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10화, 정리하다. (10/70)



〈 10화 〉10화, 정리하다.

창명의 직급은 대리로 친한 사람들끼리는 창명 선배, 또는 창명이라고 이름을 부르곤 했고 직급으로는 잘 부르지 않았다.
성이 지 씨다 보니 지 대리가 되어 어감이 좋지 않아 창명 선배 쪽에서 거부반응을 자주 보여서 그리된 것이다.
회의실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창명 선배와 사장의 대치 상태, 누가 보아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다만 선배 쪽은 헬스장 죽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기에 누가 봐도 선배가 유리해 보이는 구도였다.
말리지 않으면 사장이  죽을 때까지 얻어맞을 분위기라 기우 선배와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안에서 혼란이 일어나면 결국 이 사람들이 피해를 보니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었는데 옆에 있는 기우 선배의 말을 들어 보니 그 역시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창명 선배. 너무 흥분했어요. 나도 사장  자식을 패 죽이고 싶은 마음은 동감하는데 지금은 곤란해요. 잘못하면 우리 다 위험해질  있다고요.”

“그래요…. 기우 선배 말이 맞아요. 창명 선배 참아요.”

“어후! 열 받아…. 저 개 같은 자식…. 야 우신아  억울하지도 않아?! 다지고 보면 저 자식 때문에 네가 그 치욕을 받고 온 거라고”

“다. 닥치게!  때문이라니!!! 그, 그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 고육지책인….”

“당신이나 닥쳐!!! 우리가 모두 합심해서 여자들을 지켜주었으면 맞아 죽을지언정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저 겁에 질려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 같이 굴고는 뭐? 고육지책? 다음에 목숨을 달라고 하면 고육지책으로 목숨도  건가? 엉?!”

외치는 창명 선배의 옆에서 무슨 일인지 몰라 의아함을 표하고 있었다.
그러지 기우 건배가 귓속말로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그리고 저 세계에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 나를 포함한 세 여성이 한 방에 잡혀가 있었고 도적단에 의해 에탄 두령 앞으로 끌려가 세연이가 에탄에게, 그리고 남자들에게 윤간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그들이 강제로 여자들을 불러다 그런 일을 벌였다 생각했는데 진실은  더 어두웠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린 후 사장은 이들의 야만스러운 모습을 보았지만, 일단 대화가 통하니 두령 에탄과 독대를 하며 그를 말로 설득해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려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에탄과 도적단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여자들을 넘기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로 해 사장은 그에 응해 나를 비롯한 여성 넷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네 명 모두 미노타우로스를 보고 기절을 해버린 상태라서 일은 쉬웠다고 한다.
사장에게 절대복종하는 직급 높은 사람들을 대동하여 여성들을 그들에게 넘겨 주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회의실에 감금당하는 것으로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나와 더불어 모든 여자가 남자들의 손에 잔혹하게 짓밟히게 되었지만….
참으로…. 인간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들도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그건 이해한다. 이해하는데 기분은 최악으로 물들었다.
날 그렇게 만들고도 모자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해왔단 말인가?

“더럽네요. 사장님…. 정말 더럽네요.”

“우, 우신씨! 지금 뭐라고….”

“기분 더럽다고요.”

“지, 지금…. 뭐…. 뭐라….”

“왜요. 지금까지 말단 사원이었으니 사장님 말이면 아, 예, 그렇습니다. 하고 따르리라 생각하신 건가요? 정신  차리시면 안 되겠어요?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시는 모양인데. 우리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고요. 뭐? 감투? 감투  좋아하시네요. 사장의 권위가 통하지 않으니 도적단의 말단이라도 좋으니 날 이용해서 한자리 꿰차 보겠다. 그래서 이 도적단을 뒤에 업고 다시 권위를 휘둘러 보겠다. 이런 생각이시잖아요.”

