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5화, 제이슨 페이머스.
“자자 긴장 풀라고. 내가 이렇게 생기긴 했어도 여자에게만큼은 아주 자상하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대화나 나눠 볼까? 아직 침대 위에서 뒹굴기에는 시간도 이르고 술도 많이 남아 있다고. 원한다면 너도 술을 마실 테냐?”
(“아뇨.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이것을 마음속에서 생각할 뿐 입 밖으로 빼지는 않았다.
괜히 스스로 자상하다고 내세우는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
지금은 그냥 비위를 맞춰 주면서 조금씩 설득을 해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무언을 긍정이라 느낀 것일까? 그는 술이 가득 든 술잔을 내 앞에 내밀었다.
소주도, 맥주도 아닌 처음 보는 술이었다.
그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니까.
눈으로 봐선 이 술은 얼마나 독한지. 무슨 맛을 가지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미지의 것이다.
일단 술잔의 크기가 밥그릇보다 큰 국그릇 크기다. 끊어서 마시는 것일까?
이 제이슨이라는 남자는 이 큰 그릇에 담긴 술을 단번에 마시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남자가 술에 강하기 때문일 터 속지 말자.
그가 어서 마시라는 듯 눈치를 주었다. 하는 수 없이 그릇에 입을 대고 살짝 안으로 술을 받아들이니 잠시의 향긋함 뒤에 역한 향기가 올라왔다.
발효한 술인 듯 특유의 그 역함이 확 밀려온다.
다행인 점은 역함이 가시자 점차 달콤함이 혀 안에 감돌았다는 것이고, 내가 술에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술에 강한 나에게도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가는 동안 입안이 다 타는 듯한 강렬한 화끈함이 느껴졌다. 이 술…. 도수가 엄청 높은 모양이다.
“큽!”
한 모금 마시고 그릇을 바로 탁상에 올려둔 뒤 급하게 입을 막고 새어 나오는 구역질을 참아 냈다.
정말 강하다. 순간적으로 입을 막지 않았으면 바로 역류할뻔 했다.
“콜록! 콜록!”
다행히 역류하는 일은 없었지만, 입안에 남은 술 때문에 기침이 절로 나오고 눈앞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취기가 단번에 올라왔다.
볼이 뜨거워지고 점차 달아오르는 기분까지 느껴진다.
소주, 맥주에 충분히 길든 나에게도 이 세계의 술은 너무 세다….
“으하하하 그쪽 세계 사람들에겐 너무 강했나? 한데 어쩌나 우리 도적단이 잘나가긴 해도 절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절약을 잘하는 성격이라 가장 좋은 술은 이게 전부야. 너무 힘들면 그만 마셔도 좋으니 내 잔에 술을 따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좀 해봐라.”
“재미있는 이야기…. 그런 게….”
그런 게 바로 머리에 떠오를 리가 없지 않은가….
내 머리는 뚝딱 하면 뚝딱 나오는 이야기보따리가 아니란 말이다….
갑자기 이야기하라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남자였다.
술을 한잔 더 따라 주며 그가 시원하게 술을 들이켤 동안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해 줘야 할지 고민의 고민을 한 결과.
그냥 내가 사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온 세상 이야기라도 괜찮나요?”
“음 그거야 말로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이로군. 어디 한번 해봐.”
드디어 안주에 손을 댄 제이슨, 고깃덩어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에게 집중한다.
다음 술을 미리 따라준 다음 우리 세상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과학이라. 그 총이란 무기가 그 과학의 산물이라? 거 참 잘못 만들어진 거 아냐?”
“그보다 더 강한 무기도 있지만…. 아까 그 카밀라라는 분의 손이 총에도 뚫리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효능이 없을 듯하네요.”
“도적단의 간부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도 일반 단원들에게는 좀 위험하겠군. 경고는 해 둬야겠어.”
“곧 정부에서 이 일을 알고 저희 사옥을 포위할지도 모르는데 너무 태평하시네요?”
“에탄이 그리 보여도 유능한 녀석이고 그 녀석이 대동한 단원들과 간부들은 모두 선봉에 적합한 놈들이야. 모르긴 몰라도 공격을 받는다면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걸? 네 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정보를 받았을 테니 경거망동은 하지 않겠지.”
“그, 그렇네요….”
하긴 괴물에게 공격당한 사옥을 정찰하러 경찰이 왔었다고 했었지….
총이 통하지 않는 마수와 그런 마수를 쓰러트린 괴물들이 즐비하니 선공을 가하기보다는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는 행동을 보일 것이다.
나머지 게이트가 어디에 열려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곳도 아마 다르지 않을 터.
다른 곳에도 게이트가 열렸다면 일부 과감성이 넘쳐나는 국가들은 어찌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함부로 공격하다간 이들에게 전멸에 가까운 큰 피해를 볼 터….
