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화, 시간은 화살 처럼. (12/70)



〈 12화 〉12화, 시간은 화살 처럼.

도적단 아지트 가까운 곳에 만들어진 훈련공간, 깎아지는 50도의 절벽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바위가 참으로 아찔해 보이는 오르막길이 보인다.
신입 단원들의 체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끈기를 기르기 위해 만들어진 훈련장으로 신입 단원들이 두 번째 볼 때마다 치를 떤다는 유명한 훈련장이다.

파팟!

그곳을 마치 깃털과 같은 가벼운 동작으로 오르는 인형이 있었다.
가늘어진 허리, 군살이  빠져 어딜 보아도 건강이 넘쳐 흐르는 모습, 태양에 타올라 그 건강함을 더욱 받쳐주는 구릿빛의 피부.
빠진살과는 전혀 상관없이 가슴과 엉덩이는 아찔하게 솟은 긴 머리의 여성이다.

탓!

순식간에 정상으로 오른 그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흐트러진 머릿결을  뒤로 쓸어 넘겼다. 도적단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녀 역시 도적단일 것이다.
하지만 느껴지는 그녀의 기운은 도적단의 어울리지 않았다. 고귀해 보이는 느낌이 강한 아주 아름다운 미녀였다.

“후….”

태양 빛에 가려진 그 얼굴이 드러났다.
유약해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기만 하던 그러나 그런 점이 또 매력적인 얼굴의 소유자였던 그녀 이우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렇게나 갑자기 변한 모습을 보자면 그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우린 알  있다.
이 세계에 온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카밀라의 지도를 받으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고열에 시달리기도 하고 먹을 것이 입에 맞지 않아 구토하는  고생의 고생을 하며 이 세계에 물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녀에게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해주었다.
체력이 붙기 시작하니 오르막을 오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르막을 오르는 횟수 또한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저질적인 체력은 이제 없다.
그녀의 몸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근육이 붙어 이젠 과거의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치마 아래로 보이는 잘빠진 허벅지 라인과 훤히 드러난등에는 군살이 전혀 없지만, 아름다운 조각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런 보디빌더의 근육이 아니었다.
 그리고 체력으로 만들어진 전투형의 근육이었다.
그녀가 이 오르막을 열 번 왕복하는 데 성공하자 카밀라는 단검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덕분에 생긴 근육들이 바로 이 모의 전을 통해 맞으면서 키워진 전투형 근육이다.
그것은 오밀조밀하게 몸을 받치고 있어 더욱이 그녀의 몸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깃발을 만진 그녀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가파른 오르막을 정말 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번 뛰어오르면 정확히 팔 분의 일,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이윽고 그녀는 오르막을 완전히 내려와 땅을 짚었다.

“열 번 끝. 모의 전 하러 가자.”

“응.”

존대가 아닌 편안한 말투. 간부와 단원의 사이지만, 지금은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한우정이 생겨나 있었다.
가끔은 다투기도 하고 가끔은 장난도 치는 그런 사이….
한 달이라는 시간은 이  사람의 사이에 있던 얇지만 뚫기 힘들어 보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매워 주웠다.
땀방울을 흘리며 다른 훈련장에 도착한  사람, 특히나 이우신을 향해 훈련 중인 남자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가슴골에 흘러 들어가는 땀, 그리고 젖은 옷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튀어나온가슴의 모습.
땀에 젖어 빛나는 허벅지와 등에 잡힌 근육, 그리고 젖은 머릿결은 그야말로 단원들의 심장을 폭행하고 지나가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참으로 착한 장면이었다.

“눈  깔아? 시발새끼들아 여기 뭐 구경났어 엉? 후벼 파버리기 전에 너희들 할 일이나 해!”

그러나 다음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 착하지 않았다.
시간이 그녀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그 성격 역시 뒤바꾸어 놓았다.
여린 그녀의 성격도, 바른말을 하던 그녀의 입도, 그리고 강하게 선이 살아 있는 건강 미인의 모습도 모두 시간이 바꿔버린 것이다.

“음….”

“흠흠….”

“하…. 하하….”

“좆 같은 새끼들…. 한 번 만 더 그딴 눈으로 보기만 해라? 내가 약속하는데 절대 좋은 꼴 못  거다!”

“아,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흐흐흐…. 우린 이만 갈게 둘이서 오붓하게 놀아.”

“어휴. 화장실, 화장실.”

