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3구역(11)
“생각보다, 여신님의 힘을 사용한 여파가 크긴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철퇴를 드는 것조차 힘겹습니다.”
“카야….”
“대장이 쓰러진 걸 보고 이성을 잃었던 제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카야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에 대장은 유달리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당연히 느끼는 긴장감 때문인줄 알았습니다만, 휴식처에서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고 지금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대장은, 저 괴물을 명백히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
“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저희는 처음이지만, 대장에겐 처음이 아닐 테니까. 대장은 저희가 모르는 저괴물의 다른 모습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실제로 대면한 건 처음이니, 긴장감과 불안함에 괴리감이 더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상합니다.”
그 태도는, 지금 아니라 맨 처음에 보였어야 맞지 않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대장 당신은 공포를 맞서는 용사들이라는 용사대의 대장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장 당신은 수많은 공포숭배자들을 척살하고 그 삿된 의도를 분쇄한 영웅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장 당신은 두 여신님들께 인정받은 용사입니다.”
“잊지 마십시오.대장 당신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좌절하지 않고 끝내 일어서 수괴의 머리를 참한 역전의 전사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장 당신의 곁과 뒤엔 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필사의 의지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표를. 우리가 지금껏 거쳐온 길을.”
[일루미나가 턴을 넘깁니다(남은 턴 :2).]
왜 내 턴이 안 오나 싶었는데, 잠식 때문에 속도가 2 떨어져서 그런지 나보다도 일루미나의 턴이 먼저 왔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항상 선턴을 잡았던 내가 누군가의 행동을 먼저 본다는 것이 어색했다. 어색했는데… ‘대장 당신의 곁과 뒤엔 우리들이 있다는 것을.’이라는 카야의 말을 듣고 나니, 어색할 게 따로 있구나 싶었다.
“잊지 마십시오. 셰이가무얼 위해 대장의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려 했는지.”
“….”
[유진 멘탈리티 –5]
그러네.
이렇게 찐따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인던에서, 1구역에서, 2구역에서.
내가 어땠더라.
절대적으로 본다면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의 밀도까지 고려해본다면 매우 길고 험난하게 느껴졌던 시간들.
생각해보면 HAT 용사대의 대장이자 한 명의 용사로서의 헨드릭은 초짜였을 때부터 꽤나 용감했고, 과감했다. 아무리 상대가 이 세계에서 죽여도 무죄는커녕 도리어 업적으로 칭송받는 공포숭배자놈들이라 해도, 처음부터 인간들 대가리를 아무렇지 않게 깨버렸다.
나름 책임감도 있었고, 운도 좋은 편이었다. 클래스 특성상 선두에 서 있진 않았지만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다. 세속적 탐욕보다는 동료의 무사를 신경 썼다. 그리고 목표에 걸맞은 실력 좋고 정신력도 강한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중간에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좋은 동료들이었기에 해결도 금방 할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겠네.’
3구역 후반부부터 줄곧 느끼고 있던 괴리감과 불안감.
지금까지는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이 세계에 떨어졌으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결국 의식의 주인은 나라고. 한유진이라고.
근데 지구상 어느 작은 나라의 어느 작은 원룸에서 살던 한유진은 전혀 저런 인물이 아니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게 싫어서(무서워서) 밖을 안 나가는 은둔형 폐인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필요최소한도로,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일로 골라서 했다. 밥 먹는 것도 배달을 일부러 양 많은 걸로 시켜서 두고두고 먹는다든가, 라면이나 즉석밥을 잔뜩 쟁여놓고 그것만 먹기도 했다. 맛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었고 더 롱 테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초면인 사람들, 그것도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방에서 자고. 인간이지만 ‘괴물이니까’라며 도끼를 휘둘러 머리를 빠개고. 아무렇지도 않게 피랑 지방이랑 뇌수를 닦아내고. 시체를 봐도 안 좋은 기분이랑 찝찝한 기분만 들뿐, 토하지도 않고. 원래 나였다면 스킨십은커녕 얼굴을 보는 것조차 피했을 여자를, 가당찮게 여러 명과 관계를 맺고 있고.
내가 이름지었던 헨드릭이란 캐릭터의 육체만 덜렁 빼앗아간 게 아니었다.
내가 플레이하는 더 롱 테러였다면. 아니, 내가 이 육체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랜덤으로 생성된 전투수녀 카야처럼.
랜덤으로 생성된 성전사 셰이처럼.
랜덤으로 생성된 음유시인 일루미나처럼.
그 밖에 세스티아나 아르처럼.
이 모든 게 현상금 사냥꾼 헨드릭의 원래 모습이였을지도모르겠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난 용감하지도 않고, 비위가 좋지도 않고, 힘이 좋지도 않고, 리더십은커녕 사교성 따위도 전혀 없는 놈이었으니까.
‘…여자를 상대할 때는 거의 내 성격이었던 것 같지만.’
카야 말마따나 왜 처음도 아니고 3구역끝에 와서야 궁상을 떨고 있는 건지. 어쩌면 그동안 누적되어 있던 데미지가 이때 터진 것일지도 몰랐다. 뭐… 이제 와서 이래 봐야 내가 해야 하는 건 바뀌지 않았고,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도 바뀌지 않았다.
헨드릭이 나고, 내가 헨드릭이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나는 어느 새 도끼를 집어들고 있었다.
“바로 그겁니다, 대장. 지금은 그것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카야.”
“혹여나 실패하시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고, 셰이도 있습니다.”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전처럼 아예 안 보여서 놈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헷갈리진 않았다.
카야의 철퇴에서 발하는 빛이 등대처럼 내게 길을 알려주었다.
‘등대… 카야, 네가 예전에 내게서 보였다는 게, 이런 빛이었구나.’
저 작은 빛의 점유율을 따지자면 소숫점 밑으로 한없이 내려가야겠지만, 그 창백한 빛 하나 덕분에 나는 전의를 되찾을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이럴 순 없었겠지.’
그녀가 내 동료임에 감사하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빛은 점점 가까워졌고, 곧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빛이 다시 멀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네놈들에게는 끝없는 절망과 공포가 도래할 것이니….”
‘참나. 이 새끼는 아직도 지껄이고 있었네.’
자신 충만해졌을 염통놈이 말을 왜 안 하고 있나했더니 아니었다. 내가 저놈의 말을 못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 저딴 놈이 지껄이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었다. 잘 안 보이긴 하지만, 놈에게서 옅은 안광이 보였다. 좆같은 눈깔이었지만 유일한 쓸모가 있었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심장에게 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2/225]
“감히…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버러지 같은….”
“감히는 씨발.”
데미지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저놈의 방어력이 올라간 것도 있었고, 나도 민뎀이 뜬 것 같았다. 순간 땅을 파고들 정도로 죄책감이 마구 솟아났지만, 카야의 철퇴가 보였다. 죄책감과 함께 노파심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빛이 가까워졌다.
이번엔 카야가 내게 오고 있었다.
“돌아가면 예전에 대장이 몇 번 말씀하시곤 했던 ‘기가 막힌 안주’라는 걸 먹어보고 싶습니다.”
“…카야 너는 술 안 마시잖아.”
“가끔은, 그리고 당신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카야의 철퇴가 번쩍 위로 들렸다가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염통놈의 대가리를 향해 하강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는…!”
[카야가 공포의 심장에게 1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퍼어억-
[남은 체력 –3/255]
철퇴의 빛이 염통 놈의 얼굴에 닿기 직전, 놈이 무어라 지껄인 것 같았지만… 카야의 철퇴는 멈추지 않았다.
[공포의 심장이 죽었습니다.]
곧 아무 의미 없는 유언만 남기고 뒤져버린 염통놈의 죽음을 메시지가 확인시켜주었다. 해치웠나. 진짜로 해치운 건가. 그럼에도 믿기 힘든 메시지였고 그만큼 실감이 안 났지만….
[비정상적인 어둠이 물러갑니다.]
[밝기 : 24]
메시지대로 실제로 상당히 밝아지기도 했고.
[더 롱 테러 최고난도 ‘가장 기나긴 공포’의 던전 제 3구역을 클리어했습니다.]
[용사대 HAT는 원하는 경우, 3구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4구역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쐐기였다.
진짜다.
진짜라고.
다소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3구역까지 무사히 돌파했다고!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일루미나와카야에게 다가가서 껴안으려 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다고…?’
나는 그제서야 염통놈의 죽음을 확인했을 그녀들이 기뻐하기는커녕 어느 한 지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저건…?”
염통놈이 죽은 자리.
염통놈의 시체가 천천히 공중에 떠올랐다. 팔다리가 축 늘어진 자세가 아니라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였다.
분명 죽었는데.
메시지까지 확인사살시켜줬는데.
대체 뭐지? 뭐가 문제인 거지? 내가 모르는 기믹이 또 있었나? 예전에 인던에서처럼 죽고 부활해서 반사뎀 꽂고 그런 거야?
씨발 그럼 똥겜이지. 내가 지금 무슨 추태를 부렸는데, 뒤졌으면 얌전히 쳐뒤져있으라고.
나는 경계태세를 갖췄다. 멍하니 서 있던 카야와 일루미나도 자세를 낮추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셰이 앞에 나섰다. 공중에 떠오른 시체는 천천히, 하지만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이윽고 시체는 우리들이 고개를 한껏 치켜들 때가 되어서야 우뚝 멈추었다.
“씨발, 이게 대체 뭔 일이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보상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경고]
‘경고…?’
단 두 글자짜리 메시지가 주는 느낌이 평소와는 너무다 달랐다. 이질적이었다.
그래.
섬뜩했다.
마치 2-10에서 눈깔 새끼한테 당했던 정신 오염과 비슷한… 저 두 글자가, 두 글자가 아닌 그런 느낌.
“눈 감아!”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동료들도 나랑 비슷한 걸 느꼈는지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나긴 공포가 눈을 뜹니다.]
어느새 우린 고개를 강제로 쳐들고 있었다. 거부권은없었다. 공포의 눈이 시전했던 공포 새끼의 편린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도 어떻게든 직시하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못 버티고 정신이 붕괴할 뻔하지 않았나.
지금은 편린 따위가 아니었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용사대를 주시합니다.]
염통놈의 시체가 잿가루처럼 흩어지더니, 심장이 있던 곳에서 눈알 같이 생ㄱ###ㄱ#ㅔ# ###############################################################################
ㅈ ᅟᅥᆼ사ㅇ저ㄱ이ᅟᅵᆫ 생생각가그를할랄라랄수수수수수가가가 어ㅂㅅ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ㅇㅏㅈㅜㅈㅏㅁㄱㄱㅏㄴㅊㅕㄷㅏㅂㅘㅆㅇㅡㄹㅃㅜㄴㅇㅣㄴㄷㅔ
ㅇ ㅙ dho DHO 애ㅗ ㅐᅟᅮᆼ!#! !## #! !
[여기까지 용케 잘도 왔군.]
ㅅ ㅅᅟᅵᆸᅟᅡᆯ t o R l
[그 의지, 부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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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합 야해입진 에안 간시42 은역구4]
[.다니됩화기초 이전던 시 을않 지하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