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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화 〉가장 기나긴 공포(3) (189/218)



〈 189화 〉가장 기나긴 공포(3)

‘아… 씨발…… 이번엔 또 뭔데…?’

의식은 금방 회복했다. 우주에 깔려 죽는다는 엔딩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아무것도 없는깜깜한 곳에 홀로 있다 보니 금세 막막해졌다.

“카야!”
“셰이!”
“일루미나!”

혹시나 하고 동료들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동료들이 어둠 속에 삼켜진 건 결코 잘못 본 게 아니었나보다.

‘이번에도 환영 종류 스킬인가?’

상황이야 어찌 됐든 일단 신체와 정신 양쪽 모두 무사했다. 그러자 조금은 안심했다. 동료들도 무사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불안한데.’

1-3에서 공포무새에게 처음으로 멘탈리티 공격을 당하고 난 이후 그동안 잠식도 당해보고 사경도   헤매다 보니, 이런 종류의 공격엔 나름 이골이 나 있었다. 게다가 3구역 때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공포새끼를 지금은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공격까지 하지 않았나.

메시지에 나타나는 수치와는 별개로 우리의 멘탈리티는 처음과 비교하면 굉장히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하냐고.’

또 하나의 지식이 늘었다.

공포 이 새끼 뜸 들이는 거 존나 좋아한다는 거.

 정말 도움 되는 지식이었어!

“…씨발.”

그러다 문득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사실 자체에 욕이 나왔다. 아무리 내가 이곳에 떨어진 이후 진짜로 살아간다는 것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는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좆같은 경험을 많이 했다 싶었다.

‘대체 뭐냐고. 괴롭힐 거면 빨리 괴롭히라고.’

물론 익숙해졌다고 해서 고통이 적응됐냐, 그건 또 별개의 문제였지만….

던전은 언제나 그렇듯, 적응했다 싶으면 이상을 보여주었다.

「네놈들은 결코 공포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서만큼은… 더는 공포를 찾을 수 없겠군.」

[용사대의 의지는 가장 기나긴 공포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용사대가 전멸했습니다.]

“아 씨-발 똥겜 쓰레기겜 운빨좆망겜!”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안 해 씨발!”

뭐지?
뭔데이거?



“…아, 시간 좀 애매한데 판만 더 하고 잘까.”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쓰읍, 솔직히 이번조합으로 3구역을 노데스로 깬 게 실력이긴 했지. 그래. 일단 한 판만  해보자. 첫트클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깨긴 깨야하니까….”

[난이도를 선택해주십시오.]

“당연히.”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생략하시겠습니까?]
[튜토리얼 생략을 선택하셨습니다.]
[세일럼으로 귀환후 용사훈련소로 이동합니다.]

“이번엔 바헌 말고 늑인이나 강화인간 괜찮은 거 뜨면 한 번 써볼까.”


내가 있었다.

익숙하던 5.5평짜리 원룸, 한쪽 구석의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높은 확률로 게임을 씹어대지만  높은 확률로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떡진 머리, 제대로 안 떨어진 눈곱, 하도 같은 걸 오래 입어서 한쪽으로 늘어진 티셔츠와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츄리닝 바지. 거기에 피곤에 찌든 얼굴과 살짝 굽은 어깨와 왜소한 체격, 숨길 수 없는 찌질한 분위기까지.

지금으로선 저런 모습을 재현하라고 해도 못할, 불과 몇 달 전의 내가 있었다.

 달 전의 나, 한유진은 더 롱 테러의 엔딩 화면을 보며 마우스와 스페이스 바를 연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스킵하기 위함이었다.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어느 부분에서 어떤 템포로 클릭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숙달된 폐인의 모습이었다.

‘뭐지? 어디내놔도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을 비춰줘서 수치를 주려는 건가?’

인터넷 상에서 흔히 돌아다니곤 하는 수치사라는 단어가 있었다. 확실히 부끄럽고 한심하고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게 다였다. 과거는 암울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불법을 저지른 적도 없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설마… 이게 끝?’

내가 내 모습을 바라보는 건 사진을 보는 것 이상으로 껄끄러운 일이었지만, 못할 짓은 아니었다. 흡사 우주가 무너져내리는 이펙트 때문에 대체 어떤 고통이  괴롭힐까 굉장히 쫄리고 있었는데….




「네놈들은 결코 공포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서만큼은… 더는 공포를 찾을  없겠군.」

[용사대의 의지는 가장 기나긴 공포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용사대가 전멸했습니다.]

“아 씨-발 똥겜 쓰레기겜 운빨좆망겜!”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안 해 씨발!”

…어?




“…아, 시간  애매한데 한 판만  하고 잘까.”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쓰읍, 솔직히 이번 조합으로 3구역을 노데스로 깬 게 실력이긴 했지. 그래. 일단 한 판만 더 해보자. 첫트클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깨긴 깨야하니까….”

[난이도를 선택해주십시오.]

“당연히.”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생략하시겠습니까?]
[튜토리얼 생략을 선택하셨습니다.]
[세일럼으로 귀환 후 용사훈련소로 이동합니다.]

“이번엔 바헌 말고 늑인이나 강화인간 괜찮은  뜨면 한 번 써볼까.”



……어? 뭐지?

내가 단기성 치매에 걸린게 아니라면, 이건 분명 조금 전에 봤던 모습인데?