“아…. 아니 말이 좀…. 뭘 그렇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다른 남자들이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하면 바로 화부터 내시던 양반이 참 고분고분해졌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그러한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딴 식으로 누굴 내리누르는 것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당해 왔기 때문이리라.
뭐 누구나 위에 올라서면 과거에 있던 일을  잊어버리고 난 그러지 말아야지,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생각하던 것을  자신이 행하곤 한다지만….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해야 했다.
사장이 이런 말도  되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종극에는 이곳 모두가 다 위험하다는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충고드릴게요. 사장님. 아니 장철강씨. 당신은 몰라요.  도적단 사람들, 사람 목숨 따위 파리 목숨보다 하찮아하는 사람들이라고요.  사람들은 진짜배기 도적들이에요.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이란 말이에요. 다행히 지금은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수틀리면 관리라는 명목으로 한두 명은 처형시킬 거라고도 했어요…. 제발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세요. 우리끼리 뭉쳐서 인권 정도는 지킬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편을 나누고 반목하면 어쩌려고요.”

“…….”

“…….”

“…….”

철강 사장 그리고 창명, 기우 선배를 더불어 모두가 숙연해졌다.
반목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말없이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앞으로 에탄이 어떤 행보를 걸을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곳 사람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후…. 전….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해요.”

“우신아?!”

“미안해요. 선배…. 하지만 약속을 하고 온 거라서. 만약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여러분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날 시원스럽게 받아들인 이유도 여러분이라는 인질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절대 배신하지 못할 확실한 목줄이 생긴 거죠.”

감시의 눈이고 뭐고….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완벽한 목줄, 바로 인질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동기 친구들과 기우 선배의 존재로 인해 나에게는 제대로 된 목줄이 채워진 것이다.
아마 제이슨은 그런 것까지 모두 고려해 날 도적단에 받아들였을 터다.

“다들…. 무사하길 빌게요. 다시 말하지만. 제발 이상한 행동 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저들의 말을 들어 주면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날것이에요. 내 충고를 무시하지 말고 새겨들어요.”

이는 모두에게 한 말이지만, 특히나 장철강 사장을 향해  말이었다.
아마 그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을 다 제물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권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저 남자가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적당한 선을 지키지 않으면 에탄과  휘하 도적단 일원들의 요구가 점차 높아질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게 둬서는 안 된다.
이곳 사람들도 자기 권리를 어느 정도는 요구하면서 대등하지 못하더라도 인권은 지켜야 했다.

“갈게요. 무사하세요.”

“우신아….”

“우신씨….”

두 선배의 목소리가 내  뒤로 들려오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뒤를 돌아보면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기에 돌아볼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람들의 탄신을 뒤로하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밖에는 아까 내가 들어갈  보았던 도적단 일원이 심심한 표정으로 문을 지키고 있었다.

“끝났어?”

“네.”

“여기 있다. 네 단검.”

“고마워요.”

“고맙긴. 우리 단원이 된 것을 축하해. 그…. 어제 있던 일은  사과하지.  여자도 네 친구였나?”

잠시 이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을 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있었다.
세연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남자는 어제 있었던 일을 나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왜냐? 이제 이들과 동료이기 때문이다.

“네…. 가장 친한 친구예요.”

“그런가…. 그래도 우리 동료끼리 그런 일로 척을 지지는 말자고. 안 그래도 에탄 두령이랑 카밀라 간부가 척을 지고 있는 것도 심란해 죽겠다. 말단 단원끼리 취급도  좋은데 괜히 얼굴 붉혀봤자 더 힘들기만 하다고.”

”세연이에게 사과해 주세요. 그렇게 해주면 나도 더는 그 일로 왈가왈부 안  거예요.“

“끙….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건가…. 저기 노예에게 사과하는 건 자존심이 좀…. 하…. 아니다. 알았어. 아무도 안보는 틈에 사과하고 나올 테니 이 일은 그걸로 끝인 거다?”

욕망에 충실하고 그것을 분출하는 도중에는 악귀나찰이 따로 없었으나 모든 욕망이 분출되고  뒤의 모습은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잘못 따위 인정하지 않으면 그대로 상종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다행히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사과해 왔다.
그것이 동료이기 때문일지라도 기분은 한껏 풀렸다.

