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8화 〉청산(7) (158/218)



〈 158화 〉청산(7)

라엘라님이 쓰러진 곳은 도시는커녕 작은 마을조차 없는 길 한복판이었다. 말을  줄 아는 셰이가 마차를 황급히 근처 큰 나무들이 있는 곳 근처로 몰았고, 잽싸게 주변을 탐색한 후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설치했다. 라엘라님을 조심스럽게 눕히고 모닥불을 피우니 딱 해가 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옆에 있었어야 했어요….”

“라엘라님께서 원하셨던 거잖아. 혼자서 생각할 게 있으니 혼자 있게 해달라고.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최선을 다해서 간호하는 거야. 나머지는 그 이후에 해도 돼.”

“맞아. 근데, 여신님도 감기 몸살같은 거에 걸리시는 거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냐고 핀잔을 날리려던 나는 중간에 말을 끊었다. 라엘라님은 온전한 라엘라님이 아니었으니까. 카야의 몸 안에 갇혀있는 형태였고, 카야가 아프면 라엘라님도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단순한 이치였다. 심지어 카야의 의식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여파를 오롯이 라엘라님이 감당하고 계신 것이고.

“열이 엄청 심각해요. 땀도 많이 흘리고 계시고요.”

“쭉 괜찮으셨는데, 마부 일이 고된 건가?”

“그럴 리가요. 길이 험하다면 모를까, 이렇게 평탄한 길에선 완전히 졸지만 않으면 되는 수준이에요. 그래서 걱정하지 않은 거고….”

여신님 혼자서 마차를 몰게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죄책감은 별개로 하고요.

셰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리 중얼거렸다.

“전조도 없었고, 그렇다고 찬바람이나 비를 맞은 것도 아닌데….”

“….”

동료들의 말을 들으니, 짐작이 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잠결에 들은 고함 소리.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하던 나를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마차에 돌려보낸 라엘라님.

필시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니면 지금 증상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교대로 간호하자. 불침번도 겸해서.”

“알겠어요. 순서는 어떻게?”

불침번 순서는 일루미나, 셰이,  순으로 정해졌다. 잠은 마차 안에서 자기도 했고 라엘라님이랑 카야가 걱정돼서 쉽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억지로 눈을 감았다. 수면 사이클이 한 번 망가지면  피곤해지고 고치기도 힘들어질 테니까.

“…장님.”

“….”

“대장님.”

“…아.”

젠장. 전혀  잤다.

엉덩이는 아프고 몸은 전체적으로 찌푸둥한데 정신은 멀쩡하고 자꾸 걱정되고. 눈 감고 몸을 계속 뒤척이다  떠보니 셰이가 날 부르고 있었다.

“고생했어. 특이사항은?”

“고생은요. 라엘라님께서 여전히 아프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어요.”

“…그래. 들어가 쉬어.”

텐트는 두 개였다. 하나는 라엘라님 전용, 다른 하나는 우리 전용이었다. 셰이는 꼬리를 끌어안고 잠든 일루미나의 옆에 몸을 뉘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때문인지 일루미나의 귀가 쫑긋거렸으나 이내 다시 추욱 늘어졌다.

‘어째 사건이 안 터질 때가 없는 거지?’

라엘라님이 저리 쓰러지셔서 마음이 뒤숭숭한데 밤하늘은 쓸데없이 너무나 맑았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밤하늘 반  반이라 해도 될 정도로 크고 작은 별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지구가 아니기에 지구에서 통용되는 별자리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까짓거 별자리야 만들면 그만. 조금 삐뚤빼뚤하지만 이세계판 북두칠성도 그려보고, 삼태성 비슷한 걸 정해 오리온자리도 그려봤다.

“하아….”

마차와 텐트 주변 점검을 끝내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후끈했다. 꽤 넓은 텐트 정중앙에 라엘라님이 누워계셨고 바로 옆에 미지근한 물이 담긴 대야가 있었다. 수건을 만져보니 기분 나쁠 정도로 뜨뜻미지근했다.

대야를 비우고 찬물을 부었다. 수건을 쫙 짜내고 찬물을 적시고 다시이마에 올렸다.

“으응….”

