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9화, 군상. (9/70)



〈 9화 〉9화, 군상.

이우신이 다니는 회사는 큰 대기업의 아래도급 업체다.
대기업에서 일일이 해결하기 귀찮은 문제를 넘기는 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새끼를 까듯이 만들어낸 회사로 이곳에서 생기는 살인적인 업무들은 모두 대기업에서 넘긴 일들이다.
다른 세계의 침공이라는 이례적인 일만 없었어도 이 회사의 모든 이들은 자신의 업무량을 안주로 씹으면서도 하루하루 돈을 벌기 위해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야 했을 터지만….
지금은 마치 돼지우리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속옷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을 드러낸 상태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야 했다.

“세연아….  좀 떠봐….”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어휴….”

“제기랄….”

전날 이곳으로 넘어온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놈들에게 무참히 윤간당한 여성 유세연 그녀는 하루가 꼬박 지난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숨을 쉬고는 있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동기 여성들이 모여 그녀를 간호했고 남자들은 따로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욕을 하며 어떻게 해서든 밖의 상황을 알기 위해 뭔가 뾰족한 수를 새우려 했다.
그러나 모두 한곳에 갇혀있는 이 상황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박기우.  아까 맞은 건 좀 괜찮아?”

“아? 응. 이정도야 뭐. 멍이  들긴 했지만, 괜찮아.”

“개새끼들이 우신이를 데리고 갔다고 했지.”

“응…. 그 소처럼 생긴 괴물의 배에서 우신이를 꺼내자마자 두령이라는 놈이 눈이 돌아가서 다른 곳에 데려갔어….”

“하…. 그렇다면 지금쯤 우신이도 세연처럼 욕을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 녀석이 우신이를 마음에 들어 한 거 아냐?”

“…….”

까득!

기우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이를 갈았다. 어찌나 강하게 이를 갈았는지 주변에 모인 다른 동기들이 흠칫 놀랄 정도였다.
주먹을 강하게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이곳에 모인 모두를 고양한다.

“구할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우의 눈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젊은 사원들끼리의 대화에 나이가 좀 돼 보이는 남자가 끼어들면서부터 저들끼리 단합을 하는 자리는 진흙탕 싸움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그는 이 회사의 사장인 장철강이다. 원래는 이 회사의 위에 있는 대기업의 이사로 있었으나 사장을 시켜 준다는 말에 혹해서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간 남자였다.
물론 그에게는 지옥이라 해도 가장 위에 군림하는 자리이니 나름대로 사장이라는 직책에 만족하고 지내고 있긴 하지만….

“아서! 그러다 죽는다고! 내 말 들어. 자네 혼자 피해를 보면 상관없지만, 그러다가 여기 모인 다른 사람들도 불똥이 튀면 어쩌려고 그러나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게. 자네 행동으로 초래할 일을  생각해 보라 이 말이야.”

그는 반쯤 벗어진 머리를 젊은이들 사이에 들이밀며 박기우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사장 장철강의 말에도 박기우는 노기를 꺼트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  걸렸다는 식으로 박기우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은 나서지 마세요!”

“뭐가 어째? 아니 박기우 사원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침공당한 지 이제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아무리하루 일지라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장철강은 머리가 굳어있다.
그는 익히 말하는 꼰대이며 부하 직원을 그리 챙기지 않는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좋게 말하면 일등 가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인배다.
아직도 자신의 사장 직위를 내세워 사원들을 자기가 이끌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 작태가 참 없어 보이기만 하다.
어제 이곳에 모두 잡혀 온 순간도 직위가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을 나누어 자리를 배정하였다.
거기에 저 괴물 같은 자들이 가져다준 식량조차 저놈들이 먼저 차지해 조금씩 배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저들이 저리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이 장철강이 두령이라는 남자와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야만적으로 보여도 말이 통하고 조금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장철강이었다.
그리고 그는 연륜이 쌓인 대기업 이사이자 소기업의 사장답게 그런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다만…. 그는 두령 에탄이 말하는 것을 단 하나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제물을 받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에탄이 원하는 여자였다. 세연과 우신, 그리고 우신과 같이 방에 기절해 있던 두 여자는 전부 에탄에게 받쳐진 산 제물들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박기우는 장철강에게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아직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기우와 우신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것은 결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눈앞에서 사랑하는 여성을 제물로 바쳐 버린 남자이니 좋은 말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사람만 남아 있었다면 지금쯤 장철강은 박기우의 주먹에 몇 대 얻어맞았을 것이다.
기우는 그럴 힘이 충분했고 젊었다. 그에 반해 장철강은 점차 시들어 가는 장년이니 당연하다.
이글거리는 기우의 눈동자를정면으로 받은 철강은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자기 옆에 있는 다른 직급 높은 사람들, 자신과 동조하는 자들의 힘을 빌려 다시 고개를 세우고는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아무리 이런 꼴이 되었어도  사장이고 자넨 사원이야! 만약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면 지금 일어난 일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거네!그래도 좋은가!!!”

