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2화, 삼자대면.
레오나를 술로 떡실신 시키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 다음 날
난 다음 사냥감을 찾기 위해 도적단 아지트를 돌아다녔다.
그 사냥감은 머지않나 내 눈앞에 나타났으니 바로 간부인 튜테 언니다.
“언니.”
“응? 아 이루스구나. 무슨 일이야? 쉬지 않고.”
“쉬는 중이에요. 다름이 아니고 오늘 밤에 한가해요?”
“밤엔 언제나 한가한데. 왜 그래?”
“같이 한잔할까 해서요.”
“술? 좋지. 일 끝나면 주점으로 같이 갈까? 너 그러고 보니까 술고래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어디 그 술통을 내가 한번 상대해 볼까 생각도 하던 중이었거든.”
“그건 참…. 대단히 영광이긴 하지만, 오늘은 진득하게 할 이야기도 있으니 제 방으로 오실래요?”
“네 방에? 뭐…. 그럴까? 그럼 일 마치고 밤에 갈게.”
“네. 밤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밤에 보자.”
약속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간 난 준비를 시작했다.
침대를 정리하고 그 위에 이불을 정리했다.
그런 뒤에 초를 준비했다. 분위기를 위해서다.
정말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카밀라의 조언은 항상 옳았다.
마지막으로 탁자 위에 좋은 천을 깔아서 분위기를 한껏 더 고취 시켰다.
어느새 시간은 밤이 되었고 준비를 위한 마지막퍼즐도 제시간에 맞추어 내방에 도착했다.
마지막 퍼즐의 조각도 한곳에 배치하고 나니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방문 앞에 도착했다.
[“나 왔어.”]
“아. 언니. 들어오세요.”
예정된 시간에 튜테도 도착했다. 딱히 문을 잠군 것도 아니라 그녀는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
치장된 분위기를 보면서 그녀는 묘한 눈길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니?”
“아. 이거요? 카밀라가 추천해준 건데 왜요?”
“아니…. 그냥….”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그녀의 바로 앞에 마주 앉으며 술을 따라 주었다.
그냥 흑맥주가 아닌 튜테가 좋아한다는 투명한 화이트 와인이다. 이것 역시 카밀라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너…. 너무 대접하는 준비를 철저히 한 거 아니니?”
“할 때 확실히 해야죠. 먼저 한잔할까요”
“그래…. 귀여운 후배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즐겨야지.”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나와 그녀,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니 취기가 빠르게 올랐다.
이곳의 화이트 와인은 쓴맛이 약하고 달콤하기까지하다. 조금 신 맛이 강하지만, 그걸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입에 착 감기는 단맛이 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짧은 시간에 마시면 취기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몸에서 올라오게 된다.
그 때문에 나와 그녀는 온몸이 훈훈해져서 상의를 벗어야 했다.
어차피 여자끼리이니 별로 맨살이 보이는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속옷을 입은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상의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상의 자체에 가슴을 바로잡아주는 속옷이 일체형이라 그런듯하다.
술기운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가슴 정도는 여자끼리 별거 아니라는 듯 보여주는 성격인지 그녀는 반나체의 상태로도 술을 넙죽넙죽 잘만 마셨다.
“크…. 으아…. 취한다. 너 술 진짜 세구나.”
“저도 화이트 와인은 좀 강하게 느껴지네요. 열기가 확 올라와요.”
“그렇지…. 내가 그래서 이 술을 좋아해. 내 안의 열기보다 강해서 나를 계속 채찍질할 수 있거든.”
“뭐를 위한 채찍질인데요?”
“당연히…. 완벽한 지휘관이 되고자 하는 내 열망이지….”
“완벽한…. 지휘관?”
“응…. 내 마음속의 존경하는 내멘토…. 레오나 같은.”
“그녀가 언니의 멘토인가요?”
“지금은 이렇게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과거에는 나랑 그녀는 직속 선후배 사이였어. 엄청 친하고 또 큼큼…. 아니 이건 됐고. 지금은 어쩌다 보니 이런 상태가 되었지만, 난 그녀를 따라서 정말 멋진 간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화이트 와인을 또 한잔 들이켜며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과거 동료들의 죽음으로…. 레오나가 실각하고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갈 때는 정말 미안하고 또 나에게 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난…. 절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하고 멋진 간부가 되고자 했지. 그런데 간부라는 게 참 힘들더라고. 이 자리에 올라 보니까 그동안 멋지게만 보이던 이 자리가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힘든 자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 아마…. 그때는 아직 레오나와내가 사이가 좋았을 거야. 하지만 점차 그녀가 나에게 해주는 조언들이 지적, 그리고 참견으로 느껴지게 되었어. 난 간부인데 왜 단원인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하고 조언을 받아야 하는 건가 하고.”
