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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화 〉친구(6) (171/218)



〈 171화 〉친구(6)

“약속… 그래, 약속.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지.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

“이제 가는 거야?”

“오늘은 아니고 내일.”

“그렇구나….”

“하하. 그 복장도 이제 꽤나 적응했나봐?”

“조금은.”

충격적인 아우팅으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난 3구역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있는  없는 돈 쥐어짜서 업그레이드 비용에 다 꼬라박았다. 소모품도 챙길 수 있는 한계까지 챙겼다. 전체적으로 레벨이 갱신되고 무기와 방어구 레벨이 다시   올라갔다.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낸 것이다.

지금은 막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아르가 방에 찾아왔다.

아르는 3일 전부터 이 여관의 직원으로 채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마침 여관에서 일손이 하나 비게 되었는데그걸 알게  헨드릭이 아르에게 제안했고, 하루살이놈들에게넌더리가  그녀가 그걸 수락하면서 무언가를 찾고 찌르고 할퀴는데 도가 튼 늑대소녀가 여급용 의복을 입고 쟁반을 들고 있던 것이다.

처음엔 힘조절을 잘못해서 그릇이나 잔을 깨먹기도 했지만, 타고난 감이 좋아서 그런지 금세 적응하는  같았다.

“용사들 중에도 쓰레기들이 많아. 그나마 여기 여관은 중간급 정도는 되어서 웬만한 어중이떠중이는 안 보이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놈들보단 나은 것 같아.”

“그건 그래. 주인장은 어때?”

“무뚝뚝하지만 괜찮아. 오히려 별다른 간섭이 없어서 괜찮아.”

“다행이네.”

“오히려 이런 일을 하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는  미안할 정도야.”

“그 일도 쉬운 일이 아닐걸? 지금이야 며칠  됐으니 주인장이 사정 좀 봐주는 거겠지. 서빙이나 다른 잡일은 몰라도 아직 손님 응대는… 흐음. 빈말로도 좋다고는 못하잖아?”

“….”

 팩트 공격에 아르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반박할 만도 하건만, 아르는 내게  부채의식을 느기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구해주기도 하고, 이런 안전한 직장까지 마련해줬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지금은 두려움에 그르릉거리는 거친 야생늑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온순해진 늑대소녀가 되어버렸다. 우리 앞에서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어딘가. 앞으로도 그녀가 계속 이곳에서 살기 위해선, 인간과 완벽히 동화되는 건 필수였다. 좋은 현상이었다.

“어쨌든  적응하고 있는  같으니 마음이 놓이네. 안심하고 던전에 갈 수 있겠어.”

“….”

“왜 그런 표정이야? 할 말이라도 있어?”

“…저, 헨드릭.”

“어?”

아르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작은 주머니였다. 온기가 남아있는 작은 주머니에선 크기 이상의 무게가 느껴졌다.

묵직한 주머니를 열어보니 금화 수십 개가 반짝거렸다.

“아르.”

“받아줘.”

“이건 네 거잖아. 내가 너한테 완전히  거라고.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그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근데 왜….”

“지금부터라도 진짜 홀로서기를 하고 싶어서.”

“진짜 홀로서기? 아르 넌, 지금까지도 혼자  해왔잖아. 누가 너보고 이상한 소리 했어?”

“아냐. 지금까지 잘해온 게 아니야. 나는… 그저 버틴 것뿐이야.”

반사적으로 대꾸하려던 나는 아르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았어. 난 형편없는 존재라는 걸. 너무 약한 존재라는 걸.”

“전혀 그렇지 않아.”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하긴 했어. 하지만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어. 너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내가 한 사람으로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어. 난 그저 살아 숨쉬고 웅크리고 있다가 셰이에게 이끌려 사람 흉내를 내는 어리숙한 늑대였을 뿐이었어. 네 도움이 없었다면, 난 폐인이 될 때까지 이용당하고 버려졌거나 죽었을지도 몰라. 네가 다시 던전에 가고 나서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만 했을 거고.”

요 며칠 사이 말이 부쩍 늘어난 아르의 말은 꽤나 절절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단답식으로 말한 것도, 억눌려있고 과한 경계심 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고마움의 표시이자 각오의 표시야. 네가 준 금화들을 가지고 있으면, 너에게 계속 의지하게  것 같아.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너라면 어떻게 도와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까 다시 가져가.”

“…그래.”

내가 뭐라고 아르의 각오를 무시할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건넸던 금화엔죄책감과 고마움 외에도 ‘동정심’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건 맞지만, 그녀는 내 아래가 아니었다. 내가 보살펴줘야하는 노약자도 아니었다.

“네 말, 이해했어.”

“응. 고마워.”

“고맙긴.”

나는 건네받은 주머니를 다시 아르에게 돌려주었다.

“이건 무슨 뜻이야?”

“선물.”

“뭐?”

“진짜 홀로서기를 하려는 널 위한 선물이라고.”

“헨드릭.”

“아르 네 결심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주는 선물이야. 이것까지 거절받고 싶진 않아.”

“치, 친구?”

“왜? 으음, 친구는 좀 아닌가?”

아르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주머니를 품에  안은 그녀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친구. 응. 헨드릭은 내 친구야. 내 첫 친구.”

지금 아르의 모습을 보면, 그 누가 인간을 잡아먹는 늑대인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게  늑대소녀와 정식으로 친구가 되었다. 씻고 나온 카야와 셰이, 일루미나도 마찬가지였다.

**


다음날 아침.

우린 아르의 배웅을 받으며 던전으로향했다. 1구역도 아니고 2구역도 아니고 3구역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벼웠다. 바로 전날 아르와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르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우리야말로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던전에 들어가면서 멘탈관리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일종의 사기 버프를 먹은 셈이었다.

