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5화, 보상.
끼익
도적단의 배신자들을 가두는 감금 창고, 난 지금 그곳에 갇혀있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앉은 적당히 서늘하였고 아무것도 없는 방 중앙에는 바논이 덩그러니 누워 죽을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온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모로 누워있던 바논이 자리에 앉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루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왜? 이 앞에 있는 간수들 다 족치고 온 걸까 봐? 제대로 대 두령의 허락을 받고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군….”
반가운 얼굴을 봐서 잠시 힘을 얻은 거같았는데 다시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긴 처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기운이 펄펄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바논은 지금 어제부터 단 한 끼의 식사도 하지못한 상태이다.
시무룩해져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몸은 좀 어때?”
“들어오기 전에 멍석말이를 좀 당해서 그런지 아주 완벽히 죽을 맛이야.”
“멍석?”
“죽지 않을 만큼만 가지고 노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 배신자 처형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에 변형을 거친 걸 테지.”
“…….”
“내 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굳이 이런 곳까지 온 거야?”
“아니. 물을 주러 온 거야. 먹을 것은 주면 안 되지만, 처형 날까지 살려 두려면 물은 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 물 주는 역할을 자처해서 온 거야.”
“배려가 참 고마운걸.”
“….”
“네가 그런 표정을 하면 어떻게 해. 너한테 한 말도 아니고 또…. 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좀 웃어봐라. 이 팍팍한 도적단 생활 중에 네 존재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을 주었다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상황에….”
창고의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내가 건네준 물을 마시는 바논
그는 물을 다 마시고 물병을 한쪽으로 치워 둔 뒤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도적단에 몸담으면서 나도 이들에게 동화되어 좋은 여자는 침대에서 얌전하고 순종적인 여자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남자와 여자의 우정?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은 적어도 예전의 나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일이었을 거야.”
“오글거리니까…. 적당히 해.”
“크흐흐…. 아아…. 미안하다 괜히 감성적으로 되어 버리는군. 아무튼, 이 도적단 생활 중에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어. 너와 떠드는 것도 술자리를 가지는 것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벌써 죽으려고 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적어도 지금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방법은 없어 보이는걸…. 그리고…. 이루스 너도 날 이제 잊어버리고 구명하겠다는 생각은 버려. 네 눈을 보니까 날 살리려고 별별 짓을 다 할 거 같아.”
“눈치만 빨라서…. 그 눈치 가지고 잘 좀 도망치지 왜 잡혀 왔어…. 이 좆 같은 자식아….”
“크큭…. 흐흐흐…. 그러게 말이다….”
마지막 그의 웃음은 마치 흐느끼는 듯 아주 작고 또 매우 서글퍼 보였다.
천천히 그의 앞까지 다가가 흐느끼는 듯 몸을 떠는 그의 등을 만지려는 찰나
쾅!!!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와 거의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봐! 시간이 한 참 지났어! 물만 주고 나온다더니 뭔 공연(신파극을 말하는 듯하다)을 하고 앉았어. 당장 나와!!!”
이 창고를 지키고 있는 간수의 목소리였다.
확실히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몸 검사까지 받고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물만 넘겨주고 나오라 설명을 들었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던 것인지 간수가 참지 못하고 경고를 보내온 모양이다.
“나가봐…. 물 고맙다.”
“내일 또 올게, 뭔가 필요한 건 없어?”
“종이…. 그리고 잉크와 펜을 가져다주겠어? 내 마지막 편지를…. 네가 내 친구에게 전달해 줬으면 해.”
“알았어. 대 두령한테 이야기해 볼게.”
“고맙다….”
“나중에 또 봐.”
“그래…. 앞으로 2일 남았지만….”
오늘은 1일째다. 2일째까지는 내가 물을 가져다줄 수 있다 해도 3일째는 처형 날이라 물을 가져다준다는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죽을 놈에게 뭔 놈의 물이냐고 거절당할 것이 분명하니까….
간수가 열어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니 내가 나오자마자 문이 빠르게 닫혔다.
“네 물건이다.”
퍽!!!
“으윽!!!”
난 간수의 얼굴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당황한 간수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고 옆에 있는 다른 간수는 흉흉한 눈으로 날 노려본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내 가슴, 엉덩이 만진 값이야.”
“뭐, 뭐가 어째?”
