네…. 그는 이런 나도 받아줄까?’
제이슨의 강간, 고블린들의 윤간, 유흥 방에서 남정네의 것을 입으로 받고 떠나는 친구의 마지막 번식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끼리도 질펀하게 즐긴 몸이 되었다.
여기서는 이런 문란함이 전혀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그녀가 속한 곳은 어디까지나 지구였다.
아직….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상황을 추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철저하게 말이다.
그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녀의 사타구니를 씻는 행위는 제법 길었다.
마치 내부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다른 사람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 버리듯이….
“하…. 개운하다.”
“응…. 보조 간부는 어땠어요?”
“오늘 처음 와보는데…. 제법 괜찮았어. 종종 같이 씻을까?”
“그럴까요?”
“난 찬성!”
확실히 유나의 말마따나 알몸의 대화는 나름의 좋은 시간을 나누는 방법이었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의 거리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이 거리감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끼는 이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