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3구역(8)
한 방 먹였다!
비록 도끼를 휘두른 직후 내 힘에 못 이겨서 자빠졌지만, 입힌 데미지량을 보니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랑 우스운 꼴을 하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조금 지나고 나니 사경 33% 디버프가 매우 아쉬웠지만….
“지, 지금 당장 두 번째 현으로 바꿀게!”
“안 돼.”
“너 죽어! 죽는다고! 움직이는 거 자체가 기적이란 말이야!”
“안 돼.”
“헨드릭!”
“안 된다고.”
지금 속도 버프가 꺼지면 안 됐다. 위대한 발걸음 버프가 꺼진 지금, 습격의 선율 버프마저 꺼져버린다면 카야와 셰이의 턴이 염통놈의 뒤로 밀리게 된다.
이 기세를 몰아쳐야 했다. 어차피 활력의 선율을 켠다 해도 지금 당장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야랑 셰이가 치명타가 안 터졌어. 한 번 터지기만 한다면.’
[공포의 심장]
남은 체력 112/225
“두 번째 현이 아냐. 세 번째 현을 한 번 더 뜯어.”
“그치만!”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도 힘들어, 일루미나.”
“…흑.”
[습격의 선율(2)]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8]
[모든 용사 속도+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더 이상 효과가 중첩되지않습니다.]
[중첩된 선율은 3턴간 유지됩니다.]
[이번 전투에 한해 습격의 선율을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용사대 전원의 치명타율이18이 올랐다. 충분히 치명타를 노려볼만 했다. 만약 둘 다 터진다면 즉사…까진 모르겠지만 페이즈를 스킵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셰이…?”
“…….”
“뭐해. 공격 안 하고.”
“그럴 수 없어요.”
“쿨럭, 뭐라고?”
[셰이의 집념]
[3턴 간, 절대로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셰이의 방어력이 1 증가합니다.]
[셰이가 수호의 대상으로 유진을 지정했습니다. 유진이 현재까지 입은 피해를 셰이가 대신 감내합니다.]
[셰이의 체력이 25 감소합니다.]
[셰이 남은 체력 2/35]
[유진이 사경 상태입니다. 최대 체력의 반절만 회복됩니다.]
[유진 남은 체력 12/24]
[유진이 공격 당할 경우 셰이가 대신 방어합니다(방어력 -33%).]
셰이는 염통놈을 공격하라는 내지시를 거부하고는셰이의 집념을 발동했다. 내 상처가 그녀에게 옮겨간 순간, 선두에서 굳건히 서 있던 셰이가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한 바가지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셰이!!!”
“셰이야!!!”
‘이, 이 바보가!’
육체의 고통이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염통놈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이러면 이번엔 셰이가 사경에 빠질 확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기술을 사용했는지는 알겠으나….
나는 내가 3연속으로 공격당할 확률을 굉장히 낮게 봤기에 절호의 공격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다.되돌릴 수 없었다. 어쩌면, 바로다음 라운드에 일루미나의 절현까지 꺼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놈의 턴이 또 오기 전에, 카야의 공격이 치명타로 들어간다면….
“…감히.”
“카야?”
“감히, 감히,감히, 감히, 감히.”
하지만 카야의 상태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카야는 셰이가 쓰러질 때도 우두커니 서서 보기만 했다. 그녀는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땐 내가 갑자기 사경에 빠진 게 충격이어서 그랬나보다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결이 달랐다.
“이단 괴물 주제에, 감히 대장을… 감히 대장을…!”
지금 그녀의 눈,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보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눈깔이 돌아버렸다고.
“카야.”
“라엘라시여. 어리석은 딸이 간절히 바라건대, 대장의 적을 도륙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카야!”
자애와 관용이 무용한 괴물입니다.
그리 중얼거린카야는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로 저놈을 후려치지 않았다.
[부정적 특징 ‘일방통행’이 발동합니다.]
[카야가 통제에서 벗어납니다.]
[카야가 여신의 힘을 일깨웁니다.]
내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일방통행 특징이 발동되면서 내 지시보다 카야의 판단이우선시되었고, 카야는 내가 단숨에 사경에 빠진 걸 보고는 제대로 빡쳐서 내 지시마저 어기고 눈이 돌아간나머지 조커 카드를 꺼내든 것이었다.
‘카야….’
다른 건 몰라도 긍정적 특징 ‘라엘라의 화신’에 포함된 ‘현신’이라는 스킬은 딱 봐도 일회용 느낌이 나서 웬만하면 4구역 때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야를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스킬은 발동되었고, 되돌릴 수 없었다. 그녀의 분노는 거셌고, 뒤늦게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카야의 고향에 갔다 온 이후로 카야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드셨던 라엘라님이 현신하셨다. 내가 볼 땐 눈매와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을 뿐인데, 염통놈에겐 아니었던 것 같았다. 라엘라님의현신이시작되자마자 놈은 지금껏 무게 잡은 것도 잊고선 감히 라엘라님에게 삿대질을 하며 경악했다.
“어, 어찌 이곳에, 저 거짓된 존재가!”
“………흐응.”
[현신]
[‘라엘라의 화신’ 카야가 잠들어있는 여신을 깨웁니다.]
[여신이 공포의 기운을 밀어냅니다.]
[용사대 전원의 멘탈리티가 10 회복됩니다.]
[용사대 전원의 체력이 3 회복됩니다.]
[용사대 전원의 디버프 및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공격력이 5 상승하고, 이번 턴에 한해 공격력이 최대로 고정됩니다.]
라엘라님이 현신하시자 우릴 압박하고 있던 기운이 급격히 약해졌다. 특히 나는 나를 옥죄고 있던 무언가가 떨어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확인해보니 사경 디버프가 사라져 있었다.
