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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화 〉가장 기나긴 공포(1) (187/218)



〈 187화 〉가장 기나긴 공포(1)

[기다리고 있었다. 발버둥치는 필멸자들이여.]

경고 메시지를 흘려넘기고 던전 입구에 몸을 던지자마자 공포새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666번의 승리자와 6003번의 패배자여.]

놈은 시작부터 단 한마디로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재능을 선보였고, 이어진 말은 더 가관이었다.

마치 ‘네 승률을 보아하니 좆밥새끼로구나.’라고 비웃는  같았다.

기분 탓이라고?

분명 앞보다 뒤에, 6003번의 패배자에 강세가 들어간 것 같았다.

분명 운이 좋아서, 발버둥쳐서 여기까지 왔지만 여기까지라고 씨부리는 것이리라.

“씨발새끼가….”

메시지의 경고가 틀린 건 아니었다.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단지 마주치기 전에 기선제압이든 환영인사든 한 모양이었다.

짧은 암전이 걷히고 동료들의모습이 다시 보였다. 동료들도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다. 나처럼 띠꺼운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역시 지금 무리해서라도 오길 잘한 거 같아요.”

“어?”

“후일을 도모했으면 저 썩을놈을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과정을 거칠 걸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요. 언제 잡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건 너무 싫네요.”

“역시 저 공포라는 존재는강대하긴 하나 위대하진 않습니다. 저 존재가 여신님과 동격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니…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정말 용사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답네. 음습하고 음험하고 소름 끼치고….”

[마지막 휴식처에 입장했습니다.]
[마지막 휴식처에서는 체력과 멘탈리티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휴식처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0분입니다.]

휴식처라고 말하기 민망한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이곳의 기능은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멘탈리티가 깎이지 않는다 정도였다. 제한 시간이 30분인 건, 정말로 ‘마지막’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30분이라는 자비를 베풀어준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휴식처가 4구역의 기운을 온전히 못 막는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 없었다. 준비는 충분하다 못해 과잉 수준이었고, 오히려 공포놈에대한 잡생각이 늘거나 던전에 들어오면서 다졌던 결의만 식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자비가 아니라 오히려 심리전의 포석처럼 보였다.

‘그만한 힘과 격을 갖췄으면서 하는 짓은 참.’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들도 이곳에서 쉴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만약 3구역 끝나고 곧바로 이곳에왔다면 이거라도 어디냐며 감지덕지 했겠지만….

‘아니지. 만약 유스티티아님과 셰이가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면,  모르지.’

우린 쿨하게 휴식처를 가로질렀다. 도중에 나는 휴식처 중앙에 침을 뱉었다. 공포새끼는 언제나 우릴 관음증변태처럼 지켜보고 있을 테니, 지금도 우릴 보고 있을 놈을 향한 시위였다.

네놈을 조지러 가는 덴 이딴 휴식처 따윈 필요하지 않다고.

‘되도 않는 자비를 베푸려는 의도였으면 휴식처를 아예 제대로 해놓든가. 변태새끼, 쫌팽이같은 새끼.’

동료들과 공포새끼를 씹으며 휴식처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올곧은 길이 나왔다. 너무 자로  듯이 올곧아서, 분위기와 장소만 아니었다면 마치 레드 카펫이라도 깔려있어야  것 같았다.

‘레드 카펫은 무슨.’

우스운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디 한  당당히 걸어오라는  같은데, 그 공포 새끼가 이런 곳에 함정 하나 설치하지않았을까?

“대형 유지하자.”

“네, 대장님.”

내 왼쪽에서 걷던 셰이가맨 앞으로 나서고 오른쪽에서 걷던 카야가 그 뒤를 따랐다. 내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카야의 오른쪽에서 걷던 일루미나가 내 뒤를 따랐다. 아주 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진짜 함정이 없다고?’

선두에 선 셰이부터 최후미의 일루미나까지, 감각을 곤두세우면서 전진했다. 하지만 완전히 어두컴컴하지만은 않은 이 올곧은 길은 수십 분을 나아가도 함정은커녕 어떠한 장애물이나 괴물의 습격 같은 것도 없었다.

