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2화, 잠깐의 휴식.
우르자인에게 반쯤 낚여 유흥 방의 깊은 곳에서 남성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의 5일은 수련과 마수 사냥을, 나머지 2일은 유흥 방에서 접객하는 나날이 지속했다.
그렇게 2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난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쉬는 날이…. 없어….’
그랬다. 휴일도 유흥 방에서 일하다 보니 나에게는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하기로 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으나 태양의 날(일요일) 정도는 그냥 쉰다고 해야 하는데 멍청하게 체력이 남는다고 열심히 일한 것이 화근이었다.
오늘은 달의 날이다. 원래대로라면 수련해야 하는 날이지만, 지금은 온몸에서 울리는 고통스러운 근육통에 몸을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저쪽 세상의 블랙 기업 회사원 시절에도 야근이 많았을 뿐이지 휴일은 있었는데, 난 왜 이런 멍청한 강행군을 했을까….
하는 수 없이 아픈 몸을 대충 풀어 움직일 수 있게 만든 뒤에 간단하게 땀만 조금 빼서 뭉친 근육들을 풀어준 뒤 몸을 씻고 카밀라를 찾아갔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했다고? 너 제정신이니?!”
“윽…. 나도 내가 멍청했다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소리는 지르지 마. 괜히 골이 울린다고.”
“어휴…. 내가 못 살아 진짜. 주 5일은 수련이랑 마수 사냥, 그리고 휴일에는 우르자인 두령이 운영하는 유흥 방에서 일했다니…. 네가 무슨 강철로 만든 몸을 가진 줄 알아? 아무리 우리가 레벨을 가지고 너희 세계의 사람들보다 강할지라도 휴식 없이는 무너진다고.”
확실히, 이쪽 세계 사람들이 모두 다 강철로 만든 몸을 가진 건 아니었다.
휴식이 없으면 사람의 몸은 병들고 붕괴한다는 것을 왜 간과한 것일까.
레벨이 생겼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 되었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았어. 내 재량으로 넌 앞으로 달의 날마다 쉬는 날을 줄게. 우르자인 두령이 시킨 일을 못 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수련을 하루 쉬도록 해.”
“그럼 주 4일은 수련과 마수 사냥, 그리고 휴일에는 유흥 방에서의 일을 하게 되고 달의 날에 쉬게 되는구나.”
“쉬는 날에는 제발 쉬어.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다고.”
“으휴…. 내가 네 엄마도 아니고.”
말은 저렇게 해도 카밀라가 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 깊이 와닿고 있다.
카밀라의 축객령에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전한 뒤 그녀의 방을 나와 휴일을 만끽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것은 좋은데…. 솔직히 갑자기 쉬게 되었으니 계획이고 뭐고 업어서 왠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도 들었다.
‘쩝…. 나도 중증은 중증이네. 어쩌다 보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개운하지가 않다니 말이야.’
그나마 아침에 뺀 땀 덕분에 오늘은 그런대로 버틸 만한데 다음 휴일이 되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이왕 쉬는 거 가만히 누워서 군살을 늘리기보다는 뭔가 건설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할 일이 없어 방에서 나온 나는 도적단 아지트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등뒤에서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바논이었다.
“이루스. 너 오늘 수련하는 날 아니었어?”
“아. 오늘부터 난 달에 날에 쉬기로 되었어.”
“아 그래?! 왜 휴일에 안 쉬고 다른 날에 쉬는 거로 바꾸었어?”
“휴일에 따로 일하고 있거든.”
“아…. 어쩐지 휴일에 얼굴을 못 보는 이유가 그런 이유였군. 난 또 휴일에 혼자 뭐 좋은 걸 하나 했더니 일을 하는 거였어.”
“뭐냐 그 의미심장한 좋은 거라는 단어는?”
“아…. 아니야.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분명히 추잡한 짓거리다. 이젠 바논의 눈만 봐도 대충 그가 생각하는게 보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 남자와 내가 가까워진 것일까? 누가 봐도 동내 불알친구로 보일 것이다.
‘응? 나도 불알친구가 적용되나? 난 없잖아.’
시답지 않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으니 바논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마침 잘됐네. 나도 휴일은 태양의 날과 달의 날이거든, 태양의 날은 몰라도 달의 날에는 어울릴 녀석이 없었는데 이젠 너랑 놀면 되겠다.”
