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고난도 던전에 떨어졌다-212화 (212/218)

26. 평범한 가족(7)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엄마랑 대화했던 것 때문에 잠자리에서 뒤척였고,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거의 한숨도 못 잤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의 빛은 수면의 상태에 상관없이 유진의 집 곳곳을 공평하게 비추었고, 규칙적인 기상 및 수면시간을 지키던 그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평범하게 지켜보자고 했죠.’

오늘 식사 당번이라 남들보다 더 빨리 일어났던 세스티아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유진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어제 있었던 일을 티 내지 말기.

더 챙겨주거나 달래주거나 하지 말고 평범한 날처럼 행동하며 관찰하기.

그래도 메뉴 정도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로 정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세스티아는 방문이 열리는 소릴 듣고 고개를 돌렸다.

‘코르디아?’

아니었다.

평소에 제일 늦게 일어나는 편이었던 비니아가 쭈뼛거리며 식탁에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비니아도 잘 잤니?”

“…네.”

안색을 보면 누가 봐도 잘 잔 사람들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둘 중에 그걸 굳이 따질 사람은 없었다.

‘어색하네.’

누가 그들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구도를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비니아는 원래 말이 적은 아이였고, 세스티아 또한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결국 의도하지 않았지만 ‘평소대로’ 세스티아는 묵묵히 요리를 했고 비니아는 늘 들고 다니는 인형을 품에 꼭 안고 침묵을 지켰다.

송송송-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방에 울려퍼졌다. 그럴 때마다 비니아의 조그만 귀가 쫑긋쫑긋거렸고, 조금씩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코가 씰룩거렸다.

‘음. 저 모습만 보면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거 같네.’

그 다음으로 나온 유진이 둘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일단은 평화로운 아침 그 자체였다.

“좋은 아침.”

“어머. 일어나셨어요?”

“아, 아빠…!”

유진은 오도도 다가오는 비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번쩍 들어올려 빵빵한 볼에 뽀뽀했다. 볼을 부비는 비니아를 의자에 앉힌 그는 세스티아를 뒤에서 안고 마찬가지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세스티아가 볼을 붉혔다.

“매콤한 맛 야채스프네?”

“네, 유진. 아이들이 누굴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이답지 않게 매콤한 걸 좋아하니까… 매워서 못 먹을 정도가 되면 안 되니 잘 조절하고 있어요.”

“매콤하다고 무작정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세스티아가 맛있게 요리하니까 좋아하는 거지.”

“읏, 저 칼 들고 있어요 유진.”

유진이 안은 손으로 세스티아의 말랑한 배를 슬쩍 만지작거리자 그녀가 뒤를 흘깃거리며 몸을 틀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그녀의 엉덩이가 유진의 고간을 스치고 지나갔고, 유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세스티아의 가슴으로 가져가려다 뒤에 비니아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음탕한 수녀 누나.”

“유, 유진!”

입으로는 안 된다 하면서 몸으로 음탕한 유혹을 한 세스티아의 못된 엉덩이를 자지로 툭 두들겨준 유진은 뒤이어 방에서 나오는 아내들과 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좋은 아침.”

**

아침 식사 시간엔 다들 별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아내들은 그런 아이들을 관찰하며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평범함으로 포장된 평범하지 않음 때문에 분위기는 곧 어색해지고 말았다. 유진이 느꼈던 아침의 평화는 지극히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진. 내가….”

“아니.”

결국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한 일루미나가 이야기를 언급하려 했지만 유진이 제지했다.

“하루 정도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잖아.”

“그치만.”

“시간으로 따지면 딸들이랑 얘기한 지 열두 시간도 안 지났어. 자는 시간 빼면 더 줄어들었고.”

“….”

“조금만 더 참아보자.”

“응….”

오늘은 때마침 빛의 날이었다. 지구로 따지자면 일요일이었고 대다수 국가와 사람들이 쉬는 날이었다. 집에서 아빠엄마들에게 홈스쿨링 비슷한 걸 받던 네 딸들도 이날만큼은 어떠한 교육도 받지 않고 마음껏 놀거나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관찰하려던 유진과 아내들에겐 마침 좋은 기회였다.

“장치는 다 준비된 거지?”

“네. 아무리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이라도 눈치채진 못할 거예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저희가 직접 다가가서 볼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딸들의 방에 CCTV 비슷한 걸 설치했다. 몇 년 전에 강림하셨던 라엘라님이 애용하시는 수정구의 열화판이었다. 집이 외진 곳에 있긴 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마당과 집 주변에 설치하다 남은 걸 집안 곳곳에 설치했다. 물론 오늘만 유지하고 내일 바로 원위치시킬 예정이었다.

‘찝찝하긴 하지만, 뭐랄까… 꼭 관찰육아예능? 그런 거 직관하는 기분이네.’

지구에 있을 때 직접 시청한 적은 없었지만 몇몇 유명한 프로그램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었다. 그땐 남 애새끼 키우는 거 보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한동안 유행까지 했을까 싶었지만….

“이건….”

“매일 보는 딸들이지만, 이렇게 보니 또 다르네요.”

“그렇네 정말.”