“예.”

“그래. 동료끼리 얼굴 붉히지 말자고. 아, 참 카밀라 간부가 널 찾아 왔었어. 앞으로 떠날 시간까지 1시간 남았지만, 미련 없으면 바로 게이트 앞으로 오라더라. 더 둘러볼 거면 둘러보고. 아니면 간부한테 가.”

“그럴게요. 사실….  둘러보고 싶지는 않네요. 마음만 아플 거 같아서.”

“끙…. 괜히 심란해지는군. 가라. 가.”

“네.”

게이트를 향해 이동하려는 찰나 다시 뒤를 돌아 그 도적단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난 이우신이예요.”

“나? 난 놀티아다. 속창의 놀티아! 멋지지?”

“알았어요. 놀티아. 앞으로 얼굴 보면 종종 인사해요.”

“그러지. 잘 가라고 우신. 우린 한동안  세계에 체류할 예정이라 언제  얼굴을 볼  있을지는 모르겠네.”

놀티아와 작별하며 게이트로 향하는 길,  앞으로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에 흠칫 놀랐다.
회의실에서 나와 복도를 통해 조금만 더 가면 게이트 일진데 왠지 모르게 앞이 어두웠다.

“여-”

에탄이다. 거대한 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검, 위압감이 느껴지는 근육질의 몸, 야성적으로 아무렇게나 기른 갈색의 머리와 누가 봐도 시비를 걸겠다는 느낌이 강해 보이는  눈빛, 단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우리 단원이 되었다지?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 어떻게 우리 단장님을  구워삶았나 보네? 다음엔 내 자지도 좀 구워삶아 주면  되겠냐? 너만 허락하면 내가 여기 있는 것들의 안락한  정도는 보장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에탄…. 두령이었죠?”

“오? 기억하고 있군, 그래 그 카밀라년만 아니었어도 네년의 보지를 맛보았을 에탄 두령님이시다. 너도 내 자지 크기가 좀 마음에 들었나 보지? 이름까지 기억해 주다니.”

“여러모로 충격이었으니까요. 나쁜 기억은 잘 남는 편이거든요.”

“흥. 비꼬기는 아직 처음이라  모르는 거 같아 내 충고해 주는데. 단원과 두령은 하늘과 땅 차이야. 앞으로는 좀 더 고분고분 구는 것이 좋을 거야.”

“그렇게 하죠. 하지만. 전 당신 소속이 아니고 카밀라 간부님 소속이라 얼마나 얼굴 마주할지는 모르겠네요.”

말은 고분고분하되 기세는 꺼트리지 않았다.
카밀라는 나에게 엄한 척 굴지만 하나하나 절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충고를 계속해주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도적단 생활을 안전하게 영위하고 싶으면 절대 기세 싸움에서 지지 말라고도 충고해 주었었다.
한번 지고 들어가면 그 뒤에도 계속 툭툭 건드린다고 한다.
이건 동료이고 가족이고를 떠나  단체에 속해 있으면 위와 아래로 나누어지는 습성이기에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장대하게 설명을 했다.
소속된 상위 계급 인원에게는 절대복종하여야겠지만, 다른 소속에까지 너무 저자세를 보이지 말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다른 소속들에까지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같은 소속 모든 사람의 위신을 깎아 먹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에게 배운 대로 행하고 있다.
어차피 이제 도적단이 된 몸, 살아남기 위해 도적단이 돼야 한다면 제대로 된 도적이 되기로 했다.
도적단이고 회사고 단체 생활이었다. 목숨을 더 위협받는다는 것만 빼고 보면 어딘지 비슷했다.
그리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에탄의 모습이 과장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입이 험하고 괜히 시비나 붙이며 까불거리는 모습, 그리고 남을 깔보는 눈길 등등 정말 과장과 판박이였다.
어쩐지 느껴지는 저 남자의 무서운 기세와 위압감이 한풀 꺾이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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