분명 놀자는 말은 하는 사람이 얼굴에 즐거움이 없어 보인다.
아주 찰나긴 해도 방금 바논의 얼굴에 어두움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굳이 캐물어 볼 필요는 없지만, 오늘 술자리에서 왠지 무거운 이야기가 오고 갈 것 같은 여자의 직감이 느껴진다.
일단 그의 상태를 모르는 척 즐겁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야. 야. 나 같은 계집애랑 노는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기뻐하냐?”
“당연히 기쁘지. 너만 한 술친구가 또 어디에 있다고. 그리고 너랑 어울리면 다른 남자들이 죽일 듯이 쳐다보는 질투의 시선도 즐길 수가 있다고.”
“무슨 소리야 그건?”
“미모의 이루스를 모르는 사람이 이 도적단에 없지.얼굴도 착해, 몸매는 더 착해! 네 그 단단한 복근에 자지를 문지르고 싶다는 사람이 한 둘이 우픕!!!”
“야이 좆만한 씹새야. 거기까지만 해라.”
말을 하던 그가 입을 다물었다. 당연하다. 내가 그 입을 강제로 틀어 막아버렸으니까.
손의 악력만으로도 놈의 턱을 조지는 것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일이 커지니까 손힘을 좀 빼고 턱과 윗입술을 잡아서 입을 다물게 해버렸다.
“혀 깨물 뻔했네…. 아니 난 그냥 네 평가를 알려준 거뿐이라고.”
“그딴 평가 필요 없으니까 알려주지 마. 이 시발새끼야.”
“욕은 큭큭큭”
녀석과 이야기 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남성은 기우 선배 말고 잘 상대하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이 세계가 날 많이 바꾸긴 했다.
“마셔!”
“마셔, 마셔”
녀석과 어울림은 주점으로까지 이어졌다.
카밀라의 돈을 까먹지 않아도 이젠 내가 벌어들인 돈으로 당당히 즐길 수 있게 된 술.
그 맛은 정말이지 좋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크하!!!”
“파하…. 맛 좋다.”
쉬는 날에 술이나 자시고 있는 것이 참으로 건설적으로 보이겠다.
술과 안주도 사실 다 살로 직행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운동량이 많았던지 이 많은 술을 마시고도 살이 안 찌는 것이 참 대단했다.
다만 쉬는 날이 하루 생긴 만큼 이제부터는 나도 관리를 좀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술 마시다가 뱃살이 늘어지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충격이 클 테니까.
그러고 보면 바논 저 녀석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지 따로 수련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꽤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넌 무슨 수련이라도 해?”
“나? 아니 일이 바빠서 수련은 무슨.”
“나랑 술을 같이 마시는 것 치고는 살이 안 쪄서 궁금해서 그래.”
“아, 단순하게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지 뭐. 수련은 하지 않아도 무거운 물건이나 잡품들을 옮기다 보면 살이 쭉쭉 빠진다고.”
“흐응-”
또 나와 그가 술잔을 들고 술을 들이켠다.
그때 내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술잔을 내리고 그 존재를 확인하니 우르자인, 아니 바네사였다.
지금 막 출근한 모양인지 아직 깔끔한 모습을 한 그녀, 날 보고 바로 다가온 모양인지 그녀가 놀라서 질문했다.
“어머 오늘은 수련 쉬었어? 점심부터 술 파티네?”
“응. 카밀라에게 말했더니 달의 날을 휴일로 만들어 줬어.”
“그랬구나. 하긴 너 요즘 너무 강행군하긴 하더라. 쉬는 날도 중요한데 말이야.”
그리 말하며 바네사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바논이 보고 있는데도 나에게 몸을 비비며 안겨든다.
이 상황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마 내가 그녀를 대하는 행동일 것이다.
여성끼리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주변 시선도 있고 해서 애써 거부하던 나였다.
그런데 우르자인과 항상 같이 행동하다 보니 슬슬 그녀도 거리낌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카밀라만큼이나 거리가가까워져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달까? 사이 좋은 자매와도 같은 분위기다.
한 손으로 술을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바네사의 허리를 잡아주는 내 모습을 보고 바논이 깜짝 놀랐다.
“뭐야? 이제 그렇고 그런 사이야?”
