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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화 〉가장 기나긴 공포(2) (188/218)



〈 188화 〉가장 기나긴 공포(2)

[가장 기나긴 공포가 속도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행동을 시작합니다.]

[공포의 시간]
[매 열두 턴이 지날 때마다 모든 용사들이 공포에 빠집니다.]
[저항에 성공할 경우, 턴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저항에 실패할 경우, 상태이상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용사는 매  멘탈리티가 5 감소합니다.]


“뭐, 이딴.”


보스방에 들어오고 나서 내가 겨우 내뱉은 첫마디였다. 공포새끼와 이 공간에 압도됐던 것도 잊고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폭거였다.

위압도 아니고, 굴림도 아니고 속도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선턴을 잡는다?

거기에 저 말도 안 되는 스킬은 또 뭐란 말인가.

[시간은 무한하지만 필멸자들은 유한하고 풍화된다. 그렇기에 공포는 다시 무한히 순환하고 퍼져나간다.]

공포 새끼가 뭐라 지껄였다. 저놈의 모습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저놈의 말도 들리긴 들렸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씨발 애초에 좆도 관심도 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스킬이 가져다올 파급력이었다.

[속도 체크]
셰이 : 5
카야 : 5
유진 : 7
일루미나 : 5
가장 기나긴 공포 : -

[가장 기나긴 공포가 속도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턴이 앞서게 됩니다.]
[그 다음 유진의 턴이 앞섭니다.]

“씨발?”

[가장 기나긴 공포]
체력 : 300/300
공격력 : 19~28
방어력 : 20
속도 : -

심지어  무조건적 선턴은 처음 한 번에 한한 게 아니었다. 다급히 놈의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속도가 아예 표시되지도 않았다. 속도를 무시하고 그냥 첫 번째 턴을 잡는단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300체력에 20방어?’

이 우주 같은 공간처럼 까마득했다. 너무 정신 나간 수치에 정신 나간 기믹이라 오히려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맨 처음 1-1에서 일반 괴물놈의 스펙 보고도 깜짝 놀랐었지. 새삼스러운 일이야.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입맛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정신을차렸다는 게 불행  다행이었다. 언제까지고 저 우주적 존재감에 쭈구리처럼 있을  없었다.

‘우선 만화경으로 일루미나의 속도를 1 증가.’

[‘만화경’이 일루미나의 속도를 1 올려줍니다.]
[만화경은 이번 전투가끝날 때까지 추가로 발동할  없습니다.]
[만화경의 효과는 전투가 지속될 때까지 유지됩니다.]
[일루미나의 속도 : 6]

카야와 셰이와 속도가 같아진 일루미나의 속도를 만화경으로 1 높여주었고, 그 이후 언제나처럼 괴물의 몸통에 낙인을 박아넣었다.

낙인만큼은 1-1의 졸개나 공포새끼나 평등하게 박혔다.

[수배범 발견]
[유진이 가장 기나긴 공포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99/300]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유진 멘탈리티 –5]
[공포의 시간 1/12]


[공포 그 자체인 나에게 낙인이라.]

“일루미나. 두 번째 현을.”

“으응…!”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게, 봄바람처럼 싱그럽게.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활기차게, 소중한 아이처럼사랑스럽게.

나는 공포새끼의 말을 무시하고 일루미나에게 지시했다. 레벨이 낮은 탓인지 제대로 숨도 못 쉴 정도로 억눌려있던 일루미나는 선율을 연주할 때만큼은 다행히 평상시 실력을 뽐내주었다.


[활력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3]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턴당 체력 회복 +3]
[모든 용사 공격 적중 시 멘탈리티 회복 +3]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턴당 체력 회복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일루미나 멘탈리티 –5]
[공포의 시간 2/12]


속도와 치명타율을올려주는 습격의 선율은 굉장히 뛰어난 버프였지만 속도가 무의미해진 지금은 효과가 반토막이었다. 때문에공포의 시간 기믹과 카야와 셰이의 후유증을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는 활력의 선율을 선택했다.

‘습격의 선율 업그레이드 비용이 아까워지네 씨발….’

[셰이와 카야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 5
카야 : 4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셰이가 굴림을 이겼다. 그녀가 한층  날카로워진 클레이모어를 치켜들어 공포새끼에게 겨누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왕에 맞서는 용사, 골리앗에 항거하는 다윗처럼 보였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2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74/300]
[가장 기나긴 공포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깊은 후유증으로 인해 셰이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37/41]
[셰이 멘탈리티 –5]
[활력의 선율의 효과로셰이의 체력이 4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41/41]
[활력의 선율의 효과로 셰이의 멘탈리티가 3 회복됩니다.]

[공포의 시간 3/12]

“오…!”

셰이는 이곳에 오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른 용사였다. 가장 기나긴 공포의 존재감이 막대한 건 사실이었으나, 그녀 또한 여신이 직접 강림했던 성전사요 힘을 내려받은 용사였다.


셰이의 검은.

불훼불손할  같았던 공포새끼의 몸에 제대로 흠집을 냈다.


치명타가 안 터졌는데도 꽤 높은 딜이 들어간데다가, 활력의 선율이 생각 이상으로 효율이 좋았으니 나도 모르게 ‘뭐지? 할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빛과 정의를 부르짖던 자의 힘이라. 재미있군.]