지금은 정부가 멍청한 짓을 저질러 사옥에 갇혀있는 동기를 비롯한 선배, 그리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그는 그 큼직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어루만진다.
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던 그 기분 나쁜 감각들이 많이 가셨다.
이미 가슴을 마음껏 주물러댄 상태라 그런지 확실히 역겨움이 덜했다.
남성의 손길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니 이렇게 처량할 수가 있을까?
“비록 우리가 침략하긴 했어도 복종을 하는 자들에게는 관대한 편이지. 그쪽에 넘어간 부하들도 어느 정도 욕망을 풀면 다들 얌전해질 거야. 요즈음 일이 없어서 다들 어디에 분출도 못 하고 쌓여 있던 참이었거든.”
“이미….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요 뭐…. 제가 아는 동기들과 아는 지인들이 무참하게 짓밟혔을 거예요.”
“약하면 잡아 먹히는 거지. 너도 이곳에 온 이상 그걸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곳은 이미 네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닐 테지.”
“…….”
슬프다. 슬프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까 카밀라와의 대화 도중에 이미 울고 싶은 만큼 다 울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내 코가 석 자인데 우리 세상이 망한다는 것이 무슨 대수냐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흣!”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점차 내 몸을 타고 뱀과 같이 올라왔다.
배를 지나서 가슴 아래에서 내 가슴을 다시 잡고는 마음 가는 대로 주물럭거린다.
젖꼭지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마치 자기 장난감인 듯 굴리면서 제멋대로 희롱하고 있다.
“이야기가 멈췄는데?”
“가, 갑자기 가슴을 잡으니까…. 그렇잖아요.”
“뭐야? 이 정도로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큭큭큭 그쪽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반응이 귀여운 건가?”
다짜고짜 허벅지를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는데 과연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이 세상과 내 세상은 생각하는 게 너무도 달랐다.
머릿속에서 또 혼란스러움이 올라온다. 정말 싫다.
“그럼…. 다른 이야기를….”
내 세계의 우월함을 보일 생각은 없었으나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충분한 설명을 해 주었다.
먼 거리에서 통화가 가능한 휴대용 전화기를 시작으로 네트워크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인터넷과 삶을 즐기기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여과 상품 등등….
물론 휴대폰, 네트워크를 제외하면 남자가 듣기에는 그리 재미있는 물건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여성용품을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여자 회사원이니까.
그런데도 제이슨은 큼직한 눈을 빛내면서 내 말을 경청하는 중이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그렇게 즐거운 것일까?
그러면서도 자기 세상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가슴을 잡고 주물러 대는 것은 멈추지 않았지만….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워. 그럼 이우신 너는 레벨이 몇이냐?”
“네?”
“응? 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거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란 것도 잊고 아무 말이나 해버렸네. 아니다. 너희 세상에서는 없는 개념일 테니까.”
뭔가 중요한 거 같은데…. 여기서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실마리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내용이니 지금은 그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어 놓아야겠다.
“저만 자기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금 불공평해요.”
“불공평하다?”
“이렇게 되면 저는 살고 싶어서 우리 세계의 내용을 1부터 10까지 다 일러바치는 나쁜 년이 되는 거잖아요. 가는 게 있었으니 오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비록 이렇게 잡혀 온몸이라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요?”
멈칫
‘아차…. 말실수했나?’
잘만 움직이고 있던 제이슨의 손이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멈추었다.
그리고 마치 보물인 양 주물럭거리던 그 손이 내 가슴에서 떨어졌다.
분명 뭔가 심기가 상한 것일까…. 말을 하다 보니 탄력을 받아서 좀 막 나간 감이 있었다.
이세계의 강렬한 술기운을 타고 용감무쌍해진 이놈의 입방정이 말썽이었다.
“크하하하하 좋지. 좋아. 그 정도 객기는 부릴 줄 알아줘야지. 난 시체 같은 년들을 상대하는 그것보다는 조금 앙칼지더라도 화끈하게 덤비는 쪽이 더 좋지. 팔팔하게 뛰는 활어 같아서 상대하는 맛이 있거든. 술 한잔했더니 과감해졌잖아 이거.”
다행히 그는 기분이 나빠져서 멈춘 것이 아니라 내 당돌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제이슨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가 들고 있던 술병을 잡아채 자기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입구를 입에 넣는다는 표현을 해야 할 정도로 집어넣은 뒤 술을 넘겨 삼켰다.
한 병을 전부 비운 그는 바로 새 술병을 하나 더 잡아서 그것 역시 벌컥벌컥 마셔댔다.
“크! 잔에 따라 마시는 건 처음이면 됐지. 역시 술은 병째로 마셔야 한다니까…. 그래 레벨이 뭔지 궁금하다 이거지?”