“아…. 이해가 돼요.”
역시 술은 위대했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술만 한 것이 없다는 옛 과장님(놈)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이 도적단 역시 사회생활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실각한 상급자와 그 자리를 꿰찬 하급자의 의견 대립과 마찰, 흔히 있는 이야기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자주 그런 일이, 아니 오히려 블랙 기업이기 때문에 아주 흔히 일어나곤 했다.
자고 일어나 출근하면 내 윗사람이 내 옆 사람으로 바뀌어 있고 위에 있던 사람이 내 옆으로 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되고 그렇게 경쟁을 유도하며 회사의 이익을 챙긴다. 흔한 블랙 기업의 방식인 것이다.
뭐 제이슨이 거기까지 생각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방식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그 결과의 내용이 잘 되면 이익이요 못되면 사원의 퇴사였다. 여기서는 그 퇴사가 죽음과 연관될 것이다.
잘 되기를 바란 것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아마 그도 알고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봉합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것이겠지. 내가 본 그의 성격은 아주 냉혹한 지배자였으니까.
“내가 마음이 좁았다고 인정은 해….하지만…. 그 뒤로 레오나가 날 바라보는 그 눈빛이어땠을 거 같아? 날 자기 아래로 보는 그 거만한 눈…. 동료를 잡아먹는 년이라고 바라보는 그 눈이 날 미치게 만들어. 참으려고 해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어. 왜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계속해보세요. 오늘은…. 내가 다 들어 줄 테니 시원하게 다 말해봐요.”
난 아예 자리를 그녀의 옆으로 옮겨 내 어깨를 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입만 달싹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쩌다 보니 내 꼴이 상담사가 된 느낌이다.
“하…. 왜 그러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멋진지휘관. 완벽한 지휘관이 되려는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아니면…. 아직도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그녀가 자기 자리를 되찾고 싶은 건가. 도무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흠…. 적어도 그중에 답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후후후…. 아니야…. 알 수도 있겠네. 객관적인 입장이니까.”
“어제 레오나 언니하고도 같이 술을 마셔서 아는 거예요.”
“응?”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하게 해서 진솔한 마음속의 모든 대화를 다 끄집어냈고요.”
“무, 무슨 소리를?!”
“그래서 아는 건데 적어도 지금 언니가 생각하는 것 중에 답이 없어요. 오히려 당신이 너무 차고 넘쳐 흐르기에 힘을 빼려는 거니까요.”
“넘쳐... 흘러?”
“술잔에 술을 가득 담으면 그 뒤에는 흘러넘치잖아요. 지금 언니 꼴이 딱 그래요. 그릇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담고 또 담으려고만 하고 있다고요.”
“내가…. 내가?!”
“이 팀의 상황을 굴러들어온 제가 뭐라 지적하기 좀 그렇긴 한데. 부족한 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는데 혼자 독선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이 일이 일어난 거로 생각지 않아요?”
“내가…. 독선적?”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확실한 결단력이 있다는 뜻도 되긴 하는데 그 결단력이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들어오는 만류를 전혀 듣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전부 옳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독선으로 가는 길이예요.”
“…….”
“다행인 점은 두 사람이 폭발하기 전에 그 상처를 봉합 할 수 있다는 거고요.”
“뭐라고? 엇!!!”
“…….”
지금, 준비된 마지막 퍼즐이 베일을 걷고 나왔다. 저 베일 꽤나 비쌌다.
침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그 마지막 퍼즐 조각, 바로 레오나다.
그녀는 조용히 숨어서 지금 나와 언니가 나눈 대화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한 순간 밖으로 나와 그녀와 마주한 것이다.
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레오나가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레오나….”
“왜 그런 눈으로 봐?”
“나…. 난….”
“닥쳐.”
“…….”
“저시발년은 신경 쓰지 지금부터 내 말을 들어.”
“아씨…. 계속 시발년이래 내가 이렇게까지 자리를 마련해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너도 입 닥쳐!”
“네.”
