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9화, 새로운 방향.
입을 벌려 보라는 그녀의 말에 순간 멍해져 버린 내 정신.
그 모습이 웃겼던 건지 눈앞의 우르자인이 조용한 소리로 쿡쿡 웃기 시작했다.
“푸훗 긴장하지 말고 입 살짝만 벌려봐. 좋은 거, 아주 좋은 거 줄 테니까.”
‘좋은 거라니. 더 수상해지는 말이잖아.’
여타 이상한 행동을 취하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입을 벌려 보라는 것도 생각 이상으로 이상한 주문이었다.
치과였다면 모를까. 이런 자리에서 입을 벌려 보라니…. 절대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어쩌지…. 거절할까?’
속으로 거부할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동안 살가운 태도를 보여온 바네사의 얼굴이 그녀 위로 겹쳐 보인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아래턱을 달싹거리다가 눈을 살짝 감고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우르자인을 흡수 불가 대상으로 지정했다.
내 능력은 아직 비밀에 휩싸여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르자인이 나에게 좀 더 다가왔음을 느낄 때쯤, 내 입안에 뭔가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당황한 나머지 이것이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기억이 이것과 비슷한 감촉을 느낀 것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제이슨이 내 처음을 강제로 가져간 날, 그날 그가 나에게 했던 프렌치 키스에서 느낀 기억이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역시나 나에게 다가온 우르자인이 나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것도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너무도 요염하게 내 입안을 휘젓는 중이었다.
“으읍!!! 으응!!!”
“흐읍!!! 그마!!!”
발음이 조금 빠진 소리로 그만! 이라고 외치면서 그녀의 혀를 밀어냈고, 팔 힘으로 그녈 밀쳐 거리를 벌렸다.
흡수 불가 대상으로 지정해둔 것은 정답이었다. 잘못했으면 레벨을 흡수할 뻔했다.
“우르자인 두령! 내가 말했잖아요. 난 그런 취미 없다고요!”
바네사로 만날 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는 동성이 취향인 모양이었다.
언제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느껴지던 그 질 나쁜 농담은 과연 농담이 다 빠진 진담이었던가….
내 화난 표정을 보고 우르자인은 입맛을 다시지만, 다시 나에게 다가오거나 두령이라는 권력으로 날 내리누르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신체 상태를 확인해 보라 말할 뿐이었다.
“이루스. 흥분하지 말고 신체 상태부터 확인해 보렴.”
“신체 상태를요? 무슨 꿍꿍이인가요.”
“확인해 보면 알게 될 거야. 자, 어서.”
담담한 그녀의 어조에 더 화를 낼 수도 없었고, 이대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리란 생각에 일단 신체 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렇게나 오르지 않던 레벨이 2나 올라가 있었다.
“레…. 레벨이.”
분명히 그녀를 흡수 불가 대상으로 지정해 두었는데 오르지 말아야 할 레벨이 올라가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사태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우르자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올라갔지? 어때? 내 선물 마음에 들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설명은 잠시 후에 해줄게. 자…. 그럼….”
우르자인은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결국, 어영부영하다가 그녀의 몸을 밀치지 못하고 밀착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녀가 뭔갈 한 것이다. 뭘 한 건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뭔갈 하여 내 레벨을 올렸다.
내 옆으로 다가온 우르자인은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조용히 달콤한 유혹을 속삭였다.
“입 벌려. 아직 선물이 조금 더 남아 있다고.”
“……….”
솔직히 나에게 지금껏 동성 취향은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이성은 본능에 충실하여지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레벨을 올리고자 하는 욕구, 그렇게 강해져서 원래의 삶을 찾으라는 본능의 욕구가….
지금 우르자인을 받아들인다면 내 레벨이 또 올라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성 정체성이 다소 무너지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남자에게 처음을 강제로 빼앗긴 몸이다. 여자와의 키스 정도로 꺾여버릴 나약한 정신은 애초에 과거의 나약한 자신과 함께 버린 지 오래다.
“흡!”
“읍!!! 아응!!!”
당하기만 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이쪽에서 주도권을 잡아 주리라.
우르자인은 이쪽에서 먼저 키스를 할 줄 몰랐다는 듯,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작된 나와 그녀의 키스는 반 안에 가득 소리를 채워나간다.