“뭐지?”

무심코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휴식처를 빠져나온 이후줄곧 유지됐던 침묵이 깨졌다. 잔뜩 굳어있던 동료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정말 이상하긴 하네요.”

“단지 어둡기만 한 이 통로에 무슨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

“꿍꿍이가 없을 리가 없는데.”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일정 구간마다, 차라리 모든 구간에 함정이 가득한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지경이었다. 함정이 언제 나올까, 어떤 간악한 함정이 나올까, 내가 아는 던전이 이럴 리가 없는데… 동료들이 말하는 걸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멘탈리티]
셰이 : -19
카야 : -28
유진 : -50
일루미나 : -38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게 함정이 아닐까 싶어서 멘탈리티를 확인했으나 딱히 변한 게 없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상상했던 4구역은 이렇지 않았다. dlc 정보에서 설명했던 4구역도 이러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4구역에 대한 설명, 그 첫 번째 문장이 아마 이거였을 것이다.

「용사들이 겪었던 지금까지의 공포는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문장 뒤로도 4구역의 어려움에 대해서 DLC를 기다렸던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상상만 해도 토가 쏠리고 치가 떨리게 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장님.”

“어.”

“문이에요.”

“….”

뒤늦게라도 함정을 비롯한 부정적 이벤트가 뜬다는 반전은 없었다. 아니, 한 시간 넘게 진짜로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반전이었다.

꿀꺽-

저 문 안쪽에 지금껏 멀리서 우릴 쭉 지켜보며 열 받게 했던 공포새끼가 있다고 생각하니 열 받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긴장감이 몇 배로 뛰었다.


과연 우리는 공포새끼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성립이 되지 않는다면,우린 저놈을이기기는커녕 상대조차할 수 없을 것이다.


[유진]
레벨 : 9
최대체력 : 28
공격력(8) : 16~30
방어력(6) : 18
속도 : 7(6+1)
기사회생/각성 : 14%
정찰확률 : 45%
긍정적 특징 : *방랑자(속도+1)/의지가 강함(각성 확률 소폭 증가)/공포 학살자(이름에 '공포'가 들어간 괴물을 대상으로 데미지+10%)/도살자*(인간형 괴물에게 데미지+15%)/행운(굴림에서 이길 확률 증가)
부정적 특징: 극단적임(공격력의 밸런스가 낮아짐)/불안함(명중률 감소)

[카야Kaya]
종족/성별 : 하프엘프 여성
클래스 : 전투 수녀(Battle Vestal)
레벨 : 9
최대체력 : 34
공격력(8) : 21~28
방어력(6) : 19
속도 : 5(3+1+1)
기사회생/각성 : 16%
정찰확률 : 34%
긍정적 특징 : 기민한 몸놀림(속도+1)/공포를 극복한 자(모든 멘탈리티 하락속도 25% 감소)/새로운 신념*/라엘라의 화신*/초탈*(명중률 대폭 상승)
부정적 특징 : 일방통행*(유진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음)/탈력감(한 라운드당체력과 멘탈리티가 5% 하락)


[셰이Shae]
종족/성별 : 인간 여성
클래스 : 성전사(Crusader)
레벨 : 9
최대체력 : 41
공격력(7) : 18~29
방어력(7) : 27
속도 : 5(3+1+1)
기사회생/각성 : 20%
정찰확률 : 37%
긍정적 특징 : 천재(모든 수치+10%, 최소 1)/필사적임(확률적으로 사경 무시)/처단자(치명타 데미지 +10%)/유스티티아의 강림체*/트라우마를 극복함*(5이하의 멘탈리티 데미지 무시,  멘탈리티 하락속도 10% 감소)
부정적 특징 : 발작(낮은 확률로 멘탈리티 하락)/가학성애(낮은 확률로 통제를 벗어나 공격함)/깊은 후유증(한라운드당 체력이 10% 하락)

