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화 〉3구역(5) (176/218)



〈 176화 〉3구역(5)

일루미나가 각성하고 용사대의 분위기는 확실히 반전됐다. 그녀가 큰 위기를 겪은 건 맞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아주 결과가 좋았다.

[멘탈리티]
셰이 : -21
카야 : -42
유진 : -49
일루미나 : -50

[체력]
셰이 : 23/35
카야 : 20/30
유진 : 17/24
일루미나 : 3/19

3-7에서 정예 괴물을 상대하면서 체력이 다소 소진됐지만, 이 정도면 양호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위험했지만, 체력 50% 이하일 때 회피율이 올라가는 생존본능 특징도 있고 셰이의 도발 스킬이 있으므로 한 번에 끔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식량으로 체력 좀 채워놓자.’

우린 걸어가면서 식량을 세 개씩 까먹었다. 모두 체력이 6씩 올랐다. 안 그래도 식량을 꽉꽉 채웠는데 포탈 덕분에 더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고 지금 체력이 가득 찰 때까지 식량을 처먹는 건 시기상조였다. 아직 보스방 전까지 방이  개나 남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세를 탄 것일까.

3-7에서 3-8로 향한  얼마 안 지나서 정찰이 발동됐다. 이번엔 나만 발동된 아니었다. 레벨이 높아져서 그런지 나 말고도 동료들의 정찰 확률이  높아졌고, 그냥 모르고 돌파를 시도했으면 한바탕 피를 흘리며 쌍욕을 쏟아냈을 간악한 함정들을 파악할  있었다.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커다란 바위들과 갑자기 시야를 흐리는 거뭇한 연기, 피하는 루트에 순차적으로 배치된 눈치채지 못할 작은 턱과 구덩이, 넘어질 만한 곳과 피할만한 곳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는 송곳, 그리고 운이 좋아 두 곳 다 안 밟을 것을 대비해 사각에서 날아오는 독침들까지….

하나하나 ‘보고’ 피하고, 어떤 것들은 파괴해가면서 통과하다보니 어느새 3-8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깎이는 멘탈리티도 함정을 극복하면서 회복하는 멘탈리티로 상쇄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3-8.

“아… 손님이로군.”

우릴 맞이한 건 다름 아닌 상점주인이었다. 믿을 수 없어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상점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일루미나의 각성 효과로 멘탈리티가 회복된 게 깨알같았다.

“대장. 안색이 별로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내가?”

“예. 고민이라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으음… 그냥, 곧 있으면 보스놈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봐. 별 거 아냐.”

“그렇습니까.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아예 긴장을  하고 싶긴 한데, 그게  맘대로 안 되더라고.”

흐름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불안해진다는 말을 어찌 할  있을까.수천 시간 동안 더 롱 테러를 게임하면서 이렇게 잘 풀린 적이 거의 없어서 적응이 안  정도였다.

인생사 새옹지마. 그리고 운빨 총량의 법칙.

불운 뒤에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반대인 행운 뒤에 불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불안했다. 근데 이건 근거도뭣도 없는 감에 불과했다. 경험에 의한 감은 막연한 불안함을 주장했지만,  상황은 이보다 좋을  없을 정도로 최선이었다.

마치, 뒤에 있을 행운을 모조리 끌어다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다가 다음 방에서 휴식처라도 나오는 거 아냐?’

그리고 던지듯  내뱉었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휴식처에 입장했습니다.]

“…이게  진짜로?”

“휴식처다! 대장님! 휴식처예요!”
“아… 정말 다행입니다. 저번 전투 때 입었던 부상을 완벽하게 회복하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난 뭐 눈 떴다 일어나니까 바로 끝자락에 와버렸네?”
“헤헤, 좋잖아요! 저번 때처럼 만신창이로 싸우는 것보다 상태 좋을 때 싸우는 건데!”

3-9는 휴식처였다.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편한 진행이었다. 그동안 3구역의 좆같음에 대해 치를 떨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2구역까지 잘 키운 용사들이 3구역에서 치명타  방에 나락으로 떨어진 일이나, 개같은 함정 연계에 통로를 걷다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멘탈리티가 터진 일이나, 이벤트방이나 휴식처 없이 5연속 괴물 방이 출현해 유지력이 붕괴된 일이나… 그 외에도 용사대가 붕괴하는 루트는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가버리니, 동료들에게 수도 없이 경고하고 또 혼자 쉐도우 복싱 엄청 했던 내가 엄청난 쫄보가  느낌이었다.

‘어쩌면 포탈 덕분에 정예 괴물방들을 스킵했을 수도 있긴 해.’

우리가 3구역에서 겪은 전투는 3-7에서 맞닦뜨린 정예괴물 공포추적자 딱 한 번이었고, 3-0을 벗어나자마자 경험한 죽음의 공포까지 포함한다 쳐도 두 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도 깔끔한 모습으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웃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3-2에서 포탈을 앞뒀을 때 잔뜩 들떠있던 나와 꺼려하던 동료들과는 정반대가 느낌이었다. 분명 좋은 상황인데 불안함은  커졌고, 좋아해야  상황에서 좋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웃고 떠드는 동료들을 보니 괜한 소릴 해서 분위기를 잡칠 것 같아 나는 잠깐 쉬겠다고 말하고는 텐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조금만 혼자서 누워 있다가 나오려 했는데, 동료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였다.


**


“일루미나. 몸은 좀 어떻습니까.”