“하 마음대로 하시죠?  지금 당신에게 좋은 감정 없습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말살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저지른 일은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징계할 겁니다!”

“흥! 나에게 거스르면 음식과 물을 받지 못할 텐데 어디 두고 보지. 하루 꼬박 굶어보면 그 생각이 달라질 거야. 나에게 엎드려서 빌면 내 이 일은 모른 척 넘어가도록 하겠지만, 계속 버티면 두령에게 말해  여기서 추방해 버릴 거다!”

“배신자 같으니.”

“배신자라니! 난 이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한 거다! 내가 이룩한 이 업적을 깎아내리지 말게!”

더 흉흉해지려는 상황을 주변 사람들이  사람을 떨어트려 놓는 것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기우는 아직도 화가 나는지 씩씩거리고 있었으며 철강은 하룻강아지의 외침이라 생각했는지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끼익

그리고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자 문을 바로 닫혔고 사람들의 이목은 문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바로 잡혀가서 소식이 없던 이우신이었다.

*****

회의실의 문은 방음이  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밖에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안이 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말은 즉 내부에서 무슨 일은 있는지 들어가기 전에는  수 없다는 뜻이다.

“에……. 다들 괜찮죠?”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쥐라도 죽은  다들 침묵을 하고 있어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이 무안할 지경이다.

“우, 우신아!!!”

“기우 선배!”

선배가 달려왔다. 그는 바로 품에 안았다. 어깨로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그가 울고 있다.
남자의 눈물이 약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아니지만, 우는 것을 여자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시간을 주고는 등을 도닥여줄 뿐이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밝은 얼굴이 되어 하나둘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 침묵은 과연 내가 입고 있는 옷 때문에 저들의 동료가 들어온 줄 알고 조용히 있었던 것이었다.
괜히 시끄럽게 입을 열었다가 얻어맞은 사람이 꽤 있던 모양이다.
기우 선배도 많이 진정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대충 설명을 해주니 다들 욕을 많이 봤다고  다독여 주었다.
물론 능력, 레벨에 관한 것들은 나도  모르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넘겨 버렸다.
지금으로서는 그에 대한 것을 내가 설명하기 너무도 힘들다.

“잘됐군. 잘됐어. 이야! 이우신 사원 자네가 우릴 모두 살리는군!”

“네?”

사장님이다. 장철강 사장, 항상 여자애들 뒤꽁무니 따라다니면서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을 하지만, 그 도가 심하지는 않아서 다들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제법 입담도 있어 재미있는 남자이기에 이렇다 할 문제없이 무사한 인간이다.
확실히 여자 사원에게는 아주 친절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으므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 사이에서 사장은 인기가 좀 있다.
물론 그것은 남자로서의 인기가 아니라 상사로서의 인기다.
반쯤 벗어진 머리를 나에게 들이밀며 마치 좋은 아군을 얻었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는 사장의 모습에 웬일인지 남자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특히나 기우선배의 눈이 그랬다, 마치 배신자를 보는 눈이랄까? 그때 누가 먼저 입을 열 사이도 없이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 옷! 저 치들과 사이가 좋아졌다는 뜻 아닌가.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구태여 자네 같은 사람을 굳이 자기들 팀에 넣어 주지도 않았겠지. 어때 내 말이 맞지?”

“아…. 복잡한 일이 좀 있었지만. 일단 도적단 일원인 된  맞네요.”