“다들 상태는 어때?”

“기분도 좋고, 몸상태도 좋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두렵기도 하지만  이상으로 기대돼. 우리의 이야기, 그 뒷부분을 이어서 쓰는 거니까. 목숨이 간당간당하는데 기대된다니, 어쩌면 나… 미친게 아닐까?”

“이제 알았어?”

“야! 헨드릭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네가 그걸로 꼬셨잖아!”

“그랬던가?”

일행의 분위기도 좋았다. 세스티아와 약속을 나눈 이후, 카야와 셰이에게 ‘소중히’ 여기진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어리석어서 미리미리 그녀들의 마음을 파악하진 못하기에, 뒤늦게라도그녀들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내겐 정말 과분한 여자였다. 내가 그녀들의 심정을 이해해야할 판에 오히려  이해해주었다.

‘비록  중요한 것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눌러놓은 거겠지.’

반대로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카야나 셰이가 내 친구나 윗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하면….

‘씨발,  되지 안 돼.’

뭐, 어차피 난 친구나 윗사람도 없지 않은가… 씨발, 내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프로필을 띄웠다.

[유진]
레벨 : 7
최대체력 : 24
공격력(6) : 10~22
방어력(5) : 13
속도 : 7(6+1)
기사회생/각성 : 12%
정찰확률 : 45%
긍정적 특징 :*방랑자(속도+1)/의지가 강함(각성 확률 소폭 증가)/공포 학살자(이름에 '공포'가 들어간 괴물을 대상으로 데미지+10%)/도살자*(인간형 괴물에게 데미지+15%)
부정적 특징 : 극단적임(공격력의 밸런스가 낮아짐)

3구역 진입  7레벨에 공방 6/5업, 나쁘지 않았다. 최고난도인걸 생각하면  모자란가 싶기도 하지만 2구역 클리어하고 무사귀환 보상으로 받은 ‘긍정적 특징 부여’로 받은 특징이 그 모자란 곳을 채워주었다. 적어도 내가 받은 건 대박이었다. 인간형 괴물에 한해 잘만 하면 죽창딜을 꽂을 수 있을것이다.

[카야Kaya]
종족/성별 : 하프엘프 여성
클래스 : 전투 수녀(Battle Vestal)
레벨 : 7
최대체력 : 30
공격력(6) : 17~23
방어력(5) : 16
속도 : 5(3+1+1)
기사회생/각성 : 14%
정찰확률 : 31%
긍정적 특징 : 기민한 몸놀림(속도+1)/공포를 극복한 자(모든 멘탈리티 하락속도 25% 감소)/새로운 신념*/라엘라의 화신*/초탈*(명중률 대폭 상승)
부정적 특징 : 일방통행*(유진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받음)

[셰이Shae]
종족/성별 : 인간 여성
클래스 : 성전사(Crusader)
레벨 : 7
최대체력 : 35
공격력(5) : 14~24
방어력(5) : 21
속도 : 5(3+1+1)
기사회생/각성 : 17%
정찰확률 : 34%
긍정적 특징 : 천재(모든 수치+10%, 최소 1)/필사적임(확률적으로 사경 무시)/처단자(치명타 데미지 +10%)/유스티티아의 강림체*/트라우마를 극복함*(5이하의 멘탈리티 데미지 무시, 그 외 멘탈리티 하락속도 10% 감소)
부정적 특징 : 발작(낮은 확률로 멘탈리티 하락)/가학성애(낮은 확률로 통제를 벗어나 공격함)


메인은 카야와 셰이의 성장이었다. 2구역 진입 전과 지금의 스펙은 비교불가였다. 체력과 방어력은 진짜 말도 안 되게 든든해졌고, 심지어단순히 공격력만 따지면 메인딜러인 나보다도 높았다. 두 여신님들께서 강림하신 흔적은 그만큼 강력했다.

거기에보상으로 얻은 새로운 긍정적 특징들도 잘 붙었다. 가끔씩 헛방을 날려 아찔한 순간을 만들 때가 있는 카야에게 명중률이 붙었고, 셰이에겐 멘탈리티 관련 특징이 붙었다. 특히 ‘5 이하의 멘탈리티 데미지 무시’는 엄청났는데, 셰이는 이제 던전 복도에서도 잠을   있을 만큼 강심장이 된 것이다.

‘라엘라님! 유스티티아님!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속이 든든한 국밥을 두 그릇이나 먹은 기분이었다. 몹쓸 상상으로 더러워진 기분이 다시금 충만해졌다.

‘미안하지만 일루미나 안 봐야겠다.’

굳이 웅장해진 가슴을 옹졸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결코 일루미나 잘못은 아니었지만, 단순 스펙만 비교하면 너무 비루해보여서… 사실상 카야랑 셰이는 절대 7레벨이라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대장?”

“어?”

“무슨 생각하십니까?”

카야의 물음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우린 던전 입구 앞에 도착해있었다. 동료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세일럼에서의 마지막 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3구역은 물론 존나 무서운 곳이긴 했다. 누군가의 시체를 넋이 나간 채로 들고 올 수도 있었고, 그게 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가는 것도 아니고, 굳이 플래그 따윌 꼽을 필요는 없지. 여태껏 그랬듯,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반드시.’

그렇기에 덤덤히 말해본다.

“다들 뭐해?  들어가고.”

“…예?”

“가자고. 공포새끼들 조지러.”

“예, 대장.”

카야가,셰이가, 일루미나가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누가 우리들 표정만 보면 그 끔찍한 던전에 가는 게 아니라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 것이다. 그 장소가‘가장기나긴 공포 제3구역’이라는  살떨리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공포에 맞서는 용사들이었다.

[가장 기나긴 공포‘3구역’에 입장했습니다.]

이제, 전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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