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고난도 던전에 떨어졌다-194화 (194/218)

24. 이야기

“씨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 뭐라고 해명이라도 하라고!”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겼는데 뭐라 설명도 없고, 보상도 없고, 해결책도 없고!”

“용사지원부 이 돼지 새끼들은 평소에 떵떵거리면서 왜 이럴 땐 아무 말도 없는 거냐고!”

세일럼 성 앞에 대규모 인원이 모여 용사지원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갑자기 던전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맨 처음엔 던전 입구만이 닫혀있었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던전 자체가 사라졌지만 성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과정이야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 외친 밥줄이 끊겼다는 게 중요했다.

누군가가 세일럼이 왜 일확천금의 도시냐 묻는다면 5살짜리 꼬마도 즉답할 수 있을 정도로 던전의 존재감 및 역할은 확고했으니까.

하루아침에 던전이 사라졌다?

그건 곧 던전에서 나오는 금화들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걸 노리는 수많은 용사들이 더 이상 용사로 있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허울뿐이지만 ‘용사’라는 타이틀의 명분과 실용성 모두가 사라져버린 무력집단은 곧 폭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황하고 분노한 그들 앞을 세일럼의 병사들과 지원부 소속 직원들이 막아서고 있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그나마 이 이상 선을 넘지 않는 건, 세일럼이 아무리 특별한 곳이라 해도 세일럼 또한 귀족이 다스리는 영지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도 섞여있기도 했고.

“원인 파악은 아직인가?”

“예, 그것이… 전혀 짐작조차 되질 않습니다.”

“아직도?”

“송구합니다. 아예 입구만 폐쇄가 된 건지, 던전 자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사라진 건지… 모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라.”

“그 말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전혀 진척된 바가 없다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허어, 이래서야 영주님께 어찌 보고해야 한단 말이냐.”

용사지원부라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서도 날벼락인 건 매한가지였다. 막말로 용사들은 말이 용사지 용병이나 보물 사냥꾼 같은 족속들이었으니, 던전 외의 다른 곳을 노리고 돌아다니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일럼은 아니었다. 도시의 근간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던전이 사라졌다는 걸 대놓고 안타까워하거나 조사한다거나 하기도 껄끄러웠다. 어디까지나 자연재해에 가까운 던전을 세일럼 성에서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던 것이었으니까.

세일럼 입장에선 던전을 사라진 것이 아쉽다?

세일럼을 위해 던전이 사라지면 안 된다?

뭐 해보기도 전에 수많은 교단에게서 집중포화를 맞을 것이다.

‘던전이 없으면, 세일럼은….’

어떠한 이점이 없는, 서서히 죽어가는 도시가 될 것이다.

‘던전의 향방보다는… 향후 세일럼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편이 낫겠어.’

그와는 별개로, 영주님께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당장 저 성 앞의 폭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용사지원부의 수장과 직원들이 지금 이 순간 내는 한숨은 어쩌면 던전보다도 더 깊을지도 몰랐다.

**

[더 롱 테러 최고난도 ‘가장 기나긴 공포’의 던전 제 4구역을 클리어했습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를 클리어했습니다.

우릴 괴롭혔던 최종 보스를 잡고 난 이후의 메시지는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카야! 카야!!”

“언니!”

특별하다 해도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겠지만.

라엘라의 화신이라는 특징에 물음표로 처리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거룩한 희생이라니….’

공포놈의 시체가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던전에 한줄기 빛이 들어왔는데, 마침 그게 굳어있던 카야를 비추었다.

그 때문인지 신성하고 거룩해 보이긴 했지만… 왜 ‘희생’ 앞에 그런 단어가 붙어야 하는가. 거룩하지 않아도 되는데, 신성하지 않아도 되는데.

셰이가 되살아난 건 좋은데.

공포새끼의 최후의 추한 발악을 저지한 것도 좋은데.

네가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카야.

“제발… 제발… 제발…!”