‘내 기억이 리셋이라도 되는 거야?’

뒷목부터 등줄기를 통해 꼬리뼈까지 온몸에 소름이 쫙 퍼졌다.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은 느슨해졌던 정신이 바짝 조여졌다.

내 기억이 나도 모르는 새 리셋이 되는 건지, 아니면 내 모습이 반복되서 나오는 건지.

인던 ‘이단과 금단 사이’에서 맞이했던 루프 공간이 떠올랐다. 세스티아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환장했던 공간. 그때 사건이 공포새끼가 베스티아의 몸에 강림하려는 것 때문에 벌어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때랑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진짜는 아니겠지만 여긴 5.5평 원룸이었다. 돌아다니면서 루프의 흔적을 발견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혹시나 이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가 싶어서 문으로 가봤지만, 문 모양만 구현되어있었고 열리진 않았다. 그냥 막연한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았던 원룸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이러니까 갇혀 있다는 느낌이  배는 뛰었다.

‘결국, 과거의 내가 유일한 변수라는 건데.’

물리적인 탈출 방법을 포기하고 과거의 나를 다시 바라본 순간.



「네놈들은 결코 공포를 없앨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서만큼은… 더는 공포를 찾을 수 없겠군.」

[용사대의 의지는 가장 기나긴 공포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용사대가 전멸했습니다.]

“아 씨-발 똥겜 쓰레기겜 운빨좆망겜!”



‘아.’

어느 새 내 몸은 원위치로, 과거의 나는 똑같은 욕을 내뱉고 있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손발이 떨렸다. 당장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예상됐다.

알아내지 못하면, 이곳에 갇힌다.

영원히.

한심한 과거의 내가 욕지거리를 하는 장면만 무한으로 반복하는 걸 바라보면서, 공포놈에 대한 적의감은 점차 풍화되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강박증과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노파심에 매몰될 것이다. 강박증과 노파심은 공포로, 더해진 공포는 좌절과 절망으로, 좌절과 절망은 공포새끼에 대한 반항의 포기로 이어질 것이고.

그놈 말마따나 우린 영원을 살아가지 못하는 필멸자이기에, 설령 이곳에서 진짜 시간이 흐르진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의 힘이라는건 파괴적이었다.


「네놈들은 결코 공포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서만큼은… 더는 공포를 찾을 수 없겠군.」

[용사대의 의지는 가장 기나긴 공포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용사대가 전멸했습니다.]

그 사이  번 더 돌아 전멸을 맞이한 용사대에게 내뱉은 공포 새끼의 대사가 또 출력됐다. 놈의 대사에서, 공포를 모르는 건 죽은자들 뿐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 시간 좀 애매한데 한 판만 더 하고 잘까.”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전멸한 용사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데다가 여러 글자들도 떠 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제서야 공포 새끼 앞에 처참한 자세로 죽어있는 용사들의 시체가 보였다.



“쓰읍, 솔직히 이번 조합으로 3구역을 노데스로 깬 실력이긴 했지. 그래.일단 한 판만  해보자. 첫트클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깨긴 깨야하니까….”

[난이도를 선택해주십시오.]


내가 내 모습을 보는 게 껄끄러워서 미처 못 알아챘지만, 모니터를 보는 내 모습은 상당히 분해보였다. 단순히 막보에서 전멸해가지고 빡쳐서 그런 게 주요 이유겠지만, 그 외에도 뭔가 다른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나니까 알  있었다.

안타까움, 내지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있다는 것을.

“당연히.”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생략하시겠습니까?]
[튜토리얼 생략을 선택하셨습니다.]
[세일럼으로 귀환 후 용사훈련소로 이동합니다.]

“이번엔 바헌 말고 늑인이나 강화인간 괜찮은 거 뜨면 한 번 써볼까.”


과거의 나를 주목하자, 과거의 내가 했던 말도 다르게 들렸다.

‘이번엔 바헌 말고? 이번 조합으로 3구역을 노데스로  게 실력? 첫트클은 실패했지만…?’

이미 전멸하고 난 후 과거의 내가 습관적 좌클릭과 스페이스 바를 연타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면이 흐려지며 엔딩과 새로운 프롤로그로 전환되어  자세히  수 없었다.

‘…에이. 설마.’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말도 안 되고,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 이성과 감정 양쪽 모두가 극렬한 거부감을 일으켜서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하지만 뭐든지 싹 트기 시작하는  어려웠다.  번 싹튼 생각은 뇌속에 뿌리를 뻗어내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에이. 말도 안 돼. 어. 말도 안 되지. 개수작이지. 이새끼가 어떤 새낀데. 아니, 이새끼가 아무리 그래도 저기 뭐냐, 그런 존재라 해도 가능할 리가 없…지….’

애써 지우려 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 말도  되는 가정에 스스로 괴로워하던 그때.

「네놈들은 결코 공포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서만큼은… 더는 공포를 찾을 수 없겠군.」

[용사대의 의지는 가장 기나긴 공포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용사대가 전멸했습니다.]

“아 씨-발 똥겜 쓰레기겜 운빨좆망겜!”

[새로운 용사대를 창설하시겠습니까?]

“안 해 씨발!”



뭐지?
뭔데 이거?


‘이번에도 환영 종류 스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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