[일루미나Illumina]

종족/성별 : 수인 여성
클래스 : 음유시인(Bard)
레벨 : 8
최대체력 : 24
공격력(6) : 13~19
방어력(7) : 11
속도 : 5
기사회생/각성 : 14%
정찰확률 : 27%
긍정적 특징 : 타고난 가희(메인 버프 수치+1, 멘탈리티 회복+1), 조화로움(동료의 멘탈리티를 감소시키지 않음), 생존본능(체력이 50% 이하일 때 회피율 상승), 각오한 자*(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능력치를 1씩 얻음. 최대 3(속도 제외))
부정적 특징 : *발정(일정 주기마다 발정. 해소되지 않을 시 멘탈리티 감소)

‘레벨이야 돈으로 어떻게 할  있는 게 아니지만 장비랑 스킬 레벨은 최대한 끌어올렸는데. 이러고도 조건이 안 되면… 그건 방법이 없는 거지.’

마음에 걸리는 게 딱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일루미나의 레벨만 8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야와 셰이가 안고 있는 부정적 특징이었다. 탈력감과 깊은 후유증이라는, 대놓고 장기전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었다. 애초에 장기전을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특징을 보는  자체가 신경이 쓰였다. 그녀들이 망가진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 싸움이니까.

이 전투가 생애 마지막 시련과 고난이 될 수 있도록.

“문 너머라고 하기엔 저번같은 압박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 수준이 올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열게요.”

“그래.”

하얗게 변해버린 셰이의 머리를 바라보며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일루미나가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겉으로 담담한  하며 그녀의 어깨를 쥐어주었다.

드르르르르-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문이 육중한 진동음을 내며 스무스하게 안쪽으로 밀려났고….

“아.”

[기다렸다.]


문 안쪽엔.

[공포에 맞서는 용사들이여.]


우주가 있었다.


**


우주라는 건 딱히 허황된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이 광활하고 막막하고 내가 극히 하찮은 존재가 된  같은 공간을 우주라는 단어 말고 어떤 말로 설명할  있단 말인가.

공포새끼는 우주의 중심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의지, 훼손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군.]

“….”

내 추측이 정답이었는지, 3구역 때와는 달리 지금은 놈을 직시할 수는있었다. 보자마자 정신이 나갈 같은, 온몸이 쪼개지는 고통도 없었다.

하지만 불가해했다.

분명 놈의 보고있지만, 놈의 모습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저 검은색 구름처럼 보이다가, 다시 괴물처럼 보이고… 형태가 정해져있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내가 저놈의  모습을 특정할 수 없는 건지.

놈을 계속 보고 있으니 다른 의미에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감히 내게 맞서겠다 도전한 필멸자들아.]


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공포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살아있다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더욱 짙은 검은색이 번져나갔고.


[그 누구보다도 생존을 갈망하는 필멸자들이, 공포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독하게 위험하고 불길한 끈적한 피같은 암적색과 희망이란  모조리 불타고 재만 남은 것 같은 회색이 기존의 검은색 위에 더해졌고.

[내가 곧 공포요, 공포는 무한하고 무애할지니. 너희들은 날 막지 못하리라.]

불길한 색들은 마구 뒤섞이더니 혼탁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공포 앞에서 오롯이  있는 최초의 필멸자들이여.]


마구잡이로 뒤섞이던 소용돌이는 곧, 서서히 인간 비슷한 형상이 되었다. ‘그게’  같은 걸 앞으로 내밀며  같은  열었다.

[공포를 모르는 건, 죽은 자들 뿐이다.]

[4구역 보스 괴물, <가장 기나긴공포>가 등장했습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속도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행동을 시작합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포의 시간]

[매 열두 턴이 지날 때마다 모든 용사들이 공포에 빠집니다.]
[저항에 성공할 경우, 턴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저항에 실패할 경우, 상태이상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용사는 매 턴 멘탈리티가 5 감소합니다.]

우리는, 어느새 공포라는 이름의 우주 속에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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