카야의 체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절대 자연적인 증상이 아니었다. 이게 그녀가 말했던 ‘신의 힘을 필멸자가 사용한 대가’인 건가?

‘차라리 내가, 내가 짊어질 테니까… 라엘라님… 유스티티아님…!’

이건 아니었다. 이걸 바란 게 아니었다. 이걸 위해 여기까지 개고생하며 온 게 아니었단 말이다.

셰이가 쓰러져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마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

그걸 또 겪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가장 기나긴 공포가 쓰러졌습니다.]

[보상 : 1000금화, 공포를 몰아낸 자]

두 줄의 메시지는 익숙하면서도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지금껏 봐오던 거니 익숙하면서도, 엔딩 영상 및 크레딧 따위는 없는 지극히 기계적인 현실의 온도가 너무나 차디찼다.

‘지금 놀려? 1000금화? 장난해? 이딴 게 뭐가 중요한데. 뭐야. 은퇴 자금이라도 하라 이거냐?’

카야를 비추던 한 줄기 빛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두 번째 빛은 셰이를 비추고 있었다.

[4구역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1200금화, 위대한 개척자]

보상 메시지는 이어졌고 던전은 밝아졌다. 그간 어둠이 공간을 잠식했던 것과는 반대로, 빛이 던전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 때문에 던전이 구석부터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카야를 붙잡고 울고 있던 셰이는 자기에게 비치는 빛을 확인하고 눈을 깜빡거리더니 카야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전원 귀환 보상이 추가로 주어집니다.]

[보상 : 1500금화, 정체불명의 도구]

세 번째 빛은 일루미나를 포착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였다. 이쯤 되면 절대 우연의 산물이라 할 수 없었다.

쓰러질 때까지도 계속 놓지 않았던 망가져버린 베이파를 내팽개치고 카야에게 달라붙어 있던 일루미나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곧 그녀의 신형도 빛에 가려졌다.

‘뭐야…?’

이제 던전은 어둡다고 말할 수준을 넘어섰다. 동료들을 비추던 세 갈래의 빛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더니 이윽고 하나로 합쳐졌다.

하나로 합쳐진 빛줄기는 곧, 나를 포함한 전체를 감쌌다.

[Heroes Against Terror의 대장 한유진이 최종목표,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를 클리어’를 달성했습니다.]

[최종목표 달성 보상이 제시됩니다.]

[한유진은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 최종목표 달성 보상?’

그런 게 있었나?

실패 시 사망이라는 거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

내심 동반 귀환이라든지 하는 건 전부 내 욕심이 담긴 망상에 불과했다. 그동안 전원이 살아남는 것 자체만으로 항상 감사했었다.

[1. 한유진의 귀환 및 업적에 따른 보상(지구) –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 첫 번째 트라이 클리어 및 동료 사망 횟수 3회 미만 클리어]

[2. 동료와 동반 귀환 – 추가 보상 없음]

[3. 세일럼으로 귀환 – 사망한 동료 소생 가능]

[4. 초기화 – 초기화 보너스 제공]

빛줄기 하나당 하나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내심 망상으로만 여겼던 게 정말로 2번 선택지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걸 고르면 카야는 함께할 수 없었다.

‘나 혼자 돌아가서 뭐하려고?’

1번도, 2번도 제외였다.

‘이 미친 짓거리를 또 해야 한다고? 그게 싫어서 무리해서라도 강행했던 건데? 초기화 보너스? 좆까.’

4번도 제외였다.

내 시선은 줄곧 3번에 머물러 있었다.

사망한 동료 소생 가능.

이 메시지를 보내는 놈의 정체는 궁금하지 않았다. 정말로 메시지에 적혀있는 걸 실현해줄 수만 있다면 악마라도 상관없었다.

[3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

내심 내가 3번을 고를 줄 알고 그쪽도 3번 선택지를 카야 위에 둥둥 띄워놓은 거 아니었어?