욕을 갈기는데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자기들이 욕정에 찬 눈으로 본 것도 잘못이고 그녀가 강하게 나와야 자신들이 동료를 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지나 자기 방으로, 화장실로, 그리고 사람의 눈길이  닫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그뿐 아니라 지금 그녀는 일반 단원들도 함부로 상대하기 힘든 실력자였다.
카밀라의 훈련을 악착같이 따라간 그녀는 이제 카밀라와도 동수를 이룬다.
물론 카밀라가 죽일 각오로 상대한다면 이우신이 필패를 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이 한 달간 그녀는 엄청나게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그 예쁜 얼굴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니까 진짜 섹시한데? 여자인 나도 꼴리겠어.”

“지금 놀리냐? 입에 걸래  게 뭐 대수라고.”

“그럴 리가 후후. 아무튼, 역변이야 역변. 처음 볼 때는 그냥 툭 치면 죽을 거 같았는데 이렇게 변할  몰랐어.”

“나도 너랑 이렇게 농담 주고받을 줄은 몰랐어. 잠자면서도 너 죽여 버린다고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지 알아?”

“그래서내가 오래 사는 거지.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사니까.”

“넌 평생 안 죽을 거야 씹년아.”

“칭찬 고마워라. 검이나 뽑아. 오늘도 가볍게 한 번 상대해 줄게. 애송아”

“어련하시겠어.”

 여성은 그렇게 훈련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여러 번 격돌했다.
광풍이 몰아칠 정도로 훈련장에는 바람이 끊어지지 않았다.
검과 검이 상대를 배어버릴 듯한 예기를 가지고 엄청난 속도로 계속 부딪쳤다.
한 치의 밀림도 없는 두 사람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의 승리자는 역시나 카밀라였다.
그녀는 자신의 채찍을 이우신의 발에 감아 그녀의중심을 쓰러트렸고 바로 배를 엉덩이로 깔라 뭉개며 위를 점한 뒤에 그녀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대고는 히죽거렸다.

“오늘로 100패지?”

“101패.”

“아 그래? 네가 하도 많이 지니까 이제 헷갈린다.”

“이 비겁한 년이, 채찍  쓴다며?”

“그게 언제  이야기야? 이제 핸디 필요 없어. 이년아.”

“시발….”

억울했지만, 확실히 오늘은 채찍을 쓰지 않겠다는 말도 없었고 처음 분명히 그녀가 박았다.
채찍을 꺼내게 하고 싶으면 우선 검이나 잘 다룰  있는 실력을 키우라고.
카밀라는 채찍이 주 무기고 단검은 보조로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검을 잘 사용한 이유는 단원들의 첫 번째 무기는 단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용하던 실력이 남아 있어서 가르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이우신의 실력에 맞춰 주기에도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우신이 그녀에게 채찍을 들게 했다.
이는 그녀가 어느새 단검만은 카밀라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뜻한다.
카밀라는 그녀의 위에서 내려와 일취월장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고 이우신 역시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루스.”

“왜카밀라.”

이루스, 지금 내가 불리우는 이곳에서의 새 이름이다.
이우신이라는 이름은 과거의 세계에 두고 난 지금 이 세계의 이름인 이루스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 알맞은 이 이름은 카밀라가 지어준 것이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들 입에 잘 맞는지 나를 이루스로 부르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중성적인 것이 내 원래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감도 비슷하다.
이러고 보면 카밀라의 이름 지어주는 센스가 꽤 괜찮아 보인다.

“대 두령님이 호출했어. 돼지우리 신세는 면한거지.”

“그거참 기쁜 소식이네. 고마워 카밀라.”

“네가 노력한 결과야. 난 옆에서 그걸 지켜보기만 했고.”

“툴툴거리긴 해도 네가 있어서 노력할 수 있었는걸. 네가 없었으면 진즉에 무너졌을 거야.”

“이,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어서 가자. 흐, 흥!”