히죽 웃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이제부터는 레오나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술을 홀짝이자 레오나는 튜테 언니와 고개를 마주 본다.
“팀 해산하자.”
“레오나!”
“이제…. 더 버티기힘들다고…. 알잖아! 이대로는…. 미녜랑 유나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차라리 우리가 뿔뿔이 흩어지는 한이 있어도…. 다른 팀에 들어가면 모두가 편해질 거야.”
“그럴 수 없다고…. 난 이 팀을…. 레오나의…. 나의 팀을 절대 해산하기 싫어. 너와 내 팀이라고! 우리의 팀이야!!!”
“알아…. 안다고! 그런데 지금 네 모습을 봐! 팀을 살리기 위해서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필요 이상의 전과를 탐내고 동료와 반목하고…. 그러다가 동료들의 죽음을 보았지. 그래…. 미안해 너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고. 그런 부담을 주면 네가 그만둘 거로 생각했어….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런데 네가…. 설마 그 때문에 더욱 열심히, 또 독단적으로 변해갈 줄 몰랐다고!”
“그만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튜테…. 그만하자….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제발…. 흑…. 그만하자고 하지 마…. 우리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크흑….”
쌓여왔던 튜테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방울방울 눈에서 흘러 그녀의 볼을 적시며 흘렀다.
레오나는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치 친언니처럼 다정한 손길이다.
괜히 이 자리에 끼어 있는 내가 불청객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이 조…. 왜 끝내려고요?”
“이루스.”
“이미 끝난 조야…. 우린 이제 더는 이 조를 이루어 나갈 힘이….”
“이미 제가 여기 온 이상, 그건 좀 힘들 거 같네요. 제이스 대 두령이 이 조를 끝장낼 생각이었다면 제 파견부터 틀어막았겠죠.”
“그건….”
“다시 해보죠. 처음부터.”
“처음부터…….”
“뭘 어쩌려고. 이미 나와 튜네는 노력할 만큼 했어. 이젠 편안해지고 싶다고.”
“우선 두 사람…. 지금까지 쌓인 거 많아 보이는데. 풀고 시작해요.”
“뭐?”
“푸, 풀어?”
“둘이 싸우느라. 지금까지 그거 못했다면서요.”
“!!!”
“!!!”
[“그 둘, 서로 몸 섞는 사이였어. 뭐, 지금은 모르겠네.”]
술자리에서 들려온 카밀라의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 조언이 이렇게 쓸만할 줄은 생각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내 말에 두 사람의 동요가 심하다.
‘동성 커플이라니…. 뭐 내 세상에서도 흔하진 않아도 있었고 여기서는 그리 흔한 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자, 잠깐. 그렇게 갑자기.”
“튜테….”
“레오나?”
“일단…. 풀자. 지금 우리 두 사람이 관계를 다시 푸는 것부터 시작하자. 조를 해체하건 말건 그건 나중으로 미루자고!”
“너무 흥분했잖아. 왜 그래?!”
“나 지금 이 분위기에 취해서 벌써 1시간째야! 너 같으면 안 미칠 거 같아!!!”
“윽…. 그건….”
애초에 방을 꾸미는 것부터가 카밀라의 조언으로 완벽하게 판을 깔고 시작한 것이었다.
자극적인 색으로 도배하고 화이트 와인에 준비된 잠자리. 거기에 그윽한 분위기 까지.
레오나는 이미 이 분위기에 취할 때로 취해 몸이 달아올라 있었고 술기운이 올라오는 튜테 역시 점차 마음이 동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조금만 등을 밀어 주면 끝나는 거다.
“레오나. 튜테 언니랑 과거에 많이 놀았다면서. 뭐 한방에 뻑 가는 그런 말 없어? 왠지 둘 사이에 그런 거 있었을 거 같은데?”
“뻑 가는 말?”
고민하기 시작하던 레오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멍멍아.”
“아, 안돼! 그만해!”
“멍멍아!”
“흑…. 으윽…. 그…. 윽!”
자리에 주저앉아서 다리를 개가 쭈그린 것처럼 만들어 보이는 튜테의 모습에 난 대충 상황을 알아차렸다.
‘조교 잘했네….’
“짖어봐.”
“머…. 멍!!!”
확실히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고 그런 듯해 보인다.
그나저나…. 슬슬 발을 빼야 하는데….
재미있어서 방에 남았더니 발 빼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