“그래. 그래. 힘들었을 거야 내가 다 알아. 알고말고. 저…. 그런데 말이네.”

간이고 쓸개고  빼줄 거 같았던 그의 음성이 조금 변하였다.
사람 좋게 웃던 미소도 사라지고 진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할 거라는 듯 무게를 잡는다.
솔직히 별로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이 아직도 몸에 배 있어 상사의 말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에…. 우리 말이야….  꼴을 좀 봐. 우리 이렇게 하루 동안 갇혀있었다네.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이게 뭐냔 말이네. 옷도  입게 해주고…. 못해도 사람들을 좀 나누어서 가두어 둘 수는 없나 물어봐 줄 수는 없나? 그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그리고 또 하나 부탁하자면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좀 이끌 수 있게 감투라도 좀 달라 청해볼 수는 없을까?”

“저기….”

 아직 말단에 불과하고 솔직히 그렇게 좋은 상황도 아니었다.
감시의 눈길이 붙고 제이슨 대 두령이 내 미색을 좋게 보긴 해도 능력 때문에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는가….
이런 와중에 저런 말을 해 보았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폭력일 것이다.

“제가…. 도적단이 되긴 했는데. 아직 말단이에요. 그런 말을 할  있는 깜냥이 안돼서….”

“오! 알아. 알아. 내가 좀 무리한 부탁을 했군. 지금 당장 해달라는 건 아니야. 기회를 봐서, 응? 기회를 봐서 조금 넌지시 이야기라도 해달라는 말이라고. 이정도는 충분히 해줄  있잖아? 응?”

“그만 하세요! 우신이는 지금 도적단에 잡혀갔다가 큰 욕을 보고 돌아오는 길인데 어떻게 이런 가녀린 여자에게 빌붙어 살려고 합니까? 그러고도 남자예요?”

“조용히  해! 그럼! 여기서  인간 같지도 않은 생활을 하다가 죽자 이거야?! 우신씨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말고! 자자! 우신씨 이 일만 잘 해결하면 내가 회사에 과장 자리를 우신씨에게 주지! 어때? 응?!”

너무 쉰 떡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설마 저런 유혹에 넘어가리라 생각한 건가….
지금 상황에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기약이 없는 판에 과장 자리가 과연 좋은 조건이라 되리라 생각하는 걸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약 없는 과장 자리보다 차라리 이 도적단의 말단 간부라도 달고 있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아까도 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이치들은 자신 동료들에게는 관대하고 친절한 편이다.
노예로 잡혀 올 때는 다들 날 무슨 범하기 좋은 여자로 보던 그들이 같은 옷을 입었다는 것 하나로 그런 눈빛들이 싹 사라졌으니 말이다.

“죄송해요…. 지금 당장은  어떤 말도 해드릴 수가 없어요. 제 앞길도 막막한걸요.”

“이 사원! 아니 이 과장 사장님 말 들어! 대답만 하고 언제든 괜찮으니까 우릴 구명해 달라고. 내 이리 부탁함세 내가 과장 자리를 주고 사원이 돼도 좋으니 제발!”

이번에는 어제 아침에 나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던 과장까지 합세했다.
누가 보면 형제라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반쯤 벗어진 것이 똑같은 남자다.
사장은 그런 과장의 지원에 힘입어 더  몰아붙이려 하였으나 기우 선배가  앞을 막아섰다.

“그만두세요. 꼴사납습니다!”

“방해하지 말라고! 자네는 사사건건 참 마음에 안 드는군! 이렇게 계속 분란을 조장하지 말고 단체 행동이라는 것을  배워! 우리끼리 단합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도  치들에게 놀아날 뿐이야. 지금은 조금 굽히고 들어가더라도 최대한 우신씨가 저놈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우릴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말이야!”

“제길. 아까부터 말하는 꼴을 보니 부아가 치미는군. 사장! 아니 장철강! 당신  하는 사람이야! 저 잔인무도한 것들에게 짓밟히고 돌아온 우신씨를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부탁을 해?! 몸을 팔아서 저들 비위를 맞춰 주란 말을 돌려 말한 거잖아!!!”

옆에서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내에서 가장 불같이 성격이 괄괄하지만, 뒤끝은 없고 정의감에 불타는 남자 사원 지창명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