혀와 혀가 얽히고설키는 소리는 고요했던 방에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밖으로 새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그녀와 입을 맞추었는데, 어느 순간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끼고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레벨이 또 올랐다. 이번에는 총 3레벨이 올라서 내 레벨은 이제 16이 되었다.
그때 거칠게 숨을 고르던 우르자인이 눈웃음을 치면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후…. 하아…. 하아…. 이런 취미 없다면서?”
“내가 당하는 거랑 하는 건 또 다르죠. 그래서…. 이제 설명해줄 시간 아닌가요?”
“점점 더 마음에 든다니까…. 후후후. 꼭 나중에라도 상대해 보고싶어.”
“일 없습니다. 설명이나 해주세요.”
“후후훗 쌀쌀맞아라. 그래도 그것 역시 이루스의 매력인걸.”
앉으라 손짓하는 우르자인의 인도에 따라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탁자에 가슴을 기대며 편하게 자세를 바꾼 그녀는 유혹하던 요염한 미소를 지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 역시 특별한 능력이 있어. 너와는 좀 다르지만.”
“다르다는 뜻은 너무도 포괄적인데요?”
“좋아. 그렇다면 단어를 바꾸지. 너와는 정반대의 능력이란다.”
“저, 정반대? 그렇다는 건….”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야. 내가 가진 이 능력은 레벨 기버(Level Giver) 다른 사람에게 레벨을 양도할 수 있는 능력이지.”
“…….”
“어떠니? 너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능력이지?”
“카밀라가 말해 준 건가요? 내 능력….”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어 보이는 우르자인.
그런 그녀는 그 상태를 잠시 유지하며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을 이어간다.
“아니야. 나에게 네 능력을 알려준 사람은 대 두령 제이슨이야.”
“제이슨…. 그 남자가.”
“뭐랄까…. 나랑 그 남자는 비밀을 공유하는 긴밀한 사이거든, 아 물론 육체적으로는 그가 날 원하는 거지 난 솔직히 별로야. 덕지덕지 붙은 수염 하고는 안 맞는 주의라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죠?”
“너 능력을 숨겼지?”
“…….”
순간적으로 심장이 옥죄어 오는 기분이 들었다.
제이슨에게 능력을 숨겼다는 것을 어떻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제이슨은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나에게 속은 척을 하는 것인가?
우르자인과 제이슨은 비밀을 공유하는 긴밀한 사이라 스스로 인정했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능력 일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제이슨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혼란스러워하며 답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쌓는 나에게 우르자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혼란에 빠진 나를 놀리듯이 혀를 살짝 내밀어 보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제이슨 그 둔한 남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어디까지나 내가 유추해낸 거니까.”
“어떻게…. 내가 능력을 숨겼다는 사실을 안 거죠?”
“이런 특별한 능력에는 단점이 존재하지. 불이익 말이야. 그런데 그저 남의 레벨을 성교로 흡수만 하고다루기만힘들다? 말이안 되지 분명 뭔가가 더 있을 거로 의심하고 있었어. 물론 제이슨에게는 알리지 않았지. 아직은 내가 의심만 하고 있을 뿐, 확실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
나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능력이 있는 그녀의 말이라 그런지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맞는 말이다. 능력이 대단한 만큼 그에 따르는 불이익은 항상 존재한다.
어쩌면 그녀 역시 불이익이 존재하여 나에게도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한 것이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거래를 좀 해준다면 이 일은 불문에 부쳐줄 수도 있어.”
“흥…. 결국, 내가 목적이었나요?”
“당연하지…. 라고 하면 너무 속보이고. 난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하는 나쁜 여자는 아니란다. 결국에는 널 가지는 것도 하나의 목표지만, 지금은 다른 걸 거래 조건으로 올리지.”
“말해 보세요.”
“좋아. 하지만, 거래하기 전에 우리 좀 더 서로에 대해 알아볼까? 네 능력의 불이익, 지금 나에게 말해봐. 그렇다면 나 역시 제이슨에게도 숨기고 있는 내 능력의 불이익을 너에게 알려줄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상대는 나와 같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 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너무도 혼자만 동떨어진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왠지 모를 동질감을 가질 상대가 눈앞에 존재했다.
내 입에서는 봇물이 터진 듯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내 능력의 비밀이 쏟아져 나왔다.