라엘라님은 염통놈이 가소롭다는 듯 콧소리를 한 번 내시더니, 허공에서 책 한 권을 꺼내셨다.
“지금 나타나는 건 때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간절히 바라니까… 힘을 좀 많이 써봐야겠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기어들어온 것이냐!”
“어디서 뭐가 짖는구나.”
허공에 둥둥 떠있던 책이 촤라락 펼쳐졌다.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더니 칙칙하고 음침한 던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환한 연녹색 빛을 발했다. 연녹색 빛은 한데 뭉쳐 철퇴 머리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흉악한 철퇴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염통놈이 순간 뒷걸음질 쳤을 정도였다. 금세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내가봤고 셰이가 봤고 일루미나가 봤고 라엘라님이 보셨다. 제아무리 염통놈의 존재감이 지대하다 하나 이쪽은 여신의 화신이었다. 절대 꿀리지 않았다.
“내 아이를, 내 아이의 동료들을 아프게 한 대가는 치러야 할 거야.”
“어디 한번 해봐라! 그분께 상대도 되지 않아 도망친 주제에 불신자들이 신이라 따라주니 진짜 전지전능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아나!”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한 적은 없어. 단지…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서 한 방 먹여줄 뿐이지.”
라엘라님이 철퇴를 드셨다. 턴이 바로 넘어가지 않는 걸 보니 현신은 몇 안 되는 ‘턴 안 먹는’ 버프 취급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운명의 뜻대로.”
[자애의 철퇴]
라엘라님은 굳이 놈에게 다가가지 않으셨다. 제자리에서 철퇴를 수평으로 한 번 휘두르셨는데….
[카야(라엘라)가 공포의 심장에게 1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7/225]
솔직히, 내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었다면 여기서 여신님께 이게 말이 되는 데미지냐고, 여신 맞냐고 따졌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음 공격에 한해 괴물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여신님께선 그건 양념에 불과했다는 듯, 수직으로 한 번 더 휘두르셨고….
“크아아아아아--------!”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신의철퇴’가 무엇인지 똑바로 목도할 수 있었다.
[신들린 일격!]
[카야(라엘라)가 공포의 심장에게 8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9/225]
[여신의 위력을 목도한 용사들이 크나큰 용기를 얻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12]
[카야 멘탈리티 +13]
[유진 멘탈리티 +12]
[일루미나 멘탈리티 +13]
[현신이 해제됩니다.]
[카야는 다음 턴에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도합 103데미지라는, 정신 나간 데미지를 선보이신 라엘라님은 작별인사조차 못 하시고 사라지셨고, 신의 힘을 잠시나마 휘두른 부작용 때문인지 카야는 한 턴 행동불가 페널티를 먹었다.
체력, 멘탈리티 회복에 상태이상과 디버프 제거에 죽창까지.
‘이게 진짜 갓댐인가.’
[현신(사용 불가능)]
비록 또 한 번 라엘라님의 힘을 빌릴 순 없겠지만, 이대로 저놈을 조질 수만 있다면. 가장 기나긴 공포 새끼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
“으흐흐흐.”
“뭐야 저새끼.”
“으흐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가리를 비롯해 온몸에서 거뭇거뭇한 피를 흘려대고 있는 염통놈이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폭소하기 시작했다. 광소였다. 어찌나 미친놈처럼 웃던지, 놈이 웃을 때마다 우리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 평범하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그 거짓된 자를 꽁꽁 싸매고 있었을 줄이야! 불신자지만 훌륭하다! 아주 좋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손가락 사이 틈새로 보이는 염통놈의눈이 이글거렸다.
“기필코 네놈들을 공포에 빠뜨릴 것이다! 공포에 젖어 멎어가며 발악하는 심장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하여 기필코 네놈들의 심장을 그분께 바칠 것이다!”
[잠력 해방]
[공포의 심장이 심장에 내재된 기운을 풀어냅니다.]
[상태이상 및 디버프를 해제합니다.]
[상태이상 및 디버프를 두 번 막을 수 있습니다.]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5 증가합니다.]
[치명타를 한 번 막을 수 있습니다.]
[체력을 55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64/255]
[공포의 심장이 재행동을 얻습니다.]
가슴에 난 구멍 안쪽에서 불길하게 맥동하던 놈의 심장이 연기가 되어 한순간에 흩어졌다. 연기는 놈의 전신으로 스며들더니 언제 뒤져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이 말끔해졌다. 체력 회복과 각종 버프종합 세트에 재행동까지.
라엘라님의 일격 덕분에 중간 페이즈 하나가 통째로 날려버린 것 같긴 하지만 즉사를 시키진 못했고, 결국 기사회생을 하고야 말았다.
‘끈질긴 새끼.’
이를 악물었다.
“그 심장. 내가 받아가겠다.”
하필, 이번 라운드에 셰이가 도발 스킬을 사용했고… 왠지 모르게 또 내게 향하던, 검은 기운에 휩싸인 염통놈의 오른손이 셰이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그녀의 남은체력은 고작 5였다.
[심장 가르기]
[공포의 심장이 셰이에게 1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35]
………………………………………아.
“셰이!!!”
“셰이야!!!”
[셰이가 사경에 들어섰습니다.]
[셰이에게 걸린 모든 버프가 사라집니다.]
[셰이의 모든 수치가 33% 감소합니다.]
[사경에 들어선 상태에서 데미지를 받으면 셰이는 사망합니다.]
[두 명이 사경에 빠졌습니다. 용사들이 느끼는 공포가 증폭됩니다.]
[카야 멘탈리티 – 24]
[유진 멘탈리티 – 33]
[일루미나멘탈리티 –34]
염통놈의 손이 셰이의 갑옷을 뚫었을 때.
나는 이미 놈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