고개를 팩 돌리지만, 기분 나빠하는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지금 기분은 좋은 것이다.
한 달간 친해지면서 그녀가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툴툴거리는 성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귀여운 여동생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키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 이곳에 와 훈련을 받는 도중에 살이 홀쭉하게 빠지면서 점차 키도 커졌다.
원래 내 키는 159였는데 지금 내 키는 174다.
성장판이 아직 덜 닫혔는지 아니면 이 세계에 뭔가비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해서 처음에는 카밀라가 나보다 좀 더 컸는데 지금은 내가 카밀라보다 좀 더 커졌다.
결국, 몸매로 봐도 키로 봐도 여러모로 내가  언니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실 카밀라와 내 나이는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녀가 나보다 한 살 연상이다.
요즘 그게 불만인지 자주 툴툴거리며 내 가슴이나 엉덩이를 못살게 구는데….
그 부분도 솔직히 귀엽기만  것이  성격이 참 이상하게 변한 건가 싶다.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이 야만스러운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그것이 드러난 것일까….
아무튼…, 카밀라와 함께 대 두령의 방을 방문했다.
한 달 동안  부르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던 대 두령 제이슨과의 재회다.
그는 과연 나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줄까.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일까? 아니면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변한 걸 놀라워할까?
그 답은 이 문을 넘어가면 밝히게  것이다.
가볍게 숨을 골랐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제이슨의 자지가 내 보지를 씹창낸 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개 같은 기억이다.
물론 그것 때문에 밤잠을못 이루거나.
공포에 휩싸여 악몽을 꾸다 깨어나는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떠올리면 기분이 극도로 나쁜 거지 이제 그것이 날 옥죄어 오지는 않는다.
그만큼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많이 강인해졌다.
숨을  고르니 머리가 맑아진다. 카밀라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 난 내가 스스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예의 제이슨이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떠오른 것은 놀라움, 그리고 흥미로움이었다.

“하! 이게 그년이라고? 카밀라 넌 도대체 뭘 만들어 온 거냐?”

“저한테 묻지 마세요. 대 두령님. 이건 다 이 년이 노력한 결과니까요.”

“저쪽 인간들은 모두 쓸모없는 밥 벌레들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군. 그래, 아직 레벨은 6인가?”

“마수 사냥 경험이 한 번도 없어서 레벨은 낮지만, 체력과 단검 다루는 실력은 이제 일품이에요. 단검에 고집하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손에 잘 맞아 보이지 무기를 바꿀 필요는 없어 보여요.”

단검이라고 하지만, 검신의 길이가 거의 35cm나 하는 검이다.
단검이라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다.
절대 얕볼 수 없는 무기이며 다루는 것은 손에만 익으면 다른 무기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현란하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처음 손에 넣은 무기라 그런지 각별한 애정이 생겨 다른 무기보다 더 애착이 갔다.
물론 처음 받은 단검은 이미 해질 대로 해져 이 단검은 벌써 다섯 번째 단검이다.
그리고 이 다섯 번째 단검도 이젠 거의 다 해지고 있었다.
이가 빠져가는 것이 슬슬 다른 것으로 교체할 시기가 온 듯했다.
두 사람이 아직 대화 중이기에 끼어들 사이가 없어서 잠자코 단검에 대한 일만 생각하고 있으니  두령 제이슨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어엿한 우리 도적단의 단원이 되었군. 능력은 어떻지?”

“아직 이요. 만약 지금 대 두령과 잠자리를 가지면 내일쯤 전 레벨 50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네요? 후후훗.”

 능력을 숨기고 도도한 척을 하며 허세를 부렸다.
물론 도적단 생활로 인해 늘어난 배짱 덕분인지 허세가 그럴듯하게 보였다.
나랑 자면 내일 나에게 레벨을 헌상하게  거란 것을 돌려 말한 것인데 제이슨은 이런 말을 듣고 껄껄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핫! 이거, 이거 성격이 앙칼진 암고양이가 되었군. 처음과는 완전 달라서 더 마음에 들어. 난 고분고분한 년보다는 이렇게 통통 튀는 년이 더 매력이니까. 네 생각은 어떠냐 카밀라.”

“저는 대 두령이 다른 여자를 보는 게 기분 나빠서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질투하는 거냐? 이런, 이런 곤란한 녀석 같으니. 알았다. 오늘은 네가 날 상대해 주어라.”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래, 그래. 약속하고말고. 아! 오늘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이제부터 정식으로 널 우리 도적단으로 인정해 주마. 이건 선물이다.”

제이슨이 내미는 보물로 수놓아진 함, 그것을 받아 들고 열어보라는 그의 말에 뚜껑을 열고 안을 확인했다.

“이건….”

“카밀라에게 계속 보고는 들었다. 무기를 바꾸지 않았다니 참으로 다행이군. 앞으로 이건 네가 사용해라. 내일부터 마수를 사냥할 테니 잘 간직하도록.”

보물로 수놓아진 함 안에는 날이  벼려진 단검이 들어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검신의 길이다  더 길어 보인다. 40에서 45cm 사이랄까?
그리고 철과 불순물이 섞여 볼품없는 단원들의 단검보다 확실히 그 색이 선명한 것이 질 좋은 철을 사용한 듯 단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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