“멀쩡해. 말해주기 전까진 내가공격받아서 죽을 뻔한 것도 몰랐다니까?”

“다행입니다. 셰이도 괜찮습니까?”

“당연히 괜찮죠. 이 정도 다친 거야 다친 축에도 안 속하죠. 저야 워낙 튼튼하잖아요?”

“튼튼해도 아픈 건 똑같습니다. 아까 무리하게 괴물의 공격을 막아낼  많이 아파보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장도 많이 걱정했습니다.”

“헤헤… 근데 대장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대장님 상태가  이상하지 않아요?”

“단순히 긴장감 때문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

“그렇죠? 별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셔서 굳이 묻진 않았는데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으음, 추측이긴 한데 말이야. 헨드릭이  그러는지 알 것도 같아.”

“네? 진짜요? 뭐 때문인데요?”

“한 번도  싸운 내가 이런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너무 쉽게 와서 그러는 거 아닌가 싶은데.”

“예?”
“뭐예요 그게?”

“내 기분이 그렇거든.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어서. 저번에는 진짜 엄청 고생했잖아? 근데 이번엔 맨 처음 겪었던  제외하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어.”

“쉽게 온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으음. 행운은 변덕쟁이다. 행운은 한 사람만의 편이 아니다. 이런 말들이 있잖아. 여신님을 따르는 카야 언니나셰이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꽤나 신경 쓰거든.”

“…이단의 수괴와 싸울 때 지금껏 쉽게 온 것에 대한 반동이라도  것 같다, 이 말입니까?”

“뭐 그렇지.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야. 이 던전이라는 곳이 이렇게 쉽게쉽게 돌파할  있는 곳이 아닌데. 음험하고 악의적인 곳인데 이렇게 안쪽으로 쉽게 돌파를 허용해줄 리가 없는데. 이건 우리가 운이 좋아서, 강해져서라기보다 던전이 우릴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인 게 아닐까? 우리가 뭔가 모르는 함정이 더 있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드는 거야.”

“….”

“나조차 그런데 우릴 이끄는 헨드릭은 그 찝찝함과 불안함을 더 많이 느낄 거야. 근데 근거가 없는 단순한 감이나 미신에 불과하니까, 애써 괜찮은  하는 거고….”

“….”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니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말고?”

“대장에게서 그 불안감을 덜어내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글쎄…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별로 효과는 없지 않을까?”

“그런….”

“행운과 불운 때문에 불안해하는 거를 즉시 해결하는 답이 없어. 그럴 땐… 그냥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돼. 최선을 다해서. 잘. 묵묵히. 태연하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쉬이 흔들리지 않듯,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괴물을 상대하면 헨드릭의 불안함도 자연스레 해소되지 않을까?”

“그건 지금까지랑 딱히 다른 게 없잖아요?”

“그래. 평소처럼. 그게 중요한 거야. 행운이 오든, 불운이 오든. 우린 평소처럼 괴물을 무찌르고 던전을 무사히 돌파한다. 이걸 해내기 위해선 미신 때문에 불안해할 여유 같은  사라질 거야. 헨드릭이 누차 말했던 대로라면, 이번 괴물은 굉장히… 정말 굉장히 힘들 테니까.”

“…그렇습니까. 음유시인의 지혜입니까.”

“그런 거창한 것까진 아니고. 그냥 여러 사람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듣고,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다보니까. 이럴 땐 이러는 게 최선이겠구나 하는 게 있어. 괜히 그 불안감어떻게 해보겠답시고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더 의식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보거든. 그러니까 놔두는  좋을 거 같아. 대화든, 몸의 대화든 말이야.”

카야와 셰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 그럼 저도 쉬러 가겠습니다.”

“나, 나도요.”

헨드릭의 텐트로 들어가려던 카야와 셰이는 두 번째 텐트에 들어갔다.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 일루미나는 헨드릭의 텐트로 들어갔다.

‘수인 앞에서 자는 척하는 거야? 귀엽네.’

일루미나는 모른 척 헨드릭 옆에 누웠다. 그가 부디 그녀의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길 바랐다.

**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멘탈리티가 회복되었습니다.]


[체력]
셰이 : 35/35
카야 : 30/30
유진 : 24/24
일루미나 : 15/19

[멘탈리티]
셰이 : -1
카야 : -22
유진 : -29
일루미나 : -30

불안함 가득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잠은 잘 잤다. 좋은 징조였다.

동료들은 내게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고 평소처럼 행동했다. 내게  물어보지도 않았고 걱정하지도 않았다. 다시 떠올려보니 일루미나의 말이 정말 옳았다. 만약 그녀들이 아침부터 내게 괜찮냐고, 괜찮을 거라고, 다 잘될 거라는 식으로 말했으면 불안함과 부담감이  커졌을 것 같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제보다는 확연히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체력과 멘탈리티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언제 또 이런 컨디션으로 3구역 보스놈을 잡아보겠어?’

한 번 불안하니 계속 불안하듯,  번 좋게 생각하니 좋은 점이 부각됐다. 휴식처를 나서고 길은 저번에도 그랬듯 일직선이었다. 마지막에 방심하냐는 듯 함정이 튀어나왔지만 행운은 아직까지 우리와 함께하는지 정찰 없이도 함정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설령 저 문을 여는 순간 행운이 변덕을 부린다 해도….’

 여신께서 우릴 지켜봐주실 것이고. 우리는 결코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 용사들일지니.


끼이이익--

[그 선택]


[그 발걸음]


[그 판단 때문에]





[너의 심장이 터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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