“물건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소한 터치? 지랄하고 앉아 있네. 노골적으로 만진 주제에”
“흠…. 흠흠….”
“커험….”
두 녀석 모두 찔리는지 내가 한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나 간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고해.”
“흥. 다신 오지 마라!”
“글쎄 내일 아침 정도엔 또 올 거 같은데. 그때도 손장난이 심하면 잘라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개 같은 년….”
“야. 참아. 그러길래 장난치지 말랬잖아. 카밀라 팀이랑 붙으면 우리가 더 피 봐.”
“흥….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성격은 완전 쌍년이네.”
어쩌다 보니 내가 속한 팀, 그 간부인 카밀라의 이름을 팔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카밀라가 허용한 부분이었다.
몸을 만지거나 쓸데없이 느물거리고 대놓고 성적인 행동을 강요하면 자기보다 계급이 높지 않은 선에선 알아서 해결해도 좋다고 말이다.
만약 계급이 높을 경우는 카밀라나 우르자인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그 자리를 모면한 뒤 바로 자신에게 보고를 올리라 했다.
여성 단원이 남성 단원에게 노출된 것을 대 두령 제이슨이 막아준다 하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직도 여성 단원이 심심치 않게 희롱당하곤 한다.
그러한 작은 일조차 전부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 단원들이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카밀라, 그리고 우르자인의 지론이었다.
저질 간수들을 뒤로하며 창고에서 멀리 떨어졌다.
도적단 아지트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누구신지?”
처음 보는 여성이다. 옷을 보면 나와 같은 도적단의 일원인 것 같은데 일반 단원은 아닌 듯 그 기세가 남달랐다.
어두운 보랏빛의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을 가졌지만, 심하게 말라 보이지는 않았다.
볼에 작은달 모양 문신을 그렸으며 서글서글하게 웃는 것이 호감이 가는 여자다.
검신이 얇고 긴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으며 손에 낀 장갑이 일반 단원과는 조금 다른 모양을 한 여성이었다.
“난 우르자인 조 소속 간부 튜테야.”
“아, 간부님이셨군요. 전 우르자인 조 카밀라 팀 소속의 이루스입니다.”
“알고 있어. 다름이 아니고 저 배신자 놈을 네가 잡았다지?”
“저 혼자 잡은 게 아니고 간부님과 함께 잡았습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 그 카밀라랑 근육 덩어리가 네년한테 배신자를 잡은 공을 전부돌렸단 말이지.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네가 잡아 온 게 되었지. 스틸베어의 시체를 둘이 가지는 조건이었던가?”
“당신 어디까지 아는 건가요?”
“카밀라랑 나 친한 친구라서 그녀에게 들은 거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널 몰아붙이거나 뭐 그런 걸 하려고 온 게 아니라고. 내 짧은 볼일이랑 대 두령이 부른다는 걸 알려주러 온 거야.”
“말씀하세요. 이야기를 들은 후 바로 대 두령께 가겠습니다.”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그 모습 아주 좋네. 방금 저 개자식의 얼굴을 때릴 때는 그렇게나 사나운 고양이 같았는데 말이야.”
“…….”
“침묵하기는 후후후, 용건은 짧게 말하지. 저 배신자를 추적하는 와중에 우리 일원에 결원이 좀 생겼어. 새로운 단원이 들어올 때까지는 다른 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카밀라에게 부탁하니 널 흔쾌히 빌려주기로 했어. 그러니까 당분간 나와 같이 일을 해줘.”
“튜테 간부님과 말인가요?”
“그래. 자세한 내용은 배신자의 처형이 끝나고 나서 다시 말하자. 너 술 잘 마신다지?”
“예…. 조금.”
“나도 좀 말술이거든? 같이 술이나 하면서 이야기나 하자고. 그럼 나는 바빠서 먼저 실례할게.”
“예. 수고하세요.”
“너도”
우르자인 조 소속의 튜테,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대 두령의 부름이 있다는 말에 따라 그가 기다리고 있을 그의 방으로 향했다.
[“누구지?”]
방 앞에 당도했을 뿐인데 그는 인기척만으로도 누군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문밖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이루스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간단한 가운 같은 복장을 한 제이슨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옆에는 누군지 모를 여성이 면적이 적은 옷을 입고는 제이슨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 여성에게 잠시 술 따르는 것을 멈추라고 한 뒤 얇은 천으로 가려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있으라 지시한 뒤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배신자 놈을 잡아 오는데 네가 큰 공을 세웠다지? 카밀라와 베로니가 자신들은 스틸베어의 시체만 가지면 된다고 배신자를 사로잡은 공은 네게 넘겼다. 도적단은 공에 대한 포상이 아주 빠르고 철저하지. 자, 원하는 바를 말해봐.”
“보상…. 말인가요?”
“그래. 아, 그렇지. 이걸 말하는 것을 깜박했군. 배신자 녀석의 목숨을 구명해 달라는 것은 들어줄 수 없으니 그걸 원한다면 머리에서 깨끗하게 지우도록 해. 그것만 아니면 네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들어주도록 하지.”
‘역시…. 철저할 정도로 냉정하네.’
내가 바논을 구원할 방법이 원천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는 히죽 하고 웃어 보인다.
짜증 나는 면상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저 면상에 꼭 주먹을 찔러 넣어 주리라.
“제이슨.”
“바라는 것이 생각났나?”
“놈의 목숨을 구명해 달라는 것만 아니면 되는 건가요?”
“그래. 공을 가진 자가 바라는 일이라면 놈에게 음식도 내어줄 수 있지. 어때? 네가 바라는 것이 그건가?”
“그런 간단한 일로 제가 받을 보상을 멍청하게 넘겨버릴 생각은 없어요.”
잠시 고민에 빠진 척 시간을 끌었다. 이런 일에서 괜히 빠르게 원하는 바를 말하면 그만큼 나에게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 다른 것은 어떤가? 놈을 죽기 전까지 창고에서 꺼내 방에 연금 할 수도 있고 온종일 여자와 놀 수 있는 시간을 줄 수도 있다. 네가 가진 그 공의 권한은 그 정도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자 어서 원하는 것을 말해.”
“하…. 바논을 위해 내 보상을 사용하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뭐.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네가 냉정하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 보상을 사용하지 않겠나? 난 그저 네가 선택을 하는 데 작은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다.”
“좋아요.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 뭘 원하지?”
“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고향에 갈 수 있게 해줘요.”
“뭐?”
일순 멈칫하는 제이슨의 모습이 참 볼만했다. 설마 내가 바논을 포기하고 이런 결정을 할 줄은 예상 못 한 모양이다.
“의외로군, 그 녀석은 네 친한 친구가 아닌가? 네 성격이라면 녀석이 죽기 전까지만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주려고 할거라 생각했는데….”
“이봐요. 제이슨, 그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에요. 그런 곳에 내가 얻은 공을 그냥 날려 버리라는 그 생각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나요?”
“하긴…. 그래. 그게 도적단으로서의 생각이지. 좋은 마음가짐이로군.”
“원하는 건 그게 다예요. 어때, 들어줄 수 있나요?”
“물론이지. 네가 원하는 것이 그게 다라면 당연히 들어주고말고. 한 달? 후후후 그냥 네가 쉬는날이라면 가고 싶은 날 언제든지 자유로이 왕래하도록 해라. 변해버린 네 고향이 어떻게 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하겠지?”
“시원하게 들어주는군요?”
“막을 필요도 없으니까. 어차피 그곳은 에탄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빠져나가려 해도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고 만약 네가 도망을 친다면 그때는….”
쨍강!!!
작은 유리잔이 박살 나면서 그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악력만으로 유리잔을박살 낸 제이슨, 그러나 제이슨의 손은 멀쩡했다.
“너뿐만 아니라 저곳에 잡혀있는 네 고향의 친구들이 무슨 꼴을 당할지 잘 기억해 둬라.”
“….”
“할 말 끝났으면 이제 돌아가서 쉬어라.”
싸늘한 경고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의 진심이 전해져 온다.
할 말이 그것뿐이라면 이제 돌아가 보라는 축객령이 떨어졌다.
난 몸을 돌려 그곳에서 나가는 대신 오히려 제이슨을 향해 다가갔다.
“제이슨.”
“뭐지?”
“나와…. 계약을 하나 하죠.”
“계약?”
제이슨 입가의 미소가 진해졌다. 우르자인의 말대로면 그는 이익이 되는 계약을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바논의 안락한 죽음을 위한 계약, 그것을 지금 제이슨과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