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3구역(1)
[가장 기나긴 공포 ‘3구역’에 입장했습니다.]
“후우….”
한순간에 장소가 바뀌는 감각은 언제겪어도 이상했다. 그 장소가 소름끼치는 던전, 그 중에서도 최심부에 해당하는 3구역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들 이상없지?”
“예.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좀 추운 거 같은데…?”
“춥다고? 못 견딜 정도야?”
“으음, 피부가 추운 게 아니라 뼈가 시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으으, 너넨 안 그래? 카야 언니도?”
“전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난 진짜 괜찮아요.”
“으음, 나도 그 정도는 아닌데. 일단 로브라도 껴입을래?”
“응, 그래야겠어. 우으, 소름 끼쳐.”
[극한의 공포로부터 비롯된 한기가 용사들의 신체를 좀먹기 시작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0]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 멘탈리티 –6]
‘아니 이건 좀.’
여긴 3-0이었다. 아무리 3구역이라 해도 안전구역이란 말이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린 잽싸게 대열을 갖췄다. 언제나처럼 셰이-카야-나-일루미나 순이었다.
“으으, 흐으….”
뒤에서 일루미나가 몸을 떨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떠는지 이가 딱딱거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물리적인 추위가 아니었다.
“일루미나.”
“흐으, 으, 나, 왜, 왜 이러지? 미안해. 자, 잠시만. 차, 참아볼게.”
“자.”
제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듯 덜덜 떨고 있는 일루미나를 안아주었다. 갑옷 때문에 일루미나의 몸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당혹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헤, 헨드릭.”
“견딜 수 있어.”
“으, 으응. 겨, 견딜게.”
“네 잘못이 아냐. 이 던전이 좆같은 거야.”
“맞아요 일루미나 언니. 언니 잘못이 아니라, 견디는 우리가 이상한 거예요.”
“일루미나, 당신은 정상입니다. 저나 셰이는 이단을 많이 상대해봤고 영광되게도 육신에 여신님께서 강림하기도 하셨거니와, 일루미나보다 던전에 더 익숙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공포를 이겨내는 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그 끈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일루미나를 안은 나를 셰이가 안고, 카야가 안았다. 삽시간에 중무장한 세 명에게 둘러싸인 일루미나가 얼굴을 붉히며 꼼지락거렸다. 얼굴이 창백했었는데 어느 정도 혈색이 돌아온 걸 보니 위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제 괜찮으니까!”
“우리한테만은 괜찮은 척 안 해도 됩니다. 동료니까.”
“지, 진짜 괜찮대도!”
일루미나는 키가 나 다음으로 큰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살핌 받은 게 부끄러운 것 같았다. 그녀는 흠흠거리며 구겨진 로브를 피더니 새침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우릴 바라봤다.
“안 갈 거야?”
“하하. 진짜 괜찮아진 거 같네.”
“그, 그렇다니까!”
일루미나의 귀가,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꼬리가 납작 엎드려있었고 팔다리가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를 존중했다. 이 이상은 우리가 뭐 어떻게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줬다. 어차피 이런 건 다 감안하고 나아가야했다.
‘3구역. 후,씨발.’
최근에카야 고향에 갔다 온 것도 있고 아르 사건도 있어서 꽤 오랫동안 더 롱 테러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만, 3구역은 정말… 개같은 구역이었다.
1구역은 이게 운빨좆망겜?
2구역은 씨발 운빨좆망겜!
3구역은 하….
그저 한숨이 나왔다. 더 롱 테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는 3구역에서 제일 많이 고꾸라졌다. 클리어각이 판별되는 1구역이 두 번째로 많이 갈려나갔고, 오히려 2구역은 상대적으로 클리어율이 높았다. 지금 내가 겪은 것도 그랬다. 2구역 때도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1구역 때처럼 ‘죽을 뻔한’ 적은 없지 않았나.
1구역 때 이 게임의 불친절함과매운맛 운빨에 고통받고 2구역 때 겨우 적응하다가, 3구역 때 지금껏 겪었던 매운맛은 외국인 전용 매운맛이었단다 하면서 핵매운맛이 불쑥 제시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똥 같은 매운맛을 못 잊고 계속 플레이하다 이 세계까지 떨어져버린 병신같은 놈이 할 말은 아니네.’
단순히 올라가는 스펙도 스펙이었지만 지랄맞은 괴물 조합과 패턴들….
“다 이겨내야지.”
“예?”
“아니, 아무것도. 가자.”
“예, 대장. 갑시다, 셰이.”
“네!”
셰이가 출구를 열었다. 그리고 그녀가 3-0을 빠져나간 그 순간,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꺼림칙한 기운이 앞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물러나!”
“아…!”
소용없었다. 맞닥뜨린 순간 깨달았다. 이건 일반 함정처럼 확률적으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마치 보스 룸에 들어갈 때 컷씬이 나오는 것처럼, 반드시 뜨는 이벤트 같은 종류라는 것을.
‘최고난도 보정인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거뭇한 기운이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다.
“아… 대장님…!”
“큭!”
“아아, 아아으.”
“카야! 셰이! 일루미나!”
시야가 삽시간에 까맣게 물들었다.
“모두, 모두 당황하지 말고 자리 지켜! 제정신 유지해!”
“대장님! 카야 언니! 일루미나 언니! 어디 계세요!”
“다들 어디 있습니까! 대장! 셰이! 일루미나! 응답하십시오!”