능력의 모든 것을 말해 주니 그녀 역시 나에게 자신의 능력의모든 것을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정말이지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내 능력 레벨 기버는 남들보다 열 배 빠른 성장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성장한 레벨을 성교를 통해 남에게 양도하는 능력이지. 하지만 그 불이익은 레벨 성장으로 인한 그 어떠한 신체 능력의 상승이 없으며 엄청난 강행군의 수련을 해야 온전히 레벨에 맞는 신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남들보다 빠른 레벨 상승이 가능한 만큼 급격하게 강해지는 것을 막아버린 최악의 불이익이야.”
“레벨 상승에 따른 신체 능력의 상승이 없다니…. 고생이 많았겠어요.”
“역시 너는 알아주는구나. 후후….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약한 면모지. 알다시피 이곳 페이머스 도적단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바로 잡아먹히는 것이 일상이지. 그렇기에 누구나 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상대방의 약점을 물어뜯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가족을, 동료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물어뜯으면 자신도 물어 뜯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지. 자신만 물어뜯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도적단의 비일비재한 일이야.”
“그렇군요.”
나보다, 카밀라보다 훨씬 전부터 이 도적단에 몸담고 있던 그녀의 회한 섞인 말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녀는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계약 전에 먼저 나와 제이슨의 계약에 대해 알려줄게. 내가 제이슨과 한 계약은 내 여동생들…. 여자 단원들의 신변에 닥칠 위협에서 안전을 보장해 주는 거야. 이곳은 도적단이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만큼 남성들도 거칠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지. 난 내 단원들의 안전을 위해 그와 세 가지 계약을 했어. 하나는 그의 레벨을 정기적으로 올려줄 것, 이건 내 능력이 한 달에 한 번만 사용 가능하다고 속여 두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난 골수까지 다 빨아 먹히고 소리소문없이 제거되었을지도 몰라.”
“….”
“두 번째 계약은 내가 남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유흥방의 업무를 맡아 노예 여자들을 관리할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면 내 몸을 마음껏 취하겠다는 것. 이렇게 세 가지 계약이야.”
“제이슨에게만 매우 유리한 내용의 계약들이네요.”
“그렇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여자 단원들의 안전 보장이 힘들거든, 과거에 우리 도적단의 여자 단원들은 힘이 없으면 길 가다가 윤간을 당할 정도로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어. 그걸 막기 위해서는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만 하는 악마의 계약이었지.”
“우르자인과 제이슨의 계약은 잘 알았어요. 그렇다면 이제 제가 당신과 해야 할 계약…. 그 계약 내용을 알려주겠나요? 이미 알 거 다 알게 되었으니 한 배를 탄 셈으로 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시죠.”
“간단해. 넌 네 능력으로내 레벨을 빼앗아 가주면 돼.”
“예? 그게 계약이라고요?!”
“그래. 내 능력은 레벨이 낮아질 때마다 그 효율이 올라가. 지금까지 난 이 능력의 효율을 10%까지밖에 올리지 못했어. 레벨 기버의 능력만으로는 성장률이 너무 더뎌. 그래서 좀 더 빠른 능력의 성장을 위해 네도움을 받으려는 거야.”
“아…. 하이드레인의 능력으로 우르자인의 레벨을 내가 흡수하면 그만큼 레벨이 낮아지니 능력 효율이 높아지겠군요. 덤으로 전 당신의 레벨을 흡수해서 레벨을 올릴 수 있고요.”
“맞아. 너와 난 서로 완벽한 공생을 이룰 수 있어. 지금 내 레벨은 400을 넘었어. 신체 능력은 80레벨대 정도지만, 레벨만큼은 높지. 거기에 난 레벨 올리기가 매우 쉬워. 지금 당장 고블린이라도 세 마리 잡으면 바로 레벨을 상승시킬 수 있지. 그러니 넌 나에게 레벨을 받으면서 네 능력으로 따로 레벨을 흡수하고 난 그렇게 낮아진 레벨로 능력의 효율을 높이는 거야.”
“완벽하네요.”
“한 가지 더 있어.”
또 요염하게 미소지어 보이는 우르자인, 이때 그녀의 미소가 뭘 뜻하는지 깨달았어야 했다.
이미 일이 벌어진 뒤에는 때가 너무 늦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