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3구역(7)
[속도 체크]
셰이 : 4
카야 : 4
유진 : 6
일루미나 : 4
공포의 심장 : 5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염통놈이 건 억압으로 인해 유예된 속도 체크가 정상화되었다. 지금 보니 나를 제외한 동료들의 속도가 염통놈보다 딱 1 모자랐다. 하필 세 번째 억압에서 속도가 1 깎인 게 뼈아팠다.
‘미지의 4구역을 대비해 아껴둔건데… 어쩔 수 없지.’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은 아주 유명한 격언이었다. 중요한 전투에서 사용하려고 아껴둔, 활성화가 안 되어있는 두 개의 아티팩트를 모조리 발동시켰다.
[만화경]
- 지정한 한 아군의 능력치 +1
- 한 전투당 한 번 사용 가능
‘일루미나의 속도를 1 추가.’
[‘만화경’이 일루미나의 속도를 1 올려줍니다.]
[만화경은 이번 전투가 끝날 때까지 추가로 발동할 수 없습니다.]
[만화경의 효과는 전투가 지속될 때까지 유지됩니다.]
이걸로 일루미나의 속도가 5가 되었다. 일루미나는 버퍼였고, 기본 속도가 2나 빠른데다가 어차피 첫 턴에 낙인을 박아야 하는 나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적어도 카야와셰이보다는 속도가 빨라서 그녀들에게 버프를 끼얹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아직 한 발 더 남았다.
[위대한 발걸음]
- 발동시 한 번에 한해 모든 아군의 속도 +3
- 효과 발동 시 파괴됨
발동하면 거의 무조건 선턴을 잡아올 수 있는 1회용 아티팩트인 위대한 발걸음까지.
어떤 보스몹이 안 그러겠냐만, 이놈은 절대로 장기전으로 가선 안 됐다. 단순히 체력이 후달리니까, 멘탈리티가 터지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염통놈 상대로 시간이 끌리면 통칭 심장마비라 불리는 씨발 쌍욕이 절로 나오는 스킬을 맞아야 하는데… 운이 좋아야 ‘사경’행 혹은 잠식이었고 운 나쁘면 사경행 그딴 거 없이 바로 즉사였다.
‘낙인은 네놈만 찍을 줄 아나본데!’
[수배범 발견]
[유진이 공포의 심장을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공포의 심장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24/225]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유진의 체력이 2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8/24]
[유진 멘탈리티 –3]
‘225체력….’
[공포의 심장]
체력 : 225/225
공격력 : 8~17
방어력 : 13
속도 : 5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다면 2구역 보스였던공포의 눈에 비해 약 30% 정도 강해진 스펙이었다. 일반이나 정예 괴물이 강해진 거에 비하면 30%는 선녀나 다름없었으나… 저놈의 강함을 생각해보면 225체력과 17최대공격력은 그 자체로 압박이었다.
[속도 체크]
셰이 : 7
카야 : 7
유진 : 9
일루미나 : 8
공포의 심장 : 5
[일루미나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두 아티팩트를 발동하자 용사대 전원의 속도가 3씩 올랐고, 염통놈과의 속도가 역전되자 속도 체크가 갱신됐다. 모든 것은 저 염통놈에게 한 번이라도선턴을 덜 주기 위해서. 셰이와 카야가 일루미나의 버프를 받고 한 번이라도 더 먼저 때리기 위해서였다.
“일루미나. 세 번째 현을.”
“으응…!”
질풍보다 빠르게, 삭풍보다 날카롭게.
태풍처럼 거침없이, 미풍처럼 은밀하게.
[습격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8]
[모든 용사 속도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유진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7/24]
[유진 멘탈리티 –4]
2구역이 끝나고 습격의 선율의 레벨을 4까지 올린 보람이 있었다. 4레벨 때 속도 증가량이 1에서 2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위대한 발걸음의 효과가 사라지더라도 우리 모두의 속도가 일단은 염통놈보다 앞설 수 있게 되었다.
“크윽…!”
“헨드릭!”
“괜찮아!”
비록 염통놈이 건 낙인 때문에 매 턴이 지날 때마다 체력이 깎이면서 심장이 엄청 욱신거렸지만, 덩달아 멘탈리티까지 까인다는 것만 빼면 진행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셰이와 카야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 4
카야 : 3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셋업 턴은 얼추 끝이 났다. 이제 내 낙인 디버프와 일루미나의 버프를 합산한 첫 공격을 셰이가 보여줘야 했다.
‘모든 수치 10% 추가되는 천재, 치명타 10% 추가되는 처단자, 빛과 정의가 들어가는 스킬 효율 10% 증가되는 유스티티아의 강림체. 여기에 데미지 25% 증폭되는 낙인까지.’
셰이의 공격력은 14~24. 염통놈의 방어력은 13. 치명타가 안 터지면, 그리고 재수 없어서 민뎀이라도 터진다면 기대 대미지가 상당히 낮은 상황.
“후우….”
셰이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는 게 보였다. 한 턴 한 턴이 소중했다. 거는 기대는 컸지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치명타를 못 띄운다 해서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의 심장에게 1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08/225]
[공포의 심장 심판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심장이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심장이 심판의 낙인을 튕겨냅니다.]
[유진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6/24]
[유진 멘탈리티 –5]
‘아….’
16뎀.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아쉬웠다. 마음 같아선 16 뒤에 0을 붙여버리고 싶었다. 시시각각 심해지는 심장통이, 심해지는 정신적 압박이 날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릴랙스하자, 릴랙스.’
셰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엄청난 데미지를 먹이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바로 다음 차례인 카야의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게 보였다.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부담 갖지 마라.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딴 말은 지금 상황에서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부담을 가져도, 무조건 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저 믿고 지시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새로운 신념의 효과가 발동하여 공포의 심장의 방어력을 6만큼 무시합니다.]