“헨드릭! 야! 내 말 안 들려? 언니! 셰이야!”
따로 환각에 빠진 건 아니었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바로옆에 있는 것처럼 똑똑히 들렸다. 하지만 대화는 안 됐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서 팔을 앞뒤로 뻗어봤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째서?’
움직여서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자리를 지키라는 내 말이 그들에게 들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나도 일단 자리를 지키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무리 개씨발 최고난도의 3구역이라 해도 3-0에서 나오자마자 랜덤 즉사, 나오자마자 랜덤 잠식 이딴 말도 안 되는 건 없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자리 유지. 나는 내가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부던히 노력했다.
“…씨발.”
그러나 동료들의 목소리가 차례대로 없어지는 순간, 모래성 같은 침착함은 쉽게 금이 갔다. 동료들이 겁에 질렸거나 침착해지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랬으면 이 이상으로 불안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뚝 끊겼다. 1분 있다가 카야 목소리만 뚝, 또 1분 있다가 셰이 목소리만 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루미나의 목소리마저 뚝 끊기자 불쾌한 침묵이 날 감쌌다.
“이거, 마치 사경 때와 비슷, …, …? …!!”
또 1분쯤 지나고 나니 내목소리마저 안 들렸다. 이쯤 되니 자리를 지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리를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뭐야!’
바닥을 미는 감각이 없었다. 밑을 내려보는 순간, 바닥이 사라져있었다. 강제로 제자리에 묶여버렸다.
‘씨발, 시작부터 이게 뭔 개짓거리지?’
그나마 내가 경험자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셰이도 어느 정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둘이 문제였다. 의식은 있는데 어떠한 감각도 없는 상태, 시공간이 인지가안 되고 의식을 놓는 순간 그대로 죽을 걸알기에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느낌은 절대 범인이 버틸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카야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것 같지만, 일루미나가 문제였다. 3구역 초입의 공기부터 버거워하는 그녀가, 이 원인 모를 ‘유사 사경’현상을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사라지는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고, 목소리와 감각뿐만이 아니라 곧 몸 전체를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필수 이벤트라 생각하자. 스킵 안 되는 컷씬이라 생각하자. 여기서 끝은 아닐 거야.뭐라도 변할 거야.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래도 동료들을 믿었다. 우리들을 돕기 위해 두 여신님들께서 대가를 치르시고 강림까지 하셨는데, 이까짓 걸 못 버티면 두 분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렇게동료들의 얼굴과 라엘라님, 유스티티아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씨발…?’
육성이 안 나오는 게 한이었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걸 보고 욕을안 할 수가 없었다.
- 응애! 응애! 응애!
- ….
존나 젊은, 그러니까 10대 후반에서 많이 잡아봐야 20대 초반의 여자가 허름한 이불 위에 누워서 울고 있는 아기를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아기가 누군지 처음엔 못 알아봤으나 여자의 얼굴, 특히 시선을 보니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친모였다. 그럼 저 울고 있는 아기는 나인 거고.
저여자를 보는 것 자체가 물론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것뿐이었다면 말을 안 할 것이다.
저 여자는, 사리분간 못하고 젖달라고 우는 아기의 목에 손을 가져다댔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아기의 가늘면서도 통통한 목을꾹 쥐기 시작했다.
‘저, 저, 저, 씨발년이!’
내 친모가 아무리 폭력과 방치를 일삼는 천하의 썅년이라 해도, 그래도, 존속살해라는 최후의 선까지 시도할 줄은 몰랐다.
‘아니, 아냐. 이건 던전의 술수야. 또 내 멘탈 건드리려고 지랄할 확률이….’
그렇게 따지면 예전에 봤던 카야와 관련된 환영도, 거짓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기분이 한층 더 좆같아졌다.
- …반절은 내 피라는 걸까.
- 응애-! 응애-!
친모는 손에서 힘을 빼고는 입술을 뜯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내 모습을 보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친모의 젖을 빨고 있었다.형태만 보면꽤나 모양 좋고 크기도 적당한 가슴이었으나 하나도 꼴리지 않았다. 아기는 젖 주는 이한테 죽을 뻔한것도 모르는지 존나 젖빠는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 아야!
저 썅년이 그래도 밥은 주려나보다 싶다가, 시체 치워서 깜빵 가긴 두렵고 분유 살 돈은 아까워서 모유를 주는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했다.
왜냐.
아기를 사랑해서 모유를 주는 엄마가, 제 아기가 젖을 빨다 꼭지를 물었다고 이불에 내팽개치진 않을 테니까.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썅년은 아기보다 제 가슴을 만지작거리다 한참 후에야 아기를 살피는 척했다. 아기 뒤통수가 움푹 들어갔으나 좆도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리고 옹알이 시기를 넘어 처음으로 단어를 내뱉은 순간.
- 어, 어마!
- ….
- 어마?
썅년은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리고는 어린 아이를 방 안에 가두었다.
무려 이틀 동안.
아기는 유일한 세계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친모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조금 컸다 싶으니 집에 모르는 남자가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아주 가끔 기분이 정말 좋은 것 같으면 과자나 배달음식을. 평상시에는 방치를. 그리고 기분이 조금만 나빠지면 폭력이 쏟아졌다.
아기 유진은.
방구석 찌질이 한유진은.
용사들을 이끄는 대장 헨드릭은.
총 66번.
죽을 뻔했다.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
분노로 시작됐던 감정은.
어느새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