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고난도 던전에 떨어졌다-217화 (217/218)

27. 소풍(2)

“흐흐흥~ 흐흐흥~ 흥~ 흥~ 흐응~”

코르디아는 지금 이 순간 모든 게 행복했다. 아빠엄마동생들이랑 소풍을 왔다는 것 자체도 기분이 좋았고, 방금 전까지 집 안이나 마당이 아니라 완전히 바깥에서 마음껏 뒹굴고 뛰어다녔던 것도 좋았고, 손에 쥔 꽃들이 예뻐서 좋았고, 그 꽃들로 이 장소를 자기가 마음에 드는 대로 꾸밀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기랑 동생들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해주신 아빠엄마가 있어서 더 좋았다.

“빨간 거는 여기랑, 여기에 심어야지.”

코르디아는 꽃을 좋아했다. 단순히 색깔이 예뻐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꽃 그 자체가 갖는 의미를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 코디. 꽃이 왜 아름다운 줄 아나요?

- 우움, 색깔이랑 모양이 예쁘고 향기가 좋아서요?

- 그것도 물론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노랑 거는… 여기가 좋겠다. 응. 잘 어울리네. 헤.”

- 대개 꽃은 1년에 한 번, 며칠만 피어나요.

- 네에? 왜요?

- 꽃은, 이 아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걸작이기 때문이죠.

“하양 거는, 요렇게.”

- 걸작, 이요?

- 나, 예쁘지 않나요? 아름답지 않나요? 그러니 내게 다가와 주세요. 그리고 날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온몸으로 뽐내고 주장하는 거예요.

- 헤에….

- 짧은 순간의 사랑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결과물이 꽃이라서, 나는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분홍색도 있네? 분홍색은 어디에 심지…?”

- 엄마.

- 으응?

- 그래도 모든 꽃이, 사랑받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 그게 무슨 소린가요?

- 사람들이 많이 찾는 꽃이 있구, 그렇지 않은 꽃도 있구. 유명한 꽃이 있구, 아닌 꽃도 있잖아요.

- 일리가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 그럼.

- 그래도 코디.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요.

코르디아는 형형색색 꽃을 이리 심었다 저리 심었다 하면서 엄마랑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꼭 다른 이가 봐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최선을 다해 역경을 헤치며 무언가를 꽃피웠고 후회가 없다면… 그건 이미 아름다운 꽃이 되어 이 세상에 그 향기와 흔적을 남긴 것이니까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후후. 엄마가 이상한 말을 했네요. 그래도 이 꽃, 정말 예쁘죠?

- 네!

- 우리 코디만큼은 아니지만, 이 꽃도 사랑스럽네요. 이리 와요. 귀에 꽂아줄 테니.

- 으앗. 가, 간지러워요.

‘엄마 닮은 꽃.’

아직도 그때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도 코르디아는 엄마야말로 꽃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쁘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다정하고 냄새도 좋아서 항상 가까이 있고 싶은 엄마.

아빠도 세상에서 제일 좋고 사랑하지만, 꽃을 보면 항상 엄마가 떠올랐다.

“이챠… 다 됐다…!”

즐거운 꽃 심기를 다 끝낸 코르디아는 일어서서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붉은색과 주황색 계열의 꽃들로 만든 태양.

옅은 노란색과 하얀색 계열의 꽃들로 만든 네 개의 달.

그 사이에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네 개의 별.

예뻤다. 그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얼른 엄마아빠랑 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헤헤… 엄마~ 아빠~!”

엄마랑 아빠는 뭐라고 하실까?

코르디아는 너무 즐거웠다.

**

자기들이 먼저 조립해보겠다며 큰소리치는 딸들이 귀여워, 딸들이 조립 부품을 들고 끙끙대는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모습을 몰래 영상구로 찍고 있을 무렵 코르디아가 오도도도 달려와 찰싹 달라붙었다. 이미 코르디아의 손에 세스티아가 붙잡혀있었다.

“아빠! 저기로 가요!”

“저기? 저기가 뭔데~?”

“아이, 빨리요!”

코르디아가 이렇게 보채는 건 손에 꼽는 일. 괜히 장난 한 번 쳐봤지만 그랬다간 코르디아가 울 거 같아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스티아는 이미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코르디아를 보고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손을 꼭 잡아오는 큰딸의 귀여운 압력을 못 이긴 척 따라가자, 아까는 없던 작은 꽃밭이 나타났다.

“와. 이게 뭐야~?”

“헤헤. 제가 만들었어요.”

“우리 딸이?”

“네!”

“이야.”

코르디아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감성이 드러나면서도 마냥 어린아이의 작품 취급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단 베이스가 된 꽃들이 예쁜 것도 한 몫 했지만, 그냥 딱 봐도 내키는 대로 심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4살짜리 아이가 미적 감각이, 나보다도 뛰어난 것 같았다….

‘내가 4살 땐 어땠더라.’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아마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처음으로 알게 됐던 내 처참한 그림 실력과 지금 이 작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코르디아에게 실례였다.

“이거는 햇님이지?”

“네!”

“딱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네. 여기 있는 건 달님이고?”

“네!”

“예쁘네. 진짜 예쁘게 해놨어. 근데 달님이 네 개네?”

“헤헤.”