갑자기 수건이 차가워졌기 때문일까. 색색 뜨거운 숨을 내뱉던 라엘라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 깨워버렸나.’

이윽고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시던 라엘라님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셨다.

“…맹랑한 아이니?”

“예, 라엘라님. 깨워서 죄송합니다.”

“으응… 죄송한 일이 아닌데 왜 죄송해하니.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하지.”

라엘라님의 목소리는 상당히 가라앉아있었다. 쩍쩍 메말라 갈라진 논이 떠올랐다.

“라엘라님.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오늘 오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늘 오후…? 아아…  것 아니었는데….”

“라엘라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네. 같이 이동하는 입장에서 마냥 입을 다물 수는 없겠지.”

나는 눈치껏 냉수가 들어있는 물통을 대령했다. 하지만 라엘라님은 어색하게 웃으실 뿐 전혀 움직이지 못하셨다.

“존체에 감히 손을 대도 되겠습니까?”

“날 너무 어렵게 대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히려 귀찮게 해서 미안하구나….”

“귀찮다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는 라엘라님의 상반신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수통을 기울였다. 라엘라님은 물을 삼킬 힘도 없으셨는지 반절 이상 목으로 흘리셨다. 닦아주고 싶었으나 차마 그쪽까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번이고 사랑했던 카야의 몸에 가까웠지만, 의식의 주체가 라엘라님이라는 것만으로 감히 만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쨌든 라엘라님을 다시 눕히자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오후에 감히 우리의 앞길을 막는 도적의 무리가 있었단다.”

“도적 무리 말입니까? 아니, 어찌… 사전 조사할  이 지역 주변의 치안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고 했는데….”

“글쎄… 거기까진 내가 알 수 없구나. 중요한 건 다짜고짜 우리의 앞길을 막았던 도적 무리가 무기를 들고 우리를 겁박했다는 것이었지. 한 눈에 봐도 죄를 한두  저지른 솜씨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단정할 수는 없지는 않겠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계를 위해서 도적이 되어버린 이도 있을  있고, 초범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이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어찌하신 겁니까?”

“그래서 그들의 사정을 헤아렸단다. 그들도 처음엔 양민이었겠지만, 저지른 죄가 너무나 무거웠단다. 티티, 아니 유스티티아였다면 눈을 마주친 순간 그 즉시 검을 휘둘렀을 정도로 말이야. 나는 자애의 여신이지만, 내 자애를 바란 적도 없고 바랄 생각도 없는 이들에게까지 자애심을 베풀진 않아. 내 아이들에게 자애를 베푸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그 말씀은….”

“그 도적들은 정말로 내게 자애를 구걸할 수 없을 거란다. 영원히.”

한 박자 늦게 말 자체에서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라엘라님의 어조가 너무 평탄해서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새끼들이 얼마나 씹새끼들이었으면 라엘라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고 단번에 벌을 내리셨을까 싶었다.

“…혹시 실망했니?”

 침묵을 오해하신 것일까. 라엘라님이 그리 물으셨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목소리도 조금 떠신  같았다.

“아뇨.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오로지 라엘라님의 권한이지 않습니까?”

“그 말은 조금 이상하구나.”

“예?”

“나는 자애와 관용의 여신이지, 무자비와 무관용의 여신이 아닐진대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어….”

“만약 내가 여신이 아니라 그냥 네 동료였다면 어땠을 거 같니?”

“어째서 그런 것을 물으시는진 모르겠지만, 글쎄요. 저는 우리에게 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낯선 이보다 사선을 넘나든 동료를 믿을 겁니다.도적을 직접 보지 않았어도, 그 도적이 어떤 간악한 죄를 저질렀는지 몰랐어도. 내 동료가 그 ‘천인공노할 도적들을 죽였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어째서 죽였냐, 다 죽였냐를 묻기보단 다친 데는 없냐, 위험하게  안 불렀냐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

“그게 카야든, 셰이든, 일루미나든… 라엘라님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엄밀히 말해서  동료가 아니지 않니?”

“지금은 동료이십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저희를 지켜봐주셨습니다. 물론 저희가 감히 라엘라님과 맞먹으려는 생각은 아닙니다만….”

“후후….”

“라엘라님?”

“날 좀 일으켜줄 수 있겠니? 으응, 그래. 아까 물 마셨던 때처럼.”