“예…. 알려주세요.”
“어려울 거 전혀 없지. 잘 들어라. 레벨이란 쉽게 말해 강함을 표시하는 척도다. 우리 세계에서는 누구나 레벨을 가지고 레벨을 올려 강해질 수 있지. 수련을 통한 강함도 중요하지만, 높은 레벨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기에 레벨을 올리는 것이 강해지는 최고의 방법이지.”
여기까지 말한 제이슨은 목이 마른지 다시 술병을 들고 그 안의 술을 비워냈다.
이것으로 그는 총 세 병의 술일 비운 것이 된다.
그렇게나 마셔댔는데 그의 눈은 아직 총명하게 살아 있었다.
술병은 완전히 비워낸 그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한 가지, 더 이곳에는 직업이란 것도 있다. 직업에 레벨 척도에 따라 강해지는 역량은 천차만별이지. 예를 들어 같은 레벨이란 가정하에 ‘도적단원’은 ‘평민’보다 강하지만 ‘병사’보다는 약하지. 직업은 자신의 생활, 그리고 수련, 행동에 따라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을 평생에 두 개의 직업 이상을 가지긴 힘들다. 두 개도 많이 잡은 거야. 대부분이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의 레벨을 올려 특화된 상위 직업으로 올라가서 강함을 키워 나가지.”
“게임…. 같네요.”
“게임? 게임이라…. 그쪽에선 그렇게 보이는 건가. 후후후 우리 세상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비결이거늘 게임이라…. 정말 평화에 찌들어 사는 족속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이 참 남다르군그래.”
“지금 비꼰 거죠?”
“당연하지. 자기 목숨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그런 족속들의 세상인데 너는 그런 생활로 만족하던 거였냐?”
“전 그쪽에선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나름의 보람도 있었고 사는 데 만족하고 있었어요. 가끔 일이 너무 힘들거나 하면 누구나 다 하는 불평불만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그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은 하는 일이에요.”
이야기하다 보니 또 뭔가가 내 속으로부터 북받쳐 올라온다.
지금까지의 내 평범한 생활을 깨부수고 이런 꼴로 만든 것은 이들이다.
이 사태의 피해자는 바로 나지 절대 저들이 아니란 말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둔 사람들이 그것을 미안한 일인 줄도 모르다니.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지금 그가 화를 내 나를 폭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그래야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
“당신은…. 내 인생을 망쳐 놓았어요. 그걸 미안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도적단의 왕인지 두령인지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최악인 거예요.”
“흐흐흐 최악. 최악이라. 말 한번 잘했군. 그래 나도 그건 인정하지 난 최악이야. 그런데 그 최악을 선택한 것은 내 뜻이었고 살아가는 도중에 내가 죽이거나 인생을 망하게 만든 자들에게 미안함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강한 자는 빼앗을 뿐이니까. 그리고 넌!”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뿐만이 아니라 정말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가 한쪽 팔의 팔심만으로 날 가볍게 들어 올려서 침대에 던진 것이다.
날 집어 던진 그는 이어서 내 위로 올라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승자의 전리품이지.”
“…….”
“마음의 준비는 다 되었겠지?”
그는 손이 아닌 원거리 발사형 무기가 장착된 팔 일부분을 분리했다.
그리고는 그곳에 딱 맞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창작했는데 그 팔은 장착됨과 동시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어지는 그의 징그러운 미소…. 올 것이 왔구나.
대화를 이루다가 마지막에 그를 설득하려 했던 내 생각은 한 번의 욱함을 참지 못하여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범해지는 시기를 앞당겨 버리는 최악의 한 수가 되었다.
제이슨이 침대 한쪽에 놓인 방을 밝게 비춰주던 빛나는 램프에 손을 올리자 그 밝게 빛나던 불빛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겨우 상대방의 모습이 보일 법한 은은한 빛이 되자 마음에 드는지 그는 램프에서 손을 뗐고 다음 순간 그는 금빛을 띤 작은 함을 들고 있었다.
“노예들을 관리 할 때는 상인들에게 팔기 전에 임신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지. 이 약은 여성의 질과 자궁을 보호하며 남성의 정액이 흡수되지 않고 바로 튕겨 나오는 마법처리가 된 피임약이다.”
제이슨은 그 함의 뚜껑을 열고는 자신의 손에 흰색으로 질척한 약을 덕지덕지 발랐다.
불안해 미칠 거 같았다. 지금 저 행동을 미루어 보건에 다음 그가 할 행동은 당연지사 저 하얗게 변한 약투성이 손가락을 내, 질 안쪽에 삽입하는 것일 터….
내가 몸을 움직여 그의 손길을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힘 앞에서 나는 너무도 나약했고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격통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크게 울부짖고 말았다.
“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