요 깜찍하고 앙큼한 딸내미.

나는 코르디아를 안아들었다. 코르디아는 내 목에 한 팔을 두르고 나머지 한 팔로 꽃들을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기는 엄마구요, 요거는 카야 엄마, 저기는 셰이 엄마, 그리고 저기는 일루미나 엄마예요.”

“오오? 왜~?”

“그냥, 딱 떠오르는 색깔이랑 모양이에요!”

과연.

다 똑같은 색이 아니었고 다 똑같은 모양이나 크기가 아니었다. 미묘하게 달랐다. 어째서 일루미나가 저렇고 셰이가 저렇고 카야가 저런지는 모르겠지만, 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왜냐면 세스티아를 표현한 달이, 정말로 그냥 딱 보고 있으면 이쪽이 세스티아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딸과 마음이 통한 것일까. 아니면, 이게… 예술?

“그리고, 여기는 저랑 동생들이에요.”

“반짝반짝 작은 별들이네?”

“네! 엄마랑 아빠 사랑 먹고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작은 별들이에요. 헤헤.”

“이야….”

아빠로서 이만큼 기쁜 말이 있을까. 이렇게 기특한 말이 또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코르디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우리 딸. 뽀뽀!”

“뽀뽀~”

쪽-

‘이게 인생이지.’

지금껏 겪은 모든 고난과 역경은 이 순간을 위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코디. 이 네 별 중 코디는 누군가요?”

나랑 코르디아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세스티아가 묻자 내 볼에 뽀뽀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던 코르디아가 입을 뗐다. 허전했다.

“우움, 그건 안 정했어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엄마들은 다 하나씩 예쁘게 그려놨잖아요.”

“그건….”

나도 궁금했다.

별들은 달들에 비해 아주 작았다. 실제로 밤하늘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또 아내들이랑 딸들을 신체적으로 비교하나 보낸 세월로 비교하나 그게 맞기도 했다.

바람이 세게 불면 꺾일 것만 같은 여린 꽃.

하지만 그 여리고 순수한 꽃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네 송이의 꽃.

겉으로 보기에는 네 송이 꽃은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요.”

“그래서요?”

“엄마랑 아빠처럼 혼자 있어도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오히려 엄마랑 아빠의 보호를 받아야 해요. 그래서 안 정했어요.”

음.

그러니까 자기들은 어리고 약하고 영향력 없어서 누가 누군지 따로 정하고 꽃을 심은 게 아니라는 말인가.

뭔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코르디아의 사고력은 깊구나 싶으면서도 역시 마냥 4살짜리 아기가 할 법한 생각은 또 아니구나 싶었다.

“코디가 말하는 바는 잘 알겠지만, 코디 말 중에 틀린 점이 있어요.”

“네에?”

가만히 듣고 있던 세스티아가 여전히 내게 안겨있는 코르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코디를 비롯한 사랑하는 딸들이 아빠랑 엄마들한테 보호받아야 하는 건 맞는 말이에요. 당연한 얘기죠. 짐승들도 홀로 걷고 뛰고 사냥할 수 있을 때까지는 보호하니까요. 하지만 코디. 코디는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예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나요. 코디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엄마는 너무 슬퍼요.”

“어, 엄마. 그게 아니라….”

“코디뿐만이 아니라 루디, 에티, 비니 전부 마찬가지예요. 혹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버리도록 하세요. 엄마는 딸들의 생각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코디?”

“네, 네.”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만으로 아빠엄마에게 큰 기쁨이자 보물 그 자체예요. 홀로 설 수 없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보물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 아빠랑 엄마가 주는 사랑이 부족했나요?”

“으으으응! 아니에요 엄마!”

코르디아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격하게 내저었다. 세스티아의 자상한 타이름에 코르디아는 울먹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는데, 세스티아처럼 말하진 못했겠어… 역시 모성애 넘치는 엄마의 힘인가.’

자연스럽게 코르디아를 세스티아의 품에 넘겨줬다. 코르디아는 훌쩍였고 세스티아는 등을 토닥여주며 우리 딸,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언니이이이! 이거 봐라… 으엥? 언니, 울어?”

“아, 아니야. 안 울었어.”

“눈이 빨간데?”

“아, 안 울었다니까아.”

“코디 언니는 울보래요!”

“아니라구 했지!”

“꺄악!”

엉뚱하게 조립해놓고 제대로 맞췄다고 으스대던 피에타가 다가왔다가 울먹이는 코르디아를 보고 놀렸고, 기운을 차린 코르디아가 부끄러움에 발버둥치자 세스티아가 풀밭에 내려줬다. 코르디아는 이를 악물고 도망가는 피에타를 쫓아갔다. 세 살과 네 살 자매의 달리기에서 한 살의 차이는 어마무시했다.

- 으앙! 잘모태써~

- 안 울었다고 말해!

- 안 울어써! 안 울어써!

- 누가 안 울었어?

- 언니가!

- 좋아.

“이런 걸 보고 싶었던 거네요.”

“꼭 그렇게 찝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부정하진 않을게.”

“유진.”

“응?”

“우리 코디가 우릴 이렇게 예쁘게 표현해줬으니, 우리도 딸들을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야.”

별이 꼭 작고 희미하게 빛나라는 법 있나.

실상 해와 달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게 별인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