[3. 세일럼으로 귀환을 선택하셨습니다.]

[신력 과부하 및 정신 붕괴로 인해 사망한 카야 에펜젤이 소생됩니다.]

[어떠한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선택하고 난 직후, 하나된 빛은 곧 카야에게 집적됐다. 마치 이걸 위해서였다는 듯, 빛은 카야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켰다.

아니, 정말로 되살렸다.

“아………!”

“언니……?”

“세상에…!”

그동안 많이 도와주신 라엘라님이나 유스티티아님께는 정말 죄송한 생각이었지만… 이건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나서 겪은 가장 기적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두 분이 직접 강림하셨을 때보다도 더.

“………유진?”

“신이시여.”

라엘라님도, 유스티티아님의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은 게 그 방증이었다.

“저, 제가, 어떻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네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고 네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고,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되살아난 카야는 갑옷을 빼면 멀쩡했다. 애초에 그녀가 희생할 때 동료들의 심신의 부상들을 모조리 끌어안고 치유해주었기 때문에 셰이와 일루미나 또한 상당히 멀쩡해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카야의 거룩한 희생, 그리고 그간의 노력과 의지가 결실을 맺은 기적.

이 두 가지가 만나 결국 메시지가 정한 최종목표가 아닌 내가 정한 최종목표인 ‘던전 박살내고 전원 무사귀환’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맥락을 보니 지구행은 영영 포기하는 거겠지만,  상관없어.’

정말로.

[잠시 뒤, 세일럼으로 귀환합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여기 있었으니까.

다.

**

“어때? 잘 되고 있어?”

“아으, 그게 마지막에서 막히고 있어.”

“마지막? 왜?”

“처음 이러는 건 아닌데, 곡 쓸 때나 이야기 지을 때나 항상 마지막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너무 어렵더라구.”

“한 번 봐도 돼?”

“아니! 그건 안 돼!”

다가닥- 다가닥-

날씨 좋고, 경치 좋고. 말발굽 다가닥거리는 소리도 좋고. 그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사람이 제일 좋고. 여행가는데 아주 최적의 조건들만 뭉쳐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베이파의 현을 뜯으며 머리를 쥐어뜯는 일루미나를 피식 웃으며 보다가, 그녀가 잠시 집중한 사이에 옆에 놓여있던 종이를 슬쩍했다.

이야기였다.

「처절한 사투의 연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네 용사들 및 두 동료의 위대하고 숭고한 업적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문장은 미완성이었다. 그녀 말대로 끝맺는데 고민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장난기가 들어 펜까지 슬쩍했다. 나도 저 이야기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으니 이 정도 장난은 용인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공포에 맞서는 용사들은 더 이상 공포에 맞설 일 없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영원히.」

“음. 역시 엔딩은 해피 엔딩이지.”

“어? 야! 헨드릭!”

진부하지만, 그만큼 익숙하고 환영받는다는 뜻 아니겠는가.

“맞잖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일루미나가 찡그렸다.

“너 글씨 엄청 못 쓰잖아! 이게 뭐야!”

“알아는 봤잖아?”

“아 진짜….”

“푸흐흐.”

“무슨 일 있어요?”

“아 언니! 헨드릭이 초고를 망쳐놨어! 그것도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을!”

“음? 유진. 그러면 안 되죠.”

“어? 아악! 항복! 항복! 잘못했어!”

뭐, 그 대가로 카야에게 헤드락과 꿀밤 콤보를 맞고 머리가 터질뻔하기도 했지만….

“하하!”

“언니, 머릴 너무 세게 쥐어박은 거 아냐? 미친 거 같은데?”

“그, 그럴 리가. 라엘라시여, 어리석은 딸에게 힘을….”

그녀가, 동료들이 살아있기에, 그리고 내가 살아있기에.

이렇게 웃을 수 있었다.

처절했고 또 처절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보란 듯이 행복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질 것이다.

앞으로 계속.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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