책상 앞에 앉은 채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 코르디아라든지. 살짝 풀이 죽은 듯한 루키디아의 방에 찾아간 피에타가 유진이 알려준 카드 게임을 같이 하고 싶었는지 꼬물거리는 작은 손으로 카드를 꺼내는 모습이라든지. 유진이 준 인형을 품에 꼭 껴안은 비니아가 언니들 방쪽을 기웃거리는 모습이라든지.

딸들이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우면서도, 그간 자신들이 생각했던 ‘우리가 딸들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

‘아빠엄마가 많이 실망하셨을 거야….’

유진과 세스티아의 딸이자 첫째 딸, 코르디아. 위로는 부모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아래로는 귀여운 동생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둘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어떡하지….”

코르디아 4년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4살짜리 아이가 세상의 모든 짐을 끌어안을 것 같은 태도로 고민하는 걸 누가 보면 귀엽다며 피식거리겠지만, 코르디아에겐 세상에서 제일 중대한 고민거리였다.

부모님이 실망하신다.

저거에 대한 두려움은 동생들도 가지고 있겠지만 코르디아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매사에 잘해야 한다.

부모님이 신경 쓰지 못할 때엔 자신이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동생들을 잘 보살피지 못한 자기는 부모님을 실망시켰고, 그렇기에 코르디아는 완벽한 딸이, 완벽한 언니가 아니게 되었다.

코르디아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완벽한 딸.

그리고 완벽한 언니.

동생들보다 1년 먼저 태어나 그만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여신님들의 축복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많이 받고 자랐기에,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에게도, 부모에게도 밝히지 않은 코르디아의 본심이었다.

만일 코르디아가 이걸 무심코 육성으로 중얼거렸다면. 아니면 유진과 그의 아내들이 코르디아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단순히 자기 딸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좀 조숙하다, 오성이 뛰어나다 정도로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게 자라서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업적을 세운 이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만큼은 ‘평범한 행복’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 행했던 그 모든 축복들이… 역설적으로 딸들 자체를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한참을 고민하던 코르디아는 이윽고 아빠가 선물해주신 소중한 연필을 들고 엄마한테 배운 말과 문자를 이용해 만든 자기만의 문자를 종이에 끄적거렸다.

“대체… 뭐라고 쓴 건지 알아보겠어?”

“아뇨… 저도 처음 보는 거라….”

그 문자를 장치 너머로 본 유진과 아내들이 경악했지만, 이내 끄적거림을 멈춘 코르디아가 방을 나서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

“언니.”

“…웅?”

“어떠케 할 거야?”

“뭐얼.”

“비니아.”

“…도둑.”

“앗! 치사해!”

셰이의 딸 루키디아와 카야의 딸 피에타는 유진이 알려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 건 피에타 쪽이었고 루키디아는 그냥 마지못해 어울려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게임 자체를 대충하진 않았지만.

피에타는 일부러 평소보다 더 목소리를 높이며 루키디아의 반응을 계속 살폈다. 언니는 딱 봐도 어제 있었던 엄마와의 대화 때문에 풀이 죽은 게 분명해보였다. 이게 다 갑자기 예민하게 구는 막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 언니가 자책할 게 뻔하기도 했고, 여기에 아빠엄마가 있진 않지만 동생을 나쁘게 말하는 건 아빠엄마가 싫어할 게 뻔했으니까.

“경비대! 그리고… 시민!”

“…탈옥.”

“아.”

“거기에 위장, 뒷골목 연계.”

“…힝, 져써.”

피에타가 다소 과장되게 카드를 던졌다. 그러자 루키디아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 번졌다. 루키디아가 카드를 셔플하며 물었다. 쪼물딱쪼물딱대는 손이 그 와중에 귀여웠으나, 딸들이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유진이 카드 크기를 작게 만들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니아는 왜.”

“얘기, 할꺼야?”

“…모르겠어.”

“하려면, 빨리 하는 게 조치 않을까?”

“…그치만, 억울해.”

“억울?”

“난… 잘못한 게 없어.”

“…!”

루키디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착- 착- 착- 루키디아는 카드를 꽤 능숙하게 바닥에 깔며 말했다.

“내가 먼저, 미안한 건 싫어.”

“그, 그치만… 엄마가.”

“….”

“아빠도.”

“읏.”

자기 몫의 카드를 집어들던 루키디아가 삐끗했다. 엄마까지는 어떻게든 될 것 같았는데 아빠까지는 쉽사리 이겨내기 힘들었다.

“이러케 이쓰면… 아빠한테 나쁜 딸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엄마는 이미 실망한 거 가튼데….”

카드는 다 섞였고 배분까지 됐지만 두 번째 판은 시작되지 않았다. 기껏 살아난 분위기가 다시 죽어갔지만, 피에타도 쉽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카드만 만지작거리며 꼬물거리고 있는 그때, 방문이 덜컥 열렸다.

“역시.”

“…언니?”

“언니?”

왼손에 말아쥔 종이를 앞으로 쭉 내민 코르디아가 방문을 닫으며 말했다.

“루디, 에티.”

“응.”

“웅?”

“언니가 생각이 있는데, 어때?”

잠시 시선이 마주친 루디키아와 피에타가 이내 카드를 내팽개치고는 코르디아에게 안기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역시 언니…!”

“언니 최고!”

루키디아와 피에타를 마주 안은 코르디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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