[카야가 공포의 심장에게 2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81/225]
[유진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5/24]
[유진 멘탈리티 –6]
준수했다. 한방에 1할을 날렸다. 하지만 다음 턴이 염통놈 턴이라는 걸 인지하니, 여전히 아쉽고 조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야 또한 이를 악물고 있었다.
“흐음… 이 정도인가.”
우리들의 첫 라운드가 끝나고 염통놈의 턴이 되었다. 놈의 한마디는 묵직했다. 고작 이 정도밖에 못 깎았냐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지금 가하고 있는 억압이 약하진 않은데… 생각보다 더 강하게 나가야하겠군.”
나지막이 중얼거린 염통놈이 오른손을 뻗더니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뭔 짓거리지?’
더 롱 테러 할 땐 저런 포즈는 없었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두쿵-
“끅!”
“대장님…?”
“대장!”
“헨드릭!”
두- 쿵-
“커허어억…!”
이방에 들어설 때, 심장이쥐어짜이는 느낌이 들었다면.
지금은.
진짜로 심장의 내부에서부터 터져서 심장이 급격히 정지한 듯한, 그런 기분.
[심장을 바치나이다]
[공포의 심장이 용사의 심장에 걸려있는 억압의 낙인을 터뜨립니다.]
[용사는 지금껏 억압된 횟수에 비례해 데미지를 받습니다.]
[억압 횟수 : 4]
[유진이 16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남은 체력 –1/24]
[유진 멘탈리티 –16]
‘아.’
그래.
심장마비 스킬 정식 이름이 저거였던가.
모르겠다. 이제 첫 라운드인데.
아니, 이것도 다 부질없는 생각인가. 여긴 엄연히 말해서 내가 알던 더 롱 테러가 아니었으니까….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이젠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겪어도 좆같이 아프단 말이지…,’
[유진이 사경에 들어섰습니다.]
[유진에게 걸린 모든 버프가 사라집니다.]
[유진의 모든 수치가 33% 감소합니다.]
[사경에 들어선 상태에서 데미지를 받으면 유진은 사망합니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대장의 모습에 용사들의 마음속에서 공포가 빠르게 차오릅니다.]
[셰이 멘탈리티 – 21]
[카야 멘탈리티 – 15]
[일루미나 멘탈리티 –23]
가슴께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내게 걸려있는 일루미나의 버프가 사라졌다는 것과 사경 디버프 33% 때문에 내 죽창 딜링은 물 건너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안 돼애애애!!!”
“대장!대장!!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대장!!!”
“치료! 그래! 셰이! 언니! 빨리 치료를!”
어느 정도 적응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레벨이 높아져서 그런 것일까.
저번처럼 혼자만의 공간에 갇힌 느낌이 아니라, 전신마비 환자가 된 느낌이었다. 동료들이 내 몸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게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래…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나아.’
동료들이 들으면 그게 뭔 소리냐고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그녀들이 이 고통을 겪고 쓰러질 바에야 내가 쓰러지는 게 나았다.
하지만, 바로 뒤에 그건 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여기서 내가 쓰러져서 아무것도 못 하면 결국 동료들도 전부 저승행이잖아?’
일어나야지.
좆같이 무게 잡고자빠져있는 염통놈의 억압에도 맞서 싸워 나아갔는데, 심장 한 번 터졌다고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지.
뭐? 심장이 터지면 뒤지는 게 맞다고?
정말 다행이게도 아직은 아니야. 게임과 현실이 괴상하게 섞인 던전 안이라서그런지, 난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까.
더 롱 테러였다면 고통스러워는 표정의 일러스트가 뜨고 곧바로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선 겪을 수 있는 고통을 모두 겪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게 부조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 현실처럼 즉사하지 않은 게 어딘가.
아직 사지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밝기는 시시각각 내려가고 있었고, 고통은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저놈의 체력은 아직도 181이나 남았고, 방금 내가 사경에 빠진 탓에 나 빼고 괜찮았던 멘탈리티 상황도 엉망이 됐다.
눈을 부릅떴다. 내 뺨을 부여잡고 어서 정신차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던 카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일으켜줘.’
카야가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고는 내 어깨를 잡았다. 셰이와 일루미나도 합세했다. 던전을 조지러 하는 주제에 한 번 공격해보지도 못하고 동료들에게 기대어 축 늘어진 꼴이 퍽 우스웠다.
그래도.
내가 이들을 이끌었고, 이들이 나를 받쳐주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들의 부축을 받은 지금, 나는 67번째 사경을 벗어나 다시 도끼를 들었다.
비록 치명타 버프가 꺼졌을지라도.
비록 사경 디버프가 끼얹어졌을지라도.
비록 양손으로 도끼를 드는 것도 벅차고, 다가가는 건 더욱 벅차지만.
그럼에도 내 도끼는 네놈의 대가리를 갈라낼 것이니.
[대가리 분쇄]
[전율적인 일격!]
[유진은 사경 상태입니다. 최후의 단도의 효과로 공격력이 5 상승합니다.]
[유진이 공포의 심장에게 6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12/225]
[사경에 들어선 대장의 분투에 용사들이 분연히 일어섭니다.]
[셰이 멘탈리티 +8]
[카야 멘탈리티 +9]
[유진 멘탈리티 +6]
[일루미나 멘탈리티 +9]
“크, 허억… 어찌… 분명, 심장이 터졌을 터인데…!”
“프흐흐… 퉷.”
뒤질나게 아프네 씨발.
그래도… 어째서 게임 속 용사들이 죽기 전 그런 말들을 내뱉고 죽음을 각오했는지, 뼈저리게 공감했다.
“순순히 뒤질 줄 알았냐, 심장 없는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