“존체를….”

“쉬잇. 앞으로 그런 사소한 건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단다.”

영광스럽게도 라엘라님의 상체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하지만 텐트라서 라엘라님이등을 기댈 데가 없었다. 그래서 어정쩡한 자세로 라엘라님을 감싸고 있었는데, 돌연 라엘라님이 내 품에 등을 기대셨다.

“라, 라엘라님!”

“미안하구나. 잠시만 이렇게 있어도 되겠니? 오랫동안  자세로 누워있는 것도 꽤 힘들어서 그런데….”

“어찌, 감히 제가.”

“…안 되겠니?”

아.

그 자세, 그 얼굴 각도로 눈을 치켜뜨시고 그 말을 하시면… 제가 어찌 거역합니까.

나는 결국 앉은 자세에서 라엘라님에게 품을 내주었다. 여신의 품에 안긴 것도 모자라 여신을 품에 안은 필멸자는 아마 내가 최초이지 않을까? 업적이라면 대단한 업적일 텐데, 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얇은 옷을 입고 계셨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맞닿은 부분이 금세 달아올랐다. 심지어 땀을 많이 흘리셔서 그런지 척 달라붙었다. 확 풍기는 체향이 농밀했다.

아찔했다.

내가 알던 카야의 체향이 아니었다. 미량의 향수가 주변의 공기를 확 바꾸듯, 카야의 신체에서 2할 정도 차지하는 라엘라님의 영향은 살짝 뿌린 향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정도였다.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카야의 체향을 베이스에 농밀함 한 스푼, 야함  스푼, 달콤함 한 스푼, 중독성  스푼을 첨가한 느낌이었다.

‘차마 라엘라님께 음탕한 냄새가 난다고 말할  없으니까!’

내가 지금안고 있는 사람은 카야가 아니라 여신님이다. 카야가 아니라 여신님이다!

- 이것 참.

‘저리 꺼져! 흥분하면 안 돼!’

- 아니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

‘씨발 멈춰!’

생각을 아예 비우는 건 불가능해서 오히려 더 많은 잡생각으로 본능적인 음욕을 눌렀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가짐도 무색하게, 라엘라님은 자세가 좀 불편하셨는지 몸을 뒤트실 때마다 뒤통수라든가 등이라든가 엉덩이 같은 부분이 비벼졌다. 특히 엉덩이 부분이 닿을 때는 혀를 깨물었다.

“하아… 이제 좀 낫구나… 아, 내가 무겁거나 불편하진 않니?”

“전혀 무겁지도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다행이구나….”

라엘라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한손을 가슴께에 올리고는 쥐어뜯으셨다.

“아까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그 도적들을 벌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무리한 모양이었던 같구나. 그들의 끝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고통을 주고 싶진 않았기에 일부러 상반신 전체를 날렸는데.”

“….”

아. 음.

아무런 소란 없이 도적 무리의 상반신만을 날리셨다고요? 소름이 돋았다.

“내가 온전히 강림한 상태도 아니라는 것과 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지 뭐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 필멸자의 몸으로 신의 힘을 휘두른 것에 대한 대가란다.  아이를 위한 여행을 제안했으면서 정작 나부터가 내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행동을 했으니, 이 어리석은 나를 누가 여신이라 하겠니?”

“라엘라님.”

“아이의 신체를 아프게  것도 모자라 너희들을 귀찮게 하고 고생시킨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구나.”

“아닙니다, 라엘라님. 오히려 저희야말로 여신님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신이 마차를 모는데 나머지 셋이 마차에서 자고 있던 것도 잘한  아니었다. 그게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자상하구나….”

“과찬이십니다.”

“맹랑한 아이야.”

“예. 말씀하십시오.”

“내가 너를,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니?”

그러고 보니, 난 왜 이름이 아니라 맹랑한 아이로 불리고 있었을까.

“물론입니다.”

“후후. 고맙구나.”

“헌데 라엘라님. 어째서  줄곧 맹랑한 아이라고 부르셨는지 알고 싶….”

쿨럭-

“라엘라님…?”

“아….”

눈앞이 새하얘졌다.

입을 막았던 라엘라님의 손에 피가 한가득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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