공포 새끼가 뭐라 지껄였다. 어쩐지 놈의 모습이 더 명확하게 보이고, 놈의 말이 더 상세하게 들렸다. 요컨대 전보다 놈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진 것 같았다.

‘체력을 깎을수록 저놈의 격이 낮아진다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출발이었다.

“카야.”

“예.대장.”


이곳에 들어온 직후부터 쭉 공포새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카야가 철퇴를 치켜들었다. 3구역 보스놈에게 현신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상 라엘라님의 직접적인 도움을받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라엘라님의 일부는 그녀 안에 잠들어 계셨다.

카야의 철퇴에선 염통놈을 상대했던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밝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철퇴의 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덤덤했지만, 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넌 데리고 간다.

이런 눈빛이었다.

‘그런 각오가 필요한 전투이긴 해… 나도 그러고 있고.’

혹여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승리를 장담할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야도고개를 끄덕이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철퇴를 따라 빛의 궤적이 이어지는  꼭 혜성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작지만 환하게 빛나는 연녹색 혜성은 거대하고 혼탁한 우주를 가로질러 그 중심에 도달했고….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특징 ‘새로운 신념’이 발동되어 가장 기나긴 공포의 방어력을 6 무시합니다.]
[위대한 일격!]

[카야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6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08/300]
[특징 ‘탈력감’으로 인해 카야의 체력이 2, 멘탈리티가 5 하락합니다.]
[카야 멘탈리티 –5]
[활력의 선율의 효과로 카야의 체력이 4 회복됩니다.]
[활력의 선율의 효과로카야의 멘탈리티가 3 회복됩니다.]

[공포의 시간 4/12]


연녹색 혜성이, 우주의 중심을 꿰뚫었다.


“그렇지!!!”
“언니!”
“카야 언니!”

물론 연녹색 빛은 혼탁한 어둠에 금세 매몰되었지만, 우린 분명 짧은 시간이나마 공포새끼의 공간에 균열이 것을 목격했다.


[….]

꿀꺽-


우리의 환호는 공포새끼의 침묵속에 스러졌다. 뭐라고 지껄일 줄 알았던 놈은 다시 제 턴이 되었는데도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치 4구역의 아무것도 없었던 통로를 걸었던 때처럼, 괜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문제는, 그때는 쉐도우복싱에 가까운 불안감이었다면 지금은 바로 눈앞에 실체가 있는 지극히 가능성 높은 불안감이라는 것.

나는 수천 시간을 태운 플레이어와 던전에서 사경을 헤맨 용사로서의 감으로  불안감의 원인을 찝어냈다.

‘씨발 설마 2페이즈? 벌써?’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내 앞에 오롯이  최초의 필멸자들답군. 하지만 거기까지다.]

침묵이 깨지고  후, 놈의 모습은 조금더 선명해졌지만 우리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뭐라고 해야 하나….

‘뭔가 전체적으로 좁아진 거 같은데?’

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놈들은 날 막지 못하리라.]

[공포의 갑주]
[가장 기나긴 공포가 기운을 응축했습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는 한 턴에 최대 50의 데미지까지만 받습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를 공격한 용사는 최대 체력의 10%만큼 데미지를 받습니다. 치명타를 적중시킨 용사는 50%만큼 더 받습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를 공격하지 않는 용사도 최대 체력의 5%만큼 데미지를 받습니다.]

[공포의 시간 5/12]
[모든 용사 멘탈리티 –5]

공포새끼는 데미지 제한에 최대체력 퍼뎀 반사라는 자가방어버프를 걸었다.

“뭐야?”

하지만  턴은 오지 않았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뭐 씨발?”

저런 좆같은 버프를 걸고도 재행동을 가져간다고?

[공포에 짓눌려라.]

내가 아까 느꼈던 공간 전체가 좁아졌다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공포 압제]

메시지엔 고작 네 글자짜리 스킬 이름만 덩그러니 떴지만….

“라엘라시여…!”
“유스티티아님! 저희에게 힘을…!”
“헤, 헨드릭!!”

하늘이 무너진다, 아니 이 경우에는 우주가 무너진다고 해야 하나.

상하좌우 사방팔방 공간이 무너져내리고 있는데… 이럴 땐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다들 모여!”


씨발,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시간도 없고 정보도 없고….

모르면, 존나 아프겠지만 맞아야겠지.


그리고 버텨내야지.


“버텨!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

혼탁하고 불길한 어둠 그 자체가, 공포의 매개체가 되어 우릴 포위하다가 마침내 우리의 무기 끝에 닿은 그 순간.

[가장 기나긴 공포가 용사들의 육체와 정신을 억압합니다.]


‘카야… 셰이… 일루미나…!’

내 의식은 메시지 한 줄과 결사항전을 각오한 동료들이 허무하게 어둠 속에 집어삼켜지는 걸 목격한 후, 순식간에 흐려졌다.

털썩-



[버티지 못하는 것은 당연, 설령 버텨도 멀쩡하진 못할 터.]
[그 의지로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

[거짓된 자들의 신자]
[그리고 666번의 승리자와 6003번의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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