“뭐래. 그냥 친해진 거지. 원래 여자끼리 우정이 생기면 이 정도 접촉은 기본이야.”
“앙- 우리 자기 너무 터프하다니까.”
“…. 모르겠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라도 들어온 표정이 되어 술만 연거푸 들이기는 바논이었다.
그렇게 바논과의 술자리가 무르익어가던 무렵 바네사는 다른 손님에게 서빙을 하러 일어났고 나와 그의 대작도 어느 정도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야. 이루스”
“응?”
“하…. 씨발 진짜 인생이 왜 이러냐?”
“취했어? 그러게 술을 연거푸 마시더니.”
“아니야…. 아니야. 나 안 취했어.”
“취한 놈들이 꼭 그러더라.”
나보다 술도 약한 놈이 날 따라오겠다고 그렇게 발버둥 쳤으니 오죽할까.
“나 고향에 어머니가 계셔.”
“어머니?”
“그래…. 몸은 여기서 도적질이나 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모은 돈으로 계속 친가에 몰래 보내고 있어. 취급을 잘 한 돈이고 나랑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그걸 전해드리고 있어서 어머니는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라고만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
내 말투 때문인지 궁금해서 한 질문이 관심이 없이 툭 던지는 듯한 느낌이 되었다.
그 때문에 바논이 입을 다물었다. 술기운에 이야기하다가 녀석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들어줄 테니까 자세하게 이야기해봐. 술친구는 이런 걸 들어주는 친구라고.”
“고맙다….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프셔.”
‘왠지 그럴 거 같더라.’
아까 느꼈던 직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술을 한 모금 마시는 내 귀로 계속해서 바논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서 아픈 어머니 보러 갈 수도 없고…. 이렇게 불효자가 되는지 쫓기는 한이 있어도 도적단을 탈출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도망칠 수는 있고?”
“도망칠 수 있어. 당연히 있다고! 하지만…. 이대로 떠나면 앞으로 난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던 것이 도적질뿐이라 직업은 이미 바꾸기 글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농사일이나 하다가 귀족들에게 수탈당하고 그냥 그대로 땅에 묻히게 되겠지.”
“도적질하는 것보다 농사일이 좀 더 안정적이지 않아?”
“귀족 놈들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땅이 기름지고 좋으면 모를까 우리 같이 평민들에게 그런 질 좋은 땅이 내려질 리가 없잖아. 모두 부유한 신민들이나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그런데 세금도 어마어마해서 한 달에 걷어가는 세금만 해도 다섯 가지나 돼.”
“…….”
‘이 세계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빼앗기는 것은 같구나….’
이야기는 지옥의 구렁텅이 앞까지 갈 정도로 무거워지고 있었다.
바논은 말을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눈의 초점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후... 친구의 말로는 지금 어머니가 엄청 위독하시대. 그래서 어머니 임종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비밀스럽게 편지가 왔어.”
“상단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거야?”
“맞아.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잡품 담당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친구랑 연락하기도 편하고 어머니께 돈을 보내기도 쉬워서.”
“그랬구나….”
“내가…. 이곳을 탈출해서 어머니에게 돌아가서 임종을 지키면…. 그분은 행복하실까? 앞으로 귀족들에 의해 고통을 받으며 생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도 말이야.”
“난…. 모르겠어.”
“그래…. 질문이 이상하긴 했지…. 미안하다.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바논.”
“응?”
“난 이 이야기 못들은 걸로 할게…. 하지만….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
“알았다.”
그렇게 나와 바논의 술자리는 끝이 났다.
마지막에 보인 그의 결심의 표정, 난 그 표정을 보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가 이곳에 계속 있을지, 아니면 도적단을 탈출하여 어머니께 갈지. 그것은 모두 그에게 달린 일이다.
술자리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우기도 전에 난 그가 내린 답을 알 수 있었다.
“이루스.”
“카밀라?”
“탈주자가 있어. 포획해 오라는 대 두령의 명령이야.”
“그래….”
그는…. 도적단을 나서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한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귀족들에게 수탈당하는 삶을 결정한 그였으나, 그것은 이 페이머스 도적단의 영역을 무사히 탈출한 다음의 일이었다.
‘시발….’
휴일의 휴식은 달콤했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쓰디쓰기 그지없었다.
바논…. 제발…. 무사히 빠져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