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0화 〉3구역(9) (180/218)



〈 180화 〉3구역(9)

상태이상 2회 면역이라 낙인을 찍어봤자 그대로 씹힌다. 그래서 낙인을 찍는 건 턴을 내다버리는 짓이었다. 그리고 치명타도 1회 면역이라 끔살을 시킬 가능성은 제로였다.


[셰이가 사경에 빠졌습니다.]
[믿음의 베일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셰이의 현재 체력이 1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베일이 파괴됩니다.]

[믿음의 베일]
- 적용 대상 : 성전사, 전투 수녀, 치유 수녀
기적 확률 + 9
사경에 도달할 때, 체력을 1로 회복
-효과 발동시 파괴


안다.

공격할 때 라엘라의 현신이라는 보험이 있었다면, 수비할 땐 믿음의 베일이라는 보험이 있었으니까. 카야와 셰이에 한해 끔살은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아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저놈이 셰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변함 없었고, 셰이는 또 한 번 다른 형태의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카야가 내 상태를 보고 빡 돌았던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어차피 해야 할 행동이 딱 두 가지, 수배범 발견으로 낙인 찍기 아니면 대가리 분쇄로 공격하는 것뿐인데 수배범 발견이 제한된 이상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요컨대, 존나 정당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낙인이 지워졌으니 25% 증폭이 사라졌지만,  라운드  사경 디버프 33%가 있었으니… 치명타가 안 뜨는 것만 제외하면 데미지 기댓값은 이번 턴이 더 커.’

기왕이면 치명타가 떠서 치명타 면역을 지우길 바라며, 분노에 가득 찼으면서도 한줄기 이성을 유지했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심장에게 1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8/225]

“씨발…!”

20몇 퍼센트일  뜨던 치명타가 40퍼센트까지 끌어올린 지금은 뜨지 않았다. 절로 욕이 나왔다. 염통놈의 남은 체력을, 그리고 용사대의 컨디션을 보고 빠르게 머리가 식었다.

“하….”

내 다음은 일루미나의 턴이었고, 난 여기가 승부처임을 깨달았다.

‘셰이는 사경 때문에 속도 버프가 꺼졌고, 카야는 이번 라운드 행동 불능. 일루미나 다음에 바로  염통놈….’

만약 저새끼가 셰이를 공격한다면. 아니면 미쳤다고 4연속으로 날 공격한다면.

2차 사경, 또는 잠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따로 볼 것도 없었다. 파멸 엔딩각이었다.

“헨드릭….”

“….”

일루미나가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현에 가져다 댄 손가락들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뭘 해야 할지 직감한 것 같았다.



”일루미나.”

“으응.”

“현을 끊어.”

“…….”

기존의 습격의 선율 2중첩 유지? 아니면 활력의 선율이나 용기의 선율로 전환?


아니.

설령 여기서 저놈을 죽이지 못 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나나 셰이 둘  한 명이 공격당해 재차 사경에 빠지거나 잠식에 빠질지라도.

여기서 건곤일척을 날려야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2구역 최후의 문지기전에 이어 이번에도 절현을 명령받은 일루미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품속에 집어넣더니, 끝이 날카로운 피크를 꺼냈다. 그리고는 첫 번째 현에 잠시 가져다 대더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절현]
[음유시인이 절현을 각오합니다.]
[선율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직전 선율 : 습격의 선율]
[절현에 적중당한 괴물의 속도가 감소합니다.]


“질풍보다 빠르게.”


띵-


[재빠른 일격!]
[공포의 심장이 잠력 해방의 효과로 치명타를 상쇄합니다.(사라짐)]
[일루미나가 공포의 심장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8/225]
[절현-습격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공포의 심장의 속도가 2 감소합니다.]
[잠력 해제의 디버프 무효화 효과가 가로막습니다.(1회 남음)]

“삭풍보다 날카롭게.”


띠잉-


[날카로운 일격!]
[일루미나가 공포의 심장에게 1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7/225]
[절현-습격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공포의 심장의 속도가 2 감소합니다.]
[잠력 해제의 디버프 무효화 효과가 가로막습니다.(사라짐)]

“태풍처럼 거침없이.”

띠이잉-

[강력한 일격!]
[일루미나가 공포의 심장에게 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0/225]
[절현-습격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공포의 심장의 속도가 2 감소합니다.]
[현재 속도 3]

“마침내 미풍처럼 은밀하게.”

띠이이잉---!


[날카로운 일격!]
[일루미나가 공포의 심장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5/225]
[절현-습격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공포의 심장의 속도가 2 감소합니다.]
[현재 속도 1]
[음유시인의 각오가 담긴 최후의 선율에 용사들이 분연히 일어납니다.]
[셰이 멘탈리티 +12]
[카야 멘탈리티 +13]
[유진 멘탈리티 +12]
[일루미나 멘탈리티 +13]


베이파의 현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 염통놈의 몸을 난자했다. 비록 용기의 선율 절현이 아니라 엄청난 데미지를 주진 못했지만, 소득은 있었다.

체력을 상당히 깎은 것도 그랬고, 상태이상  디버프 2회를 지워버리고 염통놈의 속도를 4나 깎아먹은 것이 그러했다. 만약 디버프 면역이 없었다면 저놈의 속도를더 시궁창으로 처박아 속도 페널티까지 먹일 수 있었겠지만, 일단 저놈의 턴을 제일 뒤로 미뤘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셰이.”

“대장, 님….”

셰이의 모습은 정말 처참 그 자체였다. 갑옷은 뚫려있었고, 피가 안 묻은 곳이 없었다. 그녀가 사경을 겪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건만, 솔직히 어떻게 살아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 셰이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심지어 인던에서 처음 사경에 빠졌을 땐 기절해서 내게 업혀 나오던 셰이는 내가 그랬듯 위태롭긴 하지만 자력으로 일어서 있었다.

이미 우리도 던전안에서만큼은 괴물이나 다름없는지도 몰랐다.

“셰이.”

“네….”

냉정하게 따지자면 셰이가 여기서 저놈을 죽일 확률은 극히 낮았다. 사경 디버프가 걸려있는데다가 방금 일루미나가 절현을 쓰는 바람에 치명타율 버프까지 사라졌다. 그렇지만 사족을 붙일 필요 없었다. 우린 할 수 있는  모조리 쏟아부었고 최선을 다했다. 괜찮냐, 제대로 움직일  있겠냐, 이번 턴에 성패가 갈렸다, 우리들의 목숨이 달렸있다 등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았다. 그래서 그냥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피를 많이 흘려 안색이 극도로 창백해진 셰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헤, 헤… 갔다, 올게요.”

드르르르르르…

그나마길이가 짧고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은  도끼에 비해 셰이의 클레이모어는 길고 묵직했다.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조차 기적인 사람에게 무기를 제대로 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뭐냐… 뭐냐…! 네놈들은 대체 뭐냔 말이냐! 어떻게,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지? 어떻게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지? 그분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을 불신자주제에 대체 어떻게 견뎌내는 것이냔 말이다!”

“시, 끄러워….”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어!”

셰이의 전진은 굉장히 느렸다. 비틀거리면서도, 무거운 검을 질질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숙연해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염통놈에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셰이의 모습이 불가해한 무언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멈춰라.”

“….”

“멈추란 말이다!”

어느새 공격 가능한 거리까지 다가간 셰이의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평소처럼 도끼로 장작 패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으로 늘어진 검을 몸을 뒤틀어 아예 뒤쪽으로 뻗었다.


“죽어-------------!!!!!”


그리고 지금껏 천천히 걸어간 건 오로지 이 한순간을 위해서였다는 듯, 온몸을 뒤틀며 과격한 횡베기를 시전했다.

자세나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어떻게든 저놈을 최대한 세게 조지고 싶다는 의지가 대놓고 보이는 공격이었다.

[정의의 심판]
[경이로운 일격!]
[셰이가 공포의 심장에게 2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225]
[공포의 심장이 심판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심장이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심장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카아아아아아악--!!”

“셰이!!!!!”

경이로웠다.

셰이의 공격은 그야말로 혼신의 일격이었다. 그 일격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공격 직후 셰이는 자세를 가누지도 못하고 쓰러졌고, 염통놈의 복부에 깊은상처가 생겼다. 데미지는 나나 라엘라님이 가한 것에 비하면낮았지만, 저놈도 남은 체력이 저렇다 보니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하아….”

“…수고했어.”


그랬다.

염통놈은 뒤지지 않았다.

[카야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카야가 턴을 넘깁니다.]


현신의 후유증으로 행동불능 상태인 카야의 턴이 왔다는  자체가, 저놈이 뒤지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확인시켜주었고….

“가장 기나긴 공포시여! 여기 미천한 종이 당신의 은총을 간절히 바랍니다! 더 강력한 힘을! 저 불신자들에게  압도적인 공포를!”

저놈도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맨 처음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급기야 공포새끼한테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이 가진 힘으로도 극복이 안 되자 공포에게 기도해 힘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발악, 마지막 페이즈였다.

원래라면  패턴 전에 더 다양하면서도 하나같이 좆같은 스킬들을 구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한 번 대가리가 깨지고 라엘라님에게 육편이 될 뻔하면서 뭔가 3구역 보스치고 순식간에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만일 라엘라님이 저렇게까지 무지막지한 딜을 우겨넣지 못했다면 얼마나  험한 꼴을 당했을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놈의 기도가 거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동료들의 상태를 살폈다.

‘…어쩌면, 정말 재수가 없으면 이게 멀쩡한 정신에서 보는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지.’

행동불능 상태이상은 풀렸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카야, 의식만 있지 죽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크게 다친 상황에서 무리까지 한 셰이, 둘만큼 다치진 않았지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겨우 극복하고 나니 다시 제 손으로 현을 끊어야 했던 일루미나. 셰이의 집념과 라엘라님의 등장으로 사경 디버프는 사라졌지만 멘탈리티가 터지기 직전인 나까지.

직전까지는 염통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지만, 컨디션이 안 좋기도 하고 모든 걸 쏟아부어서 그런 것일까.

좆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이젠 우리 손에서 떠났다는 느낌이었다.

‘셰이가 다시 사경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공격해라. 염통새끼야.’

염통놈의 기도가 끝났다. 놈에게선 이제 처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새까만 기운이 주위를 넘실거리는  모자라 반쯤 집어삼켜진 모습이었다.


“그분께서 주신 이 힘을.”

염통놈의 오른손 위에 검은색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고, 놈은 그걸 잠시 황홀하게 쳐다보더니 곧 오른손을 움켜쥐며 터뜨렸다.


“똑똑히 보아라.”

[공포 해방]

[밝기 : 0